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35화 (35/351)

35. < 정리와 깨달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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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루델 아센을 잡자마자, 자리를 떴다.

여기서 더 할 일이 없기도 했고, 남은 일은 엄대협에게 맡기기로 처음부터 얘기가 되어 있었다.

엄대협이 칼덴 제약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전투 현장으로 달려가는 동안, 반태수는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 전투를 통해 얻은 것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 휘발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슬아슬하게 느낌을 잡고 있을 때, 이걸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호텔로 돌아와 방에 틀어박힌 채, 오늘 얻은 것들을 차분히 정리했다.

전투 자체는 굉장히 싱거웠다. 반태수가 한 일은 전격의 파도 두 방으로 적들 대부분을 쓰러뜨린 것, 그리고 실드를 이용해 프로스틴의 접근을 막고 충격파로 프로스틴을 날려 버린 것과 루델 아센과의 마법 대결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단순한 두 번의 전투는 반태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일단 프로스틴의 고유 능력이었던 충격 흘리기를 자신이 최근 개발한 마법인 내구력 강화에 접목시켰다.

현재 반태수가 쓰고 있는 내구력 강화는 마력 파동을 이용해 외부에서 오는 충격을 중화하거나 흡수하고 다시 방출하는 방식이었다.

한데 프로스틴은 온몸에 균일하게 퍼진 마력을 이용해 외부에서 오는 모든 자극을 흘려보내는 방식이었다.

단점은 모든 자극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할 뿐인지라 자극이 몸을 통과한 뒤에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었다.

뒤에 아군이 있으면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그걸 제외하면 효율이 아주 탁월했다. 용량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거야 어떤 방식을 쓰든 마찬가지였다.

반태수의 내구력 강화도 한계가 있었다. 다만 프로스틴의 것보다 가성비가 더 뛰어나기에 한계치가 높았다.

그리고 내구력 강화는 주로 물리적인 충격에 대한 대비인 반면, 충격 흘리기는 마법뿐 아니라 말 그대로 모든 자극을 흘려낼 수 있기에 훨씬 범용적이었다.

반태수는 이미 내구력 강화를 통해 패시브로 마법을 장착하는 법을 연구한 바 있었다.

물론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충격 흘리기는 내구력 강화와 상당 부분이 겹치기에 이번에 한해서는 바로 적용이 가능했다.

일단 온몸에 균일하게 마력이 분포되어 있어야 한다.

내구력 강화를 위해 척추의 중심에 미니 코어를 만들기까지 했는데 내부에 균일하게 마력을 분포하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하면 그동안과 달리 지구에서 반태수를 능력자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지구의 능력자들이 과연 그걸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대비도 좀 해둬야 할 듯했다.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겠지만.’

반태수는 자신이 은둔하며 마법만 연구하지 않는 이상, 결국은 능력자들의 세상에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게 될 거라 여겼다.

그건 포탈과 얽히는 순간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자 했다. 드러나더라도 괜찮을 정도로 힘을 갖춰야 한다.

몸에 균일하게 마력을 분포했고, 그 통제를 척추에 만든 미니 마력 코어에 맡겼다.

어쨌든 둘 다 방어에 관한 것이니 하나의 마법처럼 패시브로 만든 것이다.

지배 코어가 있기에 충격 흘리기는 프로스틴의 것과는 좀 달라졌다.

굳이 충격을 뒤로 흘리지 않고 몸 내부에서 돌려 원하는 방향으로 던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반태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후우우우.”

길게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몸을 푼 다음 침대에 털썩 누웠다.

“딱 5분만 쉬자.”

너무 많은 심력을 쏟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마법사와의 전투에서 얻은 것들도 정리해야 하니까.

“생체조직 연구를 더 빨리 진행해야겠네.”

내구력 강화에 쓴 미니 코어는 셰딤에서 만든 마수들에 쓰인 코어를 응용한 것이었다.

물론 마수가 갖고 있던 코어보다 수준이 몇 단계 위였다.

어설프게 해석해서 간신히 뽑아낸 지식과 완벽하게 이해하고 뽑아낸 지식이 같을 리 없으니까.

게다가 반태수는 그걸 그냥 쓰지 않고 자신만의 연구까지 곁들였으니 수준이 다를 수밖에.

아무튼 생체조직 연구에는 그 외에도 쓸 만한 지식이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아직 코어에 관한 연구도 할 게 많았다.

미니 코어를 더 개량해서 적은 마력으로 효과적인 방어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육체 자체도 더 강화시켜야 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니까.

이면세계에 얼마나 대단한 강자들이 있을지 모른다.

오늘만 해도, 만일 프로스틴이 가진 충격 흘리기의 용량이 훨씬 컸거나, 다른 특이한 능력을 가졌다면 전투에 어떤 변수가 생겼을지 알 수 없다.

