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58화 (58/351)

58화.  < 무구 선정 테스트 >

========================

오스윈 프리든은 따로 마련된 응접실에 도착하자마자 반태수에게 사과부터 했다.

“오늘 여러모로 죄송합니다. 가문의 어르신들이 이렇게까지 하신 적이 없는데……."

"괜찮습니다.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반태수는 정말 괜찮았다.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는가.

대화하는 내내 은밀한 마력이 계속 자신이 둘러놓은 마력을 뚫으려고 시도했다.

그걸 막으면서 대화를 하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대화 내용도 재미있었고.

저들은 끊임없이 반태수를 가늠하고자 했다. 오직 오스윈 프리든에 대한 염려 하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프리든 가의 어르신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추측할 수는 있다.

‘아마 날 더 세심히 지켜보고자 했겠지.’

반태수가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오스윈 프리든이 무언가를 들고 왔다.

"이거 받으십시오.”

“총이로군요.”

오스윈 프리든의 손에는 고급스러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상자 뚜껑이 열린 채였는데, 안을 솜으로 채우고 솜 위에 권총 하나를 올려놨다.

대번에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유물이 분명했다.

"유물입니까?”

오스윈 프리든이 빙긋 웃었다.

"맞습니다. 총에 관심을 많이 두시는 것 같아서 이걸로 준비했습니다.”

반태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감사합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기뻤다. 이건 유물 중에서 가장 관심을 두던 총이었다.

이와 같은 총이 유적 안에 총 다섯 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가져온 것이다.

"기뻐하시니 다행입니다.”

오스윈 프리든은 반태수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그동안 했던 고생을 모두 보답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생소하기도 했고, 좋기도 했으며, 두렵기도 했다.

"계속 받기만 하는 것 같군요.”

오스윈 프리든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당한 대가를 챙겨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죠. 대신, 혹시라도 제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주십시오.”

오스윈 프리든이 더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기억해 두겠습니다.”

그날의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

반태수는 손에 든 총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겉모습부터 자세히 살폈다.

디자인 자체는 단순했다. 그냥 권총이었다. 특별한 문양이 새겨져 있거나, 멋을 부린 흔적 같은 것도 없었다.

그리고 총알을 넣는 곳이 없었다. 탄창도 없고 공이도 없었다. 총알을 끼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방아쇠는 있었다. 구조를 살펴보니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안쪽 어딘가가 찰칵 붙는 식인 듯했다.

그 붙는 곳이 아마 마법을 발동하는 스위치이리라.

반태수는 본격적으로 마력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보안 마법이었다.

한데 지금까지 겪은 그 어떤 보안 마법보다 대단한 보안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내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일단 보안에서 막혔다. 이걸 어떻게 파고들어야 할지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마력을 읽을 수는 있으니 차근차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반태수는 가용한 모든 두뇌를 풀가동해 보안 마법을 분석했다.

결국 가장 바깥쪽을 감싸고 있는 마력 패턴을 푸는 데 성공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세 시간이었다. 세 시간을 집중한 끝에 겉 껍질 한겹을 벗겨낸 것이다.

껍질 아래에 진짜 보안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암담할 정도로 난해한 보안마법이었다.

‘이건 또 뭐야?’

마력 패턴을 간신히 읽어냈더니, 그저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문자라는 걸 알아냈다.

고대 문자였다.

‘이걸로 보안 마법을 구성했다고? 그게 가능해?’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고대 문자에 대한 지식이 차례차례 떠오르니 차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고대 문자 자체가 마력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였다. 물론 어떻게 쓰는지는 아직 모른다.

사용 방법과 가능성이 정말 무궁무진한 문자였다.

고대 문자가 마력 구조 전체를 촘촘하게 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대 문자들은 의미가 있는 문자가 아니라 전부 독립된 문자였다.

마치 얼마 전 유적 안에서 본, 홀로그램처럼 떠 있던 문자처럼.

반태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총기에 쓰인 고대 문자를 하나하나 전부 확인했다.

‘있다!’

유적에서 본 문자가 전부 존재했다. 그래서 그 문자에 마력을 아주 조심스럽고 세밀하게 흘려 넣었다.

그 순간, 나머지 문자들이 마치 퍼즐이 착착 접히는 것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보안이 뚫린 것이다.

유적 허공에 떠 있던 다섯 개의 문자가 보안을 뚫기 위한 암호였다.

