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 능력자 프로스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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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델 아센은 정확한 술식을 통해 마법을 구현했다. 거대한 화염구가 마력 레일을 타고 빠르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계산이 딱 맞아 떨어졌다.
루델 아센은 화염구를 보낸 즉시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마법사는 마법 하나를 완성했다고 넋 놓고 구경하고 있으면 안 된다. 끊임없이 다음 수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진짜 마법사다.
그것이 바로 루델 아센의 지론이었다.
‘리고 훌 같은 어설픈 놈들은 마법사라고 불러줄 가치도 없지.’
막 다음 마법을 준비하려고 코어에서 마력의 실을 가닥가닥 뽑아냈을 때, 루델 아센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 날려 보낸 화염구가 적들의 바로 코앞까지 갔다가 그대로 유턴해서 되돌아오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되돌아오는 속도는 갈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훙!
꽈아아아앙!
화르르르륵!
화염구가 지나가는 소리와 그것이 폭발하는 소리, 그리고 사방이 불바다로 변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루델 아센은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 버려 잠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애써 뽑아놨던 마력의 실은 전부 끊어져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고.
루델 아센은 힘겹게 고개를 돌려 방금 화염구가 떨어진 곳을 바라봤다.
하필이면 이쪽 능력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에 화염구가 떨어졌다.
아직 죽은 사람은 없지만, 크게 화상을 입어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여럿 있었다. 또한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은 능력자의 수도 엄청났다.
그걸 자신이 했다고 생각하니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아찔했다.
루델 아센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마력 코어에서 마력의 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마법진을 구축했다.
외우다시피 해서 굳이 계산할 필요도 없는 술식이었기에 정말 빠르게 마법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마법이 펼쳐짐과 동시에 주변에 깔려 있던 화염들이 마법진을 향해 몰려왔다.
화염을 흡수하는 마법진이었다.
루델 아센은 넓게 퍼진 화염의 바다 속을 걸어가며 적당한 간격으로 같은 마법진을 배치했다.
화염이 빠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화염이 사라졌다고 해서 피해가 같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루델 아센은 이곳의 총 책임자인 메렌틸 제약의 경호팀장을 바라봤다.
그는 쏟아지는 화염을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튕겨냈기에 조금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
방금은 루델 아센을 중심으로 공격했지만, 이번 습격의 총 지휘자는 경호팀장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물론 아무리 그렇더라도 터무니없는 지시를 내리면 거부하겠지만. 예를 들어 앞으로 나가서 마법을 쓰라든가 하는.
경호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루델 아센을 바라봤다.
“방금 일은 상대편에 마법사가 있다는 뜻입니까?”
“마도구를 썼을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더욱 어두워진 표정의 루델 아센이 말을 이었다.
“마도구를 이용했다면 괜찮지만, 만일 마법사라면 우린 굉장히 힘든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루델 아센이 가장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마법이 방금 그 마력 레일에 실어서 날려 보내는 화염구였다.
그걸 비틀어 이쪽으로 돌려보낼 정도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경호팀장이 고개를 돌려 이쪽 일행과 살짝 거리를 둔 채 평화롭게 앉아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이제 저 사내, 프로스틴이 나서야 할 때였다.
프로스틴은 파란색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는데, 후줄근한 것이 꼭 동네 백수가 마실이라도 나온 것 같은 모양새였다.
경호팀장이 자신을 바라보자, 프로스틴은 천천히 일어났다.
안 그래도 슬슬 움직이려고 했다. 상대 마법사가 너무 강해서 더 두고 봤다간 아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테니까.
“내가 나선다고 해도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프로스틴의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특히 경호팀장은 정말 크게 놀랐다.
그가 아는 프로스틴은 결코 쓰러트릴 수 없는 철벽같은 사내였다. 저렇게 약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전부 달려들어. 그리고 뭉치지 마. 띄엄띄엄 떨어져서 돌진해. 마법 한 방에 몰살당하고 싶지 않으면.”
