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 프리든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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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네.’
반태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안은 밖보다 훨씬 대단했다.
물건 하나하나 보통이 아니었고, 곳곳에서 마력 반응이 느껴졌다.
이 집 하나에 들어간 마도구가 얼마나 많은지 쉽게 세기도 힘들었다.
대부분 안전과 편의를 위한 마도구들이었다.
내부 광경도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또 크기는 어찌나 큰지 아직도 복도를 걷는 중이었다. 중간 중간 거실 같은 공간을 지나쳤는데, 거실의 모습도 상상 이상이었다.
고급스러운 소파와 전면을 유리로 만든 벽, 그걸 통해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의 광경까지. 보는 순간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오스윈 프리든이 직접 안내해서 반태수를 데려간 곳은 넓은 식당이었다.
길쭉한 테이블에 자리마다 포크와 나이프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오스윈 프리든의 정중한 말에 반태수가 얼른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배가 좀 고팠는데 마침 잘됐다.
“그리고 오늘 가문 어르신 몇 분이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반 마법사님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혹시 언짢으시면 제가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반태수는 그의 말에 솔직히 좀 놀랐다. 이 정도까지 해줄 이유가 있을까? 그가 보기에 자신은 실력이야 좀 있지만 밑바닥에서 구르는 마법사 나부랭이에 불과할 텐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궁금하네요. 어떤 분들일지.”
이런 대단한 가문의 어르신들이 과연 어떤 사람일까? 드라마나 뉴스, 혹은 소설 속에서 보던 재벌가 사람들 같은 느낌일까?
오스윈 프리든이 반태수의 대답을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감사합니다. 솔직히 어르신들을 막는 건 좀 부담스러웠거든요.”
그의 솔직한 말에 반태수는 빙긋 웃었다. 계속 일방적으로 호감을 보내오니 싫어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네요. 하하.”
"자, 일단 앉으시죠. 제법 신경을 쓰라고 했으니 꽤 먹을 만할 겁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식당 안쪽에 마련된 주방에서 요리를 든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나와 식탁에 요리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요리들이 많았다.
“드시죠.”
반태수는 천천히 요리를 맛봤다. 하나하나 음미하듯 맛볼 가치가 충분한 요리들이었다.
‘진짜 맛있네.’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음식 중에 이 정도로 맛있었던 건 두셋 정도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 맛있었다.
"요리사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오스윈 프리든이 기분 좋게 웃었다.
"본가의 요리사를 모셔왔습니다. 다른 가문에서도 굉장히 탐내는, 그쪽 바닥에서는 아주 유명하신 분이죠.”
식사 시간은 시종일관 좋았다.
오스윈 프리든과 간간이 얘기를 나누면서 요리를 즐겼는데, 생각보다 대화도 즐거웠다.
식사가 끝나자, 오스윈 프리든은 반태수를 데리고 응접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가문의 어르신들인 모양이었다.
반태수의 눈이 살짝 빛났다.
응접실에 앉아 있던 사람은 세 명이었는데, 다들 대단한 능력자였다.
게다가 전부 정보를 차단하는 마도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오스윈 프리든이 갖고 있던 것과 동일한 마도구였기에 반태수의 영역화에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긴 했지만.
프리든 가의 어르신이라는 자들은 전부 5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또한 보유한 마력량은 지금까지 반태수가 만난 그 어떤 능력자보다 많았다.
마력량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온몸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마력이 언제든 쭉쭉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길이 잘 닦여 있었다.
오스윈 프리든이 양 측을 소개하기도 전에 프리든 가의 어르신 중 하나, 웬델 프리든이 입을 열었다.
“웬델 프리든일세. 오스윈이 관심을 둔 마법사가 있다고 해서 진행하던 모든 일을 정지시키고 왔지.”
반태수는 담담히 인사했다.
"반입니다.”
그러자 웬델 프리든의 양 옆에 앉은 두 사내가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리스울드 프리든.”
"아들러 프리든일세.”
반태수는 두 사람에게도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일단 앉지. 너도 앉아라.”
웬델 프리든의 말에 반태수와 오스윈 프리든이 세 어르신을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스울드 프리든과 아들러 프리든은 그 뒤로 입을 꾹 다문 채 반태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살폈다. 대화는 웬델 프리든 혼자서 해도 충분했다.
원델 프리든의 몸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마력을 몸속에서 강제로 충돌시킨 것이다.
충돌로 인해 만들어진 기파가 사방을 쫙 휩쓸고 지나갔다. 도도한 강물처럼 끊임없이 쏟아지는 기파는 주변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그건 반태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몸에 두르고 있는 마력이 한 차례 미세하게 진동했다.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겉에 두른 마력은 반태수가 대외적으로 내보이는 자신의 모습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허어, 이 친구 보게?”
