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 자샤드 >
=================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는 동안 반태수는 창밖을 유심히 살펴봤다.
이면세계를 눈으로 확인할 좋은 기회였으니까.
공항은 도시의 끝부분에 있었다. 공항 근처는 변두리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항을 나가자마자 넓은 들판이 펼쳐졌고, 이내 거대한 숲이 나타났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숲이었고, 숲을 지나는 동안 고도가 충분히 높아져서 아래를 확인할 수 없었다.
창을 통해 보이는 건 구름뿐이었다.
그때부터는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죽여야 한다.
영화라도 한 편 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왔다.
참고로 비행기에는 승무원을 제외하면 자샤드의 관계자만 타고 있었다.
전세기인 것이다.
"여기 앉아도 됩니까?”
다가온 사람은 상당한 마력을 보유한 능력자였다. 자샤드의 의뢰를 받은 걸로 짐작되는 자였다.
사내는 반태수 옆자리에 앉더니 손을 내밀었다.
“발드릭이라고 합니다. 반 마법사님이시죠?”
반태수는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최근 소문이 아주 자자하시던데.”
"별 거 아닙니다.”
"혹시 따로 소속된 길드나 회사가 있습니까? 아니면 가문이라든지.”
"전 혼자 일하는 걸 선호해서요.”
어딘가 얽매이기 싫다는 뜻을 내비치자, 발드릭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할 수만 있다면 그게 제일 좋긴 하죠. 조직에 속하면 간섭이 생각 외로 자주 들어옵니다.”
반태수가 쳐다보자, 발드릭이 말을 이었다.
"작은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데, 그래서 이런 굵직한 의뢰가 들어오면 무조건 나서야 합니다. 안 그러면 조직 운영이 너무 어렵거든요.”
보기에는 어디 가서 사람 몇은 잡았을 것 같이 생겼는데, 실제로는 정이 많은 모양이다. 아니면 그런 성격을 연기하고 있거나.
"조직 이름이?”
발드릭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발드릭입니다.”
자기 이름과 같은 조직명이다.
"조직을 이끄는 분이셨군요.”
"처음 이름 지을 때 끝까지 이걸 반대했어야 하는데……."
들어보니 혼자 만든 조직이 아니라 애초에 다섯 명이 같이 시작한 조직이었다.
그 다섯이 조직의 지분을 공평하게 나눠 가졌고.
현재 총 조직원의 수는 열다섯, 하지만 하나하나가 뛰어나서 조직 자체의 평가는 상당히 높다고 했다.
물론 저건 다 발드릭의 일방적인 주장이니 실제로 그런지는 확인해 봐야한다.
어차피 비행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잠을 자기도 애매해서 그냥 계속 얘기나 나눴다.
처음 조직에 대한 얘기 이후에는 그저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라 발드릭에게 물었다.
"혹시 오카리타에 가보신 적 있습니까?”
"몇 번 가봤습니다. 오카리타는 생각보다 의뢰가 자주 나오는 도시거든요.”
"그런가요?”
"오카리타는 상당히 거대한 도시입니다. 인구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규모가 큰 식량 생산 시설이 많거든요.”
반태수가 흥미를 보이자, 발드릭은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설명했다.
"정말 엄청난 양의 식량이 생산됩니다. 그래서 그 식량을 구입해 가는 도시가 한둘이 아니죠. 아시다시피 식량이 워낙 중요하니 경쟁도 심합니다.”
"그래서 싸움도 많이 일어나는 모양이군요.”
"예. 오카리타에서 습격 받는 사람이 생각 이상으로 많습니다.”
"시정부에서 그걸 가만히 둡니까?”
"오카리타 시정부는 식량 생산 시설, 그리고 오카리타 소속 시민만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는 입장입니다. 다른 도시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건 신경 쓰지 않습니다.”
반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식이면 오히려 난폭한 경쟁을 부추기는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셈이죠. 그래서 가격으로 경쟁하기보다는 힘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습니다.”
"오카리타 입장에서는 오히려 손해를 볼 텐데, 솔직히 좀 이해가 안 가네요.”
"오카리타는 식량 가격이 높아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안정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걸 선호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강제로 가격을 낮게 고정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러운 경쟁구도 안에서 가격이 정해지게 유도한다.
"특이하네요.”
"아무래도 윗선에서 뭔가 지시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좀 부자연스럽긴 하네요.”
"그렇죠?”
발드릭은 약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그의 얼굴에 냉소가 떠올랐다.
"솔직히 그럴 거면 그냥 가격을 시정부에서 정해 버리면 끝나는 문제 아닙니까? 그럼 싸울 일도 없을 텐데.”
