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34화 (34/351)

34. < 마법사 루델 아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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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루델 아센은 프로스틴이 적진을 향해 돌진하자마자 바로 마법을 펼쳤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안위였다. 그래서 실드를 펼쳤다.

루델 아센의 실드는 물리력만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속성력에 대한 방어까지 가능한 실드였다.

실드가 막 완성되었을 때, 전격의 파도가 밀려왔다.

꽈르르르릉!

속성력을 막아낼 수 있는 실드에 금이 쩍쩍 가는 것을 보며 루델 아센은 서둘러 두 번째 실드를 준비했다.

파삭.

실드가 허무하게 부서졌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 덕분에 두 번째 실드를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전격의 파도가 밀려왔다.

꽈르르릉!

이번엔 실드가 그것을 굳건히 버텨냈다. 약간 금이 가긴 했지만 이 정도면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이다.

실드가 안정되었으니 이제 다시 마법을 써야 한다. 적 마법사가 프로스틴에게 묶여 있을 때가 기회였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아마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프로스틴은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만큼 적 마법사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서둘러야 한다.

루델 아센은 빠르게 마력 코어에서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그가 이번에 생각한 마법은 화염의 비, 일정 범위 안에 무수한 불꽃을 쏟아내는 마법이었다.

범위를 지정하기 위해 술식을 계산하고 빠르게 마법진을 구축했다.

한데 그 순간, 무언가가 자신이 만드는 마법진을 건드렸다.

마법진에 선 몇 개가 더 생겨났다.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마법진을 구축하는 것은 굉장히 정교한 작업이었다. 거기에 선 몇 개가 더해진다는 건 처음 계획한 것과 전혀 다른 마법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법사가 그리는 마법진은 이렇게 간단히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한다.

루델 아센은 빠르게 자신이 그린 것이 아닌 선들을 지웠다. 하지만 선을 지우자마자 다른 곳에 새로운 선이 나타났다.

루델 아센은 집중해서 새로운 선을 지웠다. 하지만 이번엔 그보다 더 많은 선이 새로 나타났다.

마력의 실로 그린 마법진은 실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마력에 대한 감각만으로 그리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곳에 나타난 마력의 선을 파악하는 건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더구나 그런 마력의 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나타나니 더더욱 그랬다.

이 마법진에 의념을 담아봐야 제대로 된 마법이 발현되지도 않을 것이다.

의념 역시 마법의 일부다. 불을 일으키는 마법진을 그려놓고 얼음을 원하는 의념을 덧씌우면 완벽하게 마법이 발현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마력의 선이 덕지덕지 덧칠된 마법진에 의념을 불어넣으면 어찌 되겠는가.

운이 좋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운이 나쁘면 전혀 예상치 못한 마법이 발현되리라. 자칫 이 근처를 전부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럴 때는 차라리 싹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편이 나았다.

루델 아센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앞을 바라봤다.

프로스틴이 힘겹게 적 마법사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적 마법사도 모습을 드러냈다.

승합차 지붕 위에 서 있었는데,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눈에 확 띄는 자였다.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다른 마법사의 마법에 개입해 마법을 변형하다니. 말이 쉽지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도 저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프로스틴까지 함께 상대하면서.

루델 아센은 그리던 마법진을 깔끔히 지워 버렸다. 의미를 알 수 없던 선들도 함께 사라졌다.

상대 마법사의 개입을 차단할 대책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집중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머리를 팽팽 돌렸다.

마법은 단순한 것으로 정해야 한다. 불꽃의 비는 너무 복잡해서 마법진을 그리는 데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루델 아센이 선택한 마법은 지정한 위치에 불꽃이 솟아나는 마법이었다.

술식 계산도 아주 간단하고 그렇기에 마법진도 단순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단순명료하면 개입이 어려워진다. 필요한 것을 제외한 모든 선을 지워버리면 되니까.

루델 아센은 빠르게 마력의 실을 뽑아 마법진을 그렸다.

위치는 상대 마법사가 서 있는 자리. 빠르게 술식을 계산해 마법진을 완성해 나갔다.

당연하다는 듯이 상대의 마력이 개입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하지 않았다. 아무리 무수한 마력의 선을 긋더라도 자신이 계산해서 만든 마법진 외에는 전부 지워버리면 되니까.

