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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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이어 공방이 확장을 시작했다.
근처에 있는 소규모 공방 중에서 망한 곳들을 전부 인수하고 그곳에서 일하던 숙련자들을 싹 흡수했다.
기술을 유출했던 직원들을 찾아내는 일도 동시에 진행했다.
엄대협이 맡아서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철저하고 세심하게 조사해서 유출자를 싹 잡아냈다.
돈에 넘어간 직원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했다.
하지만 협박에 당한 직원들은 정상참작을 해주었다.
그렇게 기존 직원들을 추스른 뒤, 그들을 적절히 분배했다. 그들을 팀장으로 다수의 신규 직원을 붙여 술식의 한 부분을 맡겼다.
졸지에 기존 듀마이어 공방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들이 전원 팀장으로 승진한 셈이 되었다.
확장을 어디까지 할지도 잘 조절해야 한다.
지금이야 방패의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지만, 결국은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방패는 소모품이 아니니 한 번 구매한 사람은 굉장히 오랫동안 쓸 것이다.
신규 구매자의 수가 빠르게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걸 해소하려면 다른 도시로 판매망을 넓혀야 한다. 한데 그게 쉬울 리 없다.
사실 장명기는 거기에 대해 약간의 기대를 갖고 있었다.
소문이 퍼지면 다른 도시에서도 듀마이어 방패를 원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테고, 알아서 그쪽으로 갖다가 팔 사람도 하나둘 생겨날 것이다.
아무튼 듀마이어 공방은 이제 돈을 쓸어 담을 일만 남았다.
반면, 지하 공방 쪽은 분위기가 바닥이었다.
핵심 능력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제법 쓸 만한 능력자들 여럿이 죽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다.
가장 중요한 건 공방 주인인 아버 자쳇이 분노했다는 점이다.
아버 자쳇은 듀마이어 공방과의 경합 이후, 한 시도 분노를 삭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분노를 풀기 위해 플로드가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성질 같아선 듀마이어 공방을 힘으로 날려 버리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었다.
시 정부와 공급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듀마이어 공방을 건드리려면 시 정부의 눈치를 먼저 살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시 정부 쪽에서 듀마이어 공방에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었다. 아버 자쳇이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듀마이어 공방의 새 마법사였다.
경합 당시에도 어찌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지 잡아 족치고 싶었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그놈을 잡아다가 깜깜한 지하에 가둬두고 술식이나 뽑아먹기로 했다.
듀마이어 공방에서 지금 만드는 방패의 생산만 차질 없이 진행되면 그 외의 일은 대충 무마할 수 있다.
듀마이어 공방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한계를 벗어나려면 새 아이템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새 아이템 개발에는 그 마법사의 힘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마법사만 잡으면 분노도 풀고 듀마이어 공방의 미래도 삭제할 수 있다.
듀마이어 공방이 다른 마법사를 구할 수도 있지만, 아니, 높은 확률로 그러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여긴 암시장, 구린 일을 도맡을 사람이야 널렸으니까.
그러고 있을 때, 플로드가 돌아왔다.
"어떻게 됐지? 잡아왔나?”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플로드의 대답에 아버 자쳇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그런 답을 듣자고 지금까지 기다린 게 아닌데?”
플로드가 얼른 대답했다.
"그 마법사에게 오스윈 프리든이 붙어 있습니다.”
오스윈 프리든이라는 이름이 마법 같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아버 자쳇의 얼굴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오히려 지금까지 언제 분노했냐는 듯 냉철한 눈빛으로 플로드에게 물었다.
"프리든 가가 왜 그런 어정쩡한 마법사에게 붙은 거지?”
"오스윈 프리든이 그 마법사에게 관심이 높은 모양입니다.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아버 자쳇의 눈이 번득였다.
"그냥 평범한 보통 마법사가 아니었군? 뭔가 있는 놈이었어. 프리든 가라니!”
"일단 그 마법사에 대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플로드가 서류 몇 장을 내밀었다.
아버 자쳇은 서류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놀랍군. 그 오스윈 프리든이 일부러 마수 사체에 유물까지 제공했다고?”
"예. 확실합니다. 그 이후에 초대까지 했습니다. 당일 프리든 가의 실세 세 명이 크랙톤에 도착한 것도 확인했습니다.”
"대체 이놈이 뭐기에?”
"마도구 제작 능력을 높이 산 거 아니겠습니까?”
"프리든 가에는 마도구 제작 전문가들이 여럿 있는데?”
