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두 번째 의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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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가 메렌틸을 먼저 치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좀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달은 너무 길었다.
방어적으로 나가면 한 달이 아니라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기습을 통해 적의 마법사 한 명을 처리하고, 방어를 하면서 남은 마법사까지 처리하고 나면 그 뒤는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다.
칼덴 제약도 바보 머저리가 아니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경호팀의 공백을 빠르게 메울 테니까.
아무튼 적 마법사를 한 명 줄이려면 메렌틸의 운송을 호위하는 팀에 마법사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작업을 엄대협에게 맡겼다.
이는 엄대협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반태수가 원하는 건 메렌틸 측에서 자신의 기습 사실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쪽에 마법사가 낄 가능성이 생기니까.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마법사가 안 꼈다면? 그럼 할 수 없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최소한 두 번째는 마법사가 낄 확률이 대폭 올라갈 것이다. 전력을 대폭 높여야 할 테니까.
이제 메렌틸의 재료 운송 일자가 내일로 다가왔다. 그러니 오늘 중으로 엄대협의 작업이 마무리 되어야 한다.
지금 반태수가 있는 곳은 칼덴 제약 근처에 있는 커피숍이었다.
반태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인상을 썼다.
“하, 이제 다른 커피는 진짜 못 마시겠네.”
자신이 만든 커피가 맛있어도 너무 맛있었다.
여기서 주문한 커피에 마력을 섞는다고 맛이 괜찮아지지 않는다.
반태수가 드립커피에 섞은 마력은 그냥 마력이 아니다.
일종의 인챈트였다.
마력을 때려 박는다고 커피에 마력이 깃들 리 없지 않은가.
카페 위자드의 커피 레시피는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반태수의 드립커피보다 그걸 섞어서 만든 카페 위자드의 커피가 훨씬 맛있다.
반태수가 업종을 카페로 한 것도 레시피를 만들기 수월해서였다.
아무튼 맛없는 커피를 내려놓고 잠시 기다리니 유리벽 밖으로 엄대협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반태수를 발견하고는 더 빨리 달려서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일은?”
반태수의 물음에 엄대협이 숨을 몇 번 몰아쉬더니 투덜거렸다.
“숨 좀 돌리고, 시원한 거라도 마신 다음에 하자.”
“그럼 그러든가.”
엄대협이 주문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반태수가 얼른 말했다.
“난 토마토 주스.”
엄대협이 인상을 팍 쓰면서 반태수의 커피를 쳐다봤다.
“그거 아주 그대로 남았는데?”
반태수가 빤히 쳐다보자, 엄대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카운터로 향했다.
“그래, 내가 죄인이지. 아오, 진짜 갑질 쩌네.”
빠르게 주문하고 돌아온 엄대협이 보기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 만큼 했어.”
“가능성은?”
“내가 보기에 한······ 70%?”
반태수의 눈이 살짝 커졌다. 70%면 상당한 확률이다. 게임에서 강화할 때도 그러지 않나, 70%면 그냥 된다고 보고 지른다.
“그럼 되는 걸로 알고 준비하면 되겠네.”
“뭘 준비할까?”
“준비는 내가 할 테니까, 넌 혹시 있을지 모를 변동사항이나 챙겨.”
엄대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둬. 확실하게 할 테니까.”
운송 경로가 달라진다거나 하면 굉장히 귀찮아진다. 그러니 그런 정보들을 계속 확보해야 한다.
아마 에딩턴과 긴밀하게 연락해서 처리하면 될 것이다.
그래봐야 고작 하루이니 굳이 운송 경로를 바꾸기 보다는 방어를 더 단단하게 할 것이다.
“자, 그럼 움직이자.”
반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부터 꾸준히 준비를 했다. 지금은 잠깐 쉬는 중이었고. 이제 내일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계속 일해야 한다.
그동안 연구만 했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만 전투를 벌였다. 상대는 같은 마법사일 때도 있고, 영화 속에서 나오는 히어로나 빌런들, 혹은 책에서 읽었던 능력자들이었다.
한데 여기 와서는 벌써 두 번이나 싸웠다.
물론 상대가 약하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자신의 전투 센스가 제법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긴장하지도 않았고, 당황한 적도 없다.