반태수는 솔직히 그렇게 하더라도 다른 문제가 생길 거라고 봤다. 하지만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대화를 통해 오카리타의 정보를 들어야 하니까.
발드릭은 냉소를 싹 지우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튼 우리한테는 나쁜 일이 아니죠. 덕분에 이런 비싼 의뢰를 꾸준히 받을 수 있잖습니까.”
"그것도 그러네요.”
"아, 그리고 오카리타에서는 드론을 날리는 건 불법입니다.”
“드론이 불법이라고요?”
"예. 드론은 오직 시정부에서만 운용할 수 있습니다. 오카리타에서 날아다니는 드론은 전부 시정부 소유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그 중에 불법 드론들이 섞여 있을 수도 있긴 하지만. 아니, 반드시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니까.
"아마 가보시면 놀랄 겁니다. 드론이 정말 많이 날아다니거든요.”
"드론으로 뭘 하는 겁니까? 농약이라도 뿌립니까?”
"아뇨, 그냥 날아다닙니다. 뭔가를 하긴 하겠죠. 예를 들면 촬영이라거나.”
반태수는 순간 묘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오카리타 시정부가 도시에서 벌어지는 무력 경쟁을 촬영하는 걸까?
그건 일단 도착해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특이한 도시네요.”
"그렇죠? 한데 생각보다 특이한 도시가 많습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어류를 양식하는 도시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 도시는 섬에 있습니다.”
발드릭은 아는 것이 많았다.
비단 도시뿐 아니라 각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가문에 대해서도 해박했다. 물론 깊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넓은 범위의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었다.
"오카리타는 나서스 가문이 관리하는 도시입니다. 시정부의 요직 중 절반 이상을 나서스 가문에서 지정하거나, 가문에 소속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죠.”
크랙톤의 경우 시정부에 윌렉스 가문의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뒤에서 시정부를 감독할 뿐이다.
"이렇게 가문이 직접 나서서 시정부를 차지하고 도시 운영에 깊이 개입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도 괜찮은 겁니까?”
"뭐가 말입니까?”
"나서스 가문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도시 운영을 좌지우지해도 됩니까?”
"안 될 건 없죠. 어차피 지배 가문의 선택일 뿐이니까요.”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지만 반태수는 굳이 거기까지는 캐묻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알아도 된다.
어차피 이 도시에서 살 것도 아니고 그저 어떤 분위기인지만 파악하면 된다.
호기심 충족과 의뢰 완수.
이 두 가지가 현재의 반태수에게 가장 중요했다. 나머지는 차차 생각해보면 된다.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어느새 오카리타에 도착했다.
반태수는 창밖을 내다봤다.
비행경로가 오카리타를 관통해서 지나가기 때문에 도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하네.’
도시에는 거대한 빌딩이 무수히 세워져 있었다.
그냥 거대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모자랄 정도로 큰 빌딩이었다.
하늘 높은 곳에서 보는데도 상당한 크기로 보이는 건물이었다.
옆에서 발드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래 보이는 큰 빌딩이 생산 시설입니다. 규모가 정말 대단하죠? 각 빌딩의 넓이가 수만 제곱미터 정도니까요."
반태수는 확실히 그 정도는 되어야 이 높이에서 저런 크기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 제곱미터면 가로세로 각각 100미터씩이다.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빌딩이 서 있는 것이다.
"저 빌딩에서 곡물을 키우는 겁니까?”
"주로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오카리타의 주력은 곡물과 과일이니까요.”
그 얘기는 다른 종목을 주로 하는 식량 생산 도시가 또 있다는 뜻이다.
아까 어류를 양식하는 도시도 있다고 했는데, 그 역시 식량 생산 도시 중 하나이리라.
"저런 도시가 얼마나 있습니까?”
"그거야 저도 모르죠. 하지만 도시 하나를 먹여 살리는 데 들어가는 식량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 도시가 수천 개 존재하는 곳이 바로 이면세계다.
그러니 고작 오카리타 하나만으로 모든 도시의 곡물을 책임질 수는 없을 것이다.
곳곳에 비슷한 도시가 있으리라.
비행기가 고도를 조금씩 낮췄다.
그때 창밖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멀리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비행선이로군요.”
그걸 발견했는지 발드릭이 그렇게 말했다.
비행선의 모습은 반태수가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비행기와 달리 비행선은 부력을 이용해 날아간다. 한데 그 부력을 마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했기에 저런 모습이 나온 모양이었다.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의 배였다.
영역화를 거기까지 쭉 펼쳐서 확인해보니 배의 바닥을 이루는 평평한 판이 모조리 마도구로 도배되어 있었다.
무수한 마도구의 집합체였다.
마도구의 성능은 아주 단순했다. 부력을 만들어낸다. 그저 물체를 위로 띄우는 기능 외에는 없었다.
