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파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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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파티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았는데.”
반태수의 말에 오스윈 프리든이 빙긋 웃었다.
"좋아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반 마법사님도 참여하신다고 하니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주위를 슥 둘러본 오스윈 프리든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흥미롭긴 하군요.”
그의 시선이 이번엔 안드렐라 윌렉스와 반태수, 그리고 페일라 린치필드 사이를 오갔다.
오스윈 프리든의 눈이 반짝였다. 그 안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그의 시선은 이리저리 오가다가 이내 페일라 린치필드에게서 멎었다.
"너도 이런 파티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았나?”
오스윈 프리든의 눈가에 살짝 미소가 맺혔다. 눈빛이 어찌나 의미심장한지 그걸 마주한 페일라 린치필드가 흠칫 놀랐다.
"나도 궁금해서.”
그녀는 의식적으로 주위를 슥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네.”
두 사람을 지켜보던 반태수가 물었다.
"두 분도 서로 아시는 모양이군요.”
오스윈 프리든이 빙긋 웃었다.
"모를 수가 없죠. 어릴 때부터 서로 경쟁하던 사이인데.”
"소꿉친구 같은 건가요?”
반태수의 물음에 오스윈 프리든이 고개를 저었다.
"어릴 때는 얼굴도 못 봤습니다. 얘기만 계속 들었지. 아마 저쪽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아닌가?”
오스윈 프리든의 시선이 페일라 린치필드에게 향했다.
그녀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겹도록 들었지. 만나기만 하면 박살을 내주겠다고 천 번쯤 다짐했을 걸?”
반태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대충 이해했다. 아마 가문에서 라이벌로 지정해 서로를 채찍질에 써먹은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리 껄끄럽지 않은 듯했다.
“두 분, 사이 굉장히 좋아 보이시네요.”
반태수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휙휙 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란 말인가. 대답하는 순간에도 사이가 좋아 보이는데.
세 사람이 그러고 있으니, 사이에 낀 모양새가 된 안드렐라 윌렉스가 나섰다.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쪽으로 들어가서 좀 앉을까요?”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수영장 옆에 앉아서 즐길 수 있는 테이블과 바가 있었다.
바에서 술과 음료를 받아다가 테이블에서 마시며 가볍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음악 소리도 작았다.
반태수는 안드렐라 윌렉스를 따라가는 와중에 그곳에 펼쳐진 마법적 장치를 확인했다.
음파를 선택적으로 걸러내는 장치였다. 소리를 줄이는 효과도 있지만, 음파를 이용한 공격을 방어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애초에 방어 역할을 하는 장치를 파티에 써먹고 있는 듯했다.
네 사람은 적당한 음료와 술을 들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애초에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는 이 파티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두 사람의 관심은 오직 반태수에게 있었다.
그리고 안드렐라 윌렉스는 이번 기회에 오스윈 프리든, 페일라 린치필드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목표였고.
그러니 이렇게 파티와 좀 동떨어진 곳에 있어도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세 사람은 자리에 앉는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들이 보기에 이 파티에 참여하지 못해 가장 아쉬울 사람이 반태수뿐이었으니까.
"왜 절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반태수가 세 사람을 둘러보며 물었다.
"파티, 즐기고 싶으시면 즐기셔도 돼요.”
안드렐라 윌렉스가 그렇게 말했다. 오늘 하루는 그녀의 파트너가 되어 주는 것이 의뢰 내용이었으니, 그녀가 허락한다면 홀로 가서 파티를 즐기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반태수는 굳이 이 사람들을 버리고 파티를 즐길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혼자 가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괜찮습니다. 나도 여기가 더 마음에 들어서요.”
반태수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 뒤로 평범한 대화가 이어졌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얘기하는 정도였다.
안드렐라 윌렉스는 대화를 주도하는 능력도 제법 뛰어났다. 그녀는 수시로 사람들의 기분과 분위기를 살피며 아무도 소외되지 않도록 조절했다.
덕분에 반태수도 제법 말을 많이 했다. 물론 감춰야 할 부분은 철저히 감췄다.
그렇게 얘기하다가 갑자기 오스윈 프리든이 집 얘기를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사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네. 필요해서요.”
근거지가 필요했고, 연구실도 필요했다. 물론 반쯤은 핑계였고, 그런 저택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다.
솔직히 지구에서라면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일인데, 이면세계에서 좀 지내다보니 그런 욕망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마력의 기질 때문인지 여기에만 오면 욕망과 충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출된다.
