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51화 (51/351)

51화.  < 듀마이어 공방 3 >

=======================

방패 제작은 물 흐르듯 술술 진행되었다.

두 번째 테스트를 마친 장명기가 몇 가지 개선점을 더 제안했고, 반태수는 그 자리에서 그 지점들을 수정했다.

두 번의 수정을 거친 방패는 더 이상 흠잡을 곳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그 다음은 공방에서 판매할 방패를 제작하는 일이 이어졌다.

반태수는 마법사도 아닌 장명기나 공방 제작 직원들이 어떻게 마법 술식을 각인하는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마력 각인 장비가 존재했다.

반태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마력 각인 장비를 사용하는 장명기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마력 각인 장비는 마력을 투사해 마력석과 연동하여 주변에 술식을 각인하는 도구였다.

술식 각인 자체가 마력석을 기반으로 하는지라 반드시 마력석이 필요했다.

마력석이 마법사가 쓰는 마력의 실, 그리고 그걸 발동하는 의념의 역할까지 도맡는 방식이었다.

장명기는 숙련된 장인이었다. 그는 빠르게 술식을 각인해 방패를 완성했다.

“어떻습니까?”

장명기가 반태수에게 방패를 내밀며 물었다.

반태수는 방패를 마력으로 쭉 훑은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네요.”

자신이 만든 것과 똑같은 방패였다.

“생각보다 술식이 복잡해서 하나 만드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습니다.”

“다른 직원들의 실력은 어떻습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장명기가 솔직히 대답했다.

"저보다는 훨씬 못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뿐, 술식을 새기는 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불량률이 좀 늘어날 수도 있겠군요.”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다보면 익숙해져서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불량률은 대부분 숙련의 문제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장명기의 표정과 말투는 굉장히 밝았다.

설마 이렇게 빠르게 해결될 줄은 몰랐다.

솔직히 뛰어난 마법사가 오더라도 최소 6개월, 길면 몇 년은 고생할 각오를 했다.

자금을 끌어올 방안도 계속 궁리 중이었고.

한데 그 모든 것이 필요 없어졌다. 이제 생산만 하면 된다.

판매는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 얘기가 끝난 업체들이 있어서 완성품만 있으면 언제든 팔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성능이 너무 끝내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받아낼 수 있을 듯했다.

장명기는 조심스럽게 반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데…… 보안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안이요?”

"술식을 보안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경쟁업체들이 바로 카피를 떠버릴 겁니다. 요즘은 술식 스캐너가 워낙 잘 나와서 보안을 하지 않으면 술식의 바닥까지 뽑아내는 데 하루도 안 걸립니다.”

“술식 스캐너요?”

"예. 마도구의 술식을 뽑아내는 건데, 보안이 약한 것들은 보안까지 싹 뜯어냅니다.”

"대단하네요.”

반태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술식 스캐너라는 건 지금까지 겪은 이곳의 마법 수준을 생각하면 수준이 너무 높았다.

"하하. 스캐너가 대단한 게 아니라 그걸 이용하는 마법사들이 대단한 거죠. 마법사밖에 쓸 수 없는 물건입니다.”

"혹시 여기도 술식 스캐너라는 거 있습니까?”

호기심이 생긴 반태수의 물음에 장명기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반 공방에서 함부로 쓸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물건은 아닙니다. 나름 유물이거든요. 거대 공방이나 지하공방에서나 어쩌다 하나씩 갖고 있죠.”

반태수는 유물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말이 된다.

술식 스캐너라는 건 그 수가 몇 개인가, 혹은 누가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공방에서 만든 물건을 복사해서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주요 술식을 싹 뽑아내 그것만 갖다 팔아도 만든 공방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질 일이다.

실제로 술식 스캐너 때문에 망한 공방이 제법 많았다.

물론 요즘엔 거의 없다. 술식 스캐너에 대비해 보안을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해졌으니까.

“아무튼 보안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보통은 마도구 보안 전문 업체에 맡기면 되는데, 이건 비용 문제가 발생해서 의논이 좀 필요할 거 같습니다.”

반태수에게 보안 문제는 중요치 않았지만,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가만히 듣기만 했다.

"보안 업체는 통상적으로 매출의 일정 비율을 받습니다. 그래서 논의가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반 마법사님께서 이 방패의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게 되실 테니까요.”

장명기는 반태수가 방패를 혼자 만들다시피 하는 것을 보고 상당한 지분을 포기하기로 미리 결정을 내렸다.

"보안 업체가 많습니까?”

장명기가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 세 개를 펐다.

"세 곳뿐입니다. 사실 자잘한 곳들이 여럿 있긴 한데, 그런 곳들은 아직 검증이 제대로 안 된 업체인지라 영업 자체가 거의 어렵다고 보시면 됩 니다.”

"보안 쪽으로 들어오려는 업체가 제법 많은가보네요.”

