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26화 (26/351)

26. < 배후 >

=================

반태수는 품에서 레시피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고 에딩턴 쪽으로 슥 밀었다.

에딩턴은 그것을 집어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 고맙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멋지게 일을 해결하다니. 보상은 섭섭지 않게 책정하겠네.”

에딩턴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반태수와 엄대협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렇게 아무 욕심도 내지 않고 순순히 레시피를 넘겨줄 줄은 몰랐다.

솔직히 입장 바꿔서 자신이 레시피를 입수했다면 분명히 새로운 거래 조건을 제시했을 것이다. 위험을 충분히 감수할 만한 기회니까.

엄대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일이 계획하신 대로 흘러가지 않은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에딩턴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일이 아주 복잡하게 꼬일 뻔했는데 다행히 롤프 헬턴을 잡았으니까.”

레시피도 지켰고, 그걸 훔친 도둑놈도 잡았다.

지금 남은 경호팀에서 롤프 헬턴을 심문 중이었다. 이 정도로 크게 일을 벌였으면 분명히 배후가 있을 것이다. 그걸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배후가 누구든 칼덴에 전쟁을 선포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배후라면 그냥 꼬리를 마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이후에 철저한 대비를 하고 이쪽도 걸맞은 배후를 만들어야 하리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 명분은 이쪽에 있으니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정치적 부담은 덜할 것이다. 이건 나름의 기회였다.

에딩턴은 반태수를 유심히 살폈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반태수의 외모는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잘 생긴 분은 처음 보는군.”

반태수는 빙긋 웃었다. 외모에 대한 칭찬은 정말 많이 들었지만, 여전히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이번 일의 대가로 2천만 겔은 너무 적지. 혹시 원하는 게 있소? 돈을 원한다면 3억 겔까지 줄 수 있소. 달리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을 해보시오.”

반태수는 잠시 고민했다. 옆에서 엄대협이 계속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슬쩍 쳐다보니 입 모양으로 ‘돈, 돈.’하고 말한다.

3억 겔이면 미끼를 수없이 엮어야 만질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반태수는 돈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돈은 원래 세상에서 많이 벌고 있다. 또 앞으로 벌 돈은 더 막대할 테고.

그러니 여기선 돈 대신 다른 걸 얻어야 한다.

“마도구도 구할 수 있습니까?”

반태수의 말에 에딩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할 수 있기야 하지만······ 고작 3억 겔로 구할 수 있는 마도구는 정말 별 거 없소. 그래도 쓸 만한 마도구를 구하려면 최소 20억 겔은 있어야 할 거요.”

반태수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쓸 만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도구 같지 않은 어설픈 마도구 말고 제대로 보안까지 처리된 마도구면 뭐든 됩니다.”

에딩턴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도구 중에는 워낙 희한한 것들도 많으니 한 번 찾아보겠소. 적당한 마도구를 찾으면 연락하겠소.”

엄대협이 얼른 나섰다.

“저한테 연락하시면 됩니다. 제가 중간에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갑자기 나선 엄대협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에딩턴이 고개를 돌려 반태수를 바라봤다. 정말 그래도 되겠냐는 듯.

반태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전 연락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서.”

“아, 뭔가 사정이 있으신 모양이군.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소.”

“또 할 일이 있으면 연락해 주십시오.”

엄대협이 굽신 거리며 인사했다.

“그래, 확실히 이 정도 실력이면 할 일이 아주 많지. 내가 조만간 연락하겠네.”

에딩턴은 방에서 나가는 반태수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특이한 느낌이 들었다.

에딩턴 역시 마력을 품은 능력자였기에 반태수가 가진 마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력량은 결코 많지 않았다.

보통 저 정도 마력을 가진 능력자가 중급 길드에 들어가면 중간보다 살짝 위에 위치한다.

한데 고작 그 정도 마력을 가지고 마법사를 잡아낸 것이다.

마법사만 문제가 아니었다.

반태수는 칼덴 제약에서 보낸 능력자 두 명을 제압했고, 그 두 능력자가 한꺼번에 덤벼도 이기지 못할 용병을 두 명이나 제압했다.

지금까지 이런 능력자가 있었을까?

이쯤 되면 마법사가 아닐까, 의심이라도 해야 하는데, 에딩턴이 보기에는 결코 마법사가 아니었다.