프로스틴의 말이 이어질수록 다들 긴장감에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리고 굉장히 기분 나쁜 마력이 주변을 싹 훑고 지나갔다. 탐색 마법일 가능성이 높아. 이쪽 전력이 다 드러났다고 봐야 할 거다.”
프로스틴은 저들은 다 드러났어도 자신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마력을 계속 감추고 있었으니까. 이건 자신이 가진 고유 능력이었다.
“난 적 마법사를 목표로 돌진할 거다. 그러니 너희는 나머지를 정리해. 최대한 뭉치지 않게 조심하고.”
프로스틴은 그렇게 말하고는 즉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그 일대에 전격의 파도가 밀려왔다.
꽈르르르르릉!
몇몇 능력자들은 이를 악물고 그걸 견뎌냈다. 몇몇은 빠르게 몸을 날려 전격의 파도를 피해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한 방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거나 목숨을 잃었다.
정말로 강력한 전격이었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강력한 전격은 겪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프로스틴은 전격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그냥 달렸다. 전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또 한 차례 전격의 파도가 밀려왔다.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더욱 넓은 범위를 아우르며 몰아쳤다.
꽈르르르릉!
범위가 넓어져서 그런지 위력은 아까보다 덜했다. 하지만 간신히 버티고 있던 자들은 더욱 위태로운 상태가 되었고, 아까 피했던 자들도 이번엔 피하지 못해 전격의 파도를 뒤집어써야만 했다.
그리고 프로스틴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지금 가장 뒤쪽에 있는 승합차의 지붕에 꽂혀 있었다. 묘하게 허공이 어그러진 곳, 아마 거기에 상대 마법사가 있으리라.
* * *
반태수는 달려오는 프로스틴을 보며 살짝 당황했다.
프로스틴의 존재는 처음부터 반태수를 놀라게 했다. 저 정도 능력자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정보 영역화를 썼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왜 그런지 파악했다. 정보가 유출되지 않게 막은 것이다.
마력을 통해 정보를 뽑아가는 걸 막은 첫 번째 적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서 또 놀랐다.
전격의 파도를 두 번이나 썼는데도 전혀 영향이 없다는 듯 달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두 번의 공격이 아예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반태수는 그걸 통해 적의 정보를 파악했다.
‘내구력 강화를 쓰고 있어.’
반태수의 눈이 반짝였다. 프로스틴이 몸에 품고 있는 마력은 외부의 충격을 흘려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영역화의 정보를 차단한 것도 같은 방식이었다. 정보를 빨아들이는 마력 패턴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다.
‘개선할 점이 또 생겼네.’
만든 지 얼마 안 된 마법이라서 쓸 때마다 개선할 점이 생긴다.
아무튼 모든 충격을 무시할 수 있는 강자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것은 굉장한 위협이었다.
게다가 반태수는 프로스틴만 상대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적에게는 아직도 마법사가 남아 있었다. 그것도 아주 멀쩡한 상태로.
능력자들도 몇 명 남아 있었지만, 그들이야 벨리온 길드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두 번이나 전격의 파도가 휩쓸고 갔기에 상대편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정도도 정리하지 못하는 놈들이라면 이런 판에는 껴선 안 된다.
반태수는 왜곡을 풀었다. 두뇌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두뇌 하나는 이면세계의 마력을 몸에 두르는 데에 써먹고 있으니, 두 명을 따로 상대하려면 남은 두 개의 두뇌를 전부 써먹을 수밖에 없었다.
반태수는 일단 마력 역장을 펼쳤다. 그리고 역장에 물리력과 반탄력을 덧씌웠다.
그와 동시에 마력 코어에서 길고 단단한 마력의 실을 뽑아내 적 마법사, 루델 아센에게 보냈다.
루델 아센의 실력은 이미 충분히 파악했다. 지금도 미리 깔아둔 정보 영역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련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고.
이 정도는 굳이 두뇌를 할당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처리가 가능했다.