"돈이 되니까요. 잘 나가는 마도구 몇 개만 잡아도 꾸준히 수익이 발생하니 들어오기만 하면 괜찮죠.”

"당연히 기존 업체들은 자기들끼리 먹으려고 하겠네요.”

“견제가 장난 아닙니다. 아마 웬만해서는 그 바닥에 들어가기 어려울 거예요. 일단 보안을 깨는 식으로 견제를 하는지라.”

“보안이 깨지면 보상을 하나보죠?”

"당연히 보상책이 마련되어 있죠. 상황에 맞게 계약을 하니까요. 그게 아니면 자잘한 업체에 누가 맡기겠습니까.”

"보안 뚫려서 날아간 업체도 있겠네요?”

"자잘한 업체가 문 닫는 건 전부 그거 때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데…… 왜 그러십니까? 혹시 그쪽에 관심이라도?”

"관심이야 있는데, 아직 관심만 있고, 본격적으로 뭘 해볼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 이 방패부터 마무리 하죠.”

"아, 그러시죠. 하면 보안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안처리 이미 끝났습니다.”

"예?”

"애초에 술식 디자인 할 때부터 보안까지 다 섞었죠. 그러니 술식만 유출하지 않으면 보안 문제는 신경 안 써도 됩니다.”

방패에 들어가는 두 개의 술식이 엮이면서 자연스럽게 보안이 작동하도록 해뒀다.

아마 누군가 술식을 빼돌리더라도 거기서 보안 마법만 분리해 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반사 마법만 분리해 내는 것도 어렵고.

반태수에게는 별 거 아닌 일이었는데, 장명기에게는 그게 아니었는지 한동안 한 마디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어, 그러니까…… 보안까지 다 끝내셨으면……."

장명기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계속 더듬더듬 쓸데없는 말을 뱉어냈다.

반태수는 그의 말을 딱 자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방패의 규격과 디자인은 정확히 맞춰야 합니다. 애초에 술식 자체를 거기에 맞춰 만들어서 규격이 달라지면 마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겁니다.”

장명기의 눈이 더욱 커졌다. 이건 더 놀랄 만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것도 가능한 겁니까?”

"지금까지는 그렇게 안 하셨나보네요. 가벼운 안전장치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방패 디자인 데이터에 대한 보안도 중요합니다.”

장명기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마십시오. 그건 제가 아주 확실히 보관하겠습니다.”

"그리고 보안 업체 쪽에 나누는 비율도 저한테 주시면 되겠네요. 자세한 얘기는 엄대협이랑 하시고요.”

장명기가 당연하다는 듯 얼른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통 최고 수준 보안을 적용하면 매출의 8%를 적용하고 단계가 내려갈 때마다 1%씩 낮아집니다.”

여기 적용된 보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비교할 만한 다른 마도구가 없는데, 반태수가 수준을 정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냥 4%로 하죠.”

그래서 그냥 절반 수준에서 맞췄다. 어차피 지분이 제일 많을 텐데 저런 자잘한 걸로 시간 끌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마도구를 이거 하나만 만들고 끝낼 생각도 없었고.

얼마 안 됐지만, 겪어보니 장명기를 앞에 내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이런 식으로 다리를 여러 개 뻗어 둬야 한다.

솔직히 아직 엄대협에 대한 신뢰가 완벽하지 않다.

엄대협 덕분에 손쉽게 이 바닥으로 들어왔고, 이렇게 위로 올라와 다양하고 재미난 의뢰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쨌든 시작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그러니 대비책을 여러 개 만들어 둬야 한다.

그렇게 얘기가 마무리 되나 싶었는데, 장명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그리고 술식을 여러 부분으로 나눠서 새기도록 만들어 주실 수 있습니까?”

반태수가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술식 유출 때문에요?”

"예. 철저히 나눠서 자신이 새기는 부분 외에는 모르도록 분업화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 공방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그것 역시 연구 개발 시간을 늘리는 원흉 중 하나이고.

반태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말했다.

"술식을 분리해 드리죠.”

반태수는 순식간에 술식을 조각냈다. 그리고 그걸 어떤 식으로 끼워 맞춰야 하는지 장명기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장명기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을 이렇게 순식간에 끝내는 게 가능하다는 걸 이제 알았다. 정말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

"한데…… 술식이 아까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 마지막 공정은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요? 그리고 중간에도 좀 달라진 부분이……."

반태수는 그 말에 씨익 웃었다.

"약간 수정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공정은 반드시 대표님이 직접 하셔야 합니다. 그게 핵심이거든요.”

장명기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반태수는 방패를 내려놓았다. 이제 여기서의 일은 다 끝났다. 그 전에 궁금한 거 하나를 묻기로 했다.

"아까 술식 스캐너 얘기할 때 지하공방에 있다고 말하셨는데, 지하공방이 뭡니까?”

"아, 지하 공방에 대해 아직 모르시는군요. 그럴 수 있죠. 합법적인 곳이 아니니.”

"불법 공방을 말하는 겁니까?”

