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무구 선정 테스트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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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 자쳇은 듀마이어 공방의 능력자들과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섰다.
마법사에게 30미터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리였다.
그리고 저들은 공격을 하지 않고 방어만 한다. 이 얼마나 즐거운 상황인가.
‘내가 나서길 잘했어.’
이런 재미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잠시 능력자들이 든 방패를 보던 아버 자쳇은 슬슬 시작하기로 했다. 언제까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 머릿속으로 술식을 떠올렸다.
이미 지하 공방의 테스트 과정에서 어떤 마법이 효율적인지 파악해 뒀다.
마법 자체는 저 방패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쏘는 족족 흡수해서 역으로 방출해 버린다. 일종의 반사다.
저 방패가 실전에 배치되면 정말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리라.
저 방패를 깰 수는 없다. 하지만 방패를 든 사람들을 밀어낼 수는 있었다.
‘그나저나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게 영 거슬리는군.’
마법의 여파만으로 저들을 밀어내야 한다. 그러니 빈틈이 많을수록 좋다.
'뭐, 저런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아니니까.’
아버 자쳇은 코어에서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법을 펼칠 시간이 되었다.
미리 준비한 술식으로 빠르게 마법진을 구성했다.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불 속성 마법이었다.
그와 동시에 양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를 발동시켰다. 오늘을 위해 미리 준비한 마도구였다.
하나는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는 마법이 내장되어 있었는데, 불 속성 폭발 마법과 동시에 펼치면 시너지가 일어나 효과가 몇 배로 커진다.
또 하나는 충격 마법이 내장되어 있었다. 이 역시 폭발을 더 크게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아버 자쳇의 목적은 강력한 폭발을 이용해 그 여파로 능력자들을 뒤로 밀어내는 거였다.
즉, 힘이 방패 뒤로 넘어가야 한다. 그것이 비록 살상력이 없는 단순한 물리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동안의 테스트에서는 충분한 힘을 방패 뒤로 넘겼다.
한데 그건 전부 방패를 든 능력자들이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을 때였다.
하지만 아버 자쳇은 방패를 다닥다닥 붙인다고 해도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보지는 않았다.
이내 세 가지 마법이 동시에 발동했다.
콰아아아!
거센 폭풍이 일어났고,
콰아앙!
화염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뻐어엉!
거기에 충격파가 섞여 들어갔다.
꽝!
세 가지 힘이 절묘하게 혼합되며 고막이 얼얼할 정도의 폭음이 울렸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전부 깜짝 놀랄 정도로 위력적인 마법이었다.
아버 자쳇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중에 최고의 효율로 마법이 발현되었다.
이건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방패 몇 개를 날려버렸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이내 시야를 가렸던 거대한 화염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에 다들 할 말을 잊고 입을 다물었다. 그건 아버 자쳇도 마찬가지였다.
열 명의 능력자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그 대단한 마법을 아무 피해 없이 막아낸 것이다.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방패의 위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아버 자쳇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런 물건을 만들어 내다니. 정말 보통이 아니로구나.’
이번에 얻은 술식을 분석하면 지하 공방에서도 더 좋은 마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방금 마법을 쓰면서 느꼈는데, 저 방패를 다닥다닥 붙여 놓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큰 것이 분명했다.
뭔가 자신이 아직 모르는 효능이 더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 말을 바로 전달했다. 샤인 공방의 능력자들에게.
샤인 공방의 능력자들이 방패를 들고 다닥다닥 붙었다.
이제 듀마이어 공방의 마법사가 공격할 차례였다.
아버 자쳇은 반태수를 바라봤다. 멀찍이 떨어져 있었는데, 어찌나 여유로운지 보고 있으니 왠지 부아가 치밀었다.
"괜히 기분 나쁜 놈일세.”
아버 자쳇이 중얼거린 순간 반태수가 고개를 휙 돌려 그를 쳐다봤다.
“아우, 씨. 뭐야, 저 놈?”
마치 자신이 한 말을 듣고 노려보는 것 같지 않은가.
반태수는 여전히 아버 자쳇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 자쳇이 다시 시선을 반태수에게 향한 순간, 씨익 웃었다.
아버 자쳇의 기분이 한 단계 더 다운되었다.
