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 방어전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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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트럭 다섯 대가 창고 지역 정문을 통과해서 나갔다.
그 트럭들 앞에 승합차 두 대가 있었고, 트럭들 뒤로 승합차 세 대가 따라갔다.
총 호위 인원은 22명, 거기에 각 차량의 운전수가 있었다.
일꾼으로 쓸 사람은 각 차량의 운전수와 트럭 보조석에 앉은 사람들이었다.
트럭 앞에서 이동하는 승합차에는 팀 대영이 인원을 나눠서 타고 있었다.
그리고 백진희와 최진혁은 가장 앞장선 승합차에 탔다.
“느낌이 싸한데?”
최진혁의 중얼거림에 백진희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느낌이 좋지 않아. 그러니 다들 정신 바짝 차려.”
뒷좌석에 앉은 두 명의 능력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불안했기에 한껏 긴장한 상태였다.
“이번 임무, 굉장히 위험한 건 알지?”
백진희의 말에 최진혁이 대답했다.
“알지. 메렌틸 제약이랑 싸우고 있는 거잖아.”
“내가 좀 알아봤는데, 이거 칼덴이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야.”
“그걸 어떻게 알아?”
“암시장 쪽에 끈 하나 내려놨거든.”
“암시장? 거기 뭐 별로 쓸 만한 것도 없는 거지같은 곳 아냐?”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뭐? 그럼 시발, 이 고생을 할 필요도 없는 거잖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뭐 하러 위험을 감수해?”
“어쩔 수 없어. 우리가 갈 수 있는 암시장은 쓰레기 같은 곳밖에 없거든.”
최진혁이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럼 더 좋은 암시장은 어떻게 가는데?”
“신뢰를 쌓아야지. 명성도 쌓고, 힘도 기르고.”
최진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서 이번 의뢰를 받아들인 거야?”
백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칼덴 제약 정도면 제대로 된 암시장에 손을 대고 있을 테니까.”
“아니, 그럴 거면 메렌틸 쪽에 붙는 게 훨씬 이득 아냐? 더 안전하고.”
“벨리온 길드가 칼덴 제약이랑 몇 번 일해본 모양이더라고. 메렌틸 쪽으로 가면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험한 꼴 당해.”
그걸 벨리온 길드장인 앤더레인도 알고 있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리라.
백진희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목숨을 최선으로 챙겨. 의뢰 실패해도 되니까, 죽지 마.”
다들 굳은 표정으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한동안 차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백진희는 말없이 사방을 주시했다. 이렇게 느낌이 안 좋을 때는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무슨 일이 닥쳐올지 모르니 계속해서 경계하고 주위를 잘 살펴야만 한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오른쪽을 확인한 순간, 백진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누군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척 봐도 능력자였다. 이대로라면 저 능력자가 이 승합차를 몸으로 들이받을 것 같았다.
“다들 조심해! 마력 돌려!”
백진희의 외침에 차를 탄 모든 사람들이 지체 없이 몸에 마력을 둘렀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백진희가 하라면 그냥 해야 한다.
백진희는 몸에 마력을 두르고,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꽈앙!
거대한 충격음이 들렸다. 백진희는 운전자를 감싸듯 몸을 돌린 채 등으로 올 충격을 대비했다.
한데 아무 느낌도 없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달려오던 능력자가 튕겨나갔는지 허공을 날고 있었다.
백진희는 즉시 운전자에게 말했다.
“차 세워요.”
승합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자, 뒤차들도 마찬가지로 속도를 줄였고, 이내 전부 멈췄다.
다들 방금 일어난 일을 확인했기에 더 갈 생각도 없긴 했다.
백진희는 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다가오는 적을 확인했다.
“수가 너무 많아.”
적의 수는 이쪽의 두 배쯤이었다. 능력은 차치하고 수에서 밀려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쪽의 칼도 만만치 않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아까 달려들던 자는 백진희가 보기에 상당한 실력자였다. 달려오는 속도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데 그런 자를 단숨에 날려 버렸다. 누가 그랬는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쪽의 능력자, 반이라는 자이리라.
아무튼 적의 수가 워낙 많아서 그쪽에 마력이 넘실거렸다. 누가 어느 정도의 마력을 가졌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우린 트럭을 지킨다. 미리 계획했던 대로.”
백진희의 말에 다들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다섯 대의 트럭을 감싸듯 진형을 짰다.
적이 한 방향에서 오니 일단은 그쪽만 막으면 된다.
