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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80화 (80/351)

80화.  < 돌아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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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장에 들어가자마자 강렬한 음악과 화려한 조명이 일행을 반겼다.

분위기는 흥겨우면서도 어딘가 끈적했다.

자샤드 일행만 쓰는 건줄 알았는데, 안에 먼저 와서 몸을 흔들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가운데 제법 넓은 스테이지가 있고, 사람들이 그 위에서 자유롭게 춤을 췄다.

스테이지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손에 술병을 든 사람도 많았고, 테이블이나 바에 자리를 차지하고 서서 술을 입에 축이며 스테이지와 파티장 내부를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솔직히 이런 분위기일 줄은 몰랐기에 반태수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이런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에 표정이 풀어졌다.

반태수는 일행이 가는 대로 따라갔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으니 술과 요리가 계속 나와 테이블을 꽉 채웠다.

먼저 요리부터 먹었다. 제법 허기가 졌기에 요리 접시가 순식간에 바닥났다.

종업원들이 다가와 빈 접시를 가져가고 새 요리를 내려놓았다.

이제는 저 요리를 안주로 쓰면 된다.

술이 몇 잔 돌아가니 분위기가 점점 풀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이제 스테이지 쪽으로 향했다.

물론 반태수는 스테이지로 가서 몸을 흔들 생각은 없었다. 그저 여기서 술이나 몇 잔 마시고 구경하다가 방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잠깐 있으니 일행들 대부분이 스테이지로 나가고 테이블이 텅 비어 버렸다.

반태수는 자신도 나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고는 술잔을 비웠다.

그러자 누군가 술잔을 채워줬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앞자리에 칼드웰이 앉아 있었다.

"아까 스테이지로 나간 거 아니었습니까?”

"제가 나가야 분위기가 살아날 것 같아서 먼저 움직인 것뿐입니다. 솔직히 저런 분위기를 잘 못 즐깁니다.”

"의외네요.”

반태수는 정말 의외라는 듯 칼드웰을 쳐다봤다.

칼드웰은 상당히 잘 생긴 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일반인 중에서 칼드웰처럼 잘 생긴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면세계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일반인 중에 미인이나 미남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보기 좋게 깨진 것이 바로 칼드웰이었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능력자들이 더 자유분방한 외모를 가졌다. 마력을 더 많이 가졌으니 당연하다.

그러니 일반인들 중에 미남 미녀가 나올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아무튼 칼드웰은 잘 생긴데다가 뭔가 퇴폐적인 느낌도 살짝 감돌았다. 그래서 저렇게 남녀가 뒤섞여 끈적하게 노는 것도 잘 하는 줄 알았다.

"좀 어릴 때는 친구들과 클럽도 자주 다녔는데, 그때도 전 대부분 테이블에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그 뒤로도 비슷한 주제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칼드웰이 조용히 있어도 알아서 여자들이 찾아오는 인기 있는 남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인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었다.

마침 몇몇 여자들이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눈에 담긴 욕망이 장난 아니었다.

반태수는 가볍게 마력을 움직였다.

갑자기 다가오던 여자들이 멈칫 하더니 스테이지로 돌아갔다.

칼드웰이 그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었다.

"반 마법사님 덕분에 이번 일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돌아가면 톡톡히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칼드웰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단하시군요. 전 솔직히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계속 불안해서…… 특히 나서스 가가 개입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진 줄 알았죠.”

"전혀 동요가 없어 보였는데……."

"연기였습니다. 제가 동요하면 사기에 문제가 생겨서 될 일도 안 될 테니까요. 뭐, 나서스 가에서 대놓고 나서지는 않을 거란 믿음이 있어서 그나마 버틸 만했습니다.”

"진짜 대단하신 분은 대표님이네요.”

칼드웰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무리 표정관리를 해봐야 반 마법사님이 아니었다면 아무소용 없었을 겁니다. 앞으로 혹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신 일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성심을 다해 돕겠습니다.”

반태수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대표님도 필요하면 또 의뢰 하세요. 최대한 스케줄 맞춰 드릴 테니까.”

칼드웰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로군요.”

