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 오카리타에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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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능력자 조직, 팀 에페가 뛰어난 마도구를 얻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사실 통제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최근 이면세계와 관련된 조직들이 시끌시끌해서 완벽한 통제가 거의 불가능했다.
아무튼 그 소식은 한국에 있는 팀 대영에도 전해졌다.
"그래서 무슨 마도구인데?”
백진희의 물음에 최진혁이 평소 잘 보여주지 않는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루에 실드를 세 번 쓸 수 있는 마도구라던데.”
백진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하루에 세 번이나? 그럼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모양이네?”
지난번에 백진희가 가져왔던 마도구는 총 사용 회수가 15회에 불과했다.
게다가 능력도 촛불이나 다름없는 불을 일으키는 마도구였다. 딱 15회짜리 라이터다.
"대체 어디서 그런 걸 얻었대? 그런 정보는 아직 안 돌아다니나?”
"돌아다녀. 팀 에페에 떠버리들이 얼마나 많은데. 특히 팀장이 최고지.”
"그래?”
최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거기 미끼 브로커 중에 엄대협이라고 알아?”
"알지. 요즘은 잘 안 보이던데, 벨리온 길드랑 이제 일 안 하나?”
"다른 일 하기 시작한 지 한참이야. 지금은 무슨 마법사 밑에서 에이전트처럼 일한다고 하더라고.”
"별 걸 다 아네?”
백진희가 신기한 눈으로 최진혁을 바라보자, 최진혁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관심만 조금 가지면 다 알 수 있는 일이야. 넌 너무 관심이 없어.”
"내가 관심이 없긴 뭐가 없어. 나 아니면 우리 팀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아? 일은 누가 다 따오는데?"
"그러니까 그 일 따올 때 관심 갖고 얘기만 좀 나누면 양질의 정보가 들어오잖아.”
"됐으니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해. 그래서 그 브로커가 어쨌는데?”
최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을 이었다.
"그 엄대협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의뢰를 하나 받았나봐. 어디랑 싸우는 건데, 여기부터가 대박이야.”
최진혁은 신이 나서 팀 에페가 겪은 일을 마치 자신이 겪은 것처럼 얘기했다.
마도구 방패가 지급된 것부터, 그 방패의 위력, 그리고 어떤 싸움이 벌어졌고, 어떻게 마무리 되었으며, 대가로 마도구를 받고 나중에 또 이런 의뢰를 받을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까지 줄줄 설명했다.
눈을 반짝이며 최진혁의 이야기를 듣던 백진희가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쪽에 붙는 게 벨리온 길드보다 나은 것 같은데?”
"그렇지? 그래서 팀 에페에 내가 얘기해뒀어. 엄대협 좀 만나게 해달라고.”
"잘했어. 우리도 제대로 된 기회 한 번 잡아 보자고.”
"잘 됐으면 좋겠네. 솔직히 이제 벨리온 길드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안 보이는 거 같아.”
"맞아.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 안달이 난 놈 상대하기도 이제 지치고.”
"이제 상대가 오디스에서 엄대협으로 바뀌는 거 아냐?”
최진혁이 짓궂은 표정으로 말하자, 백진희가 인상을 팍 썼다.
"목숨은 하나라는 거 명심하고 살아. 아니면 거기를 뭉개줄까?”
"어우, 무슨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 너 이러는 거 그 카페 주인도 알아?”
반태수 얘기를 하자 백진희의 표정이 대번에 달라졌다.
"하아. 같이 무술 수련하기로 했는데. 이제 연락도 안 되네.”
"카페 찾아가 보지 그랬어? 이제 분위기도 좀 괜찮아졌는데.”
"그러다가 나 때문에 그쪽에 피해라도 가면 어쩌려고. 됐다. 그냥 끝까지 기다릴 거야. 언젠가 한 번은 연락해 주겠지.”
"하이고, 어쩌다 우리 백진회 팀장이 이런 해바라기가 됐을까? 솔직히 벌써 딴 남자로 갈아타고도 남을 시간인데.”
"허튼 소리 그만하고 포탈 넘을 준비나 해. 이제 며칠 안 남았으니까.”
"알았다, 알았어.”
최진혁이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백진희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아마 이번에 이면세계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팀 에페가 얻은 마도구 때문에 지금 능력자들이 한껏 들떠 있을 테니까.
아마 팀 에페에 작업을 거는 팀이나 세력들도 잔뜩 몰려올지 모른다.
포탈은 한 번 작동하면 일정 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으니까. 그 시간이 짧긴 하지만 그래도 몇 팀 정도 추가로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어쩌면 우리 쪽에 컨택하려는 자들도 있을지 모르고.’