"냉정하게 이번 방패를 그 전문가들이 제작한 마도구보다 위에 있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버 자쳇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는 분노 때문에 냉철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냉정을 되찾은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마도구다.
"누군가 술식을 베껴갈 것까지 고려해 함정을 팠어. 생각해보면 그거 정말 말도 안 되는 건데. 안 그런가?”
"맞습니다.”
"그럼 어째야겠나? 여기서 그냥 포기해야 하나? 내버려 둬?”
플로드가 이제야 본론이라는 듯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제가 그 마법사의 스케줄을 좀 추적해 봤습니다.”
"스케줄?”
"예. 그놈에게 의뢰를 물어다 주는 브로커가 한 명 있습니다. 그 브로커를 밀착 감시 중입니다. 그놈이 누구와 만나는지, 어디로 연락하는지 전부 파악해서 마법사가 무슨 의뢰를 받는지 알아내면, 방법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드러나선 안 돼. 상대는 프리든 가야. 차라리 이 도시 토박이인 윌렉스 가문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어. 하지만 프리든 가는 안 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 흔적은 절대 드러나지 않을 겁니다.”
"좋아. 적당한 기회가 오면 바로 보고해.”
"예."
플로드가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물러갔다.
아버 자쳇은 고민이 깊어진 눈으로 멀어져가는 플로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뭐? 집?”
엄대협이 경기를 일으키며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그저 집이라는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엄대협은 그걸 과하게 받아들였다.
다시 활동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집에 간단 말인가.
"그래. 집.”
"아니, 집에 꿀이라도 발라놨어? 왜 이리 자주 가려고 해?”
"집에 간다는 게 아니고 집을 하나 구하려고.”
그제야 엄대협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아이고, 그러셨구나. 진작 말씀하시지. 어떤 집을 원하는데? 뭐든 살 수 있지. 우리 진짜 부자거든.”
“우리?”
"에이, 몸이고 마음이고 하나가 돼서 움직이는데, 내가 너고 네가 나지. 안 그래?”
"안 그래. 계산 정확히 해라. 두 번 안 말한다.”
"계산이야 언제나 정확하지. 통장 확인 안 해봤어?”
안 해봤다. 그거 확인할 시간에 마법사 전용 웹에서 글 하나 작성하는 게 더 낫다.
요즘 그쪽 의뢰 게시판도 기웃거리고 있다. 흥미로운 의뢰가 올라오면 맡을 생각이었다.
"아무튼 집이라 이거지. 버는 돈이 있으니 보안 생각도 좀 하고 외관도 그럴듯해야 하고 넓고 교통도 편하고 그래야겠지?”
반태수는 과하게 반응하는 엄대협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수상한 느낌이 확 들었다.
"내가 오랫동안 봐 온 집이 있거든? 한 번 보러 갈래?”
반태수는 이놈이 무슨 꿍꿍이일까, 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설마 날 못 믿어서 그러는 거야? 진짜 괜찮은 집이라니까?”
“그래, 가보자.”
반태수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대답하자, 엄대협이 히죽 웃었다.
"여기서 차로 40분쯤 가면 돼. 얼른 타.”
***
‘의외인데?’
반태수는 엄대협이 소개한 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냥 집이 아니라 저택이었다.
얼마 전에 봤던 오스윈 프리든의 저택 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그래도 저택이라고 부를 정도로 컸다.
정문에서 집으로 쓰는 건물까지 몇 분은 걸어 들어가야 했다.
조경도 잘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건물이 하나가 아니었다.
주인이 쓰는 큰 건물이 하나 있고, 게스트 하우스가 몇 개 있었다.
저택 관리를 위해 고용한 직원들이 쓰는 건물에 저택의 경비원들이 쓰는 건물도 따로 있었다.
건물 내부도 상당히 훌륭했다. 건물 설계와 인테리어를 누가 했는지 보자마자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어때? 괜찮지?”
“좋네.”
"게다가 비어 있지. 그게 제일 중요해. 사면 바로 들어와서 살 수 있다고.”
"그것도 좋네.”
"그렇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리고 이거 빨리 사야 돼. 노리는 놈이 한둘이 아냐. 그걸 내가 잠깐 막고 있는 거라고."
반태수가 엄대협을 보며 물었다.
"이거 비쌀 거 같은데?"
당연하다. 변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심지에 이 정도 규모의 저택을 지어놨는데, 그게 싸면 더 이상하다.
"비싸긴 하지. 유지비도 꽤 들 테고. 그래도 못할 건 없어. 70%정도 대출 끼면 돼.”
“70%? 대출을 70%나 낀다고?”
