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 잠시 복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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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서울로 돌아가는 포탈 앞에 서 있었다.
이번에 성장했으니 뭔가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나 확인했는데, 역시나 없었다.
이쪽으로 오는 포탈을 통해 아직 실력이 한참 모자란다는 건 확인했지만, 그쪽이랑 이쪽 포탈은 다를 수 있으니 다시 한 번 살펴본 것이다.
그쪽 포탈과 이쪽 포탈은 확실히 달랐다. 그쪽 포탈은 끊임없이 마력을 빨아들이는데, 이쪽 포탈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반태수가 돌아가서 확인하고 싶은 것은 이 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로 갈 수 있는지에 관한 거였다.
머릿속을 텅 비우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도시를 이미지화해서 강렬하게 염원해 본다거나.
‘그럼 다른 도시부터 다녀와야 하나?’
일단 아무생각 없이 해보고, 안 되면 다른 도시에 다녀오거나 해야겠다.
반태수는 심호흡을 했다.
이번에는 이쪽에서 지구로 갈 때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올 때, 강렬한 염원을 통해 위치를 바꿀 수 있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이 포탈은 서울로 이어져 있다. 일단 다른 도시로 가는 것보다는 집 근처로 갈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반태수는 강렬하게 자신의 포탈이 있는 곳을 염원했다.
그리고 포탈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디뎠다.
새까만 공간을 지나가며 몸에 두르고 있던 거친 마력이 맹렬하게 빠져나갔다. 마치 무언가가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력이 모두 사라졌을 때, 세상이 다시 환해졌다.
주변 풍경을 확인한 반태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포탈이 있는 자신의 매장에 도착한 것이다.
강렬한 염원이 통했다.
반태수는 문득 지구의 다른 능력자들은 왜 이런 걸 시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말로 시도하지 않았을까? 아무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능력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르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그 수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능력자들이 자주 이면세계를 들락거리는데 아무도 이와 관련된 정보를 모를 수 있을까?
이건 차츰 알아보기로 했다. 당장 알 방법도 없으니.
반태수는 원래 하려던 테스트를 지금 해보기로 했다.
한 번 성공했지만, 이게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로 의도대로 된 건지 확인하려면 몇 번 더 반복해서 성공해야만 한다.
아니, 사실 그런 거 다 필요 없이 이걸 잘만 이용하면 공간이동 게이트로 써먹을 수도 있었다.
이면세계에 갔다가 돌아올 때 외국 아무 곳으로 갈 수 있다면 원거리 공간이동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과연 거기까지도 가능할지 확인해 봐야 한다.
물론 외국으로 나가면 거기서 돌아오는 일이 골치 아프니 그에 대한 대책을 미리 세우기 전에는 시도할 수 없겠지만.
반태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면세계의 포탈이 있는 곳을 강렬하게 염원하며 포탈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둠 속에서 거친 마력이 밀려오고 그걸 몸에 휘감고 나자, 사방이 밝아지며 이면세계로 나갔다.
반태수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눈앞에 지구로 돌아가는 커다란 포탈이 보였다. 이곳은 크랙톤의 포탈이 있는 곳, 도망자의 골목이었다.
반태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포탈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포탈이 있는 매장 한가운데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다음은 다른 도시로 갈 수 있느냐를 확인해야 한다. 일단은 크랙톤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서메롯으로 가고자 했다.
한데 그곳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지라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시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나.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나중에 그쪽 도시를 방문한 뒤에 다시 해봐도 되고.
반태수는 평소보다 더 강렬한 염원을 담아 포탈로 들어섰다.
"어?”
한데 이동이 되지 않았다. 그냥 포탈을 통과해 버린 것이다. 예전 이면세계에서 그쪽 사람들이 포탈을 통과해서 지나간 것처럼. 갑자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포탈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니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염원해서 포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반태수는 다시 크랙톤의 포탈을 염원하며 이동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포탈을 그냥 지나쳤다.
반태수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반태수는 포탈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직 포탈을 분석하기에는 실력이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그냥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포탈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조금씩 마력을 빨아들였고, 은은히 빛났다.
‘그런데 왜 이쪽 포탈만 마력을 흡수하지?’
이면세계의 포탈은 이런 식으로 마력을 흡수하지 않는다.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반태수는 기억 속 이면세계 포탈을 떠올리며 눈앞에 있는 포탈과 비교했다.
