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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64화 (64/351)

64화.  < 페일라 린치필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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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의 감각이 주변을 모두 감싸 안았다.

방금 집중해서 새 마법을 만들면서 작은 벽 몇 개를 단숨에 부쉈다.

감각이 더욱 확장되었고, 마력 운용이 좀 더 섬세해졌다. 또한 코어가 미세하게 성장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동안은 조용한 곳에서 홀로 경험과 깨달음, 지식을 정리하면서 벽을 넘었다.

한데 이번에는 급박한 실전 상황 속에서 새로운 마법을 만들면서 벽을 넘었다.

이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고, 효과도 좋았다.

몸에 탁기 어린 땀이 송송 맺혔다.

반태수는 재빨리 마법을 펼쳐 몸을 한 차례 씻어냈다.

물이 소용돌이 치듯 반태수의 몸을 몇 번 휘감고 사라진 것이다.

그 광경을 본 페일라 린치필드가 깜짝 놀랐다.

마법을 쓰는 기미를 채 느끼기도 전에 마법이 펼쳐진 것이다.

그녀가 감지한 것은 마법이 발동한 순간 마력이 움직였다는 것 정도였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와아. 진짜 대단하다.”

페일라 린치필드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우리 차례 아닙니까? 슬슬 시작하시죠.”

반태수의 말에 페일라 린치필드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시작할게요.”

달라진 건 없었다. 반태수가 미리 만들어 놓은 마력구체를 목표로 마법을 쏘면 된다.

그저 지휘를 페일라 린치필드가 할 뿐이었다.

마력구체는 반태수가 미리 펼쳐놓은 마법이었다. 마법과 속성력을 모아 목표를 향해 날리는 마법 말이다.

반태수는 새로 개발한 마법을 준비했다.

전격 마법에 섞어서 내부로 투사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미리 준비했다가 전격 마법에 실어 보내면 된다. 그러니 타이밍이 중요했다.

타이밍을 맞추는 건 반태수가 알아서 해야 한다. 그게 더 성공률이 높기도 하고.

페일라 린치필드가 지휘하는 전격 공격이 꽂히기 직전에 반태수의 마법이 바늘거인을 꿰뚫어야 한다.

그래야 미리 닦아놓은 길을 따라 전격 마법이 잘 스며들 테니까.

반태수는 영역화에 집중했다.

주변 마력 흐름을 모조리 자신의 인지 하에 두었다.

근처에 있는 마법사들, 능력자들의 마력 흐름이 뇌리에 새겨지듯 느껴졌다.

영역화가 한 걸음 더 발전했다. 이대로 더 성장하면 영역화를 통해 상대의 마력을 건드릴 수도 있을 듯했다. 물론 아직 먼 이야기이긴 하지만.

가장 늦게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그 누구보다 먼저 준비가 끝났다. 반태수의 마법은 다른 사람들의 마법보다 몇 배나 더 복잡했는데도 그랬다.

페일라 린치필드가 준비 상황을 파악하고는 발사 명령을 내렸다.

"지금!”

꽈르르르릉!

일제히 마법이 쏘아져 나갔다.

그래도 몇 번 반복했다고 마력 구체와 턱없이 거리가 벌어진 마법은 하나도 없었다.

다들 근처에 몰려서 뻗어 나갔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바늘거인 위로 쭉 날아가 정수리 위에 모였다가 그대로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 직전, 반태수가 준비한 마법이 먼저 바늘거인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꽈르르르르르릉!

바늘거인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반태수는 지금 바늘거인의 몸속에서 일어난 일을 명확히 파악했다.

새로 만든 내구력 약화는 바늘거인의 정수리에서 시작해 몸 내부로 파고들었다. 전격과 함께.

전격은 바늘거인의 몸 내부로 거미줄처럼 뻗어 나갔고, 거기에 실린 내구력 약화가 그대로 몸을 헤집었다.

하지만 그건 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했다. 바늘거인이 품은 막대한 마력은 내구력 약화를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아니, 지워버리려 했다.

그 순간 새로운 벼락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채 지워지지 않은 내구력 약화의 길을 따라 강력한 전격이 치달렸다.

바늘거인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마력으로 데미지를 미리 막아냈다. 한데 이번에는 그 모든 데미지를 고스란히 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그게 바로 내구력 약화의 힘이었다.

물론 빠르게 피해를 수복했다. 바늘거인이 가진 고유의 회복력이 작용해 몸이 받은 피해를 빠르게 복구해 냈다.

하지만 거기에 막대한 마력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반태수는 그 모든 과정을 선명하게 확인했다.

'제대로 먹혔어.’

바늘거인이 가진 코어의 마력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줄었다.

