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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49화 (49/351)

49화.  < 듀마이어 공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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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방패를 받기 전에 엄대협이 내민 계약서에 사인부터 했다.

내용은 당연히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고 수정도 했다.

원래 계약서에는 대가로 20%의 지분을 준다고 되어 있었는데, 그걸 가변적으로 바꾼 것이다.

기본이 20%이고, 개발을 성공했을 때, 완성품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추가 지분을 얻을 수 있도록 수정했다.

그렇게 계약을 마친 후, 작업이 주로 이루어지는 2층으로 가서 방패를 받을 수 있었다.

지름이 60센티미터인 원형 방패였다. 공격을 흘려낼 수 있게 표면은 완만한 호를 그리듯 디자인했다.

여기에 마법을 부여해서 방어력을 높이려고 구상한 모양이었다.

반태수는 방패를 아주 촘촘하게 확인했다.

이들이 원하는 건 이 방패에 데미지를 흘려버리는 마법의 부여였다.

반태수는 그걸 자신의 몸에 패시브로 걸어뒀다. 그러니 조금 응용해서 이 방패에 부여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부여해 버리면 방패가 모든 충격을 소유자에게 떠넘겨 버리게 된다.

그러니 다른 조치가 필요했다.

아무튼 반태수는 그런 건 일단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방패가 어떤 상태인지부터 확인했다.

일단 방패의 구조가 특이했다.

한 가지 금속으로 만들지 않았다. 방패 내부에 다른 금속을 끼워 넣어 마치 회로를 구성하듯 만들었다.

그 회로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회로의 흐름이 방패 가장자리로 이어졌다. 충격을 방패 가장자리로 유도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과연 생각대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마법도 부여되어 있었다. 굉장히 조잡해서 제대로 작동이나 할지 의심스러운 마법이.

마법을 부여한다는 건 이 안에 마법진을 새기는 것과 비슷하다.

마력의 실로 마법진을 그려 마법을 펼치듯이, 그걸 이 방패 안에 새기는 것이다.

원래는 마법에 계속 공급할 마력이 배터리처럼 붙어 있어야 한다.

보통은 마력 친화도가 높은 보석을 쓴다. 자수정이 제법 괜찮다.

그냥 자수정을 갖다 쓰는 게 아니라, 주변 마력을 흡수하는 술식을 적용해 마력석으로 만들어야 한다.

반태수는 그 과정을 넘어 마법진으로 마력석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건 대량생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니 여기서 연구하려면 자수정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아무튼 그건 반태수의 지식이고, 여기서는 과연 어떤 식으로 만들었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마력석은 뭐로 만든 거지?’

이 방패도 마력석을 이용했다. 한데 자수정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보석 종류까지 안 보고 알아맞힐 수는 없었다.

반태수는 근처에 서 있던 장명기에게 물었다.

"무슨 보석을 쓴 겁니까?”

장명기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무슨 보석을 썼냐고? 그거야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그걸 몰라서 묻는다고? 대번에 의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당연히 에메랄드를 썼습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에메랄드.”

에메랄드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자수정에 비하면 마력석으로 바꿨을 때 질이 너무 떨어진다.

반태수도 초기에는 에메랄드를 썼다. 그게 마력석으로 변환하기가 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아니, 자수정이 훨씬 까다롭긴 하다. 술식이 몇 배로 복잡해지니까.

"대량생산을 고려해야 해서 에메랄드를 쓴 겁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장명기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런 것도 있고, 에메랄드가 제일 구하기 쉽고 성능도 뛰어나니까 당연히 그걸 씁니다.”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에메랄드를 구하기가 쉬운 편인가보다.

"자수정은 구하기가 어렵습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장명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도구 제작에 자수정을 쓴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였다.

“구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제가 알기로 별로 어렵지 않을 겁니다.”

자수정은 에메랄드보다 훨씬 구하기 쉽고 가격도 싸다. 장명기는 궁금증이 일었다. 왜 갑자기 자수정 얘기를 하는 걸까?

반태수는 장명기의 표정을 보고 이쪽에 아직 자수정을 마력석으로 변환하는 술식이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굳이 그 술식을 여기서 쓸 이유가 없었다.

"그럼 에메랄드로 하죠. 그나저나 이 에메랄드 마력석은 누가 만든 겁니까?”

장명기의 표정이 또 한 차례 굳었다.

"마력석 전문 업체에서 구입했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반태수는 설마 마력석 전문 업체가 있을 줄은 몰랐다. 한데 전문 업체가 고작 이런 마력석을 만들어 판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질이 너무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반태수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어쩌면 마력석을 만들어 파는 사업도 한 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력석이 업계 평균치입니다. 혹시 뭐가 문제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음…… 일단 술식도 엉망이고 커팅도 엉망입니다. 이러면 효율이 확 떨어지거든요.”

