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 변종 갑각 트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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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 트롤을 보관하는 창고는 의외로 도심지에 있었다.
솔직히 반태수가 생각하는 창고는 예전에 제약 회사들의 일로 찾아갔던 약재 보관창고 같은 곳이었다.
당연히 변두리에 있을 줄 알았고, 그래서 경비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한데 막상 와보니 번듯한 빌딩 안에 창고가 있었고, 전문 경비 업체가 경비를 서고 있었다.
다들 적당한 능력자였고, 괜찮은 장비를 갖췄다.
보니까 건물 자체가 보관에 특화된 곳이었다.
다양한 높이의 층이 존재하고, 각 층마다 다른 규모의 창고가 준비되어 있었다.
창고 건물의 보안은 경비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건물 전체에 보안 마법이 촘촘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내부 파악을 못하게 막는 보안 마법과 정해진 경로로 진입하지 않는 침입자들을 막아내는 보안 마법이 조화롭게 엮여 있었다.
반태수는 건물 앞에 서서 위를 올려다봤다.
30층이나 되는 고층 건물이었다. 이 큰 건물이 통째로 창고라니.
"어떻게 오셨습니까?”
건물 입구 근처에 가만히 있으니 건물 경비 중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보관 중인 물건 상태 좀 확인하려고요.”
반태수의 말에 경비가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아, 고객님이셨군요. 절차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경비는 반태수를 건물로 데리고 들어갔다.
1층은 로비였는데, 양쪽 끝에 데스크가 마련되어 있었다.
여러 명의 직원이 데스크에 자리해 고객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경비는 그 중 한 곳으로 반태수를 데려갔다.
데스크의 직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반태수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물건 확인을 원하신다고요.”
"예.”
"일단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여기에 신분증을 대 주십시오.”
직원이 납작한 판 하나를 내밀었다. 마도구였다. 굳이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느낌은 신분증 확인을 위한 마도구와 비슷했다.
반태수는 신분증을 그 위에 얹었다.
"확인되었습니다, 고객님. 7층 6번 창고를 이용 중이시네요. 오른 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가시면 대기 중인 직원이 모실 겁니다.”
직원은 그렇게 말하며 금속으로 만든 카드 하나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이 건물 안에서만 쓰는 일종의 방문 확인증인 모양이었다.
"나가실 때 반납하시면 됩니다. 혹시 몰라 이용 설명서를 준비했습니다.”
반태수는 금속 카드와 종이를 받은 다음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종이를 대충 읽어보니 이 건물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각 층마다 다른 크기의 창고를 대여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공개하지 않은 층 어딘가에 비밀 금고도 운영하는 보관 전문 업체였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좀 해보니 사설 금고 쪽으로는 상당히 유명한 업체인 모양이었다.
나중에도 뭔가 맡길 일이 있으면 여길 이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럽게 비싸네.’
다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현재 반태수의 수입으로는 여길 자주 이용하는 건 어림도 없었다.
그저 지금 쓰는 창고 하나 유지하는 정도가 한계였다.
물론 현재 구상하는 사업들이 궤도에 오르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도착해 내리니, 직원 한 명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또 고객님 소리를 들으며 6번 창고에 도착했다.
문의 간격을 보니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큰 창고는 아닌 모양이었다. 높이는 일반적인 건물의 층과 비슷했다.
"이곳입니다. 카드를 저기 대시면 문이 열립니다.”
반태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철컥.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직원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반태수는 직원이 물러가는 기척을 느끼며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밀었다.
창고 내부가 시야에 확 들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갑각 트롤 사체가 놓여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몸에 깃들었던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더 늦었으면 손상이 갈 뻔했다.
반태수는 서둘러 조치를 취했다.
부패 방지를 위해 일단 청결 마법으로 창고 내부를 한 차례 싹 쓸었다.
그냥 단순한 청결 마법이 아니라, 세균이나 곰팡이를 근원적으로 제거해 버리는 마법이었다.
‘그나저나, 여기에 마법을 부여해도 되나?’
보아하니 창고에 기본적으로 쾌적함을 유지하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천장에 마력석이 보였고, 그곳을 중심으로 마법 술식이 새겨져 있었다.
마법 자체는 제법 정교했다. 정확히 이 창고 내부만으로 범위를 한정했으니까.
하지만 반태수가 보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그러면……."
물리적 변형이 없는 수준에서 마법을 부여하고, 나중에 창고를 뺄 때, 부여했던 마법을 지우기로 했다.