"자, 다음 장소로 이동합시다.”

페일라 린치필드가 이동을 지시했다. 다들 그녀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살짝 뒤로 빠지며 반태수 옆에 또 붙었다.

"바늘거인이 지금까지와는 반응이 좀 다르던데, 그거 당신이 한 거죠?”

"이대로는 못 잡을 거 같아서 임기응변으로 조치한 겁니다.”

"예? 이대로는 못 잡는다고요?”

"이대로 하면 15시간은 싸워야 저놈이 쓰러질 텐데, 그걸 누가 버티겠습니까?”

페일라 린치필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반태수를 바라봤다.

"설마 저 바늘거인이 변종이라는 뜻인가요?”

“그거야 모르죠. 바늘거인을 본 것도 처음인데. 하지만 시간 계산은 정확할 겁니다. 처음 사냥 시작할 때부터 데이터를 모았으니까.”

페일라 린치필드는 신기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오스윈 프리든이 왜 이 사람에게 큰 관심을 두는지 이제 아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흥미로운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니, 그 흥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런 느낌, 익숙해.’

한데 왜 익숙한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페일라 린치필드는 좀 더 생각하다가 그 부분은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혹시 다른 도시에 갈 일은 없나요?”

“다른 도시? 글쎄요? 나중에 칼체스터에는 한 번 가볼 생각입니다. 거기에 프리든 가가 있다고 하더군요.”

"혹시 듀스트론에 한 번 가보실 생각은 없나요? 여기 크랙톤이랑은 상당히 다른 도시예요. 칼체스터랑도 많이 다르고요.”

반태수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모든 도시가 똑같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우리 도시는 다르다고 말하니 어떤 식인지 궁금했다.

"프리든 가는 정말 재미없는 가문이에요. 감성적으로 메마른 자들이 모여 있죠. 하지만 우리 린치필드는 달라요.”

"뭐가 다릅니까?”

"감성이 다르죠. 당연히 도시 개발 방향도 달라지고요. 우리 린치필드 가가 있는 듀스트론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랍니다.”

페일라 린치필드의 표정에 진한 자부심이 드리워졌다.

도시가 아름답다니. 그럼 관광도시쯤 되는 건가?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어때요? 이제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나요?”

"궁금하긴 하군요.”

"그럼 이번 기회에 방문해 보세요. 제가 초대장을 보내드릴 테니.”

"당장은 어렵습니다. 할 일이 남아서.”

"할 일이요?”

"의뢰가 남아서요.”

페일라 린치필드의 눈이 반짝였다.

"열심히 사시네요. 방패 때문에 돈도 많이 버실 거 같은데. 지분도 상당하죠?”

"돈을 아무리 벌어도 쓸 곳이 많아서 감당이 안 됩니다.”

"하긴, 그렇긴 하죠. 저처럼 돈 많은 가문에 태어나지 않는 이상, 돈에 얽매여서 살 수밖에 없죠. 아니, 저도 마찬가지네요. 가문에 얽매여 있으니.”

물론 페일라 린치필드는 가문에 얽매였다는 사실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만족하는 쪽이었다.

"그럼 나중에 일정을 한 번 조율해 보죠. 아무래도…… 오스윈 프리든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으니 그쪽에도 미리 얘기를 해둬야 할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서 좀 쉬면서 마법을 날릴 차례를 기다리면 된다.

마침 화염 마법이 바늘거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반태수는 걷는 동안 준비했던 마법을 바로 발동했다.

꽈아아아앙!

반태수의 내구력 약화가 전격과 함께 바늘거인의 몸에 스며든 순간, 화염마법이 작렬했다.

‘효율이 떨어지네.’

화염마법이 작렬한 곳을 미리 예측해서 그쪽에 내구력 약화를 걸었음에도 파괴력이 안쪽 깊은 곳까지 파고들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 내구력 약화는 전격 마법과 함께 써야 할 모양이다.

그래도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내구력 약화 마법이 낸 길을 따라 화염마법에서 파생된 열기가 파고들었으니까.

‘이런 식이면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으려나.’

반태수는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이렇게 해도 3시간은 걸린다.

‘그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반태수는 일단은 더 이상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다들 나가 떨어져도 그때까지 바늘거인의 마력을 깎아냈다면, 자신이 나서서 홀로 처리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사냥이 계속 이어졌고, 변수도 발생하지 않았다. 점점 지루해졌다.

***

쿠웅!

결국 바늘거인이 쓰러졌다.

사냥을 시작한 지 무려 4시간만의 일이었다.

다들 반쯤 탈진한 상태로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그나마 멀쩡한 사람은 반태수를 제외하면 페일라 린치필드뿐이었다.

