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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54화 (54/351)

54화.  < 그때 그 놈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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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사내가 둥근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아 있었다.

표정은 다들 심각했으며, 분위기는 바위로 짓누르는 것처럼 무거웠다.

"이러다가 꼬리 자르기에 당하는 거 아니겠지?”

"당하지 말아야지.”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나? 위에서 자르겠다고 마음먹으면 잘리는 거지.”

"그러니까 대비를 해둬야지.”

"아무튼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해. 여기 습격하다 당한 애들 때문에.”

"미국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던데, 맞아?”

"가닥이 잡혔다기보다는 의심 수준이지.”

그 말을 들은 옆자리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놈들이 있는 게 분명하니까 사력을 다해서 알아보는 모양이야."

"그래서 성과는 좀 있고?”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능력자 위주로 파보고 있긴 한데…… 알려진 능력자 중에서는 없는 거 같아.”

"하긴, 비밀리에 키운 능력자들도 상당히 많으니까. 자기가 능력자인 거 감추고 사는 놈들도 제법 있고.”

"아무튼 조만간 여기저기 들쑤실 거 같은데, 솔직히 난 그렇게 하면 오히려 진짜 일 벌인 놈들은 꽁꽁 숨어버릴 거 같거든.”

"후우. 아무튼 시끄러워지겠네.”

"차라리 그놈들이 다시 여기 습격하고 우리가 싹 잡아 죽이면서 끝나는 게 베스트지. 그렇게 안 되겠지만.”

"아, 맞다. 위자드넷에 올라온 거, 미국에서 포션 개발한 얘기. 그거 대체 뭐야? 진짜야?”

그 말에 다섯 사내 중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자가 피식 웃었다.

"진짜겠어? 일단 여기서는 재료를 못 구해. 이면세계에만 있는 재료들이 필요한데, 그게 가능하겠어?”

"재료를 이면세계에서 가져오면 되지.”

"이면세계도 큰 세상이야. 그쪽에서 구한 재료는 그쪽 제약회사가 싹 흡수하는데 이쪽으로 그걸 돌린다고?”

"우리 능력자들이 재료 채취에 나서면 되잖아.”

"이미 하고 있어. 그렇게 수급한 걸로 연구 중이라서 그렇지. 그리고 진짜 생산에 들어가면 그 정도 수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이쪽에서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아야 한다고.”

“복잡하네.”

"복잡할 뿐 아니라 어렵지. 그래서 아직도 지지부진한 거고.”

"이면세계에 갈 수 있게 된 지가 벌써 언제인데 아직 포션 조차 못 만든다는 게 말이 돼?”

이면세계의 다양한 신비 중에서, 능력자와 관계된 조직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바로 포션이었다.

이면세계의 포션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외상을 빠르게 아물게 하고, 체력과 정력을 선사한다.

심지어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능력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면세계의 포션을 구한다.

의뢰를 통해 얻기도 하며, 구입하기도 한다.

사실 돈을 주고 사는 것이 가장 편하고 빠르고 간단하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포션을 무한정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면세계의 포션은 상당부분이 능력자와 관계된 조직으로 흘러간다.

그 나머지가 시중에 유통되는데, 당연히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은 어렵다.

포션을 대량 구매하는 것은 이면세계에서 위법 사항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면세계로부터 오는 포션 중 상당량이 연구 샘플로 쓰인다.

나머지는 능력자들을 손에 쥐고 흔드는 상위 계층들이 독점한다.

그러니 포션 제작에 성공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는가.

"이런 소문도 있어. 사실 포션 개발은 진작 끝났는데, 일부러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굳이, 왜?”

"그거야 나도 모르지. 자기들만 쓰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걸로 뭔가를 통제하려고 하는지.”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섯 사내는 각자 생각에 잠긴 채 묵묵히 커피만 마셨다.

침묵을 깬 것은 가운을 입은 사내였다.