다만, 물리적 변형이 아예 없이 하려면 마력을 굉장히 세심히 유지하고 마력의 강도를 연약하게 조절해야 하기에, 부여한 마법이 영구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카페 위자드에 마법을 부여한 부분에 반짝이는 마법진 문양이 홀로그램처럼 나타나는 것 역시 물리적 변형 중 하나였다.
겉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빌렸다가 되돌려 줘야 하는 장소에 그렇게 흔적을 남길 수는 없었다.
반태수는 세심하게 마력을 조절해 각종 마법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보안도 다시 점검했다.
창고의 보안이 제법 괜찮은 것 같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미리 대비했다.
이제 이 방에는 설사 카드 키가 있다고 해도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반태수는 마법적 조치를 모두 취한 뒤, 느긋하게 갑각 트롤의 사체를 살펴봤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루는 여기에 투자하기로 했다.
***
오스윈 프리든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그를 반기듯 집안이 환해졌다.
오늘은 제법 긴 하루였다. 지난 번 발굴한 지하 유적에 대한 처리가 아직도 덜 끝났다.
발굴한 유물의 양이 상당했기에 할 일이 많았다.
더구나 거기서 잡은 마수가 변종이었기에 그걸 처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일이 복잡해진 건 그 마수 사체 중 하나를 반태수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반태수에게 넘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5대 가문으로 귀속된 유물 중 하나를 반태수에게 주기로 했다.
그 뒤처리가 좀 복잡했다.
사실 이런 일은 오스윈 프리든도 처음이었기에 뒤처리가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이 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다.
오스윈 프리든은 대충 씻은 후,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맥주 한 캔을 따서 소파에 앉았다.
단숨에 절반 정로를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크으, 좋다.”
오스윈 프리든은 손에 든 맥주캔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참으로 묘한 마법사란 말이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묘한 호감이 들었다. 호기심도 생겼고.
척 보기에도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 뒤로 계속 관찰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호감이 깊어졌다.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그저 보기만 해도 호감이 생기는 사람.
오스윈 프리든에게는 반태수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한데 막상 복잡한 일을 처리하면서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감정이 좀 식었다.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감정을 정리했다.
‘내가 반이라는 마법사에게 호감을 느낀 이유가 뭘까?’
머릿속에 반태수의 모습을 떠올리며 객관적, 주관적 이유를 하나씩 찾아봤다.
일단 외모가 잘생겼다. 하지만 잘생겼을 뿐이지 호감을 일으키는 외모는 아니었다. 오히려 차가운 인상이었기에 굳이 따지자면 마이너스였다.
잘생긴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외모에 혹할 수도 있다.
잘 생긴 사람은 사실 남녀를 불문하고 호감을 일으키는 법이니까.
하지만 오스윈 프리든은 미남, 미녀를 겪을 기회가 너무 많았다.
이곳의 마력이 자유분방해서 마력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외모도 자유분방한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그건 마력을 완벽히 컨트롤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마법사는 마력을 장악했기에 마력의 영향으로 외모가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력을 계속 수련할수록 외모가 점점 좋아진다.
그건 능력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마법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5대 가문에 속해 있다는 건, 그 정도 능력을 가진 마법사나 능력자를 잔뜩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니 외모에 확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외모를 제외하면 능력인데, 그것 역시 이상하다.
오스윈 프리든은 반태수를 보자마자 호감을 느꼈다.
"한데 그게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란 말이야.”
반태수가 자아내는 분위기나 느낌이 뭔가 익숙했다.
오스윈 프리든은 반태수에게 호감을 느낀 이유가 그 묘한 분위기와 익숙한 느낌 때문일 거라 여겼다.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익숙한 느낌의 정체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오스윈 프리든은 밤이 새도록 머리를 쥐어 싸고 기억의 세계를 더듬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오스윈 프리든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벌렁 누웠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일단 두고 보면서 계속 확인하는 수밖에.”
이 이상한 느낌을 버려선 안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반태수를 초대하기로 한 사실을 떠 올렸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왜 초대 운운 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초대해서 뭘 어쩌자고 했던 걸까?
그리고 이런 곳으로 초대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조만간 가문에 한 번 다녀와야겠어.’
***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창고 건물에서 나온 반태수는 천천히 거리를 거닐었다.
꼬박 12시간을 창고에서 머물렀다.
집중해서 갑각 트롤 사체를 관찰했고, 나름의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좀 더 미시적인 관찰과 연구가 필요했다.