엄대협이 피식 웃었다.
"야, 이 저택에서 번화가까지 걸어서 10분이야. 땅값만 해도 장난 아니라고. 우리가 아무리 이번 일로 돈을 많이 벌었어도 대출 없이는 안 돼.”
집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보자마자 어디를 어떻게 쓸지 저절로 계획이 세워졌다.
연구실을 어디에 둘지, 침실은 어디쯤으로 정하고 뭘 갖다 놓을지, 등등등.
그런데 대출을 70%나 받아야 한다고? 그게 가능하긴 한가? 카페 위자드를 준비할 때, 대출을 받아 봤는데, 그거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돈 빌려주겠다고 난리인데 뭐가 걱정이야? 우리한테는 듀마이어 방패의 지분이 무려 64%나 있다고.”
"자꾸 우리라고 하네.”
"아이고, 그런 사소한 단어에 왜 이리 집착을 해? 마법사는 집착하면 안 된다며?”
"누가 그래? 마법사야말로 집착의 화신인데. 집착 없이 연구가 진행될 거 같아?”
"어우, 뭘 또 그리 예민하게 받아들여? 너 대단한 마법사인 거 세상이 다 알아. 자자, 쓸데도 없는 농담은 이제 그만하고 얼른 결정하자. 이 집, 어때?”
"사자. 앞으로 거점이 필요할 거 같으니까.”
엄대협이 더 할 나위 없이 환하게 웃었다.
"잘 생각했어. 그럼 바로 진행한다? 오늘 계약까지 다 진행할 거야. 집 관리는 잘 했으니까 전부 고용 승계하는 걸로 하면 되지?”
"그럼 편하지.”
엄대협은 신 나서 바로 전화부터 걸었다.
저택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순식간에 모든 것이 이뤄졌다.
반태수가 결정한 지 고작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모든 과정이 끝나 버렸다.
어어, 하다 보니 어느새 저택의 주인이 반으로 바뀌었고, 막대한 대출을 받았다.
반은 0에 수렴해가는 통장 잔액을 확인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돈 벌어야겠네.’
이럴 땐 의뢰다.
***
반태수에게는 의뢰를 받을 수 있는 경로가 원래 엄대협 하나뿐이었다.
한데 이제는 그게 셋으로 늘어났다.
우선 오스윈 프리든으로부터 올 가능성이 있는 의뢰였다. 유적과 관계된 의뢰 말이다.
물론 아직은 한 번도 안 왔지만, 조만간 기회가 생길 듯했다. 오스윈 프리든이 몇 개의 유적을 놓고 조율 중이라고 하니까.
마지막으로 마법사 전용 웹이 있다.
의뢰 게시판에 올라오는 의뢰들은 대부분 영양가 없는 것들이었다. 뭘 말하는 건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절반 이상이고.
하지만 찾다 보면 흥미로운 의뢰들이 가뭄에 콩 나듯 하나씩 보였다.
원래 이번 의뢰는 마법사 전용 웹을 통해서 해보려고 했다. 경험 삼아.
하지만 집을 사는 바람에 계획이 바뀌었다.
엄대협을 통해 대가가 높은 의뢰를 받기로 결정했다.
대출금은 듀마이어 공방에서 돈이 들어오는 족족 갚아 나가기로 하고, 이렇게 의뢰를 통해 번 돈으로 저택 유지비를 비롯한 다양한 소비처에 쓰기로 했다.
엄대협이 자기만 믿으라고 큰소리 뻥뻥 치고 나갔으니 조만간 그럴듯한 의뢰를 들고 돌아올 것이다.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저택 곳곳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보면 볼수록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하나 거슬리는 게 없었다.
대체 엄대협은 이런 집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솔직히 그게 엄대협의 전문 분야도 아니지 않은가.
엄대협이 사정사정해서 게스트하우스 중 하나를 내주기로 했다.
그때의 표정을 보니 어쩌면 엄대협의 목적이 그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한 번 거절해볼 걸 그랬나?”
왠지 재미있는 장면 하나를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좀 아쉬웠다.
그때, 엄대협이 도착했다.
"나 왔다! 아주 끝내주는 의뢰를 두 개나 가져왔다고!”
엄대협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반태수는 잠시 저 얼굴에 방 비우라는 말을 던질까말까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래? 무슨 의뢰인데?”
엄대협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마수 한 번 잡아볼래?”
"마수?”
반태수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엄대협이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그냥 마수가 아니라 거대 마수.”
"거대 마수?”
이건 좀 호기심이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