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돌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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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듀마이어 공방 근처 골목에 나타났다.
이면세계에 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스마트폰의 전원을 켜는 것이다.
전원이 들어오자마자 무수한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전부 엄대협이 보낸 문자들이었다.
부재중 전화도 몇 개 있었다. 전부 엄대협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스윈 프리든?”
유적 발굴 후, 번호를 교환하긴 했는데, 정말로 연락을 할 줄은 몰랐다.
확인해 보니 벌써 닷새 전이었다.
“이걸 어째야 하지? 연락을 해봐야 하나?”
반태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다시 전화를 걸기에는 너무 오래 되기도 했고, 그 이후에 다시 연락하지 않은 걸 보면 급한 일도 아닌 모양이니까.
메시지를 대충 훑어본 반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대협답지 않게 문자가 너무 공손했다.
보름이나 연락이 안 닿았으면 짜증을 넘어서 화를 내다가 다시 순응하고 애원하는 과정을 밟아야 하지 않나. 한데 공손하게 연락을 부탁드린다는 문자가 대부분이었다.
그 중 하나 내용이 다른 것이 있는데, 난리 났다는 한 마디였다.
"방식을 바꿨나?”
이 정도면 호기심 때문이라도 연락을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아, 그 전에.”
반태수는 빠르게 마법을 펼쳤다. 얼굴이 달라졌고, 목소리가 변형되었다.
이제 지구인 반태수에서 이면세계의 마법사 반이 되었다.
모습을 바꾸자마자 엄대협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 이게 누구야. 우리 천재 마법사님 아니신가. 집에는 잘 다녀왔어?
반태수는 전화기를 귀에서 뗐다. 그리고 현재 통화중인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엄대협.
다시 전화를 귀에 댔다.
- 왜 대답이 없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그런 거 아니다. 잘 다녀왔어. 처리할 일도 다 처리했고.”
- 오, 그럼 당분간은 집에 안 가도 되는 건가?
"그건 모르지. 아무튼 이거 뭐야? 문자, 난리 났다며.”
- 난리 났지. 난리 났어. 아주 끝내주는 난리가 났어.
반태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엄대협이 더 신 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방패 주문이 미친 듯이 들어오고 있어. 떼돈을 벌고 있다고!
"그래? 잘됐네.”
반태수의 심드렁한 반응에 오히려 엄대협이 더 난리를 쳤다.
- 고작 그게 다야? 이건 만세를 불러야 할 일이라고! 방패 하나에 가격이 얼마인줄 알아? 무려 15억 겔이야! 그런데도 주문이 쌓이고 있다고!
15억 겔이면 확실히 비싸긴 하다. 아무리 마도구라고 해도 그 정도 가격에 파는데 주문이 밀릴 정도로 잘 팔린다니, 듀마이어 공방의 영업력이 제법 괜찮은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뭐, 별다른 일은 없지?”
반태수의 반응이 너무 미적지근해서 흥이 싹 식어버린 엄대협이 한 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 일이 있을 리 없지. 그냥 방패 만들어 팔고 돈을 얼마나 버는지 확인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반태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공방에만 붙어 있었다는 말 아닌가.
이런 식이면 브로커 실격이다. 보름이나 시간이 지났는데 의뢰 리스트라도 만들어 뒀어야지.
"그럼 내가 할 일은 이제 없다는 뜻이네?”
반태수의 목소리가 싸늘해서였을까. 엄대협이 즉시 반응했다.
- 에이, 그건 아니지. 내가 의뢰 리스트 좀 뽑아봤거든?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날아간 것도 있고 해서 정리를 다시 해서 보내줄게.
그제야 반태수의 표정이 풀렸다. 그럼 그렇지.
"그럼 리스트 보내. 그리고 너 어디야? 공방?”
- 일단 공방이지. 아, 참. 얼마 전에 그 오스윈 프리든 마법사님한테 연락이 왔어. 너랑 연락 안 된다고 연락 좀 해달라던데?"
“그래?”