“그냥 단순히 불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암시장입니다.”

“암시장? 그럼 거기서 마도구를 만들어 파는 겁니까? 세금 아까워서?”

"세금도 세금이고, 좀 과격한 방식으로 연구 개발을 하기 위함이기도 하죠.”

"과격한 방법? 무슨 인체 실험이라도 합니까?”

"그것도 그 중 하나죠.”

반태수가 멈칫했다. 그냥 반쯤 농담 삼아 던진 말인데 그게 진짜라고?

"암시장 중에서 질이 나쁜 곳들이 있습니다. 그런 데에선 노예도 사고팔죠. 노예를 사다가 인체실험을 하는 자들이 꽤 됩니다.”

장명기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지하 공방은 암시장을 통해 의뢰를 받는 공방을 말합니다. 위험한 것들이 많죠. 주로 정신에 관련되거나 저주, 혹은 네크로멘시 계열의 마도구를 제작합니다. 뭐, 가격만 맞으면 일반 마도구도 만드는데, 흔치는 않죠.”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솔직히 그쪽은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 이롭습니다. 괜히 엮였다가 시정부의 타겟이라도 되면 그저 골치 아픈 정도로는 끝나지 않습니다.”

"재미있긴 한데, 저도 굳이 암시장이랑 엮일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암시장이 이렇게 버젓이 유지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솔직히 들은 것만으로도 규모가 보통이 아닐 것 같은데, 그 정도면 시정부에서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방치하는 것이 분명했다. 필요할 때 써먹기 위해서.

"아무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셨다면 그 시기에 대한 것도 고민해 보시죠.”

장명기의 눈에서 마치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는 번쩍이는 눈빛을 뿌리며 반태수에게 물었다.

"설마 대량생산까지 이어지도록 설계하신 겁니까?”

"아뇨. 일단 판매하는 걸 보면서 연구해야죠.”

"아…… 그렇군요.”

대번에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변하는 걸 보니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하긴 이렇게 공방에서 수제작으로 소량 생산하는 것과 대량생산을 하는 건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테니까.

"대량생산 한다고 해서 이 방패가 많이 팔린다는 보장은 없잖습니까. 일단 상황부터 지켜보죠.”

장명기는 이 방패가 반드시 먹힐 거라고 자신했지만, 어느 정도 파급력을 보여줄지는 알 수 없었기에 일단 자중했다.

"예. 뒷일은 맡겨만 주십시오. 어떻게 해서든 성공시키겠습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방을 나섰다. 이제 다음 일을 진행할 차례였다.

여기 온 김에 카페 문제도 어느 정도 처리를 해두고 갈 계획이었다.

확실히 신분증이 있으니 편하긴 하다. 이렇게 사업까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돈은 많았다. 지난 번 유적 탐사 의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덕에 막대한 돈을 받았으니까.

애초 계약은 5억 겔이었는데, 실제로 받은 돈은 그 세 배가 넘었다.

거기에 갑각 트롤 사체까지 받았다. 나중에 유물 중에 하나도 받기로 했다.

갑각 트롤 사체와 유물은 순수하게 오스윈 프리든의 호의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아쉬덴 길드의 의뢰 대금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갑각 트롤 사체도 보러 가야 하는데.’

갑각 트롤 사체는 창고를 하나 빌려 보관 중이었다. 엄대협이 모든 일을 처리했는지라 가서 확인도 못했다.

다른 마수는 모르겠지만, 갑각 트롤 사체는 쉽게 부패하지 않을 것이다. 죽었는데도 온몸에 마력이 꽉 차 있어서 그게 다 흩어져야 부패가 시작될 테니까.

하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을 테니 얼른 가서 마법으로 조치를 해둬야 한다.

생각난 김에 엄대협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전화를 받는 엄대협의 말투가 살짝 퉁명스러웠다. 카페를 자신에게 맡기지 않는다고 해서 삐진 것이다.

물론 저런다고 해서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엄대협은 발로 뛰어야 한다. 카페 운영 같은 정적인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창고 어디야? 한 번 가서 봐야겠는데?”

-안 그래도 그 얘기 하려고 했는데. 창고 유지비가 만만치 않으니까 마수 사체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창고 유지비가 들면 얼마나 든다고.”

-우리가 가진 마수 사체가 보통 물건이 아니잖아. 무려 유적에서 나온 변종 마수인데. 당연히 경비를 서야지.

"경비? 무슨 돈으로?”

-당연히 네 돈이지. 후불로 계약했어. 용병단을 고용하는 게 제일 좋긴 한데, 그건 너무 비싸니까 전문 업체에 맡겼어. 그래도 만만치 않으니까 빨리 처리해야지. 하루하루가 돈이다.

반태수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지구나 이면세계나 뭐 하나 하려면 다 돈이다. 이러니 돈을 벌지 않을 수가 있나.

카페 사업을 빨리 시작해야겠다.

"창고 주소 불러. 당장 간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