반태수 정도의 마법사에게 의뢰를 맡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힘이었다.

아마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반태수에게 의뢰를 맡기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다른 곳에서 활약을 했다면 그렇게까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거나.

하지만 여긴 오카리타였다. 촬영용 드론이 하늘 곳곳에 날아다니는 곳. 활약을 감출 수 없고, 그 활약을 찍은 영상이 보관되는 곳.

또한 그렇게 촬영한 영상을 보기 좋게 편집해서 정보로 팔아먹는 곳 말이다.

아마 크랙톤의 상류층은 대부분 그 영상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반 마법사님은 안 즐기실 겁니까? 아마 스테이지에 올라가기만 해도 파트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반태수가 씨익 웃었다.

"저도 아직 저기까진 못 가겠네요. 아직 오늘 할 일이 다 안 끝나기도 했고.”

칼드웰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반태수를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뭔가 짚이는 것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오랜만에 즐겨보고 싶어지네요. 그럼 편히 쉬십시오.”

칼드웰이 그 말을 남기고 스테이지로 향했다.

반태수는 잠시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술잔을 비웠다.

술을 꿀꺽 삼키고 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놨을 때, 앞자리에 누군가 슬그머니 앉았다.

예상했기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정말로 왔네요?”

반태수의 앞에 앉은 사내, 클루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 밤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 약속은 지킵니다.”

반태수가 가만히 쳐다보자, 클루간이 억지로 표정을 지우며 물었다.

"생각은 좀 해보셨습니까?”

반태수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저 말을 해도 되는 타이밍이긴 한가?

"생각할 기회를 안 주셔서.”

"인정합니다. 솔직히 그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이신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가신 가문 내에서도 견줄 만한 마법사를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과찬이 심하시네요.”

클루간이 벌떡 일어나더니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어제 일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과드립니다.”

반태수는 클루간의 태도에 감탄했다. 이렇게 태도를 싹 바꾸다니. 그것도 어젯밤만 해도 눈을 내리깔고 보던 상대에게 말이다.

클루간은 제법 오래 허리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저희와 함께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우는 상상 이상으로 해드리겠습니다."

반태수는 그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오늘 아침에 나서스 가에서 찾아온 사람이 있었는데, 혹시 알고 있습니까?"

"예?”

클루간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키에라 아가씨가?”

"오, 잘 아시나 보네요?”

당연히 잘 안다. 현재 클루간이 모시는 호스틸리안 나서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니까.

"설마 아가씨 밑으로 들어가시기로 한 겁니까?”

"그건 아니고요.”

클루간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는 셈이니까.

"아가씨가 무슨 조건을 제시했든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부디 저희와 함께 해주십시오.”

"그 조건은 알아서 알아보시죠. 아무튼 아쉽게 됐네요. 우리는 여기까지입니다.”

클루간의 눈에 절망이 살짝 어렸다.

반태수가 얼마나 뛰어난 마법사인지 호스틸리안에게 어필하기 위해 정성들여 활약 영상을 만들었다.

그 영상과 함께 반태수와의 계약서를 내밀면서 용서를 구할 생각이었다.

"그럼 부디 키에라 아가씨와 손을 잡지 말아 주십시오. 그에 대한 대가를 확실히 챙겨드리겠습니다.”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그것도 이미 늦은 듯하네요. 의뢰를 받기로 해서.”

"그럼 저희 의뢰도 받아주십시오.”

"이중 의뢰를 받으라고요? 그럴 수는 없죠.”

클루간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정말 방법이 없겠습니까?”

반태수는 클루간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면서 그의 상태를 면밀히 체크했다.

안 그래도 난폭한 마력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력의 상태는 심리를 반영하기도 한다.

반태수는 클루간의 상태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빠르게 마력의 실을 뽑아 마법을 펼쳤다.

클루간이 어떤 속성의 능력을 가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석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폭발 속성일 가능성이 높았다.

마력이 흐르는 길도 굉장히 거칠었다. 폭발 속성 능력자가 전형적으로 가지는 특징 중 하나였다.