고작 한 번 전화해 놓고 연락이 안 된다고 말하다니 좀 그렇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올바른 선택이긴 했다.
어차피 반태수에게는 아무리 연락을 했어도 소용이 없었을 테니까.
- 당분간 연락 안 될 거라고 얘기는 해뒀거든. 나중에라도 연락 닿으면 전해 달라고 했어. 그러니 바로 연락해. 그 사람 내가 좀 더 알아봤는데, 보통이 아니더라.
“알았어. 내가 바로 연락해 볼게.”
보통이 아니라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스윈 프리든이 자신에게 해준 게 있으니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 아무튼 연락해 보고, 기대해. 네 지분이 64%잖아. 돈벼락을 맞게 될 거야.
"알았다. 끊어."
반태수는 더 관심을 두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호기심 때문에 받은 의뢰였다. 그리고 호기심은 충분히 채웠다.
다음에 또 이와 비슷한 일을 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듀마이어 공방과 다시 일을 할지 말지는 이번 방패 판매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금 지급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확인한 후에 결정할 것이다.
반태수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오스윈 프리든에게 연락했다.
- 반 마법사님!
"오랜만입니다.”
오스윈 프리든은 거의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받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반가운 기색이 가득했다.
- 연락이 안 돼서 걱정을 좀 했습니다.
"아, 제가 가끔 마법 연구에 집중할 때, 연락을 차단해 놓습니다.”
- 아아, 그렇군요. 저도 가끔 마법에 집중할 때 연락이 방해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연락이고 뭐고 다 끊어버리고 싶습니다.
오스윈 프리든의 말투에는 부러움이 잔뜩 끼어 있었다.
"절 찾으셨다고요.”
- 네. 혹시 예전에 제가 초대하고 싶다고 했던 말 기억나십니까?
"물론입니다.”
- 반 마법사님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나흘 후,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어차피 일정도 없다. 아직 받은 의뢰도 없으니까.
- 바로 초대장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럼 나흘 후에 뵙죠.
오스윈 프리든과 대충 마무리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곧장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그가 말했던 초대장이었다.
그냥 문자가 아니라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마력이 깃든 문자였다.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는 거였어?’
설마 마력이 담긴 문자까지 보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문자 자체에 마력 패턴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그것이 초대장을 확인하는 코드이리라.
"재밌네.”
의뢰를 고르는 동안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반태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골목에서 나가자마자 듀마이어 공방이 보였다.
공방 앞이 북적북적했다. 들락거리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예전에 여기 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반태수는 신기한 눈으로 그 광경을 보며 듀마이어 공방으로 향했다.
***
"어서 오십시오.”
듀마이어 공방의 대표인 장명기가 반태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현재 듀마이어 공방은 모든 직원이 방패를 생산하기 위해 매달리고 있었다.
장명기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반태수가 왔는데 방패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엄대협은 어디 갔습니까?”
“의뢰를 확인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리스트를 다시 작성하려면 재방문을 통해 상황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확실하긴 하다. 어설픈 의뢰를 받느니 그렇게 세심히 확인한 다음 결정하는 게 낫다.
"방패에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반태수가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완벽하게 완성했다고 해도 실제로 판매해 실전에 적용하면 무슨 문제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다 제각각이고, 가끔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 짓을 하는 사람도 종종 있는 법이다.
그런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할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 생각지도 못할 문제가 방패와 관계 되어 있다면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다만 요즘 이 근방에 수상한 자들이 넘쳐납니다.”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기술을 빼돌리려는 놈들이겠군요.”
"맞습니다.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하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하긴 합니다.”
반태수가 장명기에게 물었다.
"제가 말한 대로 마지막 공정은 대표님이 직접 하시는 거죠?”
장명기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합니다. 한데 솔직히 말하면 그 공정이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걸 하든 안 하든 성능에는 차이가 없잖습니까."
"그게 진짜 안전장치입니다.”
"안전장치라고요?”
장명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그게 안전장치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시키니까 했을 뿐이다. 하면서도 계속 의문이 들어 이걸 계속 할지 말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민하곤 했다.
