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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77화 (77/351)

77화.  < 나서스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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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반태수는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임시로 침대에 피로회복을 비롯해서 집 침대에 걸린 마법들을 걸어두고 잤기에 컨디션이 한껏 올라왔다.

대충 씻고 침대에 걸터앉아 어제 만났던 클루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솔직히 나서스 가에서 이렇게 빨리 영입 제안을 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빨라도 떠나기 직전에나 접근할 줄 알았다.

한데 일이 터진 당일 바로 찾아오다니.

도시 전역의 싸움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어쩌면 어제 싸움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서둘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거절을 했고, 후회할 거라고 했으니 뭔가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 수작이 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아마 자샤드와 바나블 사이의 싸움에 개입하겠지.

이쪽 의뢰를 실패로 유도할 작정이리라.

대놓고 계약을 해주지 않는 방법도 있으나, 나서스 가가 그런 식으로 일처리를 할 리 없다.

차라리 바나블 쪽에 힘을 실어 줘서 다음 전투를 압도하는 쪽이 더 나을 테니까.

과연 어떤 힘을 실어 줄지는 모르지만, 일단 마음의 준비는 해둬야 한다.

반태수는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아침식사는 어제 1층에서 먹었던 식당에서 제공하기로 되어 있었다.

식당에 가보니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만 반태수와 함께 온 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반태수는 접시를 하나 들고 뷔페 형식으로 차려진 음식을 쭉 돌면서 먹을 만한 것들을 척척 집었다.

적당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앞에 앉았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처음 보는 여자였다.

여자로부터 풍기는 마력 반응이 장난 아니었다. 반사적으로 영역화를 쓰니 몸 곳곳에서 유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페일라 린치필드를 보는 듯했다.

"어제 우리 오빠가 보낸 사람을 걷어 차버렸다면서요?"

여자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폭력을 쓴 기억은 없습니다만.”

"에이, 왜 못 알아듣는 척 하시고 그래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혼자 뭐가 그리 웃긴지 잠시 킥킥대며 웃었다.

"키에라 나서스라고 해요.”

역시 나서스 가에서 또 사람이 왔다.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린다더니 정말 열심이긴 하다.

반태수가 별 대꾸 없이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키에라 나서스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제 클루간이 움직였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초조했는지 몰라요. 당신을 빼앗기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보기 좋게 차버릴 줄은 몰랐네요. 솔직히 속이 좀 시원했어요.”

반태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접시를 말끔하게 비우고 고개를 들었다.

키에라 나서스는 반태수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얼른 용건만 말하고 꺼지라는 눈빛이네요. 제가 눈치가 좀 빠르죠?”

반태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클루간이 무슨 조건을 제시했는지 몰라도 보통이 아니었을 텐데도 거절한 걸 보면 어딘가에 소속되길 원하지 않는 거죠?”

키에라 나서스는 어떠냐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전 관점을 조금 바꿔봤어요. 의뢰는 받을 수 있죠?”

반태수의 눈에 살짝 호기심이 맴돌았다.

키에라 나서스의 의뢰를 받으면 지금 나서스 가에서 왜 이렇게 인재를 광적으로 모으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노! 관심이 좀 생긴 모양이네요? 예스! 성공이다!”

결국 반태수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가 자아내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의뢰입니까?”

"정확히는 의뢰 예약이에요.”

"예약?”

키에라 나서스가 또 한 차례 배시시 웃었다. 순진한 듯하면서도 귀여운 미소였다.

일부러 저런 표정을 연기한 거라면 정말 대단하다.

"언제가 될지 몰라서 예약만 걸어 놓는 거예요. 그 일은 나하고만 하자고.”

"의뢰 내용부터 공개하시죠.”

키에라 나서스가 손뼉을 짝 쳤다.

"아! 아직 그걸 말씀 안 드렸네요. 나중에 우리 나서스 가에서 경합을 하거든요.”

“경합?”

"가문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과정 중 하나랍니다.”

"좋은 인재를 많이 영입한 쪽이 승자가 되는 겁니까?”

"비슷해요. 정확히는 그렇게 구한 인재로 서로 싸워서 이겨야 해요.”

"나서스 가 정도면 다른 도시에서 인재를 충분히 모을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여기서 이렇게 싸움을 조장하는 거죠?”