잠시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쉬던 반태수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마법사와의 싸움을 복기하고 얻은 것을 정리할 차례였다.

반태수는 상대 마법사의 마법에 개입해서 마법을 변형시켰다.

마법진을 보고 술식을 역산하는 건 상당히 고난이도의 작업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술식 계산 속도가 너무 느려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반태수가 바꾼 술식은 위치에 관한 것이었다.

상대가 지정한 위치를 상대 마법사가 서 있는 위치로 바꾼 것이다.

그 와중에 술식에 계속 변형을 줘서 매번 다른 과정의 술식을 써서 결론을 도출해냈다.

처음에는 될까? 싶어서 해봤는데 잘 되었고, 역으로 자신의 마법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상대 마법사가 마지막에 쓴 방법이 외부 개입을 방어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 된 정답이 아니었다.

좀 더 단단한 방법이 필요했다. 애초에 술식을 계산해 마법진을 그리고 거기에 의념을 불어 넣어 마법을 발현하는 과정 자체가 그리 길지 않기에 그 잠깐의 시간만 벌 수 있으면 된다.

그러니 보안을 강화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반태수가 상대의 마법진에 개입했던 방법은 다른 위상을 이용해 마법진을 구축하는 방식이었다.

즉흥적인 영감을 통해 쓴 방식이었는데, 그동안 꾸준히 수학에 관한 연구를 해왔기에 가능했다.

아마 상대 마법사인 루델 아센은 왜 자신의 마법진에 변화가 없는데 위치가 바뀌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했다. 다른 위상에서 반태수만의 마법진을 만들고, 거기에 의념을 불어넣어 마법진을 발동시켰으니까.

생각해보면 이 방식을 쓰면 다른 마법사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자신만의 위상공간에 마법진을 구축해서 쓰는 방식이니까.

거기까지 정리한 순간, 반태수의 정신세계가 급격히 확장했다.

지금까지 연구한 생체조직, 새로운 위상, 그리고 각종 다양한 마법과 지식이 찰흙처럼 한데 뭉치더니 이리저리 일그러졌다.

뭉쳤다가 흩어지길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정확한 구체가 되어 모였다.

반태수는 눈을 감은 채, 극도의 희열을 만끽했다.

그리고 온몸에서 검은 진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냄새가 워낙 지독해서 반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고작 그걸로 깨달음의 희열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충분히 만끽할 만큼 만끽하고서야 천천히 눈을 떴다.

반태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벽을 또 한 번 넘었다.

“어우, 냄새 역대급이네.”

지금까지 벽을 넘으면서 가끔 이렇게 몸에 있던 불순물이나 독이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이 그 어느 때보다 역한 냄새를 풍겼다.

입고 있던 옷은 아마 버려야 할 듯했다.

‘방 바꿔야지.’

이 방 카드키는 엄대협도 하나 들고 있다. 엄대협의 방 카드키는 필요 없다. 얼마든지 마법으로 문을 열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이 방은 엄대협에게 주고, 엄대협이 자기 몫으로 빌린 방으로 가야겠다.

그 전에 여기서 샤워는 하고.

* * *

엄대협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코를 쥐었다.

“컥! 이게 뭐야!”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똥 냄새도 아니고 하구수 썩는 냄새도 아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취란 악취는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지독한 냄새였다.

손으로 코를 쥐어도 냄새를 막을 수 없었다.

“어억! 우웩!”

엄대협은 헛구역질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반태수를 찾기 위함이었다.

“시발,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둘러봐도 반태수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까지 확인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창문은 전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럼에도 이 정도 냄새가 난다면 원래는 얼마나 대단했단 말인가.

엄대협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 인상을 확 썼다.

“이 시발, 설마!”

엄대협은 도망치듯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혹시나 해서 따로 빌려둔 방이었다.

카드키로 잠금을 풀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엄대협은 수건 한 장만 허리춤에 걸친 채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반태수를 볼 수 있었다.

반태수가 엄대협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 왔어? 가서 옷 좀 사다줘.”

엄대협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 * *

새 옷으로 갈아입은 반태수는 여전히 어이없는 표정과 눈빛인 엄대협을 가만히 쳐다봤다.

엄대협은 헛웃음을 몇 번 짓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는 반태수에게 말했다.

“일은 다 끝났어. 잡은 사람들은 칼덴에 인계했고, 의뢰 대금은 일단 기본인 3억 겔 받았어. 추가 대금은 조만간 지급하겠대. 적당한 마도구도 찾고 있는 모양이야.”

“전에 받기로 한 마도구는?”

“효용성이 없어서 가격이 낮은 마도구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잖아. 아마 그것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

엄대협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너도 슬슬 신분증 하나 만드는 게 어때?”

