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아쉬덴 길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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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키르는 이번 유적 탐사의 총 책임자였다.
유적 탐사에는 적어도 세 명의 마법사가 동행해야 한다.
이건 아마키르나 아쉬덴 길드가 정한 규칙이 아니라, 5대 가문이 정한 법이었다.
이유는 아마키르도 모른다. 5대 가문에서 그런 법을 정할 때, 이유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그 세 명의 마법사 중에는 반드시 5대 가문에서 보낸 마법사가 포함되어 있어야만 했다.
원래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쉬덴 길드에는 총 세 명의 마법사가 있었으니까.
문제는 두 명의 마법사가 의뢰 때문에 다른 도시에 가 있다는 것이었다.
한 명은 5대 가문에서 보내주니 마법사를 한 명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것도 그냥 아무 마법사나 데리고 와선 안 된다. 최소한의 수준은 넘어야 한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그런 마법사를 쉽게 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마키르는 점점 초조해졌다. 유적 탐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이번 일을 포기하면 다음에 또 언제 기회를 얻을지 기약할 수 없다.
그때 새로 등장한 마법사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칼덴 제약과 메렌틸 제약의 싸움에 끼어든 마법사인데, 혼자서 메렌틸의 4서클 마법사 루델 아센과 철벽의 프로스틴을 동시에 제압했다고 한다.
그 정도면 소문의 반만 되더라도 충분히 유적 탐사에 참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루델 아센만 이겼다고 한다면 기준 미달인데, 프로스틴은 얘기가 좀 다르다.
그는 마법사가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능력자니까.
그래서 얼른 의뢰를 신청했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하고 나니, 그래도 최소한의 검증은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마침 그쪽에서 이리로 온다고 해서 얼른 자리를 마련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태가 되었다.
아마키르는 처음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을 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둘 다 마법사가 아닌 평범한 능력자였다.
하지만 분명히 마법사가 오기로 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마법사가 능력자로 위장한 것이다. 자신의 마력 코어를 감추기 위해서.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렇게 비효율적인 방법을 쓰는 걸까?
능력자처럼 보이려면 온몸에 마력을 퍼트려야 한다. 마력 코어에서 계속 마법을 뽑아내 온몸에 흩어놓는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마도구의 힘을 빌렸거나.
‘아무래도 마도구겠지.’
궁금했다. 그래서 확인하기로 했고.
방법은 간단했다. 이곳 길드 건물 안에서라면.
건물 전체에 아주 특별한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그 마법을 이용하면 상대의 정보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마력을 움직일 수 있는 코드만 입력하면 된다. 그리고 그 코드는 마도구만 작동하면 간단히 입력할 수 있다.
아마키르는 마도구인 반지를 슬쩍 쓰다듬었다. 그러자 정보를 뽑아내는 특별한 마력이 쭉 뻗어 나갔다.
그리고 보기 좋게 튕겨났다.
거기서부터 진짜 감탄했다. 상대가 이 특별한 마력을 감지했다는 뜻이니까. 이 마력은 상당히 은밀해서 웬만한 감각으로는 결코 알아 차리지 못한다.
아마키르는 계속해서 마력을 보냈다. 이건 결국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자신은 코드를 통해 건물 내의 특별한 마력을 제한 없이 계속 보낼 수 있다.
그걸 튕겨내려면 당연히 마력이 필요하다. 아마 소모량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결국 마력이 고갈되지 않겠는가.
아마키르는 느긋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다가오는 정보 습득의 마력을 계속 튕겨냈다. 솔직히 온종일 이러고 있어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 상대의 마력 운용이 획일적이라 더더욱 그랬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하지는 않았다. 여기에 익숙하게 만든 다음 변칙적인 수를 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을 생각도 없었다.
반태수는 아마키르를 향해 성큼성큼 두 걸음 다가갔다. 그 정도 거리가 정보 영역화가 가능한 최소한이었다.
주변 마력이 영역화의 패턴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영역화가 아마키르를 향해 쭉쭉 뻗어갔다.
건물 내부를 꽉 채우고 있는 정보 차단의 마력을 계속 분석하고 있었기에 영역화를 펼치기가 약간 더 수월해졌다.
더불어 영역화를 통해 주변 마력에 대한 정보도 조금씩 들어왔다.
영역화 패턴이 아마키르에게 스며들었다.
반태수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드디어 정보가 보인다.