그리고 다른 포탈들과도 비교했다. 아니, 이면세계로 넘어갈 수 있을 때의 포탈도 떠올렸다.
한참 동안 생각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차이점을 알아냈다. 빛이었다.
포탈에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빛이 지금은 약하다. 포탈을 통해 넘을 때는 이보다 좀 더 강했다.
아마 그동안 관심을 두고 매번 관찰하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 이거 설마?”
반태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어쩌면 마력을 빨아들이는 것이 이면세계로 마력을 보내는 게 아니라 충전 비슷한 게 아닐까?
포탈을 작동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마력을 쌓아야 작동한다고 생각하니 나름 납득이 됐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포탈이 많아도 이 정도 속도로 마력을 흡수한다면 마력을 전부 이면세계로 보낸다고 하더라도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쪽 마력이 그쪽 세상으로 가면 동화되어 성질이 결국 비슷해질 것이다.
시간은 약간 걸리겠지만 결국은 그렇게 된다.
그러니 이 포탈에서 빨아들이는 마력은 쌓았다가 포탈을 작동할 때 쓴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데 왜 이면세계의 포탈은 마력을 빨아들이지 않는 걸까? 설마 마력을 채울 필요가 없는 걸까?
아무튼 이것 역시 시간을 두고 확인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이면세계로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마력이 쌓이려면 얼마나 있어야 할까?
그것도 매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여기서 할 일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카페에 자동으로 마력이 담긴 드립커피를 만들어내는 장비를 제작해야 하지 않나.
커피를 이면세계에서도 판매하려면 그건 반드시 필요하다. 보안도 아주 철저히 해야 하고.
‘내 커피는 이면세계에서 훨씬 더 파급력이 클 거야.’
이면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보유한 마력은 지구보다 평균치가 높다.
게다가 능력자의 수도 훨씬 많다.
심지어 능력자들이 가진 마력은 지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아무튼 할 일은 정해졌다.
그리고 마침 이곳은 연구 개발실이다.
반태수는 집으로 가지 않고 개발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
포탈의 마력이 작동 가능한 수준까지 채워지는 데 걸린 시간은 4일 하고도 17시간이었다.
반태수는 그 4일, 아니 거의 5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분초를 아껴서 연구에 매진했다.
그래서 결국 더 이상 자신이 손대지 않아도 되는 장비를 제작해냈다.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함부로 구조를 들여다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설사 보안이 뚫려서 누군가 내부를 확인하게 되면 바로 폐기되도록 조치해 두었다.
그렇게 만든 장비를 카페 위자드에 설치한 다음, 이서영에게 사용법을 알려줬다.
나머지 아르바이트생들은 이서영이 알아서 교육시키기로 했다.
카페에는 보통 2명에서 3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요일이나 시간 별로 돌아가면서 근무한다.
슬슬 이서영을 비롯한 핵심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정식 직원이 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할 계획이었다.
이제 차근차근 원래 지구에서 하려던 일을 진행해도 될 것 같아서였다.
현재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향후 반태수가 벌이려는 일에 한 명씩 데려다가 쓸 예정이었다.
1년 동안 꾸준히 친밀감을 향상시켰으니 믿고 일을 맡겨도 된다.
그렇게 처리할 일을 다 처리한 반태수는 준비한 것들을 들고 포탈을 넘었다.
반태수가 나타난 곳은 아쉬덴 길드 근처에 있는 골목이었다.
이번에 이동하면서 확인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정확히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 안에서 인적이 없는 곳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반태수가 원한 장소와 종 떨어진 곳에 도착했는데, 바로 확인해보니 누군가 그 근처에 있었다.
겪을수록 포탈을 만든 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대체 이런 모든 상황을 다 술식에 넣으려면 얼마나 복잡하고 기묘한 수를 써야 할까?
반태수는 일단 이면세계에서 쓰는 스마트폰의 전원을 켰다.
문자 도착을 알리는 알람이 연이어 울렸다.
확인해보니 전부 엄대협이 보낸 문자였다. 왜 연락이 안 되느냐가 대부분이었고, 새로 받은 의뢰는 어쩔 거냐는 문자도 있었다.
처음에는 평범했는데, 갈수록 문자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중에는 애원에 가까운 문자들이 쭉 쌓였다.
