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 거대 마수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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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톤 시청, 부시장 실.
부시장이 소파에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앉아 있었다.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상석에 앉은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상석에 앉은 사람은 젊은 남자였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아서 고민 끝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일하시는 데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전혀 죄송스럽지 않은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하는 사내, 오스윈 프리든은 차가운 눈으로 부시장을 가만히 쳐다봤다, 부시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오스윈 프리든을 바라봤다.
"제가 뭘 놓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알려주시면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이번에 마도구 경합 말입니다.”
그 순간, 부시장은 머릿속에 번갯불이 치는 듯했다.
당시 솔직히 말하면 자신은 몰랐다. 하지만 프리든 가에서 경합을 지켜보고 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프리든 가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윌렉스 가문을 비롯해 린치필드 가문에서도 사람을 보냈다고 했다.
솔직히 그 경합이 그렇게 큰 관심을 받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물론 경합을 지켜보고 나니,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부시장의 등줄기를 식은땀이 줄줄 타고 내려갔다.
"겨, 경합은 정확한 심사를 통해 적법하게 선정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지켜봤으니 확실합니다.”
부시장은 침을 꿀꺽 삼킨 다음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거기에 뭔가 조언을 하실 게 있으신지……."
예를 들어 그 사업에 프리든 가가 한 발 걸치고자 한다거나.
오스윈 프리든이 부시장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읽고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우리 프리든 가가 고작 크랙톤의 군대에 납품하는 마도구에 빨대라도 꽂을 거라고 여기신 겁니까?”
부시장이 기겁하며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품겠습니까! 전 진심으로 조언을 원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오스윈 프리든의 눈빛이 살짝 누그러졌다. 그는 느긋하게 뒤로 등을 기댔다. 푹신한 소파가 그의 등을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부시장은 그 광경에 살짝 안도하며 이마에 송송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솔직히 프리든 가에서 이렇게 자신을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프리든 가의 미래라고 일컬어지는 오스윈 프리든이 직접 찾아오다니.
‘대체 왜 왔는지 모르겠어.’
그게 제일 문제다. 분위기를 보면 이번 방패 마도구 경합과 뭔가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 명문가 도련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네. 경청하겠습니다.”
"전 시청이 일을 어떻게 하든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건 윌렉스 가문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요.”
부시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당연한 얘기를 굳이 서두로 꺼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이 뒷돈을 얼마나 받든, 누군가와 결탁해 범죄를 저지르든 무슨 상관입니까. 전 윌렉스 가문만 지켜보면 되는데.”
지금까지 프리든 가가 고수한 방식이었다. 도시의 운영은 휘하 가문에 일임하고 결과만 받아드는 것.
"한데 그게 제 신경을 긁으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부시장의 긴장감이 훨씬 높아졌다. 분명히 지금 신경을 긁었다고 했다. 이번 경합에 뭔가 불만이 있다는 뜻이었다.
‘뭐지? 뭐가 불만이지? 설마 지하 공방을 휘하에 두고 있는 건가? 그 불량품을 군대에 보급했어야 하나? 아니면 경합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나? 그것도 아니 면 참석자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경합 이후, 샤인 공방을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예?”
부시장은 머릿속을 해머로 쾅 두드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큰 사고를 쳤는데 후속 조치가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니면 그걸 봐줘야 할 정도로 막대한 뇌물을 받은 겁니까?”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설마 샤인 공방만 잡고 끝내겠다, 그런 건 아니겠지요?”
오스윈 프리든의 서늘한 시선을 받은 부시장은 이 사람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아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지하 공방으로부터 뒷돈을 받은 가장 윗사람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몸이 덜덜 떨렸다.
부시장이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오스윈 프리든이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밝혀내시는 게 어떻습니까? 듀마이어 공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면 도시에 큰 해악을 끼쳤을 거 아닙니까.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과연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부시장이 두 손을 무릎에 올린 공손한 자세로 허리를 한껏 펴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수를 써서든 모든 것을 낱낱이 밝혀내고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겠습니다! 부디 맡겨 주십시오!”
오스윈 프리든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한 번 지켜보죠.”
오스윈 프리든이 부시장실에서 나가자, 부시장은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소파에 축 늘어졌다.
"하아아아. 죽을 뻔했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오스윈 프리든이 마지막에 지켜보겠다고 한 말이 뭘 의미 하겠는가.