이제야 아마키르가 가진 마력이 제대로 보였다. 상당한 양의 마력을 보유한 능력자였다.
마력의 속성도 순식간에 파악했다. 전격과 관통, 그리고 반사와 강화였다.
일단 영역화만 제대로 쓸 수 있으면, 이렇게 정보를 터는 건 아주 간단했다. 상대가 마법사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그나저나 속성이 무려 네 가지라니, 대단하네.’
속성을 네 가지나 가진 능력자는 처음이었다. 물론 저걸 얼마나 자유자재로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지만.
아마키르와 반태수가 서로 마주본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엄대협이 당황했다.
"저…… 아마키르 이사님?”
그제야 아마키르가 시선을 돌려 엄대협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뻗어 나오던 은밀한 마력은 여전했다.
"아, 일단 앉으시죠.”
아마키르는 소파에 앉은 채 그렇게 말하며 맞은 편 소파를 손으로 가리켰다.
엄대협이 반태수의 어깨를 슬쩍 건드리고서 소파로 향했다. 너도 그러고 있지 말고 앉으라는 뜻이다.
반태수는 여전히 영역화를 펼친 채 소파에 앉았다. 상대의 정보를 확인했지만,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반태수는 영역을 고정한 채, 주변 마력의 분석에 두뇌를 하나 더 할당했다.
건물 전체가 마력패턴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패턴을 완벽하게 분석하기만 하면, 역으로 그 패턴들을 자신의 영역화 패턴으로 물들일 수 있었다.
순식간에 건물의 정보망을 장악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건물에 그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면 말이다.
아마키르는 묘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소문으로 듣던 것처럼 대단한 마법사라는 건 잘 알겠습니다.”
엄대협이 히죽 웃었다.
"과찬이십니다. 흐흐흐.”
반태수는 어이없는 눈으로 엄대협을 쳐다봤다. 아니, 왜 자기가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오신 김에 함께 일할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는데, 다들 지금 자리에 없어서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반태수가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한 분만 확인해도 충분합니다. 아주 확실한 분이시네요.”
그 말에 아마키르의 눈이 커졌다.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이 제법 당황한 모양이었다.
"혹시……."
반태수가 빙긋 웃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깐 확인 좀 했습니다. 먼저 시작하신 건 그쪽이지만 실례일까요?”
아마키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허어, 이거 진짜 탐나는군요.”
아마키르의 눈에 탐욕의 빛이 어렸다. 그는 이 건물의 정보 차단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다.
한데 상대는 그걸 다 튕겨내고도 역으로 자신의 마력을 읽어냈다.
“혹시 제 속성도 파악했습니까?”
"네 가지 속성을 가진 분은 처음 봤습니다.”
아마키르는 더 욕심이 났다. 보통은 세 가지로 판단하는 자신의 속성을 전부 파악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이건 5대 가문에서 보내준 마법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속성이었다.
"혹시 우리 길드에 들어올 생각 없습니까? 대우는 최상으로 해드리겠습니다.”
반태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이제부터는 반태수가 하기에 따라, 또 계약 조건을 잘 조율하면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막상 가능해지니 그러기가 싫었다.
당분간은 엄대협을 이용해서 이런 식으로 의뢰를 받아 해결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엄대협이 반태수 옆에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 반태수가 길드에 들어가 버리면 자신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다.
반태수와 함께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미끼 브로커로 돌아가라면 절대 못할 것 같았다.
"아쉽지만 할 수 없죠. 하지만 언제든 문은 열려 있습니다. 상황이 달라지면 꼭 연락 주십시오.”
반태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아마키르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왕 오셨으니 이번 유적 탐사에 관한 얘기를 잠깐 나눠보죠.”
바라던 바였다. 반태수는 눈을 반짝이며 아마키르의 말을 기다렸다.
"혹시 유적 탐사 경험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유적 탐사에 대해 뭔가 들은 얘기는요?”
“그것도 없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른다고 보시면 됩니다.”
반태수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조금도 감출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함께 하기로 했으니 정확한 정보를 줘야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아마키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조사한 바와 일치했으니까.
아쉬덴 길드에서 조사한 반이라는 마법사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실제로 경험 자체는 별로 없었다. 게다가 과거를 거의 캐지 못했다.
과거가 불투명하다는 건 사람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아마키르는 반태수가 도시 밖에서 살았을 가능성까지 상정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긴 있으니까.