마법진을 명료하게 새기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단순한 마법이 필요했던 것이고.

당연히 무수한 마력의 선이 생겨날 거라고 여겼다. 한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추가된 마력의 선이 전혀 없었다.

한데 완성한 마법진이 묘한 위화감을 자아냈다.

그 이유를 알아낸 루델 아센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미친! 이게 가능하다고?’

자신이 그렸던 선의 위치가 극히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새로 마력의 선을 그어 넣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은 마력의 선을 수정한 것이다.

마법진에 개입하는 것도 못 믿겠는데, 이젠 자신의 마력에 침식해 영향력을 행사했으니 이걸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하지만 믿든 말든 이미 현실로 벌어진 일이었다.

루델 아센이 말도 안 되는 일에 당황하고 있을 때, 프로스틴이 있는 곳에서 강렬한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그의 눈에 프로스틴이 너울너울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땅에 처박히는 모습도.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급하다고 이렇게 꺼림칙한 마법을 쓸 수는 없었다.

루델 아센은 마법진을 지우고 다시 그리기로 결심했다.

한데 그때, 또 한 차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마법진이 작동한 것이다. 자신이 의념을 불어 넣지도 않았는데.

‘남의 마법진에 의념까지 불어 넣을 수 있다고?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데?’

하지만 루델 아센이 어떻게 생각하든 마법이 발동해 버렸다.

화르륵!

거센 불꽃이 일어났다.

루델 아센이 서 있는 자리에.

“끄아아악!”

뜨거운 불꽃에 갇힌 루델 아센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실제로 큰 타격을 입은 건 아니었다.

그는 불꽃을 다루는 마법사이기에 불에 대한 내성이 상당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고통 역시 상당했다. 그런 고통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마법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정신력이 강하지도 않았고.

잠시 후, 불꽃이 꺼졌다. 마법진이 단순한 만큼 불꽃을 유지하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루델 아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이렇게 불안정한 상황에서 제대로 술식을 계산하려면 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수인을 여러 차례 바꿔가며 술식을 계산한 루델 아센은 몸에 깃든 열기를 빼내는 마법을 펼쳤다.

샤아아아.

몸의 열기가 빠르게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치료가 된 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더 편안해졌을 뿐이다.

고통이 많이 가라앉자, 루델 아센은 다시 코어에서 마력을 뽑아냈다. 아직 서툴지만 간단한 치료 마법 하나 정도는 쓸 수 있었다.

마법진을 막 완성했을 때, 갑자기 속이 허해졌다.

“허억!”

마치 코어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력이 흩어진 것이다.

루델 아센은 눈을 부릅떴다.

‘대체 언제!’

그의 눈앞이 일렁였다. 모습을 감춘 적 마법사가 대체 언제 왔는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몸 곳곳에 무언가가 틀어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차라리 아픈 게 나았다. 온몸의 마력이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으니까.

털썩.

루델 아센이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반태수가 그에게서 물러났다.

* * *

싸움이 끝났다.

양측이 동원한 능력자의 수가 상당했음에도 싸움 자체는 굉장히 싱겁게 끝났다.

반태수가 혼자서 대부분의 적을 쓸어버렸고, 마법사는 물론이고 프로스틴이라는 대단한 능력자까지 잡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메렌틸 제약에서 나온 자들은 전부 잡혔다. 싸우는 와중에 죽은 사람도 제법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크롬도르는 신기한 눈으로 차에 등을 기대고 앉은 프로스틴과 루델 아센을 바라봤다.

사실 마법사까지는 예상했다. 하지만 프로스틴이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를 움직이기 위해 메렌틸 제약에서 얼마나 막대한 대가를 약속했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작은 건물 하나 살 정도의 돈 정도는 지불했으리라.

그런 프로스틴을 잡아낸 반이라는 자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가졌단 말인가.

셰딤의 마수 사육장을 정리할 때 미끼로 썼던 자라고 들었다.

당시 마법사의 도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아마 그가 그때의 마법사일 것이다.

‘굉장히 잘생긴 남자라고 했었지?’

실제로 반을 본 사람은 엄대협 정도였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충분히 잘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오늘도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는데, 크롬도르는 얼마 남지 않은 적들을 잡으러 이리저리 날뛰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

재료를 실은 트럭을 지킬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모두 공격에 나섰다.