집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어디쯤에 있는지, 언제 이사를 했는지, 등등.
얘기를 하는 내내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가 과하게 빛나는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누가 봐도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듯한 표정과 눈빛이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쯤 되면 저들이 뭘 원하는지 알 법하다.
당연히 반태수도 알아차렸고.
“그러고 보니 한 번쯤 초대를 하고 싶군요. 오스윈 프리든 님한테는 신세진 일도 많고.”
오스윈 프리든이 한껏 기분이 좋아진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하하. 제가 뭘 했다고 신세씩이나. 아닙니다. 그나저나 궁금하긴 하군요. 반 마법사님이 사는 곳 말입니다.”
"말 나온 김에 스케줄 체크 한 번 해보시죠. 전 언제든 괜찮습니다. 원하시는 날짜에 제가 집에서 대접 한 번 하겠습니다.”
"오, 기대 되네요.”
"뭐, 음식은 크게 기대하지 마시고요. 제 비장의 레시피로 만든 커피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날 특별히 대접해 드리죠."
"커피요?”
좀 의외였는지 오스윈 프리든이 눈을 반짝이며 반태수를 바라봤다.
"저도 초대해 주시면 안 되나요? 그 커피, 저도 마셔보고 싶은데.”
페일라 린치필드가 끼어들었다.
반태수는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분이 시간 맞춰 보시죠.”
안드렐라 윌렉스가 얼른 숟가락을 올렸다.
"저도 가고 싶어요.”
그녀는 손을 번쩍 들고 반태수를 바라봤다. 큰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자신도 봐달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그러시죠.”
왠지 자신을 보는 페일라 린치필드의 시선이 뜨거워진 것 같았지만, 반태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시간 끌 것 없이 내일이나 모레 정도로 날을 잡죠. 시간을 끌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요.”
안드렐라 윌렉스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바로 스케줄을 조절해 날을 잡아 버렸다. 사업을 한다더니 추진력이 제법이었다.
날은 모레 저녁으로 정해졌다.
그 뒤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안드렐라 윌렉스는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가 반태수에게 관심이 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대화의 방향을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틀었다.
반태수가 대화의 주제로 변하자, 분위기가 한 결 좋아졌다.
"그때 저랑 같이 바늘거인 잡을 때 썼던 마법, 그거 대체 뭔가요?”
페일라 린치필드의 물음에 반태수가 되물었다.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솔직히 전부 다 궁금하지만, 제일 궁금한 건 마법이랑 속성력을 싹 모아서 날린 그거요. 그때 정말 온 몸의 마력을 싹 빨린 느낌이었어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었죠.”
그녀의 말에 오스윈 프리든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가 보기에 반태수는 재능과 영감이 번득이는 마법사였다.
그런 반태수가 쓴 마법을 페일라 린치필드가 궁금해 하고 있다.
린치필드 가문에도 마법사가 많다. 그리고 어떤 마법사든 페일라 린치필드에게 도움이 되고자 갖은 애를 쓴다.
그러니 얼마나 다양한 마법을 접했고, 얼마나 많은 마법 지식을 쌓았겠는가.
그런 페일라 린치필드가 궁금해 하는 마법이니 오스윈 프리든도 당연히 관심이 갔다.
"별 거 아닙니다. 마력과 전하를 흡착하는 술식을 섞었을 뿐입니다. 전격 속성이기도 하고 능력자들이 마력을 개방해 내뿜고 있으니 가능했던 거죠. 다들 협조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다들 놀란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심지어 안드렐라 윌렉스까지 같은 눈빛이었다.
"마력을…… 흡착하는 술식이라고요?”
이런 과한 반응에 오히려 반태수가 더 당황했다.
"진짜 별 거 아닌데…… 이런 식입니다.”
반태수가 손바닥이 위로 가게 해서 손을 들었다.
화르륵!
그 위에 불꽃이 솟아났다. 간단한 불 마법이었다.
반대쪽 손도 똑같이 올렸다.
그러자 불꽃이 빈 손바닥으로 훅 옮겨갔다.
"진짜 간단한 술식입니다. 이쪽에서 줄 의향만 있으면 언제든 가져갈 수 있죠. 의향이 없으면 절대 못 가져가고요. 그때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별 쓸모도 없는 마법입니다.”
"아니…… 이게 별 거 아니라고요?”
"이건 정말 대단한 것 같은데요?”
"맞아요. 이건 마력 전이잖아요.”
반태수가 놀라는 세 사람을 보며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마력 전이요?”