이러다 뒤에서 기습하면 막기가 만만치 않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백진희가 트럭 앞에 서니, 근처로 오디스와 크롬도르가 다가왔다.
크롬도르가 투덜거렸다.
“이런 일에는 크라스트가 더 어울리는데. 젠장.”
크라스트는 크롬도르와 마찬가지로 벨리온 길드의 서브마스터였다.
크롬도르가 공격 쪽에 특화된 능력자라면, 크라스트는 방어가 뛰어난 능력자였다.
원래는 이런 일에는 크라스트가 와야 하지만, 마침 일이 있어 다른 도시에 가 있기에 부득이하게 크롬도르가 참석했다.
“그나저나 저걸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디스의 자신 없는 말투에 크롬도르가 발끈했다.
“해보지도 않고 뭘 판단해! 일단 하면 다 되게 되어 있어.”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크롬도르의 자신만만함은 충분히 주변에 전해졌다.
백진희가 거기에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 쪽 숨은 칼이 제법 대단한 것 같으니 일단 기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아까 달려들던 능력자가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백진희만 본 것이 아니었다. 크롬도르도 마침 그 광경을 확인했다.
“마법사가 분명해.”
“마법사라고요?”
“아까 그놈을 튕겨낸 것, 마법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좀 어렵거든. 뭐, 비슷한 능력을 쓰는 능력자도 있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많이 달라.”
하긴, 그건 그렇다. 하지만 마법이라는 것이 꼭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쓰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마도구를 썼을 수도 있잖습니까.”
오디스의 말에 크롬도르가 인상을 확 일그러뜨렸다. 이런 상황에 자꾸 부정적인 말을 해서 사기를 왜 꺾는단 말인가.
“이제 그만 닥치고, 저놈들 막을 생각이나 해.”
그렇게 오디스의 말을 딱 막아버린 크롬도르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앞을 노려봤다. 달려오는 적들 뒤에서 거대한 불꽃이 떠오르고 있었다.
“젠장. 마법사다.”
* * *
반태수는 가장 뒤에 따라가는 승합차 위에 누워서 이동했다.
정보 영역화를 사방으로 펼쳤기에 굳이 눈으로 무언가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새삼 처음 여기 왔을 때, 마력의 안개를 이용해 정보를 습득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걸로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 영역화와 마력의 안개를 비교하면 눈과 귀, 코를 전부 막고 피부에 찐득한 젤리를 잔뜩 바른 것과 비슷했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만일 영역화가 없었다면 그저 눈과 귀, 그리고 마법사가 가지는 특유의 감각만을 동원해서 적을 감시해야 했을 것이다.
현재 반태수의 정보 영역화는 몇 가지 제한을 걸면 반경 1킬로미터가 훨씬 넘게 커버할 수 있었다.
모든 정보를 빨아들이지 않고, 상하 폭을 최소로 줄여서 넓이에 대부분의 자원을 할당하는 방식이었다.
필요한 건, 능력자의 존재 유무, 그리고 그들이 가진 마력의 양과 속성 정도였기에 그런 식으로 조건을 한정하는 식으로 범위를 넓혔다.
그렇게 가다보니 딱 이쯤에서 기습하면 좋겠다 싶은 지역이 나타났다.
인적도 없고, 주변을 가리는 엄폐물도 없어서 머릿수가 많은 쪽이 습격하기 좋은 장소였다.
아니나 다를까, 영역화에 다수의 능력자들이 걸려들었다.
반태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적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사방으로 펼쳤던 영역화의 폭을 좁혀 적들이 있는 곳에 집중했다. 더욱 다양한 정보가 물밀듯 밀려왔다.
앉아서 가만히 정보를 받아들이던 반태수가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났다.
‘마법사다.’
적들 사이에 마법사 한 명이 섞여 있었다.
정보 영역화의 자원을 마법사 쪽으로 조금 더 할당했다.
원통을 세 개 가진, 3서클의 마법사였다.
“오오, 이 사람은 좀 괜찮은데?”
전에 봤던 마법사, 리고 훌이랑은 달랐다.
일단 각 원통을 이루는 마력 코어가 리고 훌의 것보다 좀 더 조밀했다. 각 원통이 더 많은 마력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 그로 인해 마력 컨트롤 능력도 더 좋아졌으리라.
마법사는 능력자와는 달리 그저 코어만 보고서 어떤 계열이 주력인지 알아내기 어렵다.
마력 코어에서 마력의 실을 뽑아 마법진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보통 마법진은 체외에서 그린다. 그러니 진짜 주력 계열을 알아내려면 마법진을 그리는 방식을 확인해야 한다.