그는 결코 반태수가 하려는 일을 막을 수 없다.
루델 아센의 몸에 마력의 실이 파고든 순간, 프로스틴이 실드에 몸을 처박았다.
꽈앙!
실드에 부여한 물리력에 쩍쩍 금이 갔다. 하지만 반탄력은 착실히 작용해 프로스틴을 튕겨냈다. 아니 튕겨내려 했다.
놀랍게도 프로스틴은 반탄력마저 흘려냈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었다.
아마 웬만한 능력자나 마법사들은 프로스틴을 상대하기가 정말 곤혹스러울 것이다.
실드에 충돌하는 순간 발생한 충격조차 프로스틴은 모조리 흘려냈다.
반태수는 프로스틴의 몸에서 작용하는 마력의 흐름을 유심히 관찰했다.
자신의 몸에 패시브로 걸어놓은 내구력 강화와 비슷했다.
반태수는 마력 파동을 이용해 충격을 중화하고 마력 파동을 타고 충격이 흘러가게 만드는 식이었다.
프로스틴의 마력 역시 그와 비슷하게 충격을 흘려냈다. 다만 들어오는 충격을 중화하지는 않는다.
그저 마력이 자동으로 움직여 들어온 충격을 반대쪽으로 흘려서 내보내기만 했다.
프로스틴이 반태수의 실드를 몸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의 마력이 작용해 실드의 힘을 뒤로 흘려내면서 조금씩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대로라면 마력 역장까지 저 힘으로 뚫고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태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실드를 펼쳤다. 마력 역장이 더욱 강력해졌고, 거기 씌워진 물리력이 더욱 질기고 단단해졌다.
실드를 뚫고 들어오던 프로스틴의 몸이 그대로 멈췄다.
반태수는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열한 개의 마법진을 차례대로 그렸다. 같은 마법이었기에 마법진은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증폭 속성을 부여할 수 있는 마법진을 그렸다.
증폭 속성 부여 마법진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반태수는 열한 개의 마법진에 차례차례 의념을 담았다.
거대한 충격파가 증폭 마법진의 마력을 통과하면서 세 배로 강화되었다.
꽈아아앙!
프로스틴의 몸에 충격파가 작열했다. 하지만 프로스틴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마력이 모든 충격을 뒤로 흘려낸 것이다.
첫 번째 충격파가 남긴 충격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두 번째 충격파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충격파도 거의 틈이 없을 정도로 붙어서 터졌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충격은 몸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뒤로 빠져나갔다.
아마 뒤쪽에 같은 편이 있었다면 굉장히 곤란했을 것이다. 빠져나간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을 테니까.
첫 번째, 두 번째까지도 버텨냈다. 한데 거기에 겹치듯 세 번째와 네 번째가 밀려오니 얘기가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의 마력이 버틸 수 있는 한계 용량을 넘어가 버린 것이다.
프로스틴의 입가에 핏줄기가 흘렀다.
다섯 번째 충격파가 터지자, 프로스틴이 더 이상 실드를 파고들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여섯 번째 충격파와 일곱 번째 충격파가 거의 동시에 터졌다. 그리고 이어진 여덟 번째의 충격파가 결국 프로스틴을 날려 버렸다.
허공을 훌훌 날아가는 프로스틴의 몸에 나머지 충격파들이 연이어 꽂혔다.
뻐버버버버벙!
꽝!
프로스틴은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에 처박혔다.
반태수는 방심하지 않고 마력의 못을 만들어 프로스틴의 몸 곳곳에 꽂았다.
프로스틴의 마력은 그냥 흐르게 두면 위험했다. 그러니 흐름의 맥이 되는 모든 핵심적인 위치에 강력한 마력의 못을 꽂았다.
프로스틴이 정신을 잃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자, 메렌틸 쪽에 남은 사람들은 경악한 채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의 몸이 다시 왜곡에 감겼다.
프로스틴은 쓰러졌지만, 아직 마법사, 루덴 아셀이 남아 있었다.
그와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