프리든 가의 힘으로 자신이 뭘 어떻게 하는지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아니면 프리든 가의 힘으로 이번 사태를 직접 조사하거나.
만일 프리든가의 조사보다 자신이 한 조사가 모자라면, 뒷일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위기였다. 하지만 위기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되기도 한다.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털어주지. 어쩌면…… 포기했던 시장 자리가 선물처럼 안겨올 수도 있겠어.’
부시장의 눈에 야망이 타올랐다.
***
바늘거인에게 가장 큰 데미지를 주는 팀은 단연 전격 속성 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반태수의 마법이 그 어떤 마법사가 펼친 마법보다 강력했다.
또한 반태수는 일행의 마법을 모두 모을 때, 능력자의 속성 마력을 거의 모조리 뽑아내다시피 해서 마법에 섞었다.
게다가 일행의 마법을 섞을 때, 증폭의 과정을 거치게 만들었다. 전격을 꽈배기처럼 꼬는 것이 바로 그 과정이었다.
그러니 다른 팀의 마법보다 출력 자체가 월등할 수밖에 없었다.
능력자의 속성을 뽑아내는 것과 증폭이, 이번 사냥에 써먹기 위해 반태수가 고민해서 내놓은 결과였다.
사실 처음 생각했던 것은 모든 공격 마법과 마력 속성을 모아 지정된 좌표로 이동시켜 화력을 집중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러려면 공간이동에 대한 기초적인 실현이 필요했다.
이번에 벽을 넘으면서 공간에 대한 깨달음과 이해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원거리 좌표이동을 성공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반태수는 공격을 할 때마다 바늘거인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했다.
이제 영역화의 반경을 상당히 줄였기 때문에 바늘거인의 정보를 많이 획득할 수 있었다.
공격이 성공했을 때, 그것이 바늘거인의 몸에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실질적으로 바늘거인에게 얼마나 타격을 주는지, 또 회복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전부 알 수 있었다.
그 중에 반태수가 중점적으로 확인한 것은 바늘거인의 마력과 회복에 관해서였다.
바늘거인의 마력은 공격을 당할 때마다 확 줄어든다. 마치 마력으로 공격을 막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 직후, 마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겉으로는 바늘거인이 타격을 전혀 안 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건 직접 바늘거인 깊숙한 곳까지 확인하고 있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바늘거인 내부에 커다란 코어가 존재한다.
마력이 한 번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마다 코어의 마력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코어를 비우면 언젠가는 바늘거인의 마력이 바닥난다는 뜻이다.
아마 지금까지 바늘거인을 비롯한 거대 마수를 상대할 때는 이런 식으로 장기전을 펼쳤을 것이다.
그리고 더 상위 레벨의 거대 마수를 도시 수준에서 잡아내지 못하는 건 이런 방식이 통하는 건 이 정도 레벨이 한계이기 때문이리라.
‘그나저나 이런 식이면 사냥을 15시간은 쉬지 않고 해야겠는데?’
반태수는 과연 이 능력자들과 마법사들이 15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자신이 계획을 세웠다면 팀을 둘로 나눠서 2교대로 공략하거나, 아니면 인원을 더 늘려서 3교대로 공략했을 것이다.
모인 능력자들과 마법사들의 수준을 보면, 도시에서 가용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모은 건 아닌 듯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반태수가 크랙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그동안 활동했던 것을 토대로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랬다.
반태수는 마법사, 전격 능력자들과 이동하면서 그들의 상태를 확인해봤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이제 고작 한 시간 정도 싸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이 15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 반태수 곁으로 페일라 린치필드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표정인데요?”
반태수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티를 냈나 싶어 마력으로 표정을 확인해봤다. 완벽한 무표정이었다.
이걸 보고 걱정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아마 농담이리라.
“농담 아닌데? 무슨 걱정인지 말해주세요. 같이 싸우는 동료인데 그 정도는 말해줄 수 있잖아요.”
반태수는 신기한 눈으로 페일라 린치필드를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마수를 잡을 수 있을지 좀 걱정했습니다.”
페일라 린치필드가 무슨 그런 얘기를 하냐는 듯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에이, 별 걱정을 다 하신다. 바늘거인이 즘 까다로운 마수이긴 한데, 이번에 참석한 마법사나 능력자들 경험이 많아요. 저도 몇 번 잡아봤고요.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반태수는 솔직히 감탄했다.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걸 보니 15시간의 강행군 정도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대단하군요.”