"아무튼 이번에 여기서 벌어진 일 때문에 위에서 진행하던 한국 능력자 통합에 제동이 걸렸어. 어떤 놈들인지 확인하기 전에는 진행을 멈출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여기에 함정을 유지할 수도 없잖아. 이러다 위에서 여기 전력을 빼기라도 하면 우린 어쩌라고.”

“못 빼게 해야지.”

다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해내야 한다. 죽지 않으려면.

솔직히 처음 여기 벌어진 광경을 봤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 투입한 전력으로도 불안하다.

그러니 계속 증원을 요청하는 것이고.

"좀 더 모험을 해야 돼.”

"모험?"

가운을 입은 사내가 대답 대신 포탈을 바라봤다.

"능력자들을 더 굴리자고? 위험하게?”

"그리고 연구 성과도 필요해.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그 말에 다들 표정이 굳었다.

"아직 안전성 검증이 덜 됐어.”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해. 아직 일 벌어진 사람 한 명도 없잖아. 이게 빨리 진행되어야 우리 목소리를 키울 수 있어."

"그건 그렇지만……."

"지구에서 능력을 자유자재로 쓰려면 마력의 절대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어. 그게 돼야 우리가 더 안전해지고.”

다들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다는 거야 알지. 다만…… 좀 그렇잖아.”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때야?”

"알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고.”

그 뒤로도 대화가 계속 이어졌지만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거나 신변잡기였다.

반태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뒤로 물러났다.

여기서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냈다.

굳이 여길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여긴 이대로 방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리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여길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반태수는 천장으로 올라가 그곳에 미리 준비한 마도구를 부착했다.

영역화와 마킹을 혼합한 마법이 부여된 마도구였다. 거기에 왜곡까지 걸려 있었다.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들킬 염려는 없었다. 누군가 굳이 천장까지 올라와 샅샅이 손바닥으로 훑고 다니지 않는 한.

다른 창고에까지 이걸 설치할 필요는 없었다. 보아하니 여기 있는 자들이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가장 큰 실권을 쥐고 있으며, 가장 구린 놈들이었다.

반태수는 거기까지 하고 조용히 물러갔다.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고스란히 반태수의 연구 개발실에 있는 컴퓨터에 저장될 것이다.

이걸 개발하기 위해 꼬박 이틀 동안 모든 두뇌를 풀가동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반태수는 왜곡을 유지한 채, 빠르게 도로를 따라 걸었다. 번화가가 나올 때까지.

***

집으로 돌아온 반태수는 침대에 털썩 누웠다.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바쁘게 다녔더니 좀 쉬고 싶었다.

아까 팀 대영의 포탈 쪽도 확인하고 왔다.

다들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지금까지 그곳에 갇혀 있다시피 한 모양인데, 슬슬 한계였다.

그리고 분위기를 보니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는 듯했다.

비단 팀 대영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다른 기업 소속의 능력자 팀들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할 듯했다.

그렇다면 그놈들도 슬슬 다시 움직일 것이다.

‘한국 능력자들을 통합한다고 했지?’

어쩌면 그들의 뒤에 한국의 실질적 지배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능력자 세력이 난립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그걸 다 하나로 통합할 생각을 하다니.

‘내가 보기엔 불가능한 목표 같은데.’

아마 성공하더라도 피해가 극심할 것이다. 그 뒤의 운영도 만만치 않을 테고.

‘벽을 넘어서 다행이야.’

이번에 그놈들의 포탈 위에 설치한 감시 마도구는 공간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다면 만들기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두 마도구를 이어 그쪽의 정보를 이쪽으로 이동시켜야 하는데, 공간에 대한 마력의 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술식을 구성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반태수의 컴퓨터에 그곳의 정보가 기록되는 중이었다.

그리고 반태수가 원한다면 그 기록을 직접 받을 수 있었다. 굳이 컴퓨터를 다룰 필요도 없이 말이다.

반태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서 그곳의 정보를 확인했다.

대부분 쓸데없는 얘기들이었다. 그러다가 기억할 만한 정보 하나가 들어왔다.

그곳 포탈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도시의 이름이었다.

칼체스터.

어디쯤 있는 건지, 또 크랙톤과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 도시인지는 모른다.