‘슬슬 공격 마법의 종류를 좀 더 늘려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나중에 진짜 강한 상대가 나오면 곤란해질 수도 있다.
능력에는 상성이라는 것이 있다. 그걸 이용하려면 다양한 속성의 마법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반태수는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며 머무는 호텔로 향했다.
* * *
어두운 밤, 반태수는 도시 변두리에 있는 제법 널찍한 도로를 걷고 있었다.
한 시간 전, 엄대협이 따끈따끈한 새 정보를 들고 왔다.
메렌틸에서 운송 경로를 바꾸기로 했다는 정보였다. 또한 시간까지 변경되었다.
운송 경호 인력도 변화가 있었다.
결국 메렌틸 제약 소속인 두 명의 마법사 중 한 명이 끼기로 한 것이다.
운송 경로와 시간이 달라졌다는 건 알아냈지만, 정확한 시간과 경로를 알아내지는 못했기에 이렇게 미리 메렌틸 제약의 창고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포션의 재료는 도시 밖에서 채집하기에 제약 회사의 창고들은 대부분 변두리에서도 끝 쪽에 있었다.
반태수는 변두리를 지나쳐 제약회사들의 창고가 모여 있는 지역으로 들어섰다.
지금까지 지나온 변두리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는데, 변두리에서도 끝인 창고지대는 오히려 더 번화했다.
각종 유흥시설과 식당들이 즐비했고, 다양한 물건을 파는 매장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많았다. 다들 능력자였다.
‘여긴 마력이 선명해서 좋아.’
지구와 달리 이면세계의 마력 자체가 워낙 활발하다보니 사람들이 가진 마력 역시 마찬가지 성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몸에서 흐르는 마력이 굉장히 선명했다. 딱히 감지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착착 느껴질 정도로.
반태수는 여유롭게 번화가를 지나갔다.
번화가를 지나치자마자 창고들이 보였다. 크기가 웬만한 5층 건물만 한 창고가 수두룩했다.
심지어 그보다 더 큰 창고도 있었다.
창고만 보고서는 그게 어느 회사의 창고인지 알 수 없었다. 간판도 낙서도 보이지 않았다. 외관이 다들 너무 깔끔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제야 각 창고를 구분할 수 있었다.
높은 담장이 여러 개의 창고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담장에 있는 입구에 각 회사의 이름을 새긴 간판이 달려 있었고.
사람들이 제법 오가고 있어서 반태수가 딱히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대번에 눈에 띄었겠지만.
‘슬슬 마스크 없이 다닐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겠어.’
정말 몸은 하나인데 할 일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대체 왜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생겼단 말인가. 마력의 영향이라는 건 짐작하지만 그래도 좀 너무하다.
‘아니, 그게 아니었어도 눈에 확 띄었을 거야.’
반태수의 외모는 지나칠 정도로 뛰어났다. 아마 괜찮은 훈남들 사이에 있어도 시선을 바로 잡아끌었으리라.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칼덴 제약의 창고가 보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봤던 그 어떤 곳보다 창고의 수가 많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메렌틸 제약의 창고들이 모여 있었다.
칼덴의 1.5배쯤 되는 규모였다.
그쪽으로 가면서 주위에 CCTV나 카메라가 없는지 파악했다.
놀랍게도 CCTV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잘 감춰져 있거나 아니면 대부분 담장 안쪽에 집중되어 있는 모양이다.
어차피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기에 근처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메렌틸 제약의 창고를 지켜봤다.
그런 모습이 수상해 보일 수 있기에 왜곡을 써서 몸을 감췄다. 적당히 몸을 가릴만한 장소가 있기에 거기에 숨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능력자들은 대부분 채집꾼들이었다.
그들은 각 제약회사의 창고로 가서 바로 포션 재료를 팔았다.
중간 매매상이 없고 다들 회사와 직거래 하는 방식이었다.
‘채집꾼들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구나.’
이 한밤중에도 창고를 들락거리는 채집꾼의 수가 상당했다. 그러니 낮이나 저녁에는 얼마나 더 많겠는가.