"그것도 경합의 일부예요. 싸우는 모습을 보고서 인재를 골라낼 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인재를 고른 이유까지 데이터로 남겨야 하죠.”

"간단한 과정은 아니군요.”

키에라 나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복잡해요. 드론을 통해 촬영하는 것조차 그 과정에 포함되니까요. 심지어 싸움을 붙이는 과정도 다 알아서 해야 돼요.”

그냥 단순히 싸움 잘하는 놈 골라내는 게 아니라, 판을 짜는 것까지 경합의 과정인 것이다.

키에라 나서스가 의미심장하게, 아니, 약간 음흉하게 웃었다.

“으흐흣. 클루간이 멍청한 짓을 했어요. 아니, 클루간은 어쩔 수 없었겠죠. 우리 오라버니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을 테니까.”

키에라 나서스가 흠칫 하더니 다시 아까처럼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그 음흉하고 기괴한 웃음을 본 이상, 그녀의 미소가 더는 순진하고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본격적인 경합을 시작할 때, 오셔서 도움을 주세요. 그게 제 의뢰랍니다.”

키에라 나서스는 그렇게 말하고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일단 예약의 대가로 듀마이어 방패에 대량 주문을 넣을게요. 그리고 지속적인 공급 계약을 체결하죠."

그녀의 손가락이 두 개로 늘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유물 리스트를 보내드리죠. 그 중 원하는 것 두 개를 고르세요.”

그녀의 손가락이 세 개가 되었다.

"이 호텔의 영구 무료 숙박권을 드리죠. 예약만 하시면 언제든 방을 내드릴 거예요.”

반태수가 그녀를 가만히 쳐다봤다.

생각보다 괜찮은 조건이었다. 고작 예약의 대가로 받기에는.

"경합이 언제쯤 시작합니까?”

"그건 아무도 몰라요. 다만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는 통보하니 갑작스럽게 열릴 일은 없어요.”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로군요.”

키에라 나서스가 환하게 웃었다.

"그렇죠? 제가 생각해도 그래요. 진짜 의뢰의 대가는 경합이 끝난 다음 활약에 따라 차등 지급할 건데, 괜찮죠?”

바라던 바다.

가신 가문의 후계자 경합이라니. 아마 굉장한 능력자들이 많이 참여할 것이다. 또한 굉장한 마도구나 유물도 많이 등장할 테고.

그런 상대와 싸우면 얼마나 짜릿할까? 또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런 기대만으로도 심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키에라 나서스가 또 배시시 웃으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번호 찍어주세요. 종종 연락할 테니까.”

반태수는 번호를 입력했다. 한데 도시가 다른데 연락이 가능하긴 한가?

문득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되니까 연락처를 받아간 것 아니겠는가.

반태수의 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제 번호 꼭 저장해 두세요. 문자 확인하면 답장 잘 해주시고요. 그냥 씹으시면 저 상처 받을지도 몰라요. 아직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확인은 못 해봤지만.”

"노력해 보죠.”

원하는 답이 아니었던지 키에라 나서스의 입술이 몇 차례 삐죽였다.

하지만 금세 원래대로 돌아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밥부터 먹죠. 그걸로 끝 아니죠? 더 드실 거죠?”

당연히 그럴 거라고 여기는 듯 그녀는 통통거리는 걸음으로 음식을 담으러 갔다.

반태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한 번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닌 게 아니라 아직 한참 모자랐다.

***

아침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자샤드의 일행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반태수를 발견하자마자 반색하며 그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반태수와 함께 식사를 하던 키에라 나서스는 샐러드만 반 접시 정도 먹다가 바쁘다고 돌아갔기에 반태수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가장 먼저 다가온 사람은 발드릭이었다. 나머지 일행의 눈빛에도 호의와 경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어제 반태수의 실력을 충분히 겪었기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다들 제법 경험이 많고 대단한 능력자나 마법사들과도 함께 일을 해봤지만, 반태수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는 처음이었다.

마법이 강력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싸우는 방식이 달랐다. 그들이 느낀 것은 압도였다.

그 어떤 강력한 적이 나타나더라도 반태수가 박살 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반태수 주변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다. 다들 어떻게든 반태수에게 말을 한 번이라도 걸고 싶어서 먹는 내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반태수는 별 생각이 없었기에 자기 먹을 것을 다 먹은 다음 바로 일어났다.