"저게 계속 날 긁네?”
아버 자쳇은 어금니를 꽉 물고 반태수를 한 차례 노려봤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갔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심정으로 반태수를 지켜봤다.
반태수는 다닥다닥 붙은 방패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저럴 줄 알았다. 이쪽에서 저걸 보여주면 당연히 저쪽도 따라할 거라 믿었다.
제대로 된 마법사라면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못 느낄 리가 없으니까.
실제로 방패의 술식을 설계할 때, 서로 붙으면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했다.
별로 어려운 건 아니었다, 마력 간섭을 이용하면 되니까. 게다가 그건 다른 쪽으로도 써먹을 수 있었다.
지금 그 다른 쪽으로 써먹은 걸 보여줄 차례였다.
반태수는 시작 신호를 기다렸다,
시 정부 쪽에서 나온 사람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그게 시작하라는 신호였다.
아버 자쳇은 이 상황에서 마법을 준비하느라 제법 긴 시간을 썼지만, 반태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손바닥이 위로 가도록 손을 슬쩍 내밀었다.
슈우우우.
그 위에 마력이 모여들었다. 주변 마력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몸 주위를 휘감은 마력을 뽑아낸 것이다.
이건 비단 마법사뿐 아니라 마력에 대한 재능이 뛰어난 능력자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수법이었다.
솔직히 샤인 공방에서 이 테스트를 했다면 애초에 이런 경합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태수는 샤인 공방이 이런 테스트를 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이런 식으로 순수한 마력만으로 공격하는 건 아무도 하지 않는 짓이니까.
적당히 마력을 모은 반태수는 그걸 슬쩍 던졌다.
단단히 뭉친 마력 덩어리가 너울너울 날아갔다. 정말 느린 속도였다. 일부러 속도를 느리게 조절해서 던진 것이다.
다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반태수가 친절하게 마력에 색을 입혔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현재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능력자든 마법사든 마력을 감지할 수 있지만 시 정부 인사들 중에는 능력자가 아닌 사람도 섞여 있었다.
너울너울 날아간 마력 덩어리가 다닥다닥 붙은 방패 중 정확히 다섯 번째 방패에 툭 달라붙었다.
그와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꽈아앙!
방패가 폭발한 것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방패들이 서로 공명하더니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꽈과과과과과광!
방패를 쥐고 있던 능력자들이 다급히 마력을 일으켜 몸을 방어했다.
하지만 손에 들고 있던 방패가 폭발하는데 아무리 빠르게 방어했다고 해도 다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내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애초에 다들 결론을 미리 내리고 오늘 행사에 참여했다. 한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패닉에 빠졌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플로드였다.
"얼른 병원으로!"
플로드와 함께 있던 샤인 공방, 아니, 지하 공방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 다친 능력자들을 챙겼다.
무려 열 명이다. 그것도 엄선한 능력자들이었다. 여기서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자친 자들을 수습하는 사이 잠시 패닉에 빠졌던 사람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시 정부에서 나온 자들이 아버 자쳇과 플로드를 노려봤다.
로비로 넘어가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저런 불량품을 군에 납품한다고?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도시의 군대는 도시로 위험이 다가올 때 그걸 처리하거나 시간을 버는 일이 주된 임무다.
도시를 우|협하는 것은 비단 마수만이 아니다. 도시를 전복하려는 놈들이 더 위험하다.
한데 저런 불량품을 들고 그런 위협에 맞서라고? 그러다 큰 피해를 입으면 대체 누가 그걸 책임진단 말인가.
시 정부의 공무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책임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고자 한다.
그래서 이렇게 분노하는 것이다.
아버 자쳇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분노의 시선에 어금니를 꽉 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방패가 저리도 간단히 폭발하다니.
"납득할 수 없다!”
아버 자쳇이 반태수를 향해 악을 쓰며 소리쳤다.
반태수가 고개를 돌려 아버 자쳇을 슬쩍 본 다음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아버 자쳇이 얼른 말을 이었다.
“듀마이어 공방의 방패에도 똑같은 테스트를 해야지!”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테니까.
"어렵지 않지. 그럼 내가 할까? 아니면 직접?”
"당연히 내가 직접 해야지!”
