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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43화 (43/351)

43화.  < 유적 탐사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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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오오오오.

갑각 트롤의 입에서 나직한 울림과 함께 냉기가 흘러나왔다.

주변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

정확히 능력자들이 갑각 트롤 10미터 앞을 지나간 순간의 일이었다.

마치 스위치가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갑각 트롤의 몸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덩치가 꿈틀거리는 걸 보니 동작이 느릴 것 같았는데,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훨씬 민첩했다.

갑각 트롤이 주먹을 꽉 쥐더니 팔을 한껏 뒤로 젖혔다. 그리고 몸에 있는 코어들로부터 마력이 쭉쭉 흘러가 주먹에 모였다.

콰우우우우!

갑각 트롤이 젖혔던 팔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주먹을 내질렀다.

“막아!”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앞에 나섰던 능력자들 중 일부가 마력을 뿜어냈다.

방어 속성을 가진 능력자들이었다. 다섯 겹의 투명한 막이 전면에 쫙 펼쳐졌다.

꽈아아앙!

순식간에 네 겹의 막이 부서졌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막이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그 사이 갑각 트롤은 두 번째 공격을 준비 중이었다. 어느새 팔이 한껏 뒤로 젖혀진 상태였고, 네 개의 막이 부서짐과 거의 동시에 주먹을 내질렀다.

능력자들의 안색이 확 굳었다. 하지만 그들은 침착하게 다시 방어막을 펼쳤다.

다시 다섯 겹의 방어막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뒤에서 지켜보던 반태수는 고개를 저으며 미리 준비한 마법을 발동했다.

강력한 마력 역장이 방어막 앞에 펼쳐졌다. 흡수의 속성까지 담고.

콰우우우!

꽈과광!

놀랍게도 갑각 트롤의 두 번째 공격은 첫 번째보다 훨씬 강력했다.

흡수 속성까지 담긴 반태수의 실드를 그대로 뚫어버린 것도 모자라 다섯 겹의 새로운 방어막과 냉기에 덮인 기존 방어막까지 모조리 부숴 버린 것이다.

"저대로 두면 안 된다! 방어 팀 계속 방어막 만들고! 교란 팀 어그로 시작해! 공격 팀은 기회 되는 대로 화력 퍼붓고!”

이마키르가 다급히 지시했다.

그를 비롯해 모든 능력자들이 당황했다. 그동안 상대했던 갑각 트롤들과 달랐다. 훨씬 강력한 놈이었다.

갑각 트롤이 또 주먹을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그때 갑각 트롤의 목을 향해 전격이 쏟아졌다.

꽈르릉!

헬뮤트 보겔이 마법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갑각 트롤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콰우우우!

냉기와 관통 속성이 담긴 마력 덩어리가 또 한 차례 빠르게 날아왔다.

방어팀은 할 수 있는 역량을 다해 실드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그저 마력을 뿜어내기만 하면 실드가 만들어지기에 평소에는 굉장히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마력을 쏟아서 마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 사이 교란 팀이 갑각 트롤 주위를 돌며 깔짝깔짝 찌르듯 공격하며 시선을 끌었다.

갑각 트롤은 그런 교란 팀을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주먹을 뒤로 젖혔다.

그 순간, 공격 팀의 공격이 쏟아졌다.

불, 전격, 빙결, 강타 속성의 마력이 갑각 트롤의 몸을 두드렸다.

그리고 검을 든 능력자 몇 명이 갑각 트롤에게 바짝 접근해 급소를 찔렀다.

쩌저저정!

갑각에 살짝 흠집을 내고 튕겨났다.

능력자들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빠졌다가 다시 기회를 노리고 들어가 검을 내지르는 일을 반복했다.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반태수가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오스윈 프리든을 쳐다봤다.

헬뮤트 보겔은 다시 마법을 준비 중이었는데, 솔직히 별로 기대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또 전격 마법을 펼치려는 것 같은데, 갑각 트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을 공격이었다.

그나마도 다른 능력자들이 싸우는 데 방해가 되면 안 되기에 함부로 쓸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헬뮤트 보겔은 어떻게든 마법을 쓸 틈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오스윈 프리든은 그저 싸움을 지켜보기만 할 뿐,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그저 관찰만 하고 있는 듯했다.

오스윈 프리든의 시선은 한동안 헬뮤트 보겔에게 꽂혀 있다가 이내 반태수에게 옮겨졌다.

"반 마법사님은 저들을 돕지 않으실 겁니까?”

마치 남 일처럼 말하는 오스윈 프리든의 모습을 보니, 왜 이마키르가 5대 가문에서 나온 마법사에 대한 얘기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돕긴 해야 하는데……. 일단 상황을 좀 보죠.”