"이걸 쓰면 작은 마력석의 마력을 하나로 모아 출력을 엄청나게 높일 수 있잖아요.”
반태수는 빙긋 웃었다.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제야 이해했다.
“아쉽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자의로 내주는 마력이 아니면 이걸 쓸 수 없거든요. 마력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릿속으로 방금 한 말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분석은 순식간에 이뤄졌고, 술식의 변형도 빠르게 이어졌다.
"아, 그건 좀 아쉽네요. 하지만 그거 말고도 쓸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 같은데, 아이디어를 좀 모아 봐요.”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향의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요? 마력을 한 사람한테 모아주거나, 뭐 그런 방식밖에 안 떠오르네요."
"결국 거대 마수 사냥에 쓰는 것이 최선인가요?”
"그렇겠네요.”
그런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반태수는 계속해서 술식을 분해하고 이어붙이고 새 술식을 만들어 추가하는 일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나중에는 두뇌 하나를 할당해 시뮬레이션까지 돌리기 시작했다.
‘어…… 이거 될 거 같은데?’
반태수가 속으로 그렇게 딴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건 아무도 몰랐다.
그 뒤로 평범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파티도 슬슬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는 슬슬 돌아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드렐라 윌렉스는 반태수에게 말했다.
“반 마법사님도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역할을 해주셨어요. 아, 잠시만요.”
안드렐라 윌렉스는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바쁘게 다녀왔다. 그녀는 커다란 상자 하나를 손에 들고 있었다.
"자, 약속했던 유물이에요.”
유물이라는 말에 막 일어서던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의 시선이 상자로 향했다.
안드렐라 윌렉스는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대단한 거 아니에요. 아주 흔한 유물이에요.”
반태수는 상자를 받으며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쉽게 유물을 하나 얻었으니 감사 인사를 열 번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는 상자를 받는 반태수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안드렐라 윌렉스는 두 사람에게 나중에 자신이 준 유물이 무엇인지 따로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파티가 끝나고 안드렐라 윌렉스의 저택에서 나온 오스윈 프리든은 집으로 가지 않고 페일라 린치필드의 차를 따라갔다.
페일라 린치필드는 오스윈 프리든이 따라붙은 걸 알고는 중간쯤에 차를 세웠다.
그러자 오스윈 프리든도 그 뒤에 차를 세우고는 내려서 페일라 린치필드의 차에 탔다.
차의 운전수가 내렸고, 차 안은 완벽한 방음 상태가 되었다.
"무슨 일로 날 쫓아오셨을까?”
"꿍꿍이가 뭐야?”
"꿍꿍이라니?”
"왜 접근한 거냐고.”
“그냥 궁금해서?”
오스윈 프리든이 페일라 린치필드를 가만히 바라봤다.
"가문에서 허락하지 않을 거다.”
"너무 앞서가지 마. 아직 연애감정이 생기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그저 좀 관심이 생겼을 뿐이야.”
"고작 두 번 보고?”
페일라 린치필드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는 넌?”
"난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을 뿐이야.”
“그래서 친구노릇 하느라 부시장을 들쑤셨어?”
오스윈 프리든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크랙톤에 정보원까지 박은 건가? 그럼 곤란할 텐데?”
"정보원은 무슨. 가만히 있어도 귀에 알아서 들어오던데.”
페일라 린치필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오스윈 프리든을 슬쩍 살폈다. 여전히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말을 조금 덧붙였다.
“아무튼 걱정할 거 없어. 그 사람을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으니까. 그저…… 관심이 가서 좀 지켜보고 싶을 뿐이야.”
오스윈 프리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봐도 그저 관심이 좀 있는 정도로 보이지 않았다.
"너 설마, 모레 초대 선물로 유물 가져가려는 건 아니지?”
오스윈 프리든의 물음에 페일라 린치필드가 미간을 좁혔다.
"내가 유물을 가져가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선물은 필요한 것을 주는 게 최고라는 거 몰라?”
오스윈 프리든이 한숨을 내쉬며 차문을 열었다.
“알아서 해라. 허튼짓은 안 할 거 같으니 됐다.”
그 말을 남기고 차에서 내린 오스윈 프리든은 자신의 차로 돌아가 곧장 떠나 버렸다.
페일라 린치필드는 오스윈 프리든의 차가 멀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저러는 걸 보면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정말 대단한 모양이네.’
그런 생각도 잠시, 반태수의 집에 갈 때 들고 갈 선물을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준 선물을 받으며 기뻐할 반태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입가가 더욱 위로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