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 이 포탈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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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계약하신다고요? 그래도 매장은 한 번 둘러보셔야죠?”
부동산 중개인의 말에 반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어제 가서 대충 봤습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부동산 중개인은 재차 확인했다. 생각보다 월세가 높아서 빠진 지 두 달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매장이었다.
조만간 주인에게 말해 월세를 약간 내릴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떡하니 계약을 원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월세가 좀 세긴 한데,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잘 되면 건너편에 있는 매장도 제가 쓸지 모릅니다. 거기도 조건이 비슷하죠?”
“예. 조건은 똑같습니다. 대칭이라서 매장의 넓이도 모양도 똑같거든요.”
“그럼 아예 거기도 계약하죠.”
부동산 중개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정말입니까?”
2층에 있는 두 매장의 주인은 같다. 그리고 그걸 관리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다.
“오늘 계약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죠?”
“물론입니다. 비어 있으니 지금 당장 공사 시작하셔도 됩니다.”
“그럼 빨리 하죠.”
부동산 중개인이 신 나서 전화기를 들었다.
“바로 주인한테 연락하겠습니다.”
반태수는 그 모습을 보며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제 다 끝났다. 드디어 포탈을 손에 넣은 것이다.
돈이 좀 더 모이면 포탈이 있는 건물 자체를 구입할 생각이었다.
2층만 온전히 쓸 수 있으면 된다.
물론 각종 마법을 이용해 강력한 보안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되니까.
‘그나저나······ 어디로 연결된 포탈이려나.’
부디 크랙톤이거나 아니면 크랙톤과 가까운 도시였으면 좋겠다.
* * *
반태수는 포탈이 있는 곳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면 간단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포탈을 누군가가 발견하면 문제가 생기기에 직접 나섰다.
혼자서 하는 일이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반태수에게는 마력과 마법이라는 이 세상에서는 사기나 다름없는 힘을 갖고 있으니까.
이 매장의 진짜 용도는 포탈을 감추는 것이지만, 겉으로는 반태수의 연구 개발실로 만들 계획이었다.
앞으로 카페 위자드의 새 메뉴를 만들거나 다른 사업에 쓸 아이템을 개발하는 일에 써먹기로 했다.
아무튼 반태수는 포탈이 드러나지 않게 꼼꼼히 포장했다.
일단 포탈이 있는 구석을 아예 가벽으로 막아 버렸다. 그리고 거기에 착각을 일으키는 마법을 부여했다. 착시를 이용한 마법이었다.
그냥 착시만 이용했다면 보는 방향이나 상황에 따라 가벽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겠지만, 거기에 마법이 깃들었기에 그럴 염려는 없었다.
가벽에는 보이지 않는 문도 존재했다. 마법으로 잠가놓았기에 반태수가 아니라면 아무도 열 수 없는 문이었다.
당연히 그 문에도 착시 마법을 걸어 문이라는 위화감 자체를 아예 없애 버렸다.
반태수는 그것만으로도 안심하지 못하고 보안과 관계된 마법을 겹겹이 깔았다.
아무도 포탈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말이다.
당연히 외벽도 신경 썼다. 혹시 외부에서 벽을 부수고 들어오는 경우까지 가정한 것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뒤에 후회하느니 미리 과할 정도로 대비하는 것이 낫다.
혼자서 방을 꾸미는 과정은 참으로 즐거웠다. 이번에는 정말 작정하고 곳곳에 마법을 부여했다. 카페 매장에 마법을 부여할 때와는 달리 위력을 조절할 필요가 없었기에 정말 신 나서 마법을 마구 써댔다.
최근 마법 연구에서 제법 성과를 얻었고, 벽을 넘어서 새로운 경지에 들어선 데다, 몇 차례의 전투 경험을 통해 다양한 깨달음을 얻었기에 예전 카페에 마법을 부여할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반태수는 연구 개발실의 인테리어를 진행하면서도 카페에 꾸준히 출근했다.
이렇게 지구에 있을 때만이라도 카페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줘야 나중에 이서영에게 카페 위자드를 맡길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테니까.
반태수는 최근 자신이 카페에 없더라도 커피 맛에 문제가 안 생기도록 할 방법을 궁리 중이었다.
드립커피에 마력을 인챈트하는 과정 자체를 마법으로 구현해서 언제든 정량의 드립커피를 쓸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다만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니 그건 후순위로 살짝 밀려나 있었다.