마법사는 아무리 애송이라고 해도 저렇게 간단히 마력을 읽어낼 수 없다.

같은 마법사, 그것도 경지가 높은 마법사가 아니라면 마법사의 마력량을 간단히 알아내지 못한다.

“싸우는 걸 못 봤으니 알 수가 있나.”

정말 궁금하긴 했다. 대체 어떻게 싸웠기에 그들을 모두 제압할 수 있었는지.

‘심지어 별로 다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는 얘긴 상대를 압도했다는 뜻이다.

실력 있는 용병 둘과 마법사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압도했다? 그것도 고작 저 정도 마력량으로?

믿을 수가 없었다.

에딩턴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엄대협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왠지 이 번호로 금방 전화하게 될 듯한 예감이 들었다.

에딩턴이 스마트폰을 품에 넣었을 때, 비서가 들어왔다.

“이사님, 심문 결과가 나왔습니다.”

에딩턴이 눈을 번득였다.

“그래? 배후를 알아냈나?”

“예. 메렌틸 제약입니다.”

“메렌틸?”

에딩턴이 눈살을 찌푸렸다. 메렌틸이라니. 메렌틸은 칼덴이 상대하기에는 좀 벅찬 회사였다.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목적은 우리 회사의 합병입니다.”

에딩턴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합병? 합병을 하는데 왜 우리 레시피를 빼돌리고 경호팀을 공격해?”

당연히 정상적인 방법으로 합병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경호팀이 당했으니 앞으로 그와 관련된 다양한 공격 시도가 있을 것이다.

그걸 막으려면 정말 서둘러야 한다.

“일단 대표님께 보고부터 드려야겠군.”

에딩턴은 그렇게 말하고는 문득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예상보다 일찍 연락하게 될 듯했다.

“메렌틸이라······.”

이익을 위해서라면 온갖 지저분한 짓을 마다하지 않는 놈들이다.

시 정부에 먹인 돈도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

물론 칼덴도 시 정부에 막대한 돈을 먹인다. 하지만 메렌틸은 먹인 돈의 자릿수가 달랐다.

그러니 이번 싸움에 시 정부의 개입을 바라면 안 될 것이다. 오직 칼덴만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놈들이 어떤 수를 쓸지 모르겠군.’

과연 경호팀을 쓸어버린 이유가 뭘까?

비록 이번 작전에 투입한 경호팀이 몰살당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원진의 경호가 허술해질 일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대외적인 일을 처리할 때 움직이는 팀일 뿐이니까.

설사 경호 인력이 모자란다고 해도 그들이 함부로 임원진을 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시 정부를 구워삶았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테러에 가까운 짓을 함부로 저지른다면 시정부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에딩턴은 문득 손에 든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머릿속에 방금 떠나간 반태수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보고가 먼저다. 보고하고 대략적인 방향을 정한 다음 바로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 * *

반태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이곳은 칼덴 제약 근처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다. 적당한 거처가 없기에 호텔에 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고민이네.”

원래는 바로 지구로 돌아갔어야 한다. 한데 아직 여기서의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칼덴 제약을 통해 상위 능력자들이 맡을 수 있는 의뢰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려면 이곳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의뢰를 받고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테니.

한데 원래 세계로 돌아가 버리면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확실히 문제는 문제였다.

일단 이면세계로 올 수 있는 포탈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감지기가 있지만, 이걸로 주인 없는 포탈을 찾을 수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또한 포탈을 찾아도 문제다.

반태수가 찾은 포탈이 이 도시, 크랙톤과 연결되어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을 테니까.

‘다시 생각해도 극악의 확률이긴 하지.’

두 개의 포탈을 이용했는데, 그게 전부 이곳 크랙톤과 연결되어 있다니.

안 그래도 낮은 확률이 더 낮아져 버렸다.

‘그럼 여기로 다시 오려면 그 포탈을 확보해야 하나?’

두 번째로 들어온 그 창고 안에 있던 포탈 말이다.

하지만 반태수는 생각과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마 거긴 그놈들이 확보했을 것이다. 이미 뒤처리도 싹 끝냈을 테고. 척 봐도 보통 놈들이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팀장이라는 놈은 감지기까지 갖고 있었다.

전에 백진희와 최진혁의 대화를 통해 감지기가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알고 있다.