아무튼 마법사인 것을 확인하고 코어를 확인했으면 됐다. 이제 어떤 마법을 펼치는 지 계속 감시하면 된다.
그렇게 정해놓고 영역화의 자원을 잘 분배하고 있을 때, 능력자 중 한 명이 냅다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런 놈을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더구나 반태수는 최근의 전투들을 통해 제법 괜찮은 경험을 쌓았다.
적이 약하다고 해서 얻는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약하기 때문에 더 얻을 수 있는 경험들도 있는 법이다.
다만, 계속 이런 식이면 느닷없이 강자를 만났을 때,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끔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이라도 돌려서 강제로 경험치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건 이번에 집으로 돌아가면 지구에서 할 일이다.
이면세계에서는 여기서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반태수는 빠르게 마법진을 구축했다.
전투를 몇 번 경험했더니 술식을 계산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저런 놈들은 앞에 실드 하나만 펼쳐주면 끝이다.
적당한 위치에 마력 역장을 깔고 물리력과 반탄력을 부여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 짧은 순간 역장에 두 가지 속성력을 부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물리력 정도가 한계였겠지.
하지만 지금은 두 개의 속성력을 붙였는데도 여유로웠다. 너무 여유로워서 만일 달려드는 능력자가 마력 흐름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달려가는 속도를 급격히 줄일 가능성이 생길 정도였다.
‘다음부터는 타이밍도 잘 계산해야겠네.’
타이밍까지 계산할 수 있을 정도로 술식 계산이 빨라졌다. 아마 이번 전투를 겪고 나면 그 속도가 더 빨라질 듯한 예감이 들었다.
텅!
능력자가 물리력과 반탄력에 충격을 받으며 튕겨 나갔다. 확인해보니 정신을 잃었다. 마력도 형편없이 흩어졌고. 아마 이번 전투 동안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리라.
그리고 드디어 마법사가 마력을 움직였다.
반태수는 눈을 반짝이며 마법사를 관찰하고 언제든 대응 마법을 펼칠 수 있도록 대비했다.
이번 마법사는 코어에서 마력을 뽑아내는 속도도 제법 빨랐다.
더구나 위치가 능력자들 사이에서 정확히 보호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마법사 주변에 있는 능력자들은 어떤 공격이 날아오더라도 목숨을 걸고 막아내겠다는 각오가 단단히 서 있었다.
그들의 마력도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반태수는 살짝 감탄하며 마법사가 그리는 마법진을 통해 술식을 유추하고 어떤 마법인지 빠르게 파악했다.
‘화염구. 시작 위치는 마법진, 마력으로 레일을 깔아서 화염구를 배달하는 방식.’
마력의 레일이 쭉 깔렸다. 정확히 백진희가 있는 곳이었다. 아니, 백진희는 저들의 의도에 들어있지 않다. 그곳에 있는 벨리온 길드의 수뇌부를 노린 마법이었다.
‘그런데 여기 마법사들은 왜 저렇게 위험한 수를 자꾸 쓰는 거지?’
반태수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저 마법을 되돌려줄 방법을 찾았다. 이건 마력 레일만 건드리면 되는 일이었다.
빠르게 술식을 계산한 반태수가 코어에서 마력을 뽑아냈다. 이번엔 속도가 중요했기에 자신의 코어에서 마력을 뽑았다.
순식간에 마법진을 구축하고 그것을 펼쳤다. 마력 알갱이가 마력 레일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레일의 끝부분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원래 왔던 방향으로 유턴했다.
저쪽 마법사의 마법은 다 좋았는데, 마무리가 어설펐다.
레일을 끝까지 깔았으면 건드리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한데 목표 지점 근처까지만 이어져 있어서 거기에 레일을 덧붙이기가 너무 쉬웠다.
마력 알갱이들이 주변 마력을 빨아들이며 빠르게 레일을 깔았다.
적 마법사가 레일을 깐 속도보다 세 배 정도 빠르게 레일이 깔렸다.
그리고 화염구가 날아왔다. 마력 레일을 타고 엄청난 속도로.
마력 레일을 까는 이유는 화염구가 정확히 목표를 타격하기 위함도 있지만, 화염구에 다른 효과를 부여하기 편하다는 점이 훨씬 컸다.
적 마법사, 루델 아센이 부여한 특성은 속도였다. 적이 화염구를 본 순간, 미처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 말이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오는 화염구를 바라보는 오디스와 크롬도르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백진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건 절대 막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화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채 반응하지도 못했다. 뜨거운 공기가 확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