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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47화 (47/351)

47화.  < 연구의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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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대협은 침대에 다소곳이 앉아 반태수의 눈치를 살폈다.

설마 밤을 꼴딱 새고 방금 막 잠들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좀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어제 일찍 와서 쉬었으니 충분히 잤을 거라 여겼다.

그냥 아침잠 좀 설치게 해주려고 했을 뿐인데,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눈치가 보였다.

아니, 모르고 그런 건데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그러게 누가 밤을 꼴딱 새랬나?

힘들게 유적 탐사까지 하고 왔으면 일찍 뻗어서 자는 게 인지상정이잖아.

사람이 어째 인간미가 없어.

엄대협은 계속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표정을 철저히 관리하며 반태수를 슬그머니 바라봤다.

반태수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왜 온 건데?”

“왜 오긴. 새 의뢰를 받아서 얼른 알려주고 싶어서 왔지.”

반태수가 엄대협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아까 문을 두드리면서 일감 따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긴 했다.

"무슨 의뢰인데?”

그러자 엄대협의 표정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얼굴에 화색이 확 돌더니 히죽히죽 웃었다.

"들으면 아마 깜짝 놀랄걸?”

반태수는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놀랄 일이 뭐 있겠나. 5대 가문 소속 마법사인 오스윈 프리든이 집에 초대한다고까지 했는데.

이면세계에서 5대 가문과 엮이는 것보다 더 놀랄 만한 일이 과연 있을까?

세계를 지배한다는 놈들인데.

‘근데 왜 좀 꺼림칙하지?’

5대 가문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또 그에 대해 생각날 때마다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마법사 특유의 직감 같은 건 아니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경험에서 나오는 혐오감?

확실히 수천 개의 도시로 이루어진 세계를 지배하려면 보통 놈들은 아니리라.

아마 뒤로 음흉한 걸 넘어 사악하고 지독한 짓을 무수히 저질렀으리라.

하지만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이런 감정이 든다는 건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반태수 자신조차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웬만한 짓은 다 할 수 있다는 각오가 서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반태수는 심드렁한 눈으로 엄대협을 쳐다봤다.

"왜 말을 하다 말아?”

"반응이 그지 같아서.”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싶은 반태수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관심을 갖는 척이라도 하든가. 넌 짖어라, 난 귀찮으니. 이따위 표정으로 있는데 내가 말 하고 싶은 생각이 요만큼이라도 들겠어?”

"넌 또 왜 일곱 살 애처럼 관심을 갈구해? 말하기 싫으면 그냥 가든가!”

새벽부터 찾아와서 사람 잠 다 깨워놓고 무슨 저 딴 말을 한단 말인가.

"아니, 뭐, 말하기 싫은 건 아니고. 아무튼 잘 들어봐. 내가 이번에 연구 의뢰를 받아왔다니까?”

완벽하게 꺼진 줄 알았던 반태수의 관심에 다시 불씨가 살아났다.

"연구 의뢰?”

"이번 의뢰가 좀 거물들이 많이 끼었잖아? 내가 또 그 사이에서 열심이 영업을 했다는 거 아니겠어?”

"거물? 설마 오스윈 프리든?”

엄대협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야, 그건 거물이 아니라 괴물이지! 내가 그 사람한테 어떻게 말을 거냐? 그 사람들 말고! 뒤처리 업체들 중에 거물들 많다고!”

"아아. 뒤처리.”

반태수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걸 본 엄대협이 발끈했다.

"야, 너 뒤처리 무시하냐? 뒤처리 업체 중에서 손꼽히는 곳은 5대 가문 소유인 곳도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건 좀 의외였다. 고작 뒤처리에 5대 가문이 손을 댄다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말이 뒤처리지 마수 사체를 처리하는 일부터 발굴이 끝난 유적의 청소나 탐색까지 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뒤처리 업체랑 잘 엮이면 지저분한 일을 처리할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 아무튼 보통 놈들이 아니라고!”

"알았다니까. 그래서 연구 의뢰가 뭔데?”

"네 앞으로 온 마수 사체를 보관하려고 여기저기 찔러 봤거든. 그러다가 제작 공방이랑 줄이 닿았어.”

"제작 공방?”

"그래. 제작 공방. 뭐, 크고 유명한 곳은 아니고, 규모는 중간쯤 되는데, 그래도 나름 이름은 있는 공방이야.”

반태수는 제작 공방이 뭐 하는 곳인지 부터 알고 싶었다. 그래서 엄대협을 가만히 쳐다봤더니, 엄대협이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아, 내 정신 좀 봐.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지? 자, 잘 들어. 제작 공방이란 건 말이야, 능력자 전용 장비를 제작하는 곳이야.”

