83화. < 돌아가다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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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쿠키 반죽을 한 움큼 쥐고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마력 반응을 확인했다.
처음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마력이 반죽 사이사이에 골고루, 마치 원래부터 마력이 깃든 반죽이었던 것처럼 잘 섞여 있었다.
반태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더없이 맑았다. 그래서 최근 있었던 일을 중심으로 자신에 대해 냉철히 판단해봤다.
자신은 왜 난데없이 쿠키 레시피에 도전했을까?
예전 커피 레시피를 만들 때도 정말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그때 다른 음식의 레시피에 도전하지 않은 건, 그 어떤 음식이든 커피보다 변수가 많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냉정하게 판단하면 지금은 쿠키나 만들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분석해야 할 유물이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아직 생체조직에 관한 연구도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무술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한다.
한데 그 모든 걸 뒤로 미루고, 물론 두뇌를 나눠서 각종 연구를 진행 중이니 실제로는 집중하는 분야가 달라졌다고 봐야 하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 중에 고작 쿠키 만들기를 선택했다니, 말이 안 되는 상황 아닌가.
반태수는 이면세계에 있을 때와 지구에 있을 때의 자신이 명백히 다른 판단을 한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쿠키를 만드는 건 이면세계에서의 결정이다.
그것이 지구까지 이어져 이렇게 완성을 하고 말았고.
‘과연 이렇게 금방 완성될 줄 알았을까?’
냉철하게 자신을 관조해보고 자신에 대해 분석해본 결과, 무의식중에 이렇게 될 걸 알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세밀하게 기억을 더듬어 당시의 감정이나 감각을 떠올려봤다.
당시에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했다고 여겼는데, 실제로 당시의 모든 상황과 감정, 감각을 떠올리며 관조해보니, 필요에 의한 접근이었다.
오카리타에서 곡물이나 과일을 대량 재배하는 모습을 보고, 거기에 쓰이는 마법을 확인했다.
실제로 곡물 자체에 영향을 주는 마법이 아니라 재배의 환경에만 작용하는 마법이었다.
그걸 보며, 직접 곡물 자체에 마력을 깃들게 하는 방법에 대해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그때 이미 거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이다.
그 뒤에 오카리타에서 쿠키를 구입하고, 그것이 커피와 궁합이 잘 맞는 걸 확인하고 나니 쿠키 레시피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 과정에서 생체조직 연구의 수준이 깊어질 거라 판단한 것이다.
단순한 충동 안에 그 모든 과정이 들어 있었다.
반태수는 그걸 돌이켜보며, 지구와 이면세계에서 달리 작용하는 자신의 상태를 잘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지금 손으로 주물럭거리는 반죽을 통해 상당한 영감이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그건 고스란히 생체조직 연구에 반영될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육체강화 계열 마법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관조를 끝낸 반태수가 주물럭거리던 반죽을 쿠키 모양으로 빚었다.
이왕 한 반죽, 버릴 수 없으니 쿠키로 만들 생각이었다.
잠시 후, 한 무더기의 쿠키가 오븐에서 나왔고, 반태수는 그걸 미리 준비한 박스에 잘 담았다.
그리고 아공간에 넣어둔 갑각 트롤 사체의 일부를 꺼냈다.
이제부터 생체조직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반태수는 각종 도구를 이용해 갑각 트롤 사체의 마력 반응부터 확인했다.
이내 반태수는 연구에 빠져들어 극도의 집중 상태가 되었다.
반태수의 손에 들린 갑각 트롤 사체의 일부가 다양한 마력으로 물드는 것을 반복했다.
***
반태수는 슬슬 이면세계로 갈 준비를 했다.
여기서는 쿠키 레시피를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카페 위자드에서 팔기 시작한 쿠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커피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쿠키와 커피의 궁합이 좋아, 그동안 커피 맛이 그렇게까지 크게 대단하다고 여기지 못하던 사람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버렸다.
이제 입소문이 더 나면서 커피숍에 줄이 생길 정도였다.
그렇게 쿠키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를 얻었다.
한데 거기에 더불어 생체조직 연구에 대한 진전이 상당했다.
갑각 트롤 사체를 연구했는데, 정작 얻은 것은 인간의 육체에 적용할 만한 것들이었다.
아직 완벽히 마무리가 안 되긴 했지만, 조만간 제대로 된 육체 강화 마법을 완성할 수 있을 듯했다.