오스윈 프리든은 반태수의 말에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특이하신 분이로군요. 마법사이면서 능력자처럼 마력을 흩어 놓은 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뭐…… 능력자랑은 좀 달라보이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괜찮은 방법입니다. 코어를 확인하기가 정말 어려우니까요.”

오스윈 프리든은 확실히 지금까지 본 다른 마법사들과는 달랐다.

뭐가 다른지 확인하려면 영역화로 그의 마력을 살펴봐야 하는데, 아직 그의 몸을 두른 마력 차단을 해결하지 못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튕겨나는 족족 계속 새로운 마력을 보내는데도 오스윈 프리든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 줄도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태수는 다시 시선을 전장을 돌렸다.

전투 상황은 팽팽했다. 다만 갑각 트롤은 아직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주먹을 휘두르고 가끔 발을 차올리기만 했다.

갑각 트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다.

아까 보니까 기동력도 만만치 않을 것 같던데 말이다.

반태수는 일단 전투를 빨리 끝내기로 했다. 유적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데 초입에서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끌고 힘을 낭비하면 곤란했다.

진짜 자신의 코어를 쓸 생각은 없었다. 바로 옆에서 오스윈 프리든이 눈으로 광선이라도 쓸 것처럼 켜보고 있는데 굳이 그걸 써서 뭐 하겠는가.

이면세계의 마력에서 마력의 실을 쭉쭉 뽑아냈다.

지금까지 본 마법사들은 실 한 가닥으로 마법진 하나를 온전히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까지 따라할 생각은 없었다. 일단 너무 귀찮았다.

지난 번 루델 아센과의 마법 대결에서 상대의 마법진에 개입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뒤로 자체적으로 쓰는 마법에 대한 보안도 철저히 하는 중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번거로웠다. 그러니 다른 자잘한 건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빠르게 마법진을 그렸다. 순식간에 다섯 개의 마법진이 연이어 나타났다.

스무 명에 가까운 능력자들이 갑각 트롤에 다가가 싸우고 있지만, 술식만 정확히 계산하면 조준이 틀릴 일은 없다.

게다가 갑각 트롤은 지금 제자리에 서서 싸우고 있었다.

그래도 먼저 해야 할 건, 코어 때문에 강화된 육체를 끌어 내리는 일이었다.

지금 만든 다섯 개의 마법진은 전부 내구력 약화였다.

갑각 트롤이 가진 코어 중 하나가 충격을 흘리는 마력을 온몸에 흩어놨기에 그걸 해소하려면 용량 이상의 힘을 투여해야 한다.

좀 더 기술적으로 그걸 방해하는 마법을 만들 수도 있지만, 아직 연구가 덜 됐다.

솔직히 프로스틴 같은 능력자가 그리 흔하지 않을 거라 여겼기에 뒤로 미뤄두었는데, 이렇게 바로, 그것도 마수가 그 능력을 가지고 나타날 줄은 몰랐다.

샤아아아.

다섯 개의 내구력 약화가 중첩되어 갑각 트롤의 몸을 덮쳤다.

세 개의 마법이 갑각 트롤의 몸에 있는 마력을 타고 뒤로 흘러갔다. 하지만 네 번째부터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네 번째 마법의 절반을 뒤로 흘리고 그 다음부터는 전부 육체 곳곳에 쐐기처럼 파고들어 충격이 들어갈 길을 다졌다.

다섯 개의 마법을 발동하자마자 준비한 세 개의 마법이 동시에 발동했다.

꽈앙! 꽈앙! 꽈앙!

세 번의 충격이 갑각 트롤을 덮쳤다. 그 충격이 내구력 약화 마법을 타고 갑각 트롤의 내부를 휘저었다.

그어어어어!

갑각 트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더욱 강력한 냉기를 내뿜었다.

반태수는 계속해서 마법을 준비해 차례로 발동했다.

눈을 가리거나 소리를 이용해 청각이나 균형을 흔드는 마법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구력 약화를 이용하기로 했다.

거기에 더불어 관절 쪽에 빙결 마법을 이용해 움직임을 제한하는 정도면 충분하리라.

반태수는 빠르게 술식을 계산했다. 팔다리를 휘것는 갑각 트롤의 팔꿈치와 손목, 무릎과 발목을 노리고 여덟 개의 마법진을 만들었다.

위치는 미리 계산했으니 타이밍에 맞춰 마법을 발동하기만 하면 된다.

반태수는 잠시 갑각 트롤의 움직임을 보다가 타이밍을 맞춰 마법을 하나씩 발동했다.

콰작! 콰작! 콰작! 콰작!

먼저 무릎과 발목이 얼어붙었다. 그냥 겉이 얼어붙은 것이 아니라 내구력 약화를 통해 관절 내부로 스며든 마력이 주변을 꽁꽁 얼려버렸다.

콰작! 콰작!