그것 말고도 지금 해야 할 일이 수두룩하게 쌓였다.
반태수가 가장 시급하다고 여긴 것은 왜곡의 개량과 얼굴 변형이었다.
언제까지 마스크를 쓰고 활동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마스크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반태수의 튀는 외모는 마스크만으로는 가려지지 않았다.
반태수는 이번에 경지가 올라가면서 네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여겼다.
아마 그게 아니었으면 정말 힘들었으리라.
반태수는 왜곡과 얼굴 변형 중에 얼굴 변형에 더 신경을 썼다.
왜곡은 아직도 두뇌 하나를 할당해야 한다. 그러니 얼굴 변형을 통해 왜곡을 쓰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얼굴 변형은 한 번 마력을 주입해 놓으면 그 마력이 다 사라질 때까지 변형을 유지한다.
지금 반태수가 연구하는 방향대로 결과를 만들어내면 그렇게 된다.
주기적으로 마력을 조금씩 넣어주기만 하면 마치 패시브처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왜곡을 쓰는 것이 꼭 정체를 숨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기에 결국은 개선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신경 쓰는 동안 시간이 차근차근 흘렀고, 연구 개발실의 인테리어가 거의 완성 직전에 이르렀다.
반태수는 인테리어를 마무리 하는 중이었다. 가장 마지막에 손댄 것은 출입문이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도록 조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두꺼운 유리문이었는데, 이걸 부수고 들어올 수도 있으니 내구력 강화를 통해 웬만한 충격으로는 절대 부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다가오기 꺼려지게 만드는 정신 계열 마법을 부여했다.
그밖에도 여러 마법을 부여해 연구 개발실을 철옹성으로 만들었다.
문에만 마법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창문도 잔뜩 강화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누가 보면 필요 이상으로 불안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반태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혹시라도 자신을 의심하는 자들이 나타난다면, 필시 이쪽에 대한 조사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 와 본 다음에는 의심이 더 깊어질 수도 있지만, 포탈만 들키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또한 되도록 여기 온 자들도 의심하지 않도록 몇 가지 수를 써 두었다. 마법을 이용해서.
아무튼 이제 준비가 다 끝났다.
오늘 밤, 드디어 포탈을 넘는다.
* * *
반태수는 포탈을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점검을 했다.
일단 신분증과 스마트폰, 그리고 현금이 가장 중요했다. 은행에서 새로 만든 카드도 잘 챙겼다.
포탈 옆에는 전신거울이 달려 있었다. 반태수는 거울을 보며 외모를 확인했다.
얼굴을 크게 바꾼 건 아니었다. 눈매를 비롯해 얼굴 근육 몇 군데를 손봤다. 그것만으로도 인상이 크게 바뀌었다. 또한 빛나던 외모가 확 죽었다.
그래도 여전히 잘생겼다. 반태수는 굳이 얼굴을 못 생기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구든 이면세계든 잘생긴 외모는 상대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이번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어차피 금방 돌아올 생각이니까.
반태수는 심호흡을 한 차례 했다.
그리고 포탈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 * *
반태수는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 여기가 어느 도시인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크랙톤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크랙톤과 가장 가까운 도시라던 서메롯이어도 괜찮겠지만, 그 역시 가능성이 낮았다.
지난번, 이면세계에 도시가 몇 개나 있느냐고 엄대협에게 물었었다. 엄대협은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저 수천 개쯤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이다.
그만큼 많은 도시 중 한 곳에 무작위로 떨어지는데 원하는 도시에 떨어질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반태수는 큰길로 나가 차분히 주위를 둘러봤다.
“아, 전원을 켜야지.”
길가에 있는 점포들과 도로의 표지판을 확인하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전원부터 켰다.
여기 있는 지도 앱을 이용하면 여기가 어디인지 쉽게 알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의 전원을 켠 다음, 지도 앱을 실행시켰다.
주변 도로와 건물들이 화면 안에 쫙 떠올랐다. 반태수는 화면을 축소시켜 더 넓은 범위를 볼 수 있도록 조작했다.
금세 도시 전체가 스마트폰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도시 위에는 이름이 붉은 색으로 콱 박혀 있었다.
“크랙톤?”
반태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다시 크랙톤에 온 것이다.
