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 유적 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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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아쉬덴 길드 근처에 있는 호텔에 방을 잡았다. 엄대협도 마찬가지였다.
엄대협은 이번엔 당하지 않겠다는 듯 카드키를 정확히 나누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번엔 자신의 방이 어디인지 반태수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지난번에 당한 걸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반태수는 방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복기했다.
오늘 아쉬덴 길드에서 경험한 정보 차단 마법은 반태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자신의 영역화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마법진을 이용해 넓은 범위를 마력 패턴으로 촘촘히 장악하는 것도 그렇고, 미리 대응 코드를 넣어서 패턴이 장악 당했을 때, 그걸 반전하는 것도 그랬다.
아마 대단한 수준의 마법사가 설치한 마법진일 것이다.
건물을 모두 장악했을 때에도 그 마법진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마법진을 감추는 은신까지 부여되어 있었음이 분명했다.
직접 마법진을 분석했다면 아마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았으리라.
그래도 아쉽지는 않았다. 오늘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걸 계속 연구해 발전시키면, 결국 그 마법진의 술식에 닿을 테니까.
아무튼 두뇌 하나를 영역화 연구에 할당했다. 이제 지속적으로 영역화를 발전시켜서 나중에는 정보뿐 아니라 다른 일도 가능하도록 만들 것이다.
반태수는 영역화는 그렇게 정리하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여기에 와서 하고 싶었던 일 하나가 떠오른 것이다.
이 스마트폰은 마법사 전용이었다. 그리고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에는 마법사 전용 웹에 들어갈 수 있는 어플이 설치되어 있었다.
반태수는 바로 어플을 터치했다.
화면이 새까매지더니 마법진 하나가 떠올랐다. 한데 척 보기에도 완성되지 않은 마법진이었다.
심지어 마법진은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따로 의념을 불어넣을 필요는 없는 듯했다. 마법진 자체는 이미 완성되어 있고, 빠진 부분만 마력으로 채우면 자동으로 발동되는 형식이었다.
그저 떠오른 마법진을 한 번 봤을 뿐인데 자동으로 거기까지 분석이 되었다.
반태수는 새삼 자신이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며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굳이 자신의 코어에서 뽑을 필요는 없었기에 몸에 두른 마력을 이용했다.
그리고 스마트폰 위에 마법진을 완성시키는 마력의 선을 이었다.
그러자 스마트폰 내에서 마력 반응이 일어나더니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 중간에 검색창이 떴고, 검색창 위아래로 몇 가지 링크가 보였다.
링크는 마법사 전용 게시판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많은 글들이 보였다.
자유롭게 아무 말이나 하는 게시판도 있었고, 마법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게시판도 있었다.
마법에 대한 논의를 하는 글 몇 개를 확인해 봤는데, 글이건 댓글이건 워낙 두루뭉술하고 빙빙 돌려서 핵심 마법 이론은 대부분 빠져 있었다.
몇 개의 게시판을 더 확인해봤다. 글도 잘 골라서 몇 개 읽어봤고, 게시판 내에서 혹시 있을지도 몰라 몇 가지 주제로 검색도 해봤다.
일단 유적에 대한 검색을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글이 많지 않았다.
나온 글도 대부분 유적 탐사를 했다는 정도고 자세한 경험담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사진이나 동영상도 없었고.
아무래도 유적에 대한 건 검열을 하거나 마법사들 자체적으로 쉬쉬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듯했다.
그래서 고대문자로 검색을 해봤다.
고대문자 역시 유적과 마찬가지였다. 고대문자를 언급하는 글은 여러 개 있는데, 다들 알맹이는 빠져 있었다.
대부분 잘난 척 하는 글이었다. 내가 어디서 고대문자를 해석했는데,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하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자랑하는 글 말이다.
그런 식으로 몇 개의 게시판을 둘러보다가 화면 가장 아래에 있는 링크로 들어갔다.
한데 들어갈 수가 없었다. 등급이 모자란다는 경고만 뜨고.
"등급은 어떻게 올려야 하는 거야?”
여기저기 들어가 또 검색을 하고 글도 읽어보고 하다 보니 대충 등급에 대한 걸 알 수 있었다.
이곳 마법사 전용 웹은 등급을 올리지 않으면 온전히 누릴 수가 없었다.
여기 있는 게시판들은 말 그대로 웹의 일부일 뿐이고, 다른 정보를 더 알고 싶으면 다른 사이트로 가야 한다.