뭘 믿고 적에게 테스트를 맡긴단 말인가. 애초에 그 때문에 서로 마법 공격을 하기로 한 것인데.
지하 공방은 암시장에서 활동한다. 당연히 뒤통수를 치는 것도 많이 봤고, 맞아도 봤고, 쳐보기도 했다.
그러니 누굴 믿을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의 대화를 시 정부 인사들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기에 아버 자쳇의 주장은 바로 적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진행은 상당히 빨랐다. 듀마이어 공방의 능력자들을 재촉해 얼른 방패를 들게 했고, 아버 자쳇은 그들이 다닥다닥 붙는 모습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그리고 아까 반태수가 했던 것처럼 손바닥을 내밀었다.
슈우우우.
반태수보다는 느렸지만 제법 빠르게 마력이 모여들었다.
아까 분명히 확인했다. 순수한 마력으로만 방패를 때렸다는 것을.
아버 자쳇은 반태수가 했던 것처럼 마력에 색을 입혔다.
방법이야 알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섬세한 마력 조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삼 반태수의 마법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아버 자쳇은 마력 덩어리를 던졌다.
반태수 때와 달리 마력 덩어리가 빠르게 날아가 방패에 퍽 부딪쳤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버 자쳇의 머릿속이 형클어졌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내가 뭘 잘못한 거야?’
하지만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얼른 시 정부 인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우리 쪽 방패에도 이걸 직접 써봐야겠습니다.”
그들의 표정과 눈빛이 싸늘해졌다. 특히 부시장의 눈빛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아버 자쳇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어느새 샤인 공방의 다른 능력자들이 새 방패를 들고 나란히 섰다.
아버 자쳇은 빠르게 마력을 모아, 그것을 던졌다.
꽈과과과과광!
결과는 연쇄폭발이었다.
아버 자쳇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이번에 동원한 능력자들은 아까와는 달리 실력이 좀 떨어지는 자들이었기에 피해가 훨씬 컸다.
그리고 몇몇은 죽기까지 했다.
아버 자쳇은 삐걱거리는 목을 억지로 움직여 시 정부 인사들이 모인 곳을 바라봤다.
그들 앞에 듀마이어 공방의 대표인 장명기가 서 있었다.
부시장이 따뜻한 표정으로 장명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시선이 잠깐 아버 자쳇에게 닿았는데, 그때의 눈빛은 싸늘하고 매서웠다.
아버 자쳇의 머릿속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애초에 술식을 빼돌리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지만, 그런 걸 따지면 암시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느새 플로드가 아버 자쳇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제 가시지요. 제 실책입니다. 아무래도 저놈들한테 농락당한 것 같습니다.”
아버 자쳇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우릴 노린 게 분명해. 감히…… 날 갖고 놀아?”
"돌려줄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이만 가셔야 합니다.”
모이는 시선들이 곱지 않았다. 굳이 여기서 더 얼굴을 팔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샤인 공방, 아니, 지하 공방 사람들은 인사도 없이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
장명기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장명기뿐 아니라 듀마이어 공방에서 나온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일을 겪고 있었다.
그들이 언제 이렇게 집중적인 관심을 받아 봤겠는가. 다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반태수는 사람들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자리를 떴다.
지하 공방 사람들보다 오히려 반태수가 더 먼저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반태수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웬델 프리든이었다.
그는 경합이 불공정하다는 걸 알면서도 도움을 거절한 이유를 알고 싶어서 여기에 참석했다.
한데 설마 그런 장치를 해뒀을 줄은 몰랐다.
웬델 프리든은 가문의 마도구 제작 전문가들이 과연 저 정도 수준의 방패를 만들 수 있을지 냉정하게 따져봤다.
'만만치 않아.’
웬델 프리든이 반태수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듀마이어 방패에 대해서도 충분히 조사했지만, 정작 이렇게 성능을 눈으로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
그 수준이 예상했던 것보다 월등했다.
가문의 마도구 제작 전문가들이 작정하고 나서면 저와 비슷한 효능의 방패를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어처구니없게 술식을 보호하고 함정을 파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접점을 더 많이 만들어 둬야겠어.’
그리고 계획했던 것보다 반태수를 지켜보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본가의 가주가 한 번 만나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웬델 프리든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