말 그대로 최소 인원이었기에 혹시 있을지 모를 기습을 대비하려면 경계에 만전을 기해야 했기다. 그래서 다들 한눈을 팔 겨를이 없었다.

잠깐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본 것도 남은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운 좋게 마침 그쪽을 경계하고 있던 자였다.

그나마도 워낙 짧게 나타났다가 사라져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철벽의 기사를 잡다니.”

프로스틴은 철벽의 기사라는 별명이 더 유명했다. 적의 모든 공격을 몸으로 막아내는 모습이 철벽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리고 제법 오랫동안 별명과 걸맞은 활약을 해왔다.

물론 프로스틴이 진짜 기사인 건 아니었다. 기사 작위를 내릴 수 있는 건 5대 가문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기사라는 존재가 강함의 정점에 이른 자들이기 때문에 가끔 능력자들 중에서 엄청난 강자가 나오면 별명에 기사라는 말을 붙이곤 한다.

5대 가문에서도 그 정도는 애교로 봐주는 듯하고.

“그 반이라는 마법사는 사라진 건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모습을 감추고 있어서.”

어딘가에 숨어서 여길 지켜보고 있거나 아니면 떠났거나 둘 중 하나겠지.

“예전에 마스터가 사람 하나 붙이려다가 실패했지?”

“예. 엄대협이 반이라는 자랑 만날 걸 예상하고 붙였는데 당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그랬다는 건 눈치챘겠군.”

“엄대협이 함께 있었으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뒤로는 건드린 적 없고?”

“마스터께서도 뭔가 느낌이 안 좋았는지 바로 손 떼라고 하셨습니다.”

“잘했네.”

크롬도르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영입할 수 있으면 최고인데.”

“아마 힘들지 않겠습니까? 엄대협을 내세워서 혼자 일하고 싶은 모양이던데.”

“혼자서 일하다보면 언젠가 주변에서 도와줄 사람이 아쉬워지는 법이지.”

크롬도르의 말에 오디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대협이랑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회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보다는 저기 저 사람을 은근슬쩍 이용해 봐.”

크롬도르의 시선이 닿는 곳에 백진희가 있었다.

오디스는 그걸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용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몇 번이나 영입 제안을 했는데 전부 거절당했습니다.”

“영입 제안을 했다고? 뭘 보고?”

백진희는 능력이 너무 애매해서 굳이 벨리온 길드가 영입할 이유가 없었다.

“통솔력이 제법입니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요.”

크롬도르가 멀리 떨어져서 쉬고 있는 백진희를 잠시 보다가 피식 웃었다.

“딴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오디스는 바로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예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충분히 영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영입하면 되겠네.”

오디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실패했다고.”

“실패는 포기하는 순간 하는 거고. 조건을 조율해봐. 웬만하면 들어주겠다고 하고.”

“백진희를 반 영입에 쓰려고 하시는 겁니까?”

“보기 드문 미인이잖아. 저 정도면 웬만한 연예인은 다 씹어 먹지 않나?”

오디스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 그러니 자신이 계속 관심을 두고 접근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래서 기분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미인계를 쓰겠다는 건데, 백진희에게 마음이 있는 오디스는 그걸 결코 좋아할 수 없었다.

그 분위기를 눈치챈 크롬도르가 피식 웃었다.

“뭐야, 설마 상대가 마법사라고 벌써 포기한 거야?”

오디스가 눈을 부릅뜨고 크롬도르를 바라봤다.

“그러다 한 대 치겠다? 야야, 자신감을 가져. 너랑 더 오래 봤잖아. 네가 이겨.”

오디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길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어떤 여자가 자신을 이용한 남자에게 마음을 주겠는가. 그것도 미모를 이용한 남자에게.

“그럼 내가 할까? 난 자신 있는데.”

크롬도르의 말에 오디스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제가 합니다.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래,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그래야 오디스지. 그럼 난 실력 좋은 마법사가 우리 길드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되지? 잘 부탁할게.”

크롬도르는 오디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오디스는 왠지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항의할 수 없었다.

여러 대의 차가 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십여 대의 승합차였는데, 가장 먼저 도착한 차에서 엄대협이 내렸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여기는 저희가 정리할 테니 나머지 분들은 하시던 일 하시면 되겠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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