"마지막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술식에 빈틈이 생깁니다.”
"제대로 방패가 작동하는 걸 제가 분명히 확인했습니다만……."
"작동이야 하죠. 하지만 빈틈을 찔리면 마력석이 폭발합니다.”
"예에?”
장명기가 깜짝 놀라다 못해 경악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마력석이 폭발한다니! 그런 일이 벌어지면 듀마이어 공방은 끝장이다.
"그러니 마지막 공정, 절대 잊지 말고 처리해야 합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장명기는 그제야 반태수가 말한 안전장치의 의미를 깨달았다.
마지막 공정은 방패를 거의 혼자서 개발한 반태수를 제외하면 오직 장명기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술식이 모조리 유출되어도 그렇게 빼돌린 술식으로 만든 방패는 빈틈을 가지게 된다.
몇 번 마력석이 폭발하는 사고가 나면, 술식을 빼돌린 공방은 아마 그대로 망해버릴 것이다.
그냥 망하기만 하면 다행이다. 아마 보상 문제 때문에 빚더미에 앉게 되리라.
반태수를 바라보는 장명기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한동안 두려운 시선으로 반태수를 바라보던 장명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면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폭발하는 겁니까?”
"그것까지 아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알아서 잘 처리하는 사람이 있잖습니까.”
장명기의 머릿속에 엄대협의 능글능글한 얼굴이 떠올랐다. 확실히 엄대협이라면 그런 일을 누구보다 잘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각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은 듀마이어 공방 대표인 장명기의 방이었다. 딱 적당한 넓이였는데, 한쪽 구석에 커피머신이 보였다.
반태수가 엄대협에게 말해서 구입한 머신은 아니었다. 그건 이미 엄대협이 가져가 따로 보관 중이었다.
“커피머신이네요?”
장명기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에 주셨던 커피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같은 모델로 구입했는데…… 장식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그때 그 커피는 따로 레시피가 있습니다. 아무나 만들 수 있는 커피가 아니죠. 나중에 시간 나면 한 번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장명기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리고 눈빛에 약간의 간절함이 담겼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잡아두고 매일 커피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때 마신 커피는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로 다른 커피는 아예 입도 못 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감히 반태수에게 고작 커피를 달라는 부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혹시 문제점이 있으면 잘 모아뒀다가 말해주십시오.”
술식 수정이야 이제 일도 아니니까.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듀마이어 공방을 나섰다.
그리고 일단 호텔로 향했다.
이면세계에 집을 마련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
아버 자쳇은 눈앞에 놓인 방패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는 지하 공방을 이끄는 자였다.
"이게 15억 겔이나 한다고?”
그의 물음에 오늘 방패를 구입해서 가져온 플로드가 얼른 대답했다.
"예. 그나마도 물량이 너무 딸려서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도 정말 간신히 구했습니다. 사실 정말 잘 만든 상급 마도구라서 가격은 적당합니다.”
"그래? 보안은?”
"술식 스캐너로 긁어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습니다. 보안도 아주 철저합니다.”
"옛날 거 말고 새로 들어온 걸로도 해봤어?”
"예. 두 가지 모두 써서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보안 회사 어디야?”
"자체 보안이랍니다.”
"뭐? 듀마이어 공방이 그 정도로 대단했나?”
"새로 마법사를 영입했는데, 그 마법사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모양입니다.”
"성능은 어때? 테스트는 해봤나?”
"예. 아주 끝내줍니다. 시 정부에서 눈독을 들일 만합니다.”
"군대에 보급하려는 건가?”
"예. 크기도 적당해서 한 손으로 들고 다니기 좋지 않습니까.”
아버 자쳇은 마력을 뽑아내 방패를 훑어봤다. 뭔가에 막힌 듯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거, 술식. 어떻게든 알아내. 할 수 있지?”
"이미 작업 중입니다. 돈 싫어하는 놈 없잖습니까.”
"좋아. 기대하겠어. 기한은 시 정부가 나서기 전까지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플로드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맺혔다.
"물론입니다. 시 정부는 우리와 계약을 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