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 포탈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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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가방 하나를 든 채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지난번에는 종로의 인적 없는 골목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다른 곳인 듯했다.
역시 인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서 떨어뜨리는 방식인 모양이었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능력자들이 이면세계를 들락거리면서 한 번도 들키지 않을 리 없었다.
아니, 어쩌면 가끔 증거들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CCTV나 블랙박스 같은 걸 포탈의 마법이 감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주위를 유심히 살폈지만, CCTV나 차량은 없었다. 보는 눈도 없었고.
반태수는 일단 골목에서 나갔다. 큰 도로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집으로 갈 방법을 정할 테니까.
저번처럼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도 괜찮다. 아니면 어플을 이용해 택시를 불러도 되고.
도로를 찾는 건 금방이었다. 도로 표지판을 보니 용산 근처인 모양이었다.
매번 돌아올 때마다 무작위로 떨어지다 보면 서울 곳곳 안 가보는 데가 없게 될 듯했다.
아마 팀 대영 역시 그럴 것이다.
팀 대영을 떠올리니 이번 임무를 함께 했던 일이 생각났다.
당시 잠깐 모습을 드러냈었는데, 혹시 백진희가 자신을 볼까봐 살짝 걱정을 했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유롭게 이기긴 했어도 어쨌든 급박한 전투 상황이었다. 다른 데 눈 돌릴 여유 따위는 없었으리라.
더구나 백진희는 상대 마법사의 화염구에 당할 뻔했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보아하니 마법사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았으니까.
반태수는 스마트폰을 꺼내 어플을 이용해 택시를 불렀다.
문득 이면세계에서 구매한 스마트폰이 떠올라 꺼내봤다.
처음에 엄대협이 만들어준 스마트폰이 아니라, 새 신분을 얻은 다음 그걸 이용해서 자신의 명의로 구매한 스마트폰이었다.
각종 능력자와 마법사가 존재하는 이면세계답게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도 존재했다.
지금 반태수가 들고 있는 것이 바로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이었다.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은 충전을 전기가 아닌 마력으로 하는 폰이었다.
엄대협은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이 있다는 것만 알고,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스마트폰에 대한 건 반태수가 혼자서 파악했다. 별로 어려운 점은 없었다.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마법사라면 말이다.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이 다른 스마트폰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마법사 전용 웹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마법사 전용 웹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제시하는 마법진을 완성해야 한다.
섬세하게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가 아니라면 아예 문도 열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스마트폰 자체에 마력과 관련된 기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싼 값을 하네.”
반태수는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을 확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하나가 무려 2천만 겔이었다.
웬만한 신형 스마트폰이 70만 겔 정도 하니, 무려 30배 가까운 차이가 나는 셈이다.
잠시 이것저것 확인하고 있자, 택시가 도착했다.
반태수는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까 스마트폰을 켰을 때 무수히 쏟아진 알람을 확인할 차례였다.
부재중 통화가 몇 통 있었다. 전부 스팸이었다.
톡과 문자가 제법 많이 쌓였는데, 대부분 카페 아르바이트생에게서 온 것들이었다.
중요한 문자는 아니었고, 그날그날 카페의 분위기나 찾는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백진희에게 온 문자가 여러 개 있었다.
대부분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별 일 없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그때의 일이 계속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잠깐 스마트폰을 뒤적이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지난번과 달리 별로 피곤하지 않았기에 굳이 쉴 필요도 없었다. 아침에 호텔에서 나오기 전에 씻었기에 딱히 또 씻을 필요도 없었고.
별다른 일이 없었으면 아마 카페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할 일이 있었다.
반태수는 가져온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약간의 현금과 이번에 이면세계에서 모아온 마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반태수는 마도구들을 하나씩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롤프 헬턴을 잡고 빼앗은 전리품들, 두 개의 팔찌와 신발, 그리고 지팡이를 나란히 놓았다.