크기가 어찌나 거대한지 지구에 있던 웬만한 컨테이너 선박의 몇 배는 되는 크기였다.
비행선에는 물리적 엔진이 없었다. 추진력조차 마도구로 해결했다.
그편이 무게가 훨씬 덜 나가니 할 수만 있다면 마도구를 쓰는 게 낫긴 하다.
한 가지 흠이 속도였다. 비행기와 비교하면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래도 비행기와 비교해서 느린 것이지 웬만한 화물트럭 같은 것들 보다는 빨랐다.
반태수가 비행선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발드릭이 나직하게 웃었다.
꼭 비행선을 처음 보는 사람 같지 않은가.
'설마?’
설마 정말로 처음 보는 걸까? 하지만 도시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비행선이 날아가는 광경을 한 번도 못 본 사람이 있을까?
아니, 그보다 어릴 때부터 매스미디어를 꾸준히 접해온 사람이라면 화면으로라도 비행선을 수십, 아니, 과장 좀 보태서 수백 번은 봤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비행선은 물류의 핵심이니까.
이내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다.
자샤드 일행은 비행기에서 내렸다.
공항에서는 또 신분증을 검사했다. 도시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검사였다.
그렇게 공항을 나선 자샤드 일행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하늘을 부드럽게 유영하는 드론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띄엄띄엄하지만 당장 눈에 들어온 드론만 해도 세 개였다.
고개를 돌리면 또 그 정도 숫자가 보이고 뒤로 돌아도 그 정도 숫자가 보였다.
‘대체 드론을 얼마나 띄운 거야?’
반태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광경이 익숙한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동에만 신경 썼다.
자샤드 일행은 여러 대의 승합차에 나눠 올라탔다.
그리고 대표를 비롯한 회사 사람들은 고급 세단에 각각 한 명씩 나눠 탔다.
그리고 자샤드에서 고용한 능력자들이 그 세 대의 세단에 또 나눠 탔다.
자샤드의 대표와 직원들을 보호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니 당연한 배치였다.
반태수는 이동하면서 영역화를 확장해 드론들을 확인했다.
아까 비행선에서 본 부유 마법 술식을 드론에도 써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술식을 장착한 드론은 한 대도 없었다.
‘설마 아까 그 크기를 더 못 줄이는 건가?’
비행선에 쓴 부유 마법은 규모가 상당히 컸다. 반태수는 당연히 그것이 출력 때문이라고 여겼다.
한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듯했다.
‘줄일 방법이 분명히 있는데…….'
부유 마법 술식은 아까 전부 파악했다.
제법 까다로운 보안이 걸려 있었는데, 아공간 팔찌의 보안을 뚫은 이상, 그 정도 보안은 영역화만으로도 충분히 분석할 수 있었다.
아무튼 드론에 부유 마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마법이 안 쓰인 건 아니었다.
다른 마법 술식이 모든 드론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재미있는 마법이네.’
전파와 연계한 술식이었다. 전파의 특정 주파수를 이용해 근처에 있는 다른 드론들과 링크를 거는 술식이었다.
만일 링크가 안 걸린다면 시정부 소유의 드론이 아니라는 뜻이다.
링크를 이용해 불법 드론을 구분하고, 또 각 드론들의 명령 체계를 훨씬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링크 자체가 보안과 연결되기에 보안도 훨씬 탄탄해졌다.
반태수는 차를 타고 가면서 영역화 내에 있는 드론들을 분석했다.
그러다가 분석하던 드론이 영역화 밖으로 나가면 안에 있는 다른 드론으로 옮겨서 하던 분석을 이어갔다.
그렇게 한창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콰앙!
반태수는 반사적으로 폭음이 난 쪽을 쳐다봤다.
한데 차에 탄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자샤드의 대표와 능력자 한 명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여긴 여전하네.’’
대표가 혼잣말을 하자, 그 옆에 타고 있던 능력자가 대답했다.
"앞으로도 웬만해선 안 변할 겁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에도 폭음이 몇 번이나 들려왔다.
반태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차로 이동 중인데도 폭음이 점점 이쪽으로 다가왔다는 것은 쉽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걸 눈치챈 사람이 반태수 혼자만은 아니었는지 각 차량으로 연락이 왔다.
- 심상치 않다. 다들 준비 단단히 하도록.
반태수는 일단 내구력 강화부터 걸었다. 이동 중이니 차에만 걸어도 충분하다.
아공간 팔찌 덕분에 벽을 또 넘어서 그런지 내구력 강화도 한 단계 성장했다.
아마 웬만한 충격으로는 차를 밀어내지도 못할 것이다.
꽈앙!
이번엔 지척에서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곧 이쪽으로 달려오는 일단의 무리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