육체 강화 마법을 연구해서 그런지 무술에 대한 욕망이 좀 더 커졌다.
아마 여기선 이 정도지만, 이면세계로 가면 얼마나 더 커질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면세계에서 무술을 수련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면세계로 가져갈 물건들을 아공간에 정리해서 넣고, 여기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떠올리며 다 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탈 창고와 연결된 컴퓨터를 확인했다.
반태수가 이면세계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그러니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다시 저장장치를 깨끗이 비워둬야 하지 않겠는가.
저번에 확인했던 것처럼 대충대충 넘어가면서 중요한 것만 체크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새로운 인물이 대화에 끼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그 내용 중에 반태수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것이 있었다.
- 신입.
- 네, 선배님.
- 위자드넷 깔았어?
- 위자드넷이 뭡니까?
- 하, 이거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연수할 때 설명 못 들었어?
- 못 들었습니다.
- 일단 폰 꺼내. 어플 깔아야 하니까. 마켓으로 가면 안 되지. 이런 걸 공개해 놓겠냐? 생각이란 걸 좀 해.
반태수는 선배라는 자가 신입을 갈구는 내용은 대충 넘어갔다. 5분이 넘게 잔소리를 하는데, 정말 질릴 정도였다.
- 이 주소, 고대로 쳐서 들어가. 그렇지. 별로 길지 않으니까 외워.
그 뒤로 신입이 주소를 중얼거리는 말이 들려왔다.
반태수는 집중해서 주소를 외웠다.
- 들어갔냐? 거기 박스에 암호 입력해야 된다. 암호는…….
당연히 관련자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여겼는지 암호도 말해줬다.
반태수는 그것도 외웠다.
- 참고로 암호는 매일 바뀌니까 혹시 폰을 바꾸거나 할 때는 신경 써. 나중에 암호 물어보면 뒤진다.
- 예. 매일 암호 확인하겠습니다.
- 그래. 좋은 자세야. 그렇게만 하면 여기 생활 어렵지 않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꿀보직이 될 수 있거든.
- 명심하겠습니다!
- 암호 넣었으면 거기 다운 받을 수 있는 아이콘 보이지? 그거 누르면 끝.
- 설치 끝났습니다.
- 그럼 슬슬 둘러봐. 앞으로 네가 할 일이야. 매일 쭉 둘러보고 쓸 만한 정보 있으면 정리해서 보고해. 오케이?
- 예!
반태수는 나머지 정보는 대충 확인하고 싹 지웠다.
오늘 뭔가 되는 날이다. 위자드넷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니.
반태수는 서둘러 폰을 꺼냈다. 한데 문득 이 폰으로 접속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포폰이 필요했다.
암호는 하루밖에 쓰지 못한다. 그러니 오늘 중으로 모든 걸 처리해야만 한다.
반태수는 일단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
원래는 오늘 이면세계로 가려고 했다. 한데 난데없이 얻은 위자드넷에 대한 정보가 발길을 막았다.
반태수는 간신히 구한 대포폰을 이용해 위자드넷 어플을 깔고 거기에 들어갔다.
다행히 암호도 통했고, 어플도 순조롭게 깔렸다.
집이나 연구실에서 하면 혹시 위치추적에 걸릴지도 몰라 아예 다른 동네로 가서 적당한 곳, CCTV나 블랙박스에 걸릴 염려가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 심지어 왜곡까지 써서 모습을 감춘 채 위자드넷에 접속했다.
화려한 마법진이 폭죽처럼 여러 차례 화면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마법진이 확 나타났다가 펑 터지면서 흩어지고, 그 흩어진 점들이 다시 마법진이 되어 확 커졌다.
그게 배경이고, 그 위에 메뉴가 있었다.
한데 모양만 화려하지 전체적인 구조는 이면세계의 마법사 전용 웹과 굉장히 흡사했다.
‘가만, 위자드넷.......'
마법사 전용 웹이랑 똑같은 뜻 아닌가.
말 그대로 게시판이 모인 웹이었다.
게시판도 마법사 전용 웹이랑 비슷하게 자유게시판에서부터 의뢰 게시판까지 똑같았다.
심지어 포인트를 모아 등급을 올리는 것까지 같았다.
등급이 오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게시판까지 존재했다.
'이거 마법사 전용 웹이랑 아주 똑같은데?’
반태수는 하루라는 시간을 들여 위자드넷을 꼼꼼히 살폈다.