“신분증?”

“언제까지 돈을 현금이나 황금수표로 받아갈 수는 없잖아. 이제 슬슬 액수도 커질 텐데, 계좌를 하나 터 두는 게 낫지 않겠어?”

“가능하겠어?”

엄대협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그렇게 대답한 엄대협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시 정부 공무원들 중에서 돈 밝히는 놈들이 제법 많거든. 기름칠 몇 군데만 해주면 완벽한 신분증을 얻을 수 있지. 특히 우리 도시는 그런 쪽으로는 아주 편해. 우리 도시 특산품이 신분 세탁이거든.”

반태수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과장을 해도 저런 식으로 한단 말인가. 특산품이 신분 세탁이라니.

“어? 안 믿네? 진짜라니까? 그냥 과장하거나 농담 섞은 게 아니라 정말로 그래. 뭐, 특산품이라고 우리 도시에서 광고하는 건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여기고 있다니까? 다른 도시에서는 정말로 특산품이라고 불러.”

그게 정말이라면 참으로 운이 좋다. 우연히 이 도시에 오기 되어서 신분증 만들기가 편해졌으니까.

“신분증 생겼다고 나 버리는 거 아니지? 알다시피 나 제법 괜찮은 브로커야. 이래저래 도움 많이 될 거라고.”

반태수는 엄대협이 말은 저렇게 해도 뭔가 안전장치 하나쯤은 마련해 뒀을 거라 여겼다. 전혀 불안한 표정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신분 만드는 데 드는 돈은?”

“당연히 이번에 받은 의뢰금으로 해결해야지. 설마 그 돈까지 나보고 내라는 건 아니지? 5천만 겔이면 완벽한 신분을 만들 수 있지. 따끈따끈한 신분증은 덤이고.”

“5천만 겔은 좀 심한데? 정말 그 정도나 들어?”

엄대협이 답답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완벽한 신분이라는 건 어느 기관에서 전산으로 확인하더라도 존재하도록 만든다는 뜻이야. 그걸 처리하려면 이 도시의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기록을 끼워 넣어야 해. 그게 간단히 될 것 같아?”

반태수가 담담히 말했다.

“신분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렵나?”

“당연하지. 안 그러면 변두리에서 신분 없이 살아가는 놈들이 왜 그러고 살겠어? 쉬우면 다들 하나씩 만들지.”

“그야 변두리에서는 신분이 없어도 별로 아쉬울 게 없으니까?”

엄대협은 순간 말문이 잠깐 막혔다. 반태수의 말이 맞았으니까. 하지만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변두리에서 대충 만드는 신분으로는 시 정부의 일을 맡는 건 불가능해. 시 정부에서는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면 일을 안 맡기니까.”

“시 정부의 일을 굳이 맡을 필요가 있어?”

“이 도시에서 가장 의뢰가 많이 나오는 곳이 바로 시 정부니까. 이번처럼 기업 사이의 분쟁이 커지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는 않거든.”

그러니 결국은 이 일을 계속 하려면 시 정부와 엮이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뭐, 자잘한 일이야 얼마든지 얻어올 수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 마법사 씨.”

엄대협의 말에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아마 이번 일로 반태수가 마법사라는 사실이 제법 여기저기 퍼졌을 것이다.

의심하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을 테니 퍼지는 속도는 더욱 빠를 테고.

“좋아, 그럼 그렇게 해.”

엄대협이 갑자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대체 진짜 정체가 뭐야? 마법사가 신분도 없이 떠돌아다닐 리는 없고, 설마 어디에서 사고라도 치고 도망친 건 아니지?”

반태수가 웃는 얼굴로 물었다.

“우리가 그런 것까지 서로 얘기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던가?”

엄대협이 입을 꾹 다물었다.

“딱 여기까지만 하자고. 선 넘지 말고. 너만 안전장치 만들어 놓은 거 아니니까.”

안전장치라는 말에 엄대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반태수는 그런 엄대협에게 손을 휙휙 내저었다.

“난 이만 잘 테니까 나가 봐.”

“뭐? 나가라고? 지금 이 시간에? 지금은 체크인도 못하는데?”

“방 하나 더 있잖아.”

“이 시발, 거기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리고 나보고 그 지독한 냄새 속에서 자라고?”

반태수가 손을 휙휙 내저으며 마력을 움직였다.

철컥.

문이 열렸고, 엄대협의 주머니에서 이 방의 카드키가 쏙 빠져나왔다. 그리고 엄대협이 문을 향해 쭉쭉 밀려났다.

“어어?”

이내 엄대협이 문밖으로 나갔고, 문이 쾅 닫혔다.

반태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오늘 일이 피곤하긴 했는지,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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