"에이, 별로 대단할 것도 없어요. 공략이 알려진 마수 사냥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사냥이야 그렇겠지만, 그걸 견뎌낼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은 대단한 게 맞습니다. 15시간을 쉬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 있다는 뜻이니 감탄할 수밖에요.”
반태수의 말에 페일라 린치필드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15시간이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바늘거인 평균 사냥 시간은 2시간 45분이에요.”
2시간 45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웬만한 능력자나 마법사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쉬지 않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공격하기 전에 쉬어서 체력을 보충하고 이동하면서 마력을 보충하는 식이니 정신력이 좀 마모되긴 해도 버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 얘기를 들은 반태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런 식으로 변화 없이 3시간을 싸우는 겁니까?”
"그렇죠? 바늘거인이 갑자기 날뛸 일도 없고, 이러다보면 아무리 마수라도 정신적으로 지쳐서 보통 변수를 만들지도 않거든요.”
반태수는 자신이 잘못 확인했나 싶어서 몇 번이고 다시 바늘거인의 상태를 세심히 파악했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해도 앞으로 13시간에서 14시간 정도는 싸워야 코어의 마력이 바닥난다.
그 사이에 공격을 쉬면 코어가 다시 마력을 빨아들일 테니, 사냥 시간은 더 늘어날 테고.
"만일 사냥을 15시간 동안 계속해야 한다면 버틸 수 있겠습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페일라 린치필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전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다른 마법사나 능력자들은 아마…… 다섯 시간 정도 버티면 잘 버티는 거죠.”
반태수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좀 무리를 해서 라도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다 죽을 테니까.
마침 바늘거인이 마력바늘을 쏟아내고 있었다.
능력자들이 방패로 그것을 막아냈다. 방패가 마력바늘을 반사해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바늘거인에게 되돌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바늘거인의 마력을 거의 깎아내지 못했다.
바늘거인이 능력자들을 향해 달려들어 마력 몽둥이를 휘둘렀다.
꽈아앙!
방패를 촘촘히 붙여 그것을 막아냈다.
꽈아앙!
충격을 되돌려 바늘거인을 뒤로 밀어냈다.
그 사이 능력자들이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미끼 2조가 바늘거인의 뒤쪽에서 깔짝대며 신경을 긁었다.
미끼 2조가 어그로를 가져갔고, 바늘거인이 미끼 1조에서 미끼 2조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화염 마법이 작렬했다.
꽈아아아앙!
능력자들이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
다시 정해진 대로 사냥이 진행되었다.
반태수는 가용한 두뇌를 모두 이용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했다.
저래서는 답이 안 나온다.
‘디버프가 필요해.’
내구력을 깎거나, 아니면 마력을 증발시키기라도 해야 한다.
기존의 내구력 약화는 안 된다. 저 거대 마수의 마력을 뚫고 안으로 마법을 심을 수가 없다.
반태수는 전격 마법에 내구력 약화를 섞을 수 없을지 고민했다.
전격은 제대로 떨어지기만 하면 내부를 타고 쭉쭉 들어간다. 마력 때문에 큰 데미지를 주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안으로 파고든다.
지금까지 이렇게 맹렬히 무언가를 고민하고 답을 도출해 낸 적이 있었을까?
반태수는 입을 꾹 다문 채 거기에 집중했다.
페일라 린치필드는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딴 생각을 하는 반태수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우리 대화 중 아니었나? 아우, 자존심 상해.’
마치 무시당한 것 같지 않나. 물론 마법사가 가끔 저럴 때가 있다는 걸 알기에 조용히 지켜보지만,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내 전격 팀이 공격할 차례가 되었다.
페일라 린치필드는 그때까지도 계속 그 상태인 반태수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건드리면 안될 것 같아서였다.
그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반태수가 고개를 돌려 페일라 린치필드를 쳐다봤다. 그의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페일라 린치필드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제부터 우리 팀의 공격은 당신이 지휘하십시오.”
"예? 제, 제가요?”
"못 합니까?”
"그럴 리가요! 당연히 할 수 있죠!”
페일라 린치필드가 큰 소리로 대답하자,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믿겠습니다.”
페일라 린치필드가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주세요!”
이제 공격 두 번째 페이즈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