게시 글이 너무 많아서 모든 게시 글을 일일이 다 읽어보는 건 불가능했고, 적절한 검색을 통해 큰 줄기만 확인했다.
결론은, 여긴 진짜 위자드넷이 아니었다.
진짜 위자드넷은 따로 있고, 그건 제대로 확인 된, 진짜 자격을 갖춘 자들만 이용 가능한 사이트였다.
그리고 여긴 그 진짜 위자드넷을 고대로 따라 만든 레플리카였다.
여기는 진짜와 달리 기존 사용자들의 소개만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니만큼 이용자 수가 상당히 많았다.
창고 포탈에서도 신입이 들어왔다고 바로 위자드넷부터 설치하게 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이용자 수가 많은 만큼 쓰레기 정보도 넘쳐난다.
하지만 포인트롤 모아 등급을 어느 정도 올리고 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하위 게시판에는 쓰레기가 넘쳐나지만, 상위 게시판에는 알짜 정보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상위 게시판으로 가기 위해 포인트를 모으려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아무나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뜻이다.
게시판을 확인하다보니 예전에 포탈 창고에서 들었던 얘기들도 보였다.
미국이 포션 제작에 성공했다는 내용인데, 그 뒤로도 몇 차례 글이 더 올라왔는지 그때 들었던 내용보다 더 상세했다.
아무튼 결론은 상용화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당연했다. 포션이 제대로 효능을 발휘하려면 마력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러려면 마력을 주입할 수 있는 장비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무튼 위자드넷을 대충 확인하고 반태수가 내린 결론은 쓸모가 없다는 거였다.
최소한의 쓸모를 얻으려면 포인트를 모아 상위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진짜 위자드넷을 찾는 건데…….'
당장 그걸 찾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반태수는 일단 깔끔하게 진짜를 찾는 건 포기했다. 이렇게 관심을 두고 지켜보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넘기는 것이 나았다.
반태수는 대포폰의 전원을 끄고 아공간에 넣었다.
아공간 팔찌를 보고 있으니 더없이 마음이 든든했다.
반태수는 곧장 이면세계로 가기로 했다.
왜곡을 건 채 다시 연구실로 와서 포탈 앞에 섰다.
"자, 그럼 돌아가 볼까?”
반태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포탈로 들어갔다.
***
이면세계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반태수가 한 일은 자신이 만든 쿠키 오븐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자리는 커피머신 옆, 놓고 보니 제법 그럴듯하게 어울렸다.
일단 시작은 쿠키부터다.
레시피에 있는 재료부터 구해서 새로 쿠키를 구울 생각이었다.
재료는 주방에 말해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뭔가 대단한 재료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흔한 것들로만 만들었으니 당연했다.
반태수는 재료를 비율에 맞춰 섞은 다음 오븐에 넣었다.
이내 고소한 쿠키 냄새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반태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이다.
일단 만든 쿠키를 미리 준비한 상자에 잘 담았다.
지구에서 제법 오래 있었으니 또 한 번 사람들을 만나 선물로 쿠키를 줄 생각이었다.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과연 이 쿠키를 먹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와 아마 비슷하겠지?
반태수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쿠키를 포장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얼른 아공간에서 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헉."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나 와 있었다. 문자도 장난 아니었다.
엄대협을 고용한 다음 처음 지구에 다녀왔을 때와 비슷했다.
얼른 확인해보니 엄대협에게서 온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
몇 개의 스팸 전화를 제외하면 전부 키에라 나서스에게서 온 전화였다.
문자를 확인해보니 마찬가지로 대부분 키에라 나서스가 보낸 문자였다.
엄대협이 보낸 건 딱 하나였다.
- 돌아오면 연락해.
키에라 나서스는 왜 전화를 안 받느냐는 정중한 문자로 시작해, 왜 이러는 거냐, 나한테 장난하는 거냐, 이대로 먹튀하려는 거냐, 등등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그래도 그 와중에 예의 없는 말이나 욕설은 쓰지 않았다. 예전 엄대협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아무튼 한편으로는 이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여자가 왜 이러나 싶기도 했다.
아직 유물도 안 골랐는데 먹튀는 무슨 먹튀란 말인가.
"집요하네.”
정말 될 때까지 연락을 할 모양인가보다.
그렇게 폰을 확인하던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이걸 보니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비록 고작 일주일 좀 넘는 시간이었지만.
반태수는 잠시 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마침 그 순간 전화가 왔다.
키에라 나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