왼쪽 팔의 팔꿈치와 손목이 얼어붙었다.

콰작! 콰작!

이번엔 오른쪽 이었다.

관절이 삐걱거리니 갑각 트롤의 공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뒤로는 능력자들 공격이 거의 일방적으로 전개되었다.

가끔 헬뮤트 보겔의 마법이 갑각 트롤을 때렸다. 처음과 달리 전격 마법이 내부를 구워 버릴 정도로 잘 먹혔다. 내구력 약화 때문이었다.

이내 갑각 트롤이 쓰러졌다.

"대단하시군요.”

트롤이 쓰러지자마자 오스윈 프리든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 변종 갑각 트롤은 유적에 등장하는 마수 중에서 상대하기가 극히 까다로운 놈인데 이렇게 간단히!”

일반적인 갑각 트롤과 다르다는 걸 오스윈 프리든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한 마디 조언조차 해주지 않다니.

아무튼 반태수는 슬찍 한 발 뒤로 뺐다.

"다들 능력이 대단하시네요.”

특히 이마키르의 활약이 대단했다. 그는 모든 역할을 했다. 갑각 트롤의 공격을 분산해서 받아내기도 하고, 신경을 긁어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빈틈을 파고드는 능력이 출중했다.

"제가 저들을 말하는 게 아님을 아시지 않습니까.”

오스윈 프리든이 빙긋 웃었다.

“그나저나 저들이 반 마법사님의 활약을 제대로 알고 있을지 궁금하군요. 워낙 드러나지 않는 방식의 마법들만 쓰셔서……."

"지금 그게 뭐 중요하겠습니까. 유적을 탐사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거야 그렇지만…… 나중에 분쟁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오스윈 프리든과 얘기하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다들 쓰러진 갑각 트롤 근처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반태수가 다가가자 이마키르가 말했다.

"일단 드론을 띄울 테니 여기서 잠시 쉬도록 하죠.”

이마키르는 들고 온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드론을 꺼냈다.

허공에 떠오른 드론이 유적 안으로 쭉 날아갔다. 이마키르의 스마트폰에 드론이 촬영한 영상이 떠올랐다.

화면을 확인하던 이마키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굉장히 까다로운 유적이로군요.”

이마키르 옆으로 슬쩍 다가간 오스뮌 프리든이 화면을 확인했다.

“갑각 트롤이 또 있군요.”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유적 통로 중간에 넓은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 무려 다섯 마리의 갑각 트롤이 서 있었다.

드론은 거기서부터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저 사이로 지나가다간 갑각 트롤에게 잡혀 박살 날 테니까.

"유적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감을 못 잡겠군요. 저런 식이면 이 인원으로는 더 이상 탐사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갑각 트롤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한꺼번에 다섯 마리와 싸우는 건 불가능했다.

이마키르의 말에 오스윈 프리든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유적 탐사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전혀 아쉬울 거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쉬덴 길드가 못 하겠다면 다른 자들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5대 가문 쪽과 연락을 해서 절차를 밟아야겠지만, 그건 금방이다. 오늘 포기하고 나가더라도 이틀 이내에 다시 유적 탐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마키르는 잠깐 고민하더니 일행을 바라봤다. 다들 심각한 표정이었다.

힘이 부친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유적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방어가 철저한 유적이라면 얻을 수 있는 유물 또한 보통이 아닐 것이다.

고민하는 이마키르에게 오스윈 프리든이 말했다.

"일단 저 공간 앞까지만 가보죠. 가면서 좀 더 고민해보고 말입니다.”

"그게 낫겠군요.”

탐사대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반태수는 가면서 정보 영역화 패턴의 폭을 좁혀 앞으로 보냈다.

폭을 좁게 한정하면 원래의 범위보다 훨씬 먼 곳까지 정보수집이 가능해진다.

반태수의 영역화 패턴이 다섯 갑각 트롤이 있는 곳을 지나쳐 통로를 따라 쭉쭉 나아갔다.

유적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본 것이다.

‘이거 정말 만만치 않은데?’

다섯 마리를 지나치면 다음에는 세 마리가 나온다. 한데 그 세 마리는 평범한 갑각 트롤이 아니었다. 덩치가 1.5배쯤 되고, 품은 마력의 양도 엄청났다.

그 세 마리 뒤에 굳게 닫힌 문이 있었다.

반태수가 확인한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영역화의 한계는 아직 멀었는데, 문에 뭘 해놓은 건지 마력 패턴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튕겨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막혔어.’

문을 꼭 확인하고 싶었기에, 반태수도 나름대로 고민을 시작했다. 과연 자신이 저 갑각 트롤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지, 또 예상했던 것보다 힘을 많이 드러내도 괜찮은 건지.

그러는 사이 탐사대가 다섯 마리의 갑각 트롤이 있는 공동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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