그저 단순한 능력자 장비는 공장에서 찍어낸다.

한데 좀 더 성능이 좋고 다양한 기능이 깃든 장비는 공방에서 제작한다.

제작 공방은 공장에서 찍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제작 과정을 가진 장비를 제작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해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제작 기술을 높이는 작업까지 진행한다.

현재 공장에서 제조하는 장비들도 예전에는 전부 공방에서 제작하던 물건들이었다.

그런 식으로 장비의 발전이 꾸준히 이뤄지는 것이다.

설명을 모두 들은 반태수는 확실히 이곳이 이면세계는 이면세계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물건에 마법을 부여하는 것도 다 공방에서 나온 기술이라는 건가?”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그런 셈이지.”

"그럼 자동차나 컴퓨터, 뭐 그런 것들도 전부 공방에서 부터 시작한 건가?”

"에이, 그건 너무 나간 거고. 공방에서 일부 부품을 개발했을 수는 있지. 그래도 자동차나 컴퓨터는 아니지. TV같은 것도 당연히 아니고."

반태수는 처음 이면세계로 넘어온 날, 도로를 지나다니던 자동차로부터 분명히 마력을 감지해냈다. 즉, 자동차에 마법이 부여된 부품이 쓰였단 뜻이다.

그래서 던져본 말이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닌 모양이다.

하여튼 재미난 곳이다.

"그래서 그 제작 공방에서 뭘 의뢰했는데?”

"신형 방패 제작.”

"방패?”

"이번에 유적에서 나온 마수, 갑옷 입은 트롤 말이야.”

“갑각 트롤?”

"그래. 그거. 그놈 충격을 안 받는다면서.”

"충격을 안 받는 게 아니라 뒤로 흘리는 거지.”

"그거나 그거나. 아무튼 그런 성능을 가진 방패를 연구하고 있나 보더라고.”

"언제부터?”

혹시 이번에 얻은 갑각 트롤의 사체를 이용해서 연구를 시작하고자 하는 거면 관심을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 5년 된 모양이야. 그동안 성과가 지지부진하다가 새로운 재료를 얻으면서 기대치가 좀 올라간 모양이야.”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그동안 쌓인 노하우가 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연구는 좀 귀찮아서 싫은데.”

"어? 싫다고? 거기서는 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왜 하필 나야?”

"글쎄, 유적에서 활약해서?”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야, 좀 더 알아봐. 유적에 간 마법사가 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 5서클 마법사가 있는데 굳이 나한테? 내가 어떤 마법사인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내가 좀 알아봤거든.”

반태수가 눈살을 찌푸리고 엄대협을 쳐다봤다. 그걸 먼저 말했어야 하지 않나.

"아이,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도 차근차근 말하고 있는 거라고.”

엄대협은 얼른 변명부터 한 다음 말을 이었다.

"그 공방 사정이 어려워졌어. 거기 있던 마법사가 그만뒀거든.”

"마법사가 그만 둬?”

"다른 연구소는 몰라도 공방 연구소에는 마법사가 꼭 필요해. 그것도 이론이 아주 빠삭한 마법사가 있어야 하는데, 마침 그만둬 버렸네?”

"마법사가 그만뒀으면 그동안 쌓인 노하우도 사라진 건가?”

"그건 아니지. 웬만한 건 다 기록해둬. 공방의 핵심은 데이터니까.”

반태수는 그런 말을 하는 엄대협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쩌면 이 녀석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능한 놈 아닐까?

처음에는 좀 못 미더웠는데, 칼덴과 엮인 뒤로 일감을 끊임없이 가져오는 것도 그렇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뒷조사도 나름 제대로 하는 걸 보면 실력이 나쁘지 않은 브로커다.

"문제는 그 마법사가 다른 공방으로 가서 남은 연구를 마무리할 것 같다는 거지.”

"그래도 되나?”

"안될 건 없지. 뭐, 상품 등록을 한 것도 아니고. 이쪽 공방에서는 아직 데이터만 있지 감도 제대로 못 잡고 있으니까."

반태수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걸 나보고 완성하라 이건가?”

“너보고 완성하라는 게 아니라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내가 보기에는 그래.”

"그래서 내가 참여해서 뭘 얻을 수 있는 거지?”

"지분.”

"지분?”

"기여도에 따라서 최대 20%까지 지분을 얻을 수 있어.”

"고작 20%?”

"고작이라니. 나중에 공장에서 물량 뽑아낼 수 있게 되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있잖아.”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공장에서 뽑아낼 수 있을 때까지 몇 년이나 걸리는데?”