장명기가 당황했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마 아까 자수정 얘기를 한 것도 그걸로 마력석을 만들 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섣불리 그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무리 계약을 했어도 이쪽이 철저한 을이었다.

어떤 마법사도 응하지 않은 의뢰를 받아들인 사람이다. 말 한 번 잘못해서 빈정이라도 상하면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에메랄드 원석을 구해서 직접 만드는 게 낫겠네요. 구할 수 있죠?”

"물론 구할 수 있기야만 합니다만……."

하지만 그걸 마력석으로 가공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원석을 세공하는 것도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된다. 마력석에 어울리는 세공이 따로 있었다.

거기에 술식을 새기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문 업체는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가 있다.

물론 공방에서 원석을 세공해 마력석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세공이야 공방에서도 가능하고 마법사가 있다면 술식도 새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만든 마력석이 전문 업체의 것보다 좋다는 보장이 없다. 대부분은 모자란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설사 품질이 더 좋아졌다고 해도 문제였다. 과연 그걸 꾸준히 공급할 수 있을까?

대량 생산에 성공했을 때는 더 문제가 된다. 전문 업체를 괜히 쓰는 게 아니었다.

장명기가 난감한 표정으로 반태수와 엄대협을 번갈아 바라봤다.

엄대협이 분위기를 읽고 슬그머니 나섰다.

"야, 너 마력석 만들 수 있어?”

"이거보다는 낫지.”

"얼마나 더 나은데?”

반태수는 엄대협이 왜 이러는지 알고 있기에 피식 웃었다.

"원한다면 그냥 이걸로 할 수도 있긴 해. 생각해보면 굳이 마력석을 바꿀 필요는 없겠지. 마력석을 바꾸면 술식 디자인도 바꿔야 하니까."

하지만 아직 방패는 미완성이다. 그 얘기는 마력석을 지금 바꿔야 나중에 술식 디자인을 변경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아니, 나중에 딴 말을 해도 바꿔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럼 그냥 해. 우린 딱 원하는 것만 해주면 돼.”

"그럼 그렇게 하지 뭐. 나야 편하고 좋지.”

마력석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약간 짜증은 나지만.

엄대협과 반태수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장명기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더 좋은 마력석을 쓰고 싶다는 욕심과 그래봐야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면 소용없다는 현실이 머릿속에서 충돌한 것이다.

하지만 장명기는 이내 고개를 휘휘 저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지금은 그냥 가는 게 맞다. 적어도 장명기는 그렇게 생각하고 결정했다.

반태수가 방패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거 충격을 꼭 흘리는 쪽으로 가야 합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장명기가 되물었다.

"혹시 충격 흡수를 고려하시는 겁니까? 그건 개발 초기에 시도했는데, 충격 흡수는 한계가 너무 뚜렷합니다.”

방패에 충격이 계속 쌓이다보니 수명 문제가 발생했다. 예상보다 너무 금방 내구력이 바닥 나 망가졌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충격 흘리기였다. 마침 그런 능력을 가진 유명한 사람도 있어서 아이디어도 금방 나왔다.

그렇게 연구 방향을 틀어 여기까지 왔다. 이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도착할 거라는 희망에 들떴을 때 연구 마법사가 떠났고.

장명기는 열심히 그 과정을 설명했다. 상대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반태수는 장명기의 열정적인 설명을 다 들어주었다. 너무 열심인지라 중간에 끊기가 좀 그랬다.

모든 설명이 끝나자 반태수는 담담히 말했다.

"충격을 흡수하기만 하면 충격 수용량의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죠. 그래서 그걸 방출하는 것까지 해서 충격을 반사하는 술식을 구성해 볼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그 말을 들은 장명기가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보며 눈을 몇 번 꿈뻑였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합니다. 마력석을 두 개 써서 술식을 두 가지로 구성하면 되니까요.”

장명기의 눈에 의심이 들어찼다.

"그게…… 가능합니까?”

그렇게 똑같이 반복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마법사는 아니지만 충격을 받고 되돌리는 두 가지 효능을 마력석 두 개를 이용해 따로 구성하려면 필시 마력의 흐름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조절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물어본 것이다.

"간섭이야 계산하면 됩니다. 좀 더 좋은 마력석을 쓰면 하나만으로 술식을 구성할 수 있는데, 성능이 달려서 두 개로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아……!”