한데 다른 사이트로 가려면 주소를 알아야 하는데, 주소를 얻는 것 자체가 등급에 걸려 있었다.
등급에 따라 갈 수 있는 사이트의 수준도 달랐고, 얻을 수 있는 정보의 깊이도 달랐다.
등급을 올리기 가장 간단한 방법은 게시판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새 글을 작성하거나 댓글을 쓰면 약간씩 포인트를 벌고 그게 일정 이상 모이면 등급이 올라간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 올릴 수 있는 등급은 한계가 있었다.
나중에는 필요한 포인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게시판 활동만으로 포인트를 모두 모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도 했고.
두 번째 방법은 마법사 전용 게시판에서 의뢰를 받아 해결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다양한 의뢰가 넘쳐났고, 그걸 잘 골라서 이행하고 인증을 받으면 많은 양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의뢰를 완료한 횟수 자체가 새로운 포인트 역할을 해서 게시판 활동으로 올리지 못하는 등급으로 넘어갈 때 일정량 이상이 필요했다.
세 번째 방법은 새로운 마법 지식을 공개하는 것이다. 가장 막대한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가장 드물었다.
자신이 연구해서 새로 정립한 마법지식을 쉽게 공개할 마법사가 어디 있겠는가.
마지막 방법은 도저히 풀지 못해 도움을 요청한 마법사들의 연구를 도와주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마법사들이 자신의 연구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고, 여기 매달리는 마법사들도 제법 많았다.
일종의 연구 교류였다.
하지만 마법사들의 특성 상, 연구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개하지 않기에 생각보다 도움을 주기 어려웠다.
그래도 많은 마법사들이 여기 참여했다. 뭔가 영감을 얻기 위함도 있고, 혹시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을 여기서 찾아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 들어갈 수 있는 게시판은 자유게시판이랑 의뢰게시판, 그리고 1차 마법 논의 게시판, 세 개뿐이네.”
반태수는 일단 자유게시판에 아무 글이나 하나 써봤다. 글 작성이 가능한지 확인한 것이다.
내용은 대충 처음 접속한 마법사라는 소개 정도였다. 물론 이름을 비롯한 개인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글을 올림과 동시에 약간의 포인트가 올라간 걸 확인한 반태수는 일단 거기서 나왔다.
꾸준히 이용해서 포인트를 모아 등급부터 올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법사 전용 웹에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정보를 습득할 창구 하나를 확보했다는 정도의 의미만 두었다.
웹을 닫은 반태수는 스마트폰을 협탁 위에 올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마법 연구든 뭐든 당장은 머릿속으로만 진행하기 때문에 자세는 상관이 없었다.
이러다가 잠들 수도 있지만, 반태수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이렇게 누워서 연구를 하다가 잠들기로 했다.
물론 두뇌 하나는 그 와중에도 깨워둬야 한다. 이면세계의 마력을 몸에 잡아두어야 하니까.
‘슬슬 이것도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겠네.’
언제까지 두뇌 하나를 여기에 할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앞으로는 훨씬 위험한 일이 많아질 텐데.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서서히 수마가 찾아왔다.
***
유적 탐사 당일, 반태수는 아쉬덴 길드 로비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먼저 온 참여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사람은 아쉬덴 길드의 마스터인 아마키르였다.
아마키르는 반태수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인사했다.
“일찍 오셨군요.”
반태수는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일찍 온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안녕하십니까.”
얼른 아마키르에게 인사를 하자, 그가 먼저 온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열 명쯤 있었는데, 솔직히 이름을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억은 다 해뒀다.
잠시 후, 나머지 사람들도 속속 도착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법사가 한 명 나타났다.
아마키르가 옆에서 얼른 말했다.
“우리 길드 소속 마법사, 헬뮤트 보겔입니다.”
헬뮤트 보겔은 아마키르를 보자마자 걷는 속도를 높여서 다가왔다.
"마스터께서 이렇게 일찍 나오시면 제가 늦은 것처럼 보이잖습니까.”
헬뮤트 보겔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했다. 마법사 치고는 별로 까탈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이 친구가 이번에 함께 하기로 한 마법사입니까?”
아마키르가 대답하기 전에 반태수가 먼저 나서서 손을 내밀었다.
"맞습니다. 반이라고 합니다.”
헬뮤트 보겔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로 마법사 맞습니까?”