"글쎄. 빠르면…… 5년? 아니, 7년?”

반태수가 보기에는 7년 만에 공장으로 보내려면 운이 정말 좋아야 한다.

그나마도 그냥은 안 되고 꾸준히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

마법진의 구조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대량 생산이 가능해질 테니까.

"그리고 꼭 공장에 안 보내도 공방에서 생산해서 파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득을 볼 수 있어. 제대로 된 마도구 하나에 얼마나 하는지 알아?"

"수십억이라며.”

“맞아. 그러니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아?”

반태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돈이라…….'

아무리 이면세계라지만 돈이 많아서 나쁠 건 없다. 그리고 반태수에게는 당장 돈을 벌 수단이 하나 있다.

지구에서 만든 커피, 여기에서라고 못 만들 이유가 없지 않은가.

슬슬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으니 마침 시기도 좋다.

반태수가 엄대협을 보며 물었다.

"너, 카페 한 번 해볼 생각 없어?”

“뭐?”

엄대협이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지금 이놈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야, 그냥 하기 싫으면 싫다고 해. 말도 안 되는 카페 얘기 같은 걸 왜 해?”

"아니, 그것도 할게. 이쪽 마도구 연구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궁금하긴 하니까.”

"이쪽?”

"나도 나름 마도구 좀 만들 줄 아는데, 이건 나 혼자서 공부하고 개발한 방식이라서.”

엄대협이 히죽 웃었다.

"그렇다면야 아주 좋은 선택이지. 이 공방, 규모에 비해서 실력이 상당하거든. 거쳐 간 마법사도 제법 많아."

그러니 데이터와 노하우도 많이 쌓였을 것이다.

물론 그걸 빼먹는 건 반태수의 역량에 달린 일이지만.

"그럼 한다고 한다?”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너도 카페 생각해 보고.”

"아이씨, 브로커가 무슨 카페야. 난 영업 뛰느라 바쁘다고!”

"왜? 제법 어울릴 것 같은데.”

"아오, 안 해! 안 한다고!”

반태수가 씨익 웃었다.

"진짜 안 해?”

"안 해!”

"나중에 후회해도 모른다?”

엄대협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후회 안 한다고 소리치려다가 말이 쏙 들어갔다.

왠지 안 한다고 하면 손해 볼 것 같은 이 기묘하고 더러운 기분은 뭘까?

"왜 대 답이 없어? 그럼 할 거야?”

엄대협이 조금 더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안 해."

지금이 카페나 할 때인가. 하나라도 더 의뢰를 받아낼 때지. 이제 더 이상 미끼 쪽에는 관심도 없었다.

안 그래도 지난 번 벨리온 길드의 의뢰 이후 시장이 흐트러져서 먹을 것도 많이 줄어들었다.

당시 엄대협이 데려간 자들 중, 브렛이라는 자가 미끼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구축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미끼들을 끌어 모았다.

지금 다른 브로커들은 다들 죽겠다고 난리다. 어쩌다 연락해보면 다른 일거리 없는지 묻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서 이젠 연락도 다 끊어버렸다.

어차피 선의의 경쟁자도 아니었고 틈만 나면 뒤통수 칠 궁리만 하는 놈들인지라 미련 없이 잘라버렸다.

"난 이제 너한테 다 걸었어. 내가 무슨 짓을 해서든 의뢰를 받아올 테니까, 넌 해결만 해. 우리 같이 위로 올라가 보자.”

반태수가 씨익 웃었다.

"너 하는 거 봐서.”

"아오, 얄미워.”

하지만 어쩌겠는가. 참아야지.

"공방에는 언제 간다고 할까?"

반태수는 잠시 고민했다. 안 그래도 포탈에 대해 즘 더 조사하려다가 유적이라는 말에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며칠 정도는 포탈을 들락거리면서 확인을 해봐야 할 듯했다.

"넉넉하게 일주일?”

"너무 길지 않아?”

엄대협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 정도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그럼 일주일 후에 방문한다고 한다?”

"오케이.”

반태수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왜? 어디 가려고?”

“집에 좀 다녀올게.”

"집? 너 집도 있었어?”

반태수는 그저 씨익 웃을 뿐, 더 이상 대답해 주지 않고 호텔을 나섰다.

엄대협은 멍하니 반태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후다닥 따라나섰다.

하지만 이미 반태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와…… 마법사는 마법사네.”

엄대협은 호텔 입구에서 그렇게 한동안 두리번거리며 서 있었다.

"시발, 시간 안에 돌아오겠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다시 호텔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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