장명기는 이 순간 확신했다. 눈앞에 있는 이 마법사는 둘 중 하나라고.

실력이 어마어마한 진짜 제대로 된 연구 마법사이거나, 아니면 희대의 사기꾼이거나.

한데 자꾸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건 정말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천재 마법사가 굳이 이곳 듀마이어 공방의 의뢰를 받을 이유가 없으니까.

"정말…… 정말로 가능한 거 맞습니까?”

장명기의 분위기를 읽은 엄대협이 또 나섰다.

"우리 마법사님 실력을 너무 모르시네. 그냥 믿으시면 됩니다. 믿고 맡기시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 마력석이나 얼른 가져오시죠.”

엄대협은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계약서를 꺼내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냥 이걸 믿으세요. 그리고 계약대로 제작에 필요한 걸 제공하기로 하셨으면 얼른 마력석부터 가져오시고요.”

결국 장명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장명기에게 반태수가 물었다.

"그런데 이런 방패를 만든 공방이 아직 없는 겁니까?”

이런 발상을 한 사람이 분명히 여럿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설마 이면세계에는 특허 같은 제도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살짝 들었다.

"방패 쪽으로 나온 마도구는 근력을 증가시키거나 체력을 높이거나 하는 식이 대부분입니다. 아니면 전면에 밝은 빛을 뿜어내거나 공격에 관련된 마법을 부여하거나, 그런 식이죠.”

장명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들 실패한 겁니다. 그렇게 다들 실패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장명기가 마침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방패의 구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실 술식과 연계해서 디자인을 해야 하는데, 방금 말씀하신 대로라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나 다름이 없는지라……."

반태수는 그 말을 듣고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부여 마법을 쓰면서 물건의 구조까지 이용해서 제작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원하는 마법을 부여했을 뿐이다. 어떤 마법이 어느 정도의 힘으로 어떤 상황에서 발동하느냐만 정하면 끝이었다.

한데 오늘 여기 와서 방패 하나를 본 것뿐인데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조와 술식을 동시에 고려해서 부여하는 마법은 과연 어떤 힘을 가질까?

생각해보면 지금 만들려는 방패도 그저 반사로 만족할 게 아니라 구조를 잘 이용하면 충격을 튕겨내는 방향도 마음껏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집중할 수도 있고.

"재밌겠네요. 한 번 해보죠.”

장명기는 여전히 반신반의했다. 솔직히 대단한 마법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었다.

기존에 공방에서 일하던 마법사도 50살이 넘었다. 그런데도 술식을 자유자재로 다루지 못했다. 약간만 상황이 틀어져도 술식을 계산하느라 며칠을 끙끙대며 머리를 싸맸다.

"뭐 하세요?”

"예?”

장명기는 반태수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왜 그러시는지……."

"마력석, 안 가져오실 건가요?”

"아……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그리고 에메랄드 원석도 구할 수 있으면 좀 부탁합니다.”

에메랄드 원석을 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마력석 제조업체에서 한 다리 건너면 에메랄드 원석 판매상과 닿으니까.

"뭐…… 가격도 얼마 안 나가니 구해드리죠.”

장명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가자, 엄대협이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야, 근데 너…… 진짜 할 수 있는 거 맞지?"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정말 별 걱정을 다 한다.

"나 마법사야.”

"그래. 너 마법사인 거 다 알아. 그러니까 진짜 할 수 있지?”

반태수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하나마나한 대답을 해서 뭐 하겠는가.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커피머신이랑 원두 좀 알아봐.”

"뭐?”

“내가 끝내주는 커피 마시게 해줄 테니까 커피 머신이나 하나 구해보라고.”

"야이씨, 그게 얼마인지나 알아?”

반태수가 또 피식 웃었다. 왜 모르겠나. 카페 사장인데. 물론 이면세계라 가격이 좀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달라봐야 상식 안에서 왔다갔다할 것이다.

"나 돈 많아. 중고도 괜찮으니까 하나 구해와. 여기서 일하는 동안 커피는 마셔야지.”

"야, 커피는 내가 사다 나를 테니까……."

"그 더럽게 맛없는 커피는 도저히 못 마시겠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지?”

엄대협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쩌겠는가. 힘없는 놈이 숙여야지.

"야, 너 설마 전에 말했던 카페 어쩌고 그거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반태수는 세 번째로 피식 웃었다.

아마 커피 맛을 보면 엄대협이 먼저 달려들 것이다. 얼른 창업하자고.

반태수가 손을 휘휘 내젓자, 엄대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를 떴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술식을 뽑아볼까?”

반태수는 손바닥을 비비고는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두뇌를 풀가동해서 술식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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