아마 이번에는 제법 시끄러운 일정이 되리라.
***
자샤드 일행은 호텔에 들어선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확 풀려서 몸이 축 늘어졌다.
반태수만 빼고.
반태수는 솔직히 신기했다. 고작 호텔에 들어왔을 뿐인데 다들 저렇게 안도한다는 사실이.
보아하니 호텔에는 능력자의 수도 많지 않고, 따로 보호를 위해 설치하거나 준비한 마도구도 없었다.
당장 로비에 영역화를 펼쳐서 확인한 바로는 그랬다.
지하나 위층에 그런 대비가 되어 있을지 몰라 거기까지 확인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한데 뭘 믿고 저렇게 안심한단 말인 그런 반태수에게 발드릭이 다가왔다.
"이제 그렇게 날 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반태수가 설명을 바라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오카리타에서는 함부로 도시의 시민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됩니다. 그땐 시정부가 직접 나서니까요.”
그리고 시정부는 군대를 움직일 권한을 갖고 있다. 즉, 호텔에서 싸우면 군대가 출동한다는 뜻이다.
“드론이 워낙 많아서 전후사정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CCTV도 굉장히 많고요.”
하긴 원하는 건 새로운 계약을 따내는 거다. 그러니 시정부에 밉보일 짓을 해선 안 된다.
반태수가 걱정한 것은 그냥 무작정 호텔로 달려들어 총을 쏘고 폭탄을 터트리는 등, 적이 막무가내로 나오는 것이었다.
한데 어차피 사업을 위해 온 것이니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반태수도 긴장을 풀었다.
최소한 호텔에서는 편안하게 있어도 될 듯했다.
아마 몰래 침투해 암살을 하거나 하는 짓도 안 할 것이다. 호텔에서 자샤드의 대표가 죽으면 당연히 바나블 쪽이 용의자가 될 테니까.
"진짜 이상한 도시네요.”
반태수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발드릭이 동의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정말 이상한 도시죠. 하지만 이 이상한 도시가 다른 도시들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들 이렇게 휘둘리는 거고요."
반태수와 발드릭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일행을 추스른 칼드웰이 다가왔다.
"숙소로 올라가기 전에 식사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너무 바쁘게 움직여서 저녁이 부실했던 게 마음에 걸리는군요.”
마침 반태수도 출출했던지라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죠."
호텔이니 안에 식당도 구비되어 있었다. 밖에 나갈 필요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저녁 식사는 굉장히 훌륭했다.
반태수는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 샤워를 한 다음 침대에 누웠다.
오늘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떠올리면서 혹시 반성할 점이 없는지 점검했다.
일단 호텔에 도착하기 전에 했던 전투에서 적의 수를 크게 줄여놨으니 앞으로의 싸움은 좀 편해질 것 같았다.
바나블이 얼마나 준비했는지는 몰라도 마법사 셋과 뛰어난 능력자 열 명을 리타이어 시켰으니, 남은 전력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을 것이다.
오늘 도망친 놈들이 좀 있긴 했지만, 어차피 대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능력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의뢰는 거의 끝났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설마 싸움에서 승리한 후, 각 농장들과 계약하러 갈 때도 뭔가 위험한 일이 있으려나?
그렇게 시작한 생각은 이내 아까 적 마법사가 썼던 화염 실드로 이어졌다.
그런 식으로 속성 실드를 만들어 쓴다는 발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한데 다시 생각해보면 각 상황에 맞는 속성 실드를 쓰면 굉장히 효과적일 것 같긴 했다.
아까 그 마법사가 화염 실드를 쓸 때, 술식을 역산해 보긴 했다. 좀 흥미로웠으니까.
하지만 역산을 하고 나서는 그게 시간낭비인 걸 깨달았다. 술식이 너무 허술했기 때문이다.
추가된 화염을 조절하지 못해 실드가 터져 나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반태수라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속성 실드를 만들 수 있으리라.
‘그냥 단순 속성 실드는 너무 간단하니까…… 범용성을 갖춰볼까?'
상황에 따라 속성을 변환할 수 있도록 술식을 구성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창 술식을 이리저리 찢고 붙이면서 차곡차곡 쌓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반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열린 문 밖에는 칼드웰이 위스키 한 병을 들고 서 있었다. 그가 술을 올려 살짝 흔들어 보이고는 물었다.
"같이 한 잔 하시겠습니까?”
별로 피곤하지 않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밤중에 술을 들고 찾아올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칼드웰은 방으로 들어와 테이블 위에 위스키를 올려놓고 능숙하게 세팅을 했다.
이 호텔을 자주 이용했는지, 곳곳에서 필요한 것들을 찾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아이스버킷, 잔, 그리고 얼음까지. 거기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안주도 꺼냈다.