웬델 프리든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방금 그가 한 것은 타겟의 마력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수법이었다.
마력 충돌을 이용해 마력에 반응하는 파장을 만들어 상대의 마력을 흔들어 빈틈을 만들고 그걸 파고들어 정보를 뽑아내는 방식이었다.
이 수법은 웬델 프리든이 직접 개발했다. 또한, 오랜 세월 갈고 닦고 개량했다.
그래서 자신보다 경지가 높은 능력자에게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수법이 되었다.
웬델 프리든은 반태수의 마력을 흔드는 데까지 성공했다. 한데 그 이후는 전혀 진행하지 못했다.
흔들었는데도 빈틈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자네 정말로 마법사인가?”
웬델 프리든의 물음에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닌 것 같습니까?”
진짜 아닌 것 같아서 물어본 거였다. 물론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다. 이미 조사까지 다 마쳤으니까.
그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력을 흔들었는데도 빈틈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건 마력에 대한 지배력이 엄청나게 높다는 뜻이다.
능력자로 위장하기 위해 몸에 두른 마력에 그 정도 지배력을 할당한다고?
그 어떤 마법사도 그런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다.
아무튼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는 건 방금 확인했다. 마력을 흔들었는데도 빈틈이 없지 않았나.
저 정도면 웬만한 수단으로는 저놈의 마력 정보를 읽는 건 거의 불가능하리라.
대체 왜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하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웬델 프리든은 대신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 이 자리를 최대한 오래 끌고 가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양 옆에 앉아있는 그리스울드와 아들러가 저 마법사를 충분히 관찰할 수 있는 시간만 벌어주면 된다.
사람 보는 눈은 자신보다 나머지 두 사람이 훨씬 뛰어나니까.
"솔직히 말하지. 오스윈은 우리 가문에서 정말 기대하고 있는 아이일세. 그래서 가문의 눈과 귀가 집중되어 있고.”
반태수는 그 의미를 바로 파악했다.
“제 뒤를 살펴보신 모양이군요.”
"조사를 좀 했네.”
그 말에 오스윈 프리든이 굉장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뭐라고 불평을 토해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걸 막을 힘과 명분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스윈 프리든은 믿고 있었다. 반태수의 뒤를 아무리 캐봐야 자신에게 해가 될 만한 그 어떤 것도 나오지 않을 거라고.
오늘 반태수를 다시 만나면서 안 보던 사이 옅어졌던 호감이 다시 진해졌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하다고.
"그래서 뭐 좀 나오셨습니까?”
반태수의 표정은 오히려 흥미진진했다. 과연 프리든 가 정도 되는 대단한 가문이 나서서 뒷조사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말이다.
웬델 프리든이 물었다.
"자네 대체 정체가 뭔가?”
반태수의 눈에 깃든 호기심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알아낸 게 뭔지 듣고 싶었다.
"아무리 조사해도 알아낸 게 전혀 없네. 다른 도시 출신이라는 말은 할 생각도 말게. 우리 본가는 이 도시에 있지 않아. 여기서 제법 먼 칼체스터에 있지.”
칼체스터라는 말에 반태수의 눈이 또 한 차례 반짝였다.
‘칼체스터면 그 창고에 있는 포탈이랑 연결된 도시인데?’
이렇게 되면 일이 참 재미있어지지 않는가. 칼체스터에 한 번 방문해 봐야겠다.
"어디까지 알아보셨습니까?”
웬델 프리든은 반태수의 그 말에 뭔가 있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금 자네와 함께 일하는 엄대협이라는 브로커의 미끼로 활동한 것이 마지막일세. 그 이전의 일은 도저히 알아내지 못하겠더군.”
"그냥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았습니다. 마법만 공부하면서.”
아무리 그래도 흔적은 남기 마련이지만, 웬델 프리든은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치지. 그렇게 숨어서 살 성격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렇게 화제 하나를 치워버리고 다음 얘기를 꺼냈다.
"최근 듀마이어 공방에서 만든 방패, 자네가 어디까지 했나? 솔직히 듀마이어 공방의 실력으로 절대 나올 수 없는 수준의 마도구라서 좀 놀랐네.”
“95%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95? 그 정도면 방패 외형 말고는 전부 자네가 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비율인데?”
“정답입니다.”
웬델 프리든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오스윈이 눈 여겨 본 인재답군.”
그렇게 말하고 분위기를 확 바꾼 웬델 프리든이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데 요즘 거기 날파리가 끼어들었는데, 알고 있나?”
“그렇습니까?”
반태수가 워낙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하자, 웬델 프리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흠, 아직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군. 최근 여기 크랙톤 시 정부에서 듀마이어 방패를 군대에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네.”
그 말에 반태수보다 오스윈 프리든이 먼저 반응했다.
"오! 잘 됐군요. 가격 협상이 문제지만, 안정적인 판매처를 얻은 셈이니까요.”