그 옆에 지난번 창고를 습격한 자들에게서 빼앗은 포탈 감지기를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칼덴 제약에서 의뢰 완수의 대가로 준 두 개의 마도구를 놓았다.
총 여섯 개의 마도구였다. 아직 한 번도 살펴보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품들이었다.
게다가 전부 보안 마법까지 걸린 제대로 된 마도구이기도 했다.
반태수의 표정에 기대감이 잔뜩 실렸다. 드디어 이것들을 분석한다고 생각하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반태수는 마지막 마도구를 다시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창밖을 내다봤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마도구를 들여다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날 샜네.”
머리를 어찌나 혹사시켰는지 살짝 현기증이 일었다. 그리고 피로가 물밀듯 밀려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잠을 잘 수는 없었다. 지금 자면 밤낮이 바뀐다.
반태수는 마도구들을 다시 가방에 쏟아 넣은 뒤, 일단 씻었다.
그동안 꽉 막고 있던 벽을 넘어서 그런지 분석이 평소보다 엄청나게 빨랐다.
하지만 그래봐야 아직 멀었다. 포탈은 여전히 분석이 불가능했으니까.
오늘은 카페에 가 있을 예정이었다. 카페에서 의학 서적과 논문을 읽으면서 포탈 감지기에 대한 연구를 병행할 계획이었다.
이제 자신만의 포탈을 찾아야 한다.
다른 도시에 가더라도 괜찮다. 신분증이 있으니 비행기를 이용해 다시 크랙톤으로 가면 되니까.
이면세계의 비행기 요금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쌌다. 그래도 이번에 벌어놓은 돈이 많아서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반태수는 가방에 책과 논문, 노트북, 패드를 담았다.
이제 카페에 갈 시간이다.
* * *
확실히 오랜만이긴 한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서영과 한서현이 환한 표정으로 반겨주었다.
반태수는 빙긋 웃었다.
“고생 많았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네.”
이서영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혹시 매장 새로 내시는 건가요?”
반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다른 사업을 준비 중이야. 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 이것저것 좀 알아보고 있어.”
“아아, 그렇군요.”
이서영이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맡겨주세요. 여긴 제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
반태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아주 든든하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든든했다. 반태수는 나중에 이 카페를 이서영에게 온전히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력이 담긴 드립커피만 꾸준히 공급해주면 사실 반태수는 더 이상 여기 있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하는 일도 별로 없었으니까.
오늘 한 사업을 준비한다는 얘기는 핑계였지만,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카페 말고 몇 가지 사업을 더 추가할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미루지 말고 새 사업을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물론 이면세계를 안정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포탈을 확보한 뒤에 말이다.
‘나만의 포탈이 생기면 수시로 오갈 수 있으니까.’
반태수는 매장 안을 둘러봤다. 손님 중 능력자 비율이 더 올라갔다.
이러다간 능력자들만으로 매장이 꽉 찰지도 모르겠다.
‘매장을 확장해야 하나?’
지금도 매장이 상당히 큰 편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세 배 정도 넓어져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듯했다.
일단 바쁘니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자, 이제 일하자.”
반태수는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 드립커피부터 만들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매장 일을 더 많이 돕기로 했다. 조만간 또 자리를 비워야 할 테니까.
* * *
반태수는 돌아온 뒤 사흘 동안 카페 일에 매진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일을 도왔고, 카페에서 하는 공부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러면서 포탈 감지기에 대한 연구를 빠르게 진행했다.
반태수가 원하는 것은 포탈 감지기의 감지 범위를 넓히는 것이었다.
최소 반경 1킬로미터 정도는 되어야 탐색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아니, 솔직히 1킬로미터도 모자라다. 서울에서 포탈을 찾으려면 반경 10킬로미터 정도는 한 번에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평생 포탈만 찾아 다녀야 할 수도 있었다.
아무튼 사흘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
반경 10킬로미터까지는 아니지만 5킬로미터 정도로 범위를 넓히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그냥 감지기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감지기를 기본으로 거기에 다른 마도구를 덕지덕지 덧붙여서 성능을 끌어냈다.