마법을 이용해 미시적 관찰을 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좀 더 정교한 연구를 위해서는 좋은 장비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런 좋은 장비는 지구에 있는 연구 개발실에 잘 갖춰뒀다.
그래서 반태수는 창고에서의 연구 시간이 끝나자마자 샘플을 채취했다.
갑각, 피부, 근육, 뼈, 신경 등, 다양한 부위의 샘플을 충분히 채취했다.
그걸로 지구에서 생체조직 연구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사체를 통해 마력이 흐르는 길에 대해서는 이미 잘 파악해 두었다.
죽으면서 코어가 흩어져 버린 것이 좀 아깝긴 했지만, 흔적에서도 나름의 데이터를 얻었으니 됐다.
이제 그걸 잘 버무릴 차례였다.
‘카페 문제만 마무리 하고 돌아가자.’
생체조직에 대해 연구한다고 생각하니 두근두근했다. 빨리 연구하고 싶어서 한껏 들떴다.
반태수는 엄대협에게 전화를 걸었다.
- 창고에 가봤어?
"그래. 거긴 일단 유지하기로 했다.”
- 돈이 제법 들 텐데.
"그러니까 빨리 사업을 해야지. 카페 자리 알아보라고 한 거 어떻게 됐어?”
- 세 군데 정도 봐 놨으니까 와서 보고 결정만 하면 돼.
"바로 간다.”
- 거기 어디야? 창고 근처야?
"어.”
- 기다려. 데리러 갈 테니까. 그냥 내 차로 움직이는 게 편해. 후보지들 사이 거리가 종 돼서.
“그럼 그렇게 하자.”
***
"여기가 제일 낫네.”
지구에서 카페를 창업해본 경험을 토대로 가장 좋은 자리에 있는 매장을 선택했다.
아무리 커피가 맛있어도 결과를 빨리 보려면 자리가 좋아야 한다.
"그럼 여기로 계약 해?”
엄대협의 물음에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해. 인테리어 업체 선정하면 나한테 알려주고.”
인테리어도 중요하다.
‘그나저나 카페 위자드에서 파는 것과 비슷한 커피가 있으면 지구에서 온 능력자들이 눈치챌 수도 있겠는데?’
그건 좀 문제였다. 지구의 반태수와 이면세계의 반이 동일 인물이라는 건 되도록 알려져선 안 된다.
지구의 능력자들은 아직 여기서 커피 한 잔 마실 여유조차 없어 보이지만, 여기가 유명해지면 얘기가 좀 달라질 것이다.
‘아, 어쩌면 상관없을지도.’
이곳에서 지구의 능력자들은 마력이 100배로 뻥튀기 된다.
그렇다는 얘긴 커피 맛도 그에 걸맞게 훨씬 강렬해진다는 뜻이다.
아마 여기서 한 번 마시고 나면 카페 위자드에서 마시는 커피는 밋밋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무튼 맛 차이가 극심해질 테니 둘 사이를 연관 짓기가 쉽지 않으리라.
물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커피맛과 마력과의 상관관계를 알아낸다면 의심을 할 테니까. 하지만 그걸 지구의 능력자들이 알아낼 확률은 한없이 낮다.
인테리어만 좀 조심해서 카페 위자드와의 연관성이 전혀 못 느껴지도록 하면 아마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패, 오늘부터 판매 시작한대.”
“그래? 기대되네.”
"그쪽에서도 기대하라던데? 아마 제법 돌풍을 일으킬 거라고 예상하더라고.”
"그럼 좋지.”
다른 건 몰라도 방패에 대한 반태수의 지분이 상당히 높기에 잘 팔리면 돈도 제법 벌 것이다.
"그럼 나머지는 알아서 잘 진행해. 난 집에 다녀올 테니까.”
"또?"
엄대협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에 집에 다녀온다고 하고선 거의 일주일 가까이 되어서야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그건 상관없다. 갔다가 아예 연락이 두절되어 버리면 자신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꼴이 된다.
엄대협이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반태수를 바라봤다.
"꼭 돌아올 거지?”
"여기서 벌인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당연하지.”
원하는 답을 들었지만 엄대협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반태수는 여기서 벌이는 모든 일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믿어야지.
지금 벌인 일에 반태수의 돈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마 돌아오지 않으면 그냥 곤란해지는 정도로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반태수는 그런 엄대협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가끔 이렇게 불안하게 해줘야 말을 잘 듣는 법이다.
이내 아까 불렀던 택시가 도착했다.
반태수는 엄대협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다음 택시에 탔다.
엄대협은 멀어져가는 택시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의 눈에서 간절함이 뚝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