“아니, 확률을 뚫고 왔을 리 없지.”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아니, 설사 정말로 그랬다고 해도 한 번쯤 의심을 해야 한다.
벌써 세 번째다. 그렇다면 뭔가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반태수는 차분히 자신이 포탈을 넘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돌이켜봤다.
처음은 아무 생각이 없었고, 두 번째는 어땠을까? 그리고 방금은?
설마 마력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아서? 반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반태수는 어쩌면 포탈을 통과하는 순간 자신이 이곳에 오고 싶다고 강렬히 염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사의 염원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 의념이다.
의념은 마력으로 그린 마법진을 발동하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또한 의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마법의 위력이 천양지차로 달라지기도 한다.
“그럼······ 포탈 하나로 여러 도시를 오갈 수도 있는 걸까?”
만일 방금 한 가정이 맞는다면 그래야 한다.
확인해보고 싶었다.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다른 도시로 가지 못한다면 극악의 확률을 뚫어냈다고 보면 된다.
반태수는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궁금한 건 바로바로 풀어줘야 한다.
만일 다른 도시로 간다면 포탈을 찾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거야 찾으면 된다.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다시 크랙톤으로 돌아와도 되고.
반태수는 바로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한데 그때 전화가 왔다.
화면을 확인해보니 엄대협이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왔는데 전화를 무시하긴 좀 그랬다.
-야, 전화기 좀 켜둬! 왜 전화를 계속 꺼놓는 거야!
“왜?”
-왜긴, 의뢰 때문에 그러지.
“의뢰가 또 들어왔어? 그새?”
-그새고 뭐고 이번 일로 너 좀 유명해졌어.
“잘됐네.”
더 유명해져야 한다. 그래서 최상위 계층의 의뢰까지 받아낼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현재 반태수의 목표는 유적이었다.
유적 탐험에 끼어서 그곳에 있는 고대문자를 확인하는 것이 지금 반태수가 이면세계에서 가진 목표였다.
“그래서 무슨 의뢰인데? 또 칼덴이야?”
-칼덴도 지금 정신없이 바빠. 메렌틸이랑 제대로 한 판 붙으려는 모양이더라고. 나중에는 의뢰를 주겠지만 당장은 아니야.
“그럼 어딘데?”
반태수는 칼덴에 대한 관심을 깨끗이 버렸다.
아마 지난번처럼 죽고 죽이는 싸움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훨씬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싸움이 이어지리라.
시 정부의 눈치도 살펴야 하고.
-영입 요청이 제일 많아. 시의 모든 제약회사로부터 영입 제안이 들어왔어. 안 할 거지?
“당연하지.”
-그럴 줄 알고 미리 거절했다. 잘했지?
“잔말은 그만하고 본론이나 얘기해. 의뢰는?”
엄대협이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반태수가 눈살을 찌푸리고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 찰나, 엄대협이 바로 입을 열었다.
-너 유적에 관심 있다고 했지?
반태수는 한바가지 퍼부어 주려던 욕을 다시 삼켰다.
“관심이야 있지. 그런데 그건 최상위 계층이 다 관리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원래는 그런데 이번에 거기서 딸려 나온 일감이 하나 생긴 모양이야.
“딸려 나온 일감?”
-아쉬덴이라는 길드가 있는데, 모르지?
“그래서?”
-우리 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야. 벨리온 같은 중급 길드랑은 차원이 다른 곳이지. 심지어 다른 도시에 지부도 있을 정도니까.
반태수는 계속 하라는 듯 입을 다물고 가만히 들었다. 아직 이면세계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으니 이런 얘기는 잘 들어둬야 한다.
-거기서 유적 탐사 의뢰를 받았는데, 마침 마법사가 모자란다네? 그쯤 되는 길드면 도시 곳곳에 눈과 귀가 있거든. 칼덴이랑 메렌틸이 어떻게 싸웠는지 들었나봐. 딱 지정해서 의뢰가 들어왔어.
“그래서 내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은?”
-유적 탐사에서 마법사가 하는 일이 뭐 있겠어. 뻔하지.
“그러니까 그 뻔한 게 뭔데?”
-전투 상황 있으면 싸우고, 마법적 함정이나 구조물이 있으면 조사하고. 뭐, 그런 거지.
반태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었다.
“일단 만나자. 너 어디야?”
아무래도 포탈에 대한 실험은 조금 뒤로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