반태수는 순간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대체 왜 자신에게만 그 문자들이 보였으며, 그 문자가 왜 이 유물에 걸린 보안의 암호일까?

그동안 굳이 파고들지 않으려던 사실 하나가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자신은 17년간의 기억을 잃고 마법을 얻었다.

한데 어쩌면 17년 동안 이 육체를 쓰던 사람을 밀어내고 자신의 영혼이 이 육체에 깃들었을지도 모른다.

한데 과연 정말 그럴까?

반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신하기에는 좀 이르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정보는 아마 이곳 이면세계에 흩어져 있을 것이다.

처음 포탈을 봤을 때, 그렇게 강렬한 충동이 생긴 이유가 어쩌면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반태수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내고 다시 총에 집중했다.

이제 보안을 뜯어냈으니 안을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수준의 술식이 펼쳐져 있을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기대됐다.

***

장명기는 심장이 너무 미친 듯이 뛰어서 좀처럼 진정할 수가 없었다.

오늘 듀마이어 공방의 미래가 결정된다.

물론 시 정부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공방이 망할 일은 없다. 안 그래도 주문을 처리하느라 허덕이고 있으니까.

하지만 시 정부의 선택을 받아 군대에 방패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면, 공방의 규모를 단숨에 키울 수 있다. 최소 세 배는 성장하리라.

사실 방패에 대한 듀마이어 공방의 지분이 낮기 때문에 되도록 많이 팔아야 한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새로운 마도구를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경합이 중요한 것이다. 미래를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후우욱.”

장명기는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려고 애썼다. 하지만 좀처럼 긴장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오늘 경합을 할 장소, 군대에서 쓰는 훈련장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훈련장 곳곳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도 있고, 전투복 차림인 사람도 있었다.

장명기는 모인 사람들을 분류해봤다. 시 정부에서 나온 사람들, 그리고 오늘의 경합 대상인 샤인 공방에서 나온 사람들, 마지막으로 그걸 구경하겠다고 모인 사람들.

시 정부 인사들과 샤인 공방 사람들이 붙어 있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샤인 공방이 이 일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듀마이어 공방에서 술식과 방패 도면까지 빼돌렸다는 것 자체가 웬만큼 공을 들여선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술식은 빼앗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니, 그 술식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자신뿐이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장명기는 이번 일이 터지고 나서 반태수에게 연락해 어쩌면 좋을지 물었다.

반태수는 방법을 알려줬다. 테스트 종류만 한 가지 추가하면 되는 일이다.

애초에 어떤 식으로 테스트가 이뤄지는지 얘기가 다 되어 있었다.

장명기는 테스트를 위해 방패를 착용하는 사람까지 각각의 공방에서 구하자고 주장했다.

그 주장은 의외로 쉽게 받아들여졌다.

샤인 공방은 지하 공방이 공개적으로 일을 할 때 쓰려고 만든 곳이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능력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하 공방을 운영하려면 무력부대의 소유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으니까.

오히려 듀마이어 공방이 사람을 구하는 데 애먹었다.

그래도 엄대협이 나서서 도와준 덕분에 어찌어찌 구할 수는 있었다.

브렛이라는 사내가 테스트에 참여할 능력자들을 데리고 와서 한 쪽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통일된 전투복을 입고 있는 능력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샤인 공방의 방패를 테스트할 능력자들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누군가 장명기에게 접근했다.

장명기는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샤인 공방의 플로드였다.

장명기는 이번 일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반태수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지하 공방에서 왔다 이거지?’

플로드는 똑바로 장명기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듀마이어 공방의 대표님 되시죠? 전 샤인 공방의 이사인 플로드입니다.”

플로드가 웃는 낯으로 손을 내밀었다.

장명기는 얼결에 그 손을 잡았다. 플로드가 힘차게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반갑습니다. 오늘 경합을 정말 기다렸습니다. 너무 기대하고 있어서요.”

장명기는 지기 싫어서 대꾸했다.

"저도 기다렸습니다.”

플로드는 장명기가 자신을 노려보는 모습에 빙긋 웃었다. 저 표정이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 참으로 기대되었다.

아마 아버 자쳇이 어딘가에서 지금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의 취미와 취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래 자신은 이런 취향이 아니었는데, 아버 자쳇과 오래 함께 하다 보니 이렇게 살짝 발을 담그게 되었다.