'이면세계에 가면 알아봐야지.’

어쩌면 칼체스터라는 도시에 가서 지구의 능력자들과 접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쪽에서 역으로 그쪽을 공략할 좋은 방법 아닌가.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관계를 잘 엮어서 양질의 정보를 뽑아내거나, 그들의 움직임을 이쪽에서 조장할 수도 있다.

어느새 조용해졌다.

반태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

반태수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면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처음처럼 끓어오르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면세계도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반태수에게는 이곳의 생활이 더 중요했다.

반태수는 시간을 낸 김에 학교에 제출할 레포트를 작성했다.

이미 마지막 학기의 모든 수업을 레포트로 대체하기로 했기에 졸업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레포트만 작성한다면 말이다.

사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볼까도 생각했는데, 일단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업을 시작하면 거기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긴다. 그러니 사업은 지금 운영하는 카페 위자드를 더 이용하기로 했다.

이서영에게 본점을 맡기고, 분점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자 했다.

어차피 카페 위자드는 독보적인 커피 맛이 가장 큰 무기다. 인테리어를 비롯한 다른 요소들은 그저 살짝 거들 뿐이다.

일단 이서영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해뒀으니 그녀가 원한다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밀어주면 된다.

그리고 그러려면 미리 그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고.

반태수는 분점을 연이어 냈을 때 필요할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당장 분점을 열어도 문제없을 정도의 준비가 끝났다. 분점을 낼 매장 위치도 조사를 마쳤다.

여기까지면 됐다. 나머지는 나중에 이면세계에 한 번 다녀와서 한서현의 의견을 듣고 진행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분점을 하나씩 늘려가면서 사업의 규모를 야금야금 키워가기로 했다.

지구에서는 일단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게 사업 확장 준비도 하고 레포트도 쓰고, 마법 연구도 진행하면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보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갇혀 지내다시피 했던 능력자들도 이제 슬슬 활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카페 위자드의 손님 중 능력자의 비율이 대폭 올라갔다.

반태수는 그에 맞춰서 카페 위자드에 부여한 마법의 술식을 수정했다.

벽 한 번 넘었다고 술식에 대한 이해도나 응용력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래서 그동안 엄두도 못 내던 것들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술식에 조건을 정해서 두 가지 효능을 일으키게 한다거나.

이번 술식 수정은 대부분 그걸 적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의 술식으로는 능력자들에게 잘 안 통할 수 있어서 그 부분을 보강했다.

능력자에게는 마법이 좀 더 강하게 들어가도록 수정한 것이다.

예전이라면 능력자라고 해도 마력이 너무 낮아서 그걸 구분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한데 벽을 넘어서면서 그걸 술식에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아마 앞으로는 능력자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걸 마무리한 반태수는 마지막으로 카페 위자드로 향했다.

이제 반태수 대신 이곳 사장이 된 이서영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서영이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어? 사장님!”

"아니지. 이제 사장님은 너야.”

“아, 그렇지. 아직 실감이 안 나서 그런지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그래도 익숙해져야지.”

"네. 잘 하겠습니다!”

이서영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나 당분간 들르기 힘들 것 같아서 인사하러 온 거야.”

이서영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디 가세요?”

“응. 좀 다녀올 데가 있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

“아…… 그래서 저한테 이렇게……."

"아니, 그건 아니야. 이건 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거야. 다 계획 안에 있던 일이라고. 그러니 오해하지 말고, 잘 부탁해.”

이서영이 알통을 자랑하듯 팔을 불끈 들고 대답했다.

"맡겨주세요. 여긴 제가 알아서 잘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 나야 믿고 있으니까. 걱정도 안 되네. 하하.”

이서영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눈웃음을 쳤다.

"그럼 이만 갈 테니까. 나중에 봐. 다른 애들한테는 서영이가 알아서 얘기해주고.”

"네. 다녀오세요.”

반태수는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는 카페를 나섰다.

이제 이면세계로 들어갈 시간이다.

이번에는 좀 오랫동안 머물다 올 예정이었다. 무슨 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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