아쉬움이 가득 담긴 무수한 시선이 반태수에게 모였다.

‘이번에는 유독 심하네.’

그동안 누군가와 함께 의뢰를 하고 나면 언제나 경이로운 시선이 따라붙었다.

한데 이번이 유독 심했다.

아마 이번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태수는 식당을 떠나려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돌아서서 자샤드의 대표인 칼드웰에게 다가갔다.

칼트웰이 의아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칼드웰 앞에 앉아 얘기했다.

"어제 나서스 가에서 찾아왔었습니다.”

"예? 나서스 가에서요? 어제 언제 말입니까?”

"대표님이 방에서 나가자마자 바로 찾아오더군요. 아마 기다린 모양입니다.”

"허어. 정말 빠르긴 하군요. 그래서 어쩌기로 하셨습니까?”

"거절했죠. 내가 그럴 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칼드웰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진짜 저렇게 거절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듣기로 다른 회사들 역시 나서스 가의 제안을 거절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이 아는 한, 반태수가 유일하다. 나서스 가의 영입 제안을 거절한 사람은.

"한데 그 얘기를 왜……."

굳이 그 얘기를 자신에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칼드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거절했더니 뭔가 일을 칠 것 같더군요. 오늘은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밤에 또 찾아오겠다고 했으니, 그 전에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그렇겠군요.”

반태수와 칼드웰의 대화를 근처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들었다.

다들 표정이 굳는 걸 보니 경각심을 가질 모양이다. 더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그럼 전 좀 쉬겠습니다.”

반태수는 다시 일어나 식당을 나섰다.

그런 반태수의 뒷모습에 모든 일행의 시선이 모였다.

아마 나서스 가에서 어떤 식으로 개입하든 반태수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등이 새삼 든든했다.

***

자샤드 일행은 아침 식사 이후 정말 푹 쉬었다.

어제 나름 격렬한 전투가 있었기에 피로를 완벽히 푸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늦은 오후, 자샤드 일행은 전부 로비에 모였다.

이제 오늘의 일정을 진행할 차례였다.

오늘 칼드웰이 할 일은 사실 없었다. 계약 마무리는 내일 하기로 했으니까.

칼드웰은 로비에 모인 일행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바나블을 칩니다.”

다들 눈이 반짝였다. 어제는 공격을 받았고, 오늘은 우리 차례다. 진짜 마음껏 날뛸 생각이었다.

"오늘 기습은 아마 굉장히 위험할 겁니다. 어쩌면 적에게 우리의 정보가 넘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나서스 가에서 지원을 한다면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되리라.

하지만 나서스가 할 수 있는 지원에도 한계가 있었다.

너무 대놓고 개입하지는 못한다.

"주눅들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나서스 가와 싸우는 게 아니라 바나블과 싸우는 거니까요.”

칼드웰의 시선이 반태수에게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나머지 일행의 시선도 칼드웰을 똑같이 따라갔다.

반태수를 한 번 본 것만으로 든든했다. 이번 싸움도 분명히 이길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바나블의 동선을 확보했고, 방금 여러분께 전달했습니다.”

칼드웰은 오전에 바나블에 대한 정보를 구입했다. 오카리타에는 다양한 정보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바나블의 정보는 아주 쉬운 편에 속했다. 그들의 동선과 현재 보유한 상세한 전력도 입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그보다 더 강력할 것이다. 나서스 가의 지원이 있을 테니까.

칼드웰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일행을 슥 둘러봤다.

"자, 갑시다. 이 싸움을 끝내러.”

칼드웰이 먼저 호텔을 나섰고, 나머지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반태수는 칼드웰과 나란히 걷다가 그의 차에 함께 탔다.

가장 중요한 건 칼드웰의 안전이었다. 그것이 반태수가 받은 의뢰였으니까.

칼드웰이 죽는 순간, 혹은 크게 다쳐서 거동이 불가능해지는 순간, 패배가 확정된다.

호텔 앞에 있던 차량들이 차례대로 출발했다.

그리고 20분쯤 이동했을 때, 열 대쯤 되는 차량이 합류했다.

칼드웰이 오전 중에 오카리타에서 고용한 용병들이었다.

싸움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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