그런 걸 일개 팀장이 갖고 있는 조직이 보통일 리가 없다.

“그러니까 새 포탈을 찾아야 한다는 말인데······.”

반태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품에서 감지기를 꺼냈다.

이제 할일도 없고 시간은 죽여야 하니 그 동안 이거나 분석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럼 대체 뭘 감지하는 건지 알아볼까.”

반태수의 코어에서 마력의 실이 줄줄이 뽑혀 나왔다. 그리고 감지기로 알려진 수정구슬에 콕콕 꽂혔다.

수정구슬 표면에 제법 복잡한 보안마법이 촘촘히 깔려 있었다.

반태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것을 분석했다.

칼덴의 레시피를 분석하면서 보안 마법을 한 번 겪어봐서 그런지 그때보다 좀 더 수월하게 보안을 뚫을 수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이 수정구슬 자체가 보안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느낌이야.’

그게 아니면 이렇게 간단히 보안을 뚫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레시피의 열쇠를 맞출 때가 훨씬 더 어려웠다.

반태수는 보안을 뚫고 안으로 더 들어갔다.

“어라?”

어라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안에는 정말 별 게 없었다.

“이게 다라고?”

이 수정구슬 안에는 딱 두 가지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었다.

특수한 파장을 가진 마력 파동을 펼쳐내는 것이 첫 번째.

다만 굉장히 섬세하게 설계된 파장이었다. 이 파장을 설계한 사람의 실력이 아마 대단할 것이다. 또한 마법진 자체에 감지 계열이 섞여 있었기에 구성이 상당히 복잡했다.

두 번째는 수정구가 펼친 마력파동이 그와 맞물리는 파장을 가진 마력을 만났을 때, 위치를 수정구 안에 찍어주는 마법이었다.

맞물리는 파장이 어떤 건지는 수정구 안에 인챈트 된 마법을 분석하니 금방 알 수 있었다.

역시 만만치 않게 섬세한 파장이었다.

아마 이 파장을 만들어내는 마법진도 그리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두 파장은 굉장히 정교했는데, 서로 맞물리면 아마 소멸하지 않을까 싶었다.

‘테스트를 해볼까?’

반태수는 마력 코어에서 새로 마력의 실을 뽑아 마법진을 그렸다.

이미 하나를 분석해 봤기에 특수한 파장의 마력을 뿜어내는 마법진을 만드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파장을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데에 시행착오가 많이 필요했다.

어쨌든 그렇게 파장을 만들어낸 다음, 수정구슬을 작동했다.

파직!

순식간에 마력이 소멸해 버렸다.

다만 마법진은 여전히 살아 있기에 파동이 한 차례 지나가고 나자 다시 파장이 만들어졌다.

“열쇠와 자물쇠 같은 거네.”

반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굳이 이런 식으로 만들었을까?

그저 감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굳이 이런 식으로 맞물리는 파장을 각각 만들 이유가 뭘까? 괜히 복잡하게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반태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어······ 설마 이 포탈이라는 거, 감지기가 없으면 나타나지 않는 건가?”

파장이 맞물려 소멸하는 순간, 감춰져 있던 포탈이 나타나는 방식 말이다.

반태수는 의문이 가득 차올랐다.

대체 이 포탈은 누가 만든 걸까?

만일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지구 곳곳에 누군가 포탈을 만든 채 감춰두었을 것이다.

한데 감지기는 이면세계의 물건이다. 그렇다면 감춰지지 않은 포탈도 있는 걸까?

포탈이 자연발생하지 않았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걸 분석할 때 인위적인 흔적이 가득했으니까.

‘대체 이면세계의 정체가 뭘까? 지구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반태수는 무수히 떠오르는 의문들을 되새기며 손에 든 수정구를 만지작거렸다.

이제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이 수정구를 강화한 다음 포탈부터 찾아야 한다.

‘도시와 도시를 이동할 방법을 강구해 둬야겠어.’

그러려면 비행기를 이용해야 하고, 비행기를 이용하려면 확실한 신분이 필요했다.

확실한 신분을 얻으려면 엄대협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지이이잉.

침대 옆 협탁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엄대협이었다.

반태수가 전화를 받자마자 엄대협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덴에서 벌써 연락이 왔어! 같이 일해보재!

그 말을 들은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급한 모양이다. 이렇게 빨리 연락을 준 걸 보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