반태수가 생각하는 대처법은 간단했다. 폭발이 외부로 흘러나가지 못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클루간 주변을 마력 역장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 거기에 물리력을 부여하고 내구력 강화를 걸었다. 폭발로 인해 쏟아지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불안하게 흔들리던 마력이 결국 일제히 발산했다.

꽈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클루간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모든 충격을 반태수가 미리 구현해 놓은 실드가 막아내고 흡수했다.

굳이 흡수한 충격을 되돌려 주지는 않았다.

이 이후의 일은 방금 파티장에 들어온 사람이 알아서 처리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폭발의 충격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클루간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폭발이 주변에 아무 영향도 못 미쳤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폭발이 발산하지 못해 반발로 되돌아온 충격까지 몸으로 견더내야 했다.

그의 몸이 반쯤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어느새 반태수에게 다가온 키에라 나서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클루간을 노려보며 말했다.

"클루간, 아무래도 세심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아가씨, 이건……."

키에라 나서스는 그의 변명은 듣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 반태수를 바라봤다.

"우리 가문의 사람이 큰 실례를 저질렀네요. 혹시 폭발을 막으신 건가요?”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실드로 막았습니다.”

키에라 나서서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클루간의 폭발을 실드로 막았는데, 주변에 아무 흔적도 안 남았다고? 그게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날 몇 번이나 연달아 놀라게 하시는군요. 덕분에 제 안목에 대한 신뢰를 이렇게 다시 확인했네요.”

반태수는 키에라 나서스의 말에 피식 웃었다. 참으로 독특한 관점 아닌가.

"이 사람에 대한 처분은 아주 공평하고 철저하게 진행될 거예요. 믿어도 좋아요. 제가 직접 나서서 처리할 테니까요.”

그녀의 눈빛이 살짝 위험하게 번득였다.

"축하하러 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솔직히 눈앞에서 보지 않았다면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가 아는 클루간은 결코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 정도까지 왔다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요소가 있다는 뜻이다.

키에라 나서스가 뒤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정장을 입은 사내 세 명이 우르르 달려왔다.

그들은 클루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좀 앉아도 되죠?”

클루간이 끌려가는 모습을 잠깐 보던 반태수는 키에라 나서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반태수의 옆자리에 앉았다.

"승리, 축하해요.”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축하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죠. 나야 의뢰를 수행했을 뿐인데.”

"그런가요? 내가 보기에 이번 일은 당신이 혼자서 다 처리한 거나 다름없는데.”

"운이 좋았죠.”

반태수는 진심으로 그렇게 여겼다. 만일 바나블에서 준비한 악마의 눈이라는 유물을 그냥 무작정 상대했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 유물이 작동하기 전에 미리 그에 관한 얘기를 들었기에 막아낼 수 있었다.

키에라 나서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도 잘하시네요. 악마의 눈 세 개를 가루로 만드신 분께서.”

그녀는 반태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건 우리 가문에 스무 개밖에 없는 유물이에요. 이제 열일곱 개가 남았네요.”

키에라 나서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대체 이런 대단한 마법사가 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혹시 5대 가문에서 비밀병기로 키운, 뭐 그런 건 아니죠?”

반태수는 그녀의 마지막 말이 과연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농담이 과하네요.”

"농담 아닌데요?”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5대 가문이 하는 일이면 당신이 훨씬 더 잘 아는 거 아닌가요? 정말 5대 가문에서 비밀병기를 키워요?”

"그건 나도 모르죠. 하지만 가능성은 있지 않겠어요?”

반태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반응 보니까 그건 아닌 모양이네요.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해요. 당신 덕분에 제가 가문의 후계자가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드니까.”

키에라 나서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이쪽 일은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걱정 말아요. 그리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울 테니 필요하면 연락하고요.”

그녀는 밖으로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려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총을 쏘듯 손가락으로 반태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연락 하면 잘 받고요. 알았죠?”

키에라 나서스는 더없이 환한 미소를 남기고 돌아갔다.

반태수는 그녀가 파티장에서 나간 후, 모든 시선을 자신이 독식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시선을 모을 만했다.

클루간의 폭발, 그리고 키에라 나서스의 등장까지.

반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파티는 여기까지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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