예전 능력자들을 쫓을 때 썼던 마킹 마법을 이용해 혹시 포탈을 찾으면 그 위치를 반태수의 머릿속에 즉시 표시하도록 개조했다.
반태수는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되자, 작은 백팩에 개조한 포탈 감지기를 넣고 집을 나섰다.
이제부터 서울 어딘가에 있을 포탈을 찾아 나설 시간이었다.
부디 집과 가까운 곳에 포탈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부디 포탈이 있는 곳에 사람이 없기를 바랐다.
‘생각해보니 범위를 넓혀서 좀 위험할 수도 있겠네.’
예전 감지기는 범위가 좁아서 포탈을 찾으면 어떤 식으로든 바로 조치할 수 있다. 가리거나 이동을 통제하거나 해서.
하지만 지금 반태수가 쓰는 건 그게 불가능했다. 일단 포탈이 나타나면 거기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가 없다.
누군가 발견해서 신고할 수도 있고, 아니면 능력자가 발견해 자신들의 조직에 알려 포탈 자체를 먹어치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포탈을 찾아야 한다.
반태수는 집을 나서자마자 바로 감지기를 작동했다.
특수한 마력 파장이 반태수를 중심으로 화악 퍼져 나갔다.
“어?”
반태수는 당황했다. 설마 한 방에 포탈을 찾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 포탈이 있을 줄이야.
마킹 마법이 반태수의 머릿속에 포탈의 위치를 찍었다.
반태수는 빠르게 포탈을 향해 달렸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무리 밤이지만 포탈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에 잘 띌 것이다.
부디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며 더욱 빠르게 달렸다.
머릿속에 선명하게 표시된 포탈의 위치까지 가는 건 정말 금방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반태수에게는 억겁과도 같이 느껴졌다.
‘저 건물이야.’
포탈의 위치가 정확히 저 건물 내부와 일치했다.
5층짜리 건물이었는데, 포탈은 2층에 나타난 듯했다.
1층에 있는 다섯 개의 상가는 전부 영업 중이었고, 2층부터는 불이 들어온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대충 간판을 살펴보니 3층, 4층, 5층은 학원이었고, 2층은 간판이 없었다.
반태수는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건물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았는지라 확인하는 건 금방이었다.
두 개의 매장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있는 복도의 양 끝에 각 매장의 입구가 있었다.
둘 다 유리문이 달려 있는 빈 매장이었다.
그 중 오른쪽 매장에 포탈이 있었다. 매장 한가운데 있는 게 아니라 거의 구석에 있었다. 조금만 위치가 멀어졌으면 건물 밖에 생길 뻔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런 식으로 건물 2층에도 포탈이 생기는 건가?’
지금까지 본 모든 포탈은 땅바닥 바로 위에 있었다. 물론 그래봐야 세 개뿐이긴 하다.
자신도 모르게 선입견이 생긴 모양이었다.
반태수는 매장 입구로 다가갔다. 매장의 문은 잠겨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반태수는 마력을 이용해 잠긴 문을 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포탈 앞에 서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쉽게 포탈을 얻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 정도로 가까운 곳에 포탈이 존재하다니.
반태수는 왜곡으로 포탈을 감췄다. 넉넉하게 공간을 할당해 포탈 때문에 왜곡이 풀리지 않도록 세심히 마법을 펼쳤다.
그동안 왜곡을 약간 개량하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써먹으려면 멀었다.
분명히 누군가 보면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또한 누가 여길 볼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매장은 내일 바로 계약할 테니까.
반태수는 몇 차례 더 왜곡에 손을 대서 최대한 위화감이 안 보이도록 다듬었다.
그리고 매장에서 나와 다시 문을 잠그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 잠자기는 다 틀렸다. 밤새 마법 연구나 하다가 부동산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갈 것이다.
집으로 가는 내내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세차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