"이 호텔에는 그런 것도 구비해 놓습니까?”
반태수가 신기해서 물었더니 칼드웰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싸우고 들어오면 술을 찾는 경우가 많아서 오카리타의 호텔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준비해 놓습니다. 저기 보면 술도 있죠. 이거 다 마시면 저기서 또 가져다 먹으면 됩니다.”
칼드웰이 가리킨 쪽에 벽장이 있었다. 아마 저 벽장 속에 술이 보관된 모양이었다.
"종류도 다양합니다. 와인이나 샴페인도 있으니 자유롭게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마 다 요금에 포함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 사업하러 와서 그런 자잘한 돈에 신경 쓸 사람은 없겠지만.
세팅을 마친 칼드웰이 반태수를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몇 잔의 술을 마셨다.
대화는 없었다. 그저 술만 마셨다. 그러다가 칼드웰이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 회사에 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반태수는 칼드웰을 쳐다봤다. 그가 여기 찾아왔을 때부터 저 말을 꺼낼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답도 정해져 있었다.
"당분간은 어딘가에 소속될 생각이 없습니다.”
칼드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꼭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최고의 대우를 약속합니다. 원하시는 건 제 역량이 닿는 한, 뭐든 해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런 제안을 받았다면 바로 승낙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태수는 딱히 끌리지 않았다.
자샤드가 큰 회사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태수가 원하는 걸 그들이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반태수를 유심히 바라보던 칼드웰이 쓴웃음을 지었다.
"표정만 봐도 알겠군요. 하지만 전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시면 꼭 말씀해 주십시오."
칼드웰은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는 이 말을 엄대협에게도 꼭 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반태수보다는 차라리 엄대협을 구슬리는 것이 훨씬 가능성이 높을 듯했다.
그 뒤로는 일상적인 술자리가 이어졌다.
칼드웰은 자신이 경험했던 오카리타에서의 전투에 관한 얘기를 잔뜩 해주었다.
술자리는 2시간쯤 이어지다가 끝났다.
"내일은 오후 늦게 일정을 시작하니 쭉 쉬시면 됩니다.”
칼드웰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반태수는 이제 슬슬 잠자리에 들까 했는데, 초인종이 또 울렸다.
칼드웰이 뭔가 잊은 거라도 있나 했지만, 영역화를 통해 확인하니 칼드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상당한 능력자였기에 반태수도 나름 대비를 하고 문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상대가 굉장히 호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십니까, 클루간이라고 합니다. 나서스 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싸움이 일어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서스 가에서 찾아왔다.
반태수는 일단 뒤로 물러났다.
"들어오시죠.”
안으로 들어온 클루간은 반짝이는 눈으로 테이블 위를 슥 훑어봤다.
"칼드웰이 영입 제안이라도 했나보죠?”
반태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지저분하지만 일단 앉으시죠.”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클루간은 일단 칭찬부터 던졌다.
"싸우시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마법 실력이 아주 엄청나시던데요?”
"뭐, 좀 합니다.”
반태수는 대충 대답했다. 어차피 상대가 여기에 왜 왔는지 알기에 큰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나서스 가는 인재에 목마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반태수는 클루간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당연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반태수가 쉽게 대답하지 않자 말을 이었다.
"칼드웰이 어떤 제안을 했는지 몰라도 그가 내민 조건의 최소 세 배를 지급하겠습니다. 그 외에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면 뭐든 말씀하시면 됩니다.”
반태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오늘 이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군요. 전 당분간 어딘가에 소속될 생각이 없습니다.”
클루간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신은 오늘 이 사람을 꼭 영입해야 한다.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혼자서의 자유도 좋지만, 함께 하는 안정감이 오히려 더 큰 자유를 주지요. 더구나 그것이 나서스 가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반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아직은 혼자서 할 만합니다.”
클루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나서스 가에 대해 잘 모르십니까?”
"오카리타를 지배하는 가문 아닙니까?”
“5대 가문의 가신가문이라는 것도 혹시 아십니까?”
"네.”
"그런데도 제안을 걷어차시겠다고요?”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클루간이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다른 도시에서 활동하신다고 나서스 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을 거라고 여기시는 겁니까?”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이라뇨. 가벼운 조언입니다.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알려드렸을 뿐입니다.”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언은 감사합니만, 괜찮으니 그냥 넣어두시죠.”
반태수의 단호한 대답에 클루간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후회하실 텐데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허락하면 더 후회할 거라 확신합니다."
클루간은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밤에 다시 오겠습니다. 부디 그때까지 잘 생각해보시길.”
반태수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클루건을 가만히 쳐다봤다.
저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