"그렇지. 한데 여기에 문제가 살짝 있네.”
그 말에 오스윈 프리든이 의아한 표정으로 웬델 프리든을 바라봤다.
문제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보아하니 방패를 보급하기로 한 건 결정된 거나 다름없고, 계약만 잘 하면 될 텐데 말이다.
웬델 프리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경쟁 업체가 끼어들었으니 문제지.”
"듀마이어 방패는 여기 있는 반 마법사님이 직접 개발한 마도구인데, 경쟁 업체가 있을 리가…… 아, 다른 방패 마도구와 비교 중인 겁니까?"
"그럴 리가. 내가 확인한 바로도 듀마이어 방패는 상당한 물건이었는데. 정말 감탄했지.”
"하면……."
아까 날파리가 끼어들었다고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술식을 카피한 놈들이 있는 거로군요.”
"그래. 똑같은 방패를 만들어 냈더구나. 가격을 후려칠 준비도 되어있고.”
오스윈 프리든이 어금니를 꽉 물었다. 정작 반태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인데, 오히려 오스윈 프리든이 더 분노했다.
"어떤 놈들입니까?”
“샤인 공방. 혹시 아느냐?”
웬델 프리든이 오스윈 프리든을 바라보며 떠보듯 물었다.
"지하 공방! 이 어설픈 것들이 감히……!”
오스윈 프리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분노하자, 웬델 프리든이 묘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자신이 알기로 오스윈 프리든과 마법사 반은 이번이 고작 두 번째 만남이다.
한데 왜 저렇게 깊이 분노한단 말인가. 자신의 일도 아닌데.
그때 반태수가 나섰다.
“전 괜찮으니 진정 하시지요.”
오스윈 프리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놈들은 제대로 당해봐야 정신을 차립니다.”
반태수는 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오스윈 프리든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오스윈 프리든은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 때문에 하려던 말을 안으로 삼켰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고, 반태수가 그 침묵을 깼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도 나름대로 준비를 해뒀습니다. 아마 괜찮을 겁니다.”
반태수가 무슨 준비를 했는지 궁금했지만, 그걸 바로 물어볼 수는 없었다.
이번엔 웬델 프리든이 눈을 반짝이며 나섰다.
"조만간 적법한 절차에 따라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들었는데, 나도 한 번 거기 참관할까 생각중이네."
웬델 프리든은 반태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내 도움이 필요치 않은가?”
반태수가 담담히 말했다. 마치 이런 별 거 아닌 일에 왜 이리도 신경을 쓰느냐는 듯.
"네. 괜찮습니다.”
"테스트 과정이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알고 있나?”
"상관없습니다.”
웬델 프리든의 호기심이 더욱 짙어졌다. 불공정한 테스트임에도 괜찮다고? 대체 무슨 수를 감춰뒀기에 저럴 수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그 뒤로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눴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반태수와 오스윈 프리든은 응접실에서 일어났다.
인사를 하고 응접실에서 나가는 반태수의 뒷모습을 웬델 프리든이 유심히 바라봤다.
이내 반태수의 기척이 사라지자, 웬델 프리든이 양 옆에 앉아 있던 두 사람에게 물었다.
“어땠나?”
"좀 이상했네.”
"이상하다고?”
"겉에 두른 마력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네.”
"자네가?”
"그래. 별의 별 방법을 다 썼는데도 안 되더군. 방어 쪽으로 특화된 유물을 가진 걸로 보이는데…… 확실하지는 않아.”
"유물 때문에 능력자처럼 마력을 몸에 두르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
거기까지가 그리스울드 프리든과의 대화였다. 그 이후에 아들러 프리든이 끼어들었다.
"난 다른 점이 좀 염려스럽더군."
두 사람이 아들러 프리든을 바라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오스윈이 반이라는 마법사한테 너무 집착해. 정작 반은 적절히 거리를 두고 있는데.”
"확실히……."
"고작 두 번째 만남일세. 그러니 반이라는 자의 반응이 정상이야. 오스윈의 반응이 비정상이고."
"혹시…… 정신계 마법을 쓴 흔적은 없나?”
"일단 내가 보기엔 없네. 하지만 모르지. 내가 모르는 은밀한 방법이 있는지도.”
웬델 프리든이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고 보니 유물까지 하나 내주기로 했다던데.”
지금까지 오스윈 프리든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었다.
유적을 정리하면서 마수 사체와 유물을 넘겨준 것도, 오늘 보여준 말과 행동도.
"아무래도…… 반이라는 마법사를 좀 더 세심히 관찰해야 할 것 같군.”
"동의하네.”
“나도.”
그들은 반태수를 살펴보는 데 가문의 힘을 이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마 뭔가 이상한점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세 사람은 하나같이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오스윈은 5대 가문이 선택한 프리든 가의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