아마키르는 그런 생각들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제가 총괄하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지시를 내릴 테니까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군요.”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만, 이번에 참여하는 사람 중에서 5대 가문에서 보낸 마법사가 있습니다.”
5대 가문이라는 말에 반태수의 흥미가 깊어졌다.
"유적 탐사에는 반드시 5대 가문이 공식적으로 보낸 마법사를 포함해야 합니다.”
"그렇군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5대 가문에서 나온 마법사는 감시자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5대 가문이라는 곳이 정말 대단하긴 한 모양이네.’
5대 가문이라는 말을 몇 번 들어보진 못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다.
"조심해야 합니다.”
"예?”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에 반태수는 살짝 놀랐다.
"그자가 오해할 만한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됩니다.”
"오해 할 만한 상황이라는 게 어떤 겁니까?”
"유적에서 발굴한 유물을 함부로 손댄다거나, 유적 내부의 장식이나 기둥, 벽화 등에 손을 대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좀 황당하긴 하군요. 전투 상황에서 마법으로 벽화라도 때리면 문제가 됩니까?”
아마키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시키는 것만 하라고 말씀 드린 겁니다. 그런 상황 자체가 안 나오도록 조율하는 것이 제 일 중 하나니까요.”
반태수는 지금 이 대화를 통해 5대 가문이 얼마나 유적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생각보다 유적의 수가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중요한 유적을 다른 자들의 손에 맡길 리가 없으니까.
5대 가문에서는 마법사 한 명으로 유적 자체를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유물도 전부 5대 가문에서 가져가는 겁니까?”
아마키르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그런 식이면 누가 유적을 탐사하려 하겠습니까.”
물론 아무리 그렇더라도 5대 가문에서 명령을 내리면 따라야겠지만, 5대 가문은 그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지는 않았다.
“5대 가문의 마법사가 참여의 대가로 우선적으로 몇 가지 유물을 가져갑니다. 유물을 전부 발굴한 뒤에는 상황에 따라 유적 자체를 5대 가문이 관리하고요.”
"상황에 따라 관리한다고요?”
"예. 딱히 정해진 건 없지만…… 보통 벽화나 문자가 많은 유적을 관리하는 것 같습니다.”
벽화나 문자라는 말에 반태수의 흥미가 또 치솟았다.
유적에 있는 문자는 지식을 담고 있다. 반태수도 세담으로부터 얻은 문자를 통해 생체조직에 관한 마법적 지식을 얻지 않았던가.
이번에 유적 탐사에 참여한 이유도 바로 그 문자 때문이고. 한데 벽화까지 있다고 하니 더 큰 관심이 생겼다.
그 뒤로 자잘한 대화가 이어졌다. 대부분 이번 유적 탐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보상이라거나 유적의 위치라거나 상태 등등.
그렇게 아마키르와 대화를 하는 사이 반태수의 두뇌 두 개가 맹렬히 일을 해서 이 건물을 장악한 정보 차단 패턴의 분석이 끝났다.
반태수는 씨익 웃으며 그것을 단숨에 반전시켰다.
순식간에 건물 전체의 마력 패턴이 반태수의 영역화 패턴으로 뒤집혔다.
순간 짜릿한 희열과 함께 무수한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건물 전체의 마력을 순간적으로 반태수가 장악한 것이다.
이 안에 얼마나 많은 능력자가 있는지, 또 그들의 수준이 어떤지, 가진 속성이 무엇인지 전부 쏟아져 들어왔다.
또한 이 건물 안에 있는 마도구에 대한 정보까지 싹 들어왔다.
우우우웅!
나직한 진동음이 건물 전체에 울렸다.
아마키르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는 황급히 반지를 쓰다듬었다.
지금까지 계속 시도하고 있던 반태수에 대한 정보 취득이 끊어졌다.
그리고 저런 진동음이 울린다는 건 건물의 보안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내 진동음이 멎었다. 그리고 건물의 보안 체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반태수가 놀랐다.
한순간에 다시 패턴을 반전시킨 것이다. 아마 건물에 부여된 마법에 원래부터 있는 기능이리라.
어쨌든 얻을 건 다 얻었으니 이제 돌아가서 유적 탐사를 준비해야 한다.
반태수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재미있었습니다.”
아마키르는 저 인사가 왠지 단순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반태수와 엄대협이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자리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