마법사는 성을 가질 수 있는 존재였다. 이 시대에 성을 가지려면, 5대 가문으로부터 인정받아 귀족이 되거나, 아니면 마법사가 되어야 한다.
한데 마법사가 자기소개를 할 때 성을 붙이지 않았다는 건, 감추고 싶거나 아직 성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시 확인한 것이다.
"아닌 것 같습니까?”
반태수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헬뮤트 보겔이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 그런 건 아닙니다. 성을 소개하지 않는 마법사는 처음이어서 좀 신기했습니다.”
반태수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항이니까.
‘그러고 보니 그동안 마법사들은 전부 성이 있었네.’
속으로 엄대협을 좀 씹었다. 이런 건 미리 얘기해 줬어야 할 거 아닌가.
그리고 지금 이름이 성인데 무슨 성을 또 붙인단 말인가.
‘귀찮게.’
성이야 아무거나 붙여도 된다. 하지만 맘대로 해도 되는지, 아니면 뭔가 공인을 받고 성을 받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니 섣불리 변경하는 것보다는 이대로 가는 게 나을 거라 판단했다.
반태수가 거기에 대해 대꾸하지 않자, 헬뮤트 보겔은 더 이상 그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마법사의 사연은 캐지 않는 것이 낫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려는 찰나, 정문을 열고 새로운 사람이 도착했다. 그가 이번 유적 탐사대의 마지막 사람이었다.
헬뮤트 보겔이 잘 됐다는 듯 말했다.
“5대 가문에서 오신 분입니다.”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두려움과 경외가 깃들어 있었다. 아마키르와는 많이 다른 반응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건 아니지만, 아마키르는 분명히 저 마법사를 껄끄러워 했다. 또, 약간의 반발심도 가진 듯했다.
'같은 마법사라서 그런 건가?’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습관적으로 영역화를 펼쳤다.
지난번 이곳을 방문한 이후 받은 영감을 통해 꾸준히 영역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기에 그때보다 좀 더 성능이 개량되었다.
그래서 정보차단 마법이 작동하고 있음에도 반경 10미터 정도에 영역화를 펼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먼저 옆에 있는 헬뮤트 보겔의 마력이 영역에 들어왔다.
그는 무려 다섯 개의 원통으로 이루어진 코어를 가진, 5서클 마법사였다.
확실히 원통의 수가 늘어나니 코어의 마력이 조밀해졌다.
직접 마법을 쓰는 걸 확인해야겠지만, 아마 마력의 실도 훨씬 단단할 것이다. 마력 컨트롤 능력도 루델 아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할 테고.
핼뮤트 보겔의 정보를 확인했을 때, 정보 영역이 5대 가문의 마법사를 감쌌다.
‘어라? 이것 봐라?’
5대 가문 마법사의 몸을 마력이 감싸고돌면서 영역화의 마력 패턴을 튕겨냈다.
그의 시선이 곧장 반태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방향을 틀어 반태수에게 똑바로 걸어갔다.
반태수는 그가 혹시 마력을 보내는지 세심히 살폈다. 하지만 그는 마력을 보내지 않았다.
어차피 이 건물 안에서는 정보 습득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반태수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오스윈 프리든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태수는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반입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주변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지금까지 오스윈 프리든이 저렇게 먼저 나서서 인사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게다가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까지 깃들어 있지 않은가.
여기 모인 사람들 중 오스윈 프리든이 웃는 모습을 본 건 고작 두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미소가 아니라 비웃음이나 냉소에 더 가까웠다.
오스윈 프리든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반태수에게 꽂혀 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꼭 초대하고 싶습니다. 우리 가문에 한 번 방문해 주시겠습니까?”
반태수의 두뇌 중 하나가 맹렬히 돌아갔다. 오스윈 프리든의 초대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한 것이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러겠습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궁금했다.
반태수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걸 보면 내가 확실히 변하긴 변했어.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아니, 예전이었다면 그러겠다고 한 다음 도망쳤을 것이다. 얼굴을 바꾸고 엄대협도 버리고 말이다.
‘뭐, 지금도 아직 늦은 건 아니지.’
일단 지금은 코앞으로 다가온 유적 탐사에 집중해야 한다.
오스윈 프리든이 주위를 슥 둘러보며 말했다.
"슬슬 출발하죠.”
마치 그가 이번 탐사를 이끄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스무 명에 달하는 유적 탐사대가 아쉬덴 길드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