자신이 방패의 술식을 빼돌렸다는 걸 뻔히 알기 때문에 지을 수밖에 없는 표정과 눈빛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술식을 빼돌린 일을 한 번쯤 강하게 항의할 줄 알았는데 그냥 넘어가는 건 좀 의외로군.’

덤벼드는 쪽이 더 재미있는데 말이다.

플로드는 상념을 접고 걸음을 서둘렀다.

이제 곧 경합이 시작된다.

***

시 정부에서는 부시장이 나왔다.

부시장은 훈련장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고, 그 양 옆에 플로드와 장명기가 앉았다.

경합은 몇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첫 번째는 군인들이 나와 방패를 든 능력자들을 향해 사격을 할 예정이다.

능력자들은 방패를 앞세우고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총격을 막아내야 한다.

그 다음은 중화기로 방패를 때린다. 그것을 몇 방이나 막아내느냐를 확인하는 것이다.

다섯 발을 쏘기로 했고, 양 측은 그걸 전부 막아낼 수 있다고 여겼다. 실제 그 정도 테스트를 자체적으로 거치기도 했고.

마지막은 진짜 경합이었다.

양 측에서 마법사를 준비하고 서로 상대편을 공격하게 한다.

이 경합 방식을 제안한 것은 샤인 공방이었다.

그리고 샤인 공방에서 나서기로 한 사람이 바로 아버 자쳇이었다.

그는 공방 주인에 어울리지 않는 공격적인 마법사였다.

경합이야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결과는 이미 샤인 공방으로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꾸준히 로비에 쓴 돈도 돈이지만, 이번 경합을 위해서 쓴 돈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돈이야 경합에서 이기면 모두 해결된다.

크랙톤 시의 군대에 방패를 공급한다는 건 단순하지 않다. 그걸 발판으로 다른 도시에 방패를 판매할 길이 열린다.

물론 로비가 좀 필요하겠지만, 이 정도로 뛰어난 방패라면 다른 도시의 군대도 도입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아버 자쳇은 경합이 벌어지는 장소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거기서 경합 과정을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나서면 된다.

‘어차피 방패가 같으니 테스트 자체는 별 의미가 없어. 그러니 임팩트를 줘서 나중에 말이 안 나오게 해야겠지.’

아버 자쳇이 직접 나선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자신의 마법이 방패를 뚫지 못한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저 방패는 정말 대단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마법의 여파를 이용하면 방패를 든 사람을 뒤로 밀려나게 만들 수 있다.

이것 역시 테스트를 하면서 알아낸 방법이었고, 제법 연습도 많이 했다.

아버 자쳇은 고개를 슬쩍 돌려 듀마이어 공방에서 준비한 마법사를 쳐다봤다.

'저놈이 방패를 만든 반이라는 마법사겠지?’

듀마이어 공방이 다른 마법사를 구할 방법이 없었을 테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저들이 마법사를 섭외하지 못하도록 지하 공방에서 대대적인 공작을 펼쳤으니까.

첫 번째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두 공방에서 각각 열 명의 능력자가 방패를 들고 나왔다.

다른 공방에서 만들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양 측의 방패는 너무나 똑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문제 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만 속으로 좀 너무하긴 하다고 생각만 했을 뿐.

듀마이어 공방의 능력자들은 방패를 들고 서로 최대한 다닥다닥 붙었다.

반면 샤인 공방은 약간 간격을 두고 섰다.

양측이 자리를 잡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군인들이 총을 쐈다.

투두두두두!

연사에 놓고 마구 갈겨냈는데, 방패에 그 어떤 손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내구력 아닌가.

그 뒤로 어깨에 중화기를 멘 군인들이 등장했고, 각각 다섯 발의 포를 쐈다.

방패는 그것조차 정말 훌륭하게 막아냈다. 심지어 그 충격을 흡수해 방출했는데, 능력자와 군인의 중간쯤 되는 바닥이 그 충격으로 다 뒤집어졌다.

기대 이상이었다.

오늘 경합은 사실 군대에 방패를 보급할 공방을 선정하기 위해 열렸지만, 방패의 능력을 시연하는 것도 겸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목표를 훌륭히 달성했다.

이제 마지막 경합이 남았다.

아버 자쳇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듀마이어 공방의 마법사, 반태수도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이 경합을 끝낼 때가 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