반태수가 집에 간다는 말을 하고 그냥 사라져 버린 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문자에서 고스란히 보였다.
반태수는 피식 웃으며 엄대협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한데 마침 그 순간 전화가 왔다. 발신인은 당연히 엄대협이었다.
애타는 마음에 틈 날 때마다 전화를 거는 모양이었다.
반태수는 느긋하게 전화를 받았다.
“어. 나야.”
한동안 전화기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엄대협도 이렇게 갑자기 전화가 걸릴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모양이었다.
5초쯤 침묵이 이어진 끝에.
- 야!
엄대협이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반태수는 그 순간 전화기를 귀에서 뗐고.
- 대체 전화는 왜 꺼 놓은 거야!
반태수는 전화기를 멀리 떨어뜨려 놓은 채, 엄대협의 목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렸다.
이내 아무 반응이 오지 않자, 엄대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 야, 설마 끊은 거 아니지? 여보세요? 반 마법사님, 제발요!
"그래. 안 끊었으니까 말해.”
엄대협은 또 소리 지르려다가 이내 심호흡과 함께 모든 분노와 괴성을 꿀꺽 삼켜 버렸다.
- 반 마법사님, 설마 공방 의뢰 잊은 건 아니지?
“잊었을 리가.”
- 그렇지? 난 또 혹시나 해서.
"정확한 날짜는 정하지 않은 거 아니었나?”
- 그건 그런데, 그래도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끄는 건 상도의가 아니잖아?
"그럼 지금 가면 되나?”
- 그래주면 나야 너무 고맙지. 내가 주소 보내줄 테니까 그쪽으로 와. 나도 바로 출발할게. 오케이?
"오케이.”
반태수는 그렇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문자로 주소 하나가 도착했다.
주소를 대충 확인하면서 큰길가로 나갔다.
이면세계에도 다양한 어플이 존재했다. 택시나 대리기사를 부르는 어플도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진짜 서울이랑 다를 게 없다니까.’
안 그래도 서울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데 이럴 때마다 더 생각이 많아진다.
가끔 잠깐이지만 착각할 때도 있다. 여기 혹시 서울 아니야? 하고.
문득 위화감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내가 착각을 한다고?’
마법사는 정신세계가 명료하다. 그게 아니라면 생각을 여러 개로 나눠 동시에 하는 미친 짓을 어떻게 하겠는가. 한데 그런 마법사가 착각을 한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물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러는 건 뭔가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것도 한 번 생각해 봐야겠어.’
할 것이 또 늘어났다. 정말 이러다가 두뇌를 아무리 여러 개로 쪼개도 모자라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잠시 후, 어플로 부른 택시가 도착했다.
반태수는 택시를 타고 엄대협이 보내준 주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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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이어 공방.
엄대협이 보내준 주소에 도착하니 그런 이름의 공방이 있었다.
주변에 다른 공방도 상당히 많았다. 공방 거리 같은 장소인 모양이었다.
대부분 소규모 공방이었고, 듀마이어 공방이 그 중에서는 제법 규모가 있는 편이었다.
잠시 공방 앞에서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공방 안에서 엄대협이 툭 튀어나왔다.
"왔으면 들어오지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얼른 와, 얼른.”
엄대협은 반가운 표정으로 반태수의 팔을 잡아당기며 공방 안으로 데려갔다.
공방은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1층에는 로비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공방 관계자인 듯한 사람 몇 명이 보였다.
“대표님, 이쪽이 제가 말씀드렸던 마법사 반입니다.”
엄대협은 다짜고짜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 반태수를 소개했다.
50살쯤으로 보이는 사내였는데,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을 불쑥 내밀었다.
"장명기라고 합니다.”
반태수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엄대협 이후 한국식 이름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반태수는 이름을 말하며 장명기의 손을 잡았다.
“반입니다.”
장명기가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놓았다.
"실력이 대단하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장명기의 시선이 잠깐 엄대협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실력 얘기는 엄대협이 한 모양이었다. 대체 뭐라고 구워삶았는지 장명기의 눈에 호의와 신뢰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반태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실력이야 직접 보여주는 것이 말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개발 중이라는 방패, 실패한 것도 좋으니 하나 볼 수 있겠습니까?”
장명기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이내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겨났다. 생각보다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