그런 채집꾼들이 한 회사도 아니고 수많은 제약회사의 창고마다 잔뜩 있으니 대체 얼마나 많은 채집꾼들이 활동하고 있단 말인가.
에딩턴은 하루 평균 2천 명이 채집활동을 나간다고 했다. 한데 막상 와보니 그보다 훨씬 많을 것 같았다.
아무튼 채집꾼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기다리던 반태수의 눈이 번득였다.
메렌틸 제약 창고지역의 문이 크게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엄대협,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반태수가 여기에 온 것은 엄대협의 제안이었다.
그는 메렌틸 제약이 오늘 밤에 운송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여기저기 엄청 알아보고 머리를 굴린 모양이었다. 이렇게 정확히 맞아 떨어진 걸 보면 말이다.
활짝 열린 문에서 트럭이 줄줄이 나왔다. 짐칸이 통짜 냉장고로 이루어진 냉장 트럭이었다.
크기가 상당했는데, 그런 냉장 트럭이 일곱 대나 나왔다.
트럭이 나오자 그 뒤로 다섯 대의 승합차가 바짝 붙어서 따라갔다.
반태수는 눈을 빛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폴로즈 용병단의 단장인 갈란듀는 승합차에 앉아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번 의뢰는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메렌틸 제약과 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메렌틸 제약의 의뢰를 받기에는 폴로즈 용병단의 수준이 좀 낮았으니까.
한데 이번에 갑자기 용병 품귀 현상이 벌어지면서 폴로즈 용병단에게까지 기회가 왔다.
의뢰가 들어왔을 때, 갈란듀는 자그마치 메렌틸 제약과 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덮어놓고 승낙했다.
한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메렌틸 같은 큰 기업이 폴로즈 같은 작은 용병단을 써먹을 만한 방법은 미끼 정도가 다였다. 아니면 잡일이거나.
한데 재료 운송의 호위를 맡게 되었다. 호위 인원도 상당하다. 메렌틸은 폴로즈 용병단만 섭외한 게 아니었다.
자체 경호팀은 물론이고 폴로즈와 비슷한 수준의 다른 용병단도 여럿 고용했다.
심지어 마법사까지 있었다.
이는 이 운송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불길해. 진짜 불길하다고.’
갈란듀는 이런 식으로 불안할 때마다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변두리의 중간쯤을 지나고 있었다. 인적은 없고 도로는 넓은 곳이었다.
일곱 대의 냉장 트럭을 중심으로 승합차들이 호위하듯 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갈란듀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가장 앞을 달리던 승합차가 갑자기 쭉 미끄러지다가 옆으로 엎어졌다.
끼이익! 꽝!
당연히 뒤따라가던 트럭들이 브레이크를 잡았다. 한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바퀴가 멈춘 채 미끄러졌다.
앞에 쓰러진 승합차를 피하려고 핸들을 튼 트럭이 옆으로 미끄러지듯 돌면서 쭉 밀려났다.
쿵!
트럭 뒷부분이 쓰러진 승합차와 충돌했다.
그 뒤를 따르던 트럭들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다들 미끄러지다가 넘어지거나 다른 차와 충돌했다.
순식간에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갈란듀가 탄 승합차도 도로에서 미끄러져 근처 가로수를 박았다.
다행히 큰 충격은 없었다.
갈란듀는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조심해. 느낌이 좋지 않다.”
길드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갈란듀는 가장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내려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이 굉장히 미끄러웠다. 보아하니 빙판길이었다.
‘이 날씨에?’
왜 다들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난리가 났는지 바로 이해했다. 도로 전체가 빙판길이었다. 아주 얇고 미끄럽고 단단한 얼음이 쫙 깔려 있었다.
이런 얼음길이 이 날씨에 자연 발생할 리 없다.
갈란듀의 눈에 다른 승합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트럭 운전수들도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쓰러진 트럭 뒤로 가서 몸을 숨겼다.
갈란듀는 일단 적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의 눈에 메렌틸에서 파견한 마법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마법사의 뒤쪽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조금 이상한 것이 보였다.
마치 공간이 이리저리 일그러진 것 같았다.
‘저게 뭐지?’
그 생각을 한 순간, 바닥을 타고 전격의 파도가 밀려왔다.
빠지지지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