반태수는 지나칠 정도로 멀쩡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말이었네요.”

페일라 린치필드가 반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싸웠으면 15시간은 걸렸을 거라던 반태수의 말이 맞았다. 아마 반태수가 방법을 바꾸지 않았다면 극심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안 거죠?”

"계산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데이터를 모아서."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 것 같지만…… 그냥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페일라 린치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피해 없이 마수를 잡을 수 있었어요. 그 점, 감사드립니다.”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페일라 린치필드는 묘한 시선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미끼 역할 능력자들이 쓰는 방패도 반태수가 만들었다.

그러니 이번 사냥에 피해가 없는 것에 대한 모든 공로가 반태수에게 있었다.

‘보답을 해야지.’

린치필드 가문은 이런 보상에 결코 인색하지 않다. 이번에 톡톡히 보상을 해주리라.

그렇게 잠시 쉬고 나니 바닥에 널브러졌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바늘거인의 사체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우리도 가죠.”

페일라 린치필드의 말에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뒤에서 따라가던 일행들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마침 해가 지고 있어 붉은 빛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크긴 크네요.”

반태수의 말에 페일라 린치필드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정도면 거대 마수 중에서도 작은 편이에요. 이보다 훨씬 큰 마수도 수두룩하죠.”

"끌고 가는 것도 일이겠군요.”

"그러려고 버스 끌고 왔잖아요. 버스 뒤에 매달아서 끌고 가면 돼요.”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험이 많다더니 준비가 다 되어 있는 모양이다.

"해체해서 가져가지는 않는 모양이군요.”

"아주 옛날에는 그렇게 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죠. 해체하다보면 피도 많이 잃는데, 이런 거대 마수의 피는 특별한 재료거든요.”

반태수와 페일라 린치필드가 대화하는 사이 능력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바늘거인의 몸을 넓은 판 위에 옮겼다.

판에는 고리가 여러 개 달려 있었는데, 바늘거인의 몸과 고리를 로프로 묶어 연결했다.

그렇게 단단히 연결하고 있으니, 버스들이 도착했다.

버스에도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그걸 이용해 버스와 판을 연결했다.

모두 버스에 탔고, 버스가 일제히 출발했다.

버스들은 간격과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렸다. 그래야 매달려 따라오는 바늘거인을 무사히 도시로 데려갈 수 있을 테니까.

페일라 린치필드는 마치 거기가 원래 자기 자리라는 듯 반태수 옆에 앉았다.

"아직 긴장을 풀면 안 돼요. 저런 거대 마수의 사체는 다른 마수들이 호시탐탐 노리거든요.”

“작은 마수들이 저걸 먹으면 성장도 하고 그럽니까?”

"글쎄요. 아직 보고된 바는 없어요. 연구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하지만 저거 한 마리 먹는다고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아요."

그럼 여러 마리를 먹으면 뭔가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일까?

반태수는 바늘거인의 사체도 연구해 보고 싶었다. 저걸 보고 있으니 창고에 보관한 갑각 트롤 사체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이제 창고 쓸 필요 없겠네. 집에 가져다 놔야겠다.’

안 그래도 통장 잔고가 바닥났는데, 굳이 창고 비용까지 부담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번 의뢰 대금이 얼마였지?’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제대로 안 듣고 무작정 사냥에 나섰다. 빨리 의뢰를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여유가 없었다.

역시 통장이 두둑해야 여유가 생기는 모양이다. 아무리 마법사라도 말이다.

도시로 돌아가는 내내 페일라 린치필드가 말을 걸었다.

반태수가 생각하기에는 별 쓸데없는 대화였는데, 페일라 린치필드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집중해서 들어줬다. 충실하게 대꾸도 해주었고.

이번 사냥의 주체가 린치필드 가문이라는 걸 대화 도중에 알게 되었는데, 꼭 그것 때문에 그런 건 결코 아니었다.

돌아가는 동안 사냥을 나설 때와 달리 마수의 습격이 두 번이나 있었다.

반태수는 영역화를 통해 마수가 습격한다는 걸 미리 알았고, 그것 때문에 이동이 지체되는 것이 싫어 알아서 처리해 버렸다.

두 번 다 늑대 무리였는데, 불에 약한 놈들이었다.

영역화에 들어온 순간, 정확히 좌표를 지정에 통구이로 만들어 버렸다.

버스에 탄 누구도 반태수가 마수 무리를 두 번이나 처리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만, 페일라 린치필드가 몰랐는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반태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지나칠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첫 번째 의뢰, 거대 마수 사냥이 끝났다.

또한 페일라 린치필드라는 여자를 알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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