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22화 (22/351)

22. < 벨리온 길드 2 >

====================

벨리온 길드는 이 도시, 크랙톤에서 중간쯤 하는 길드였다.

그들은 시 정부의 일을 간간이 받아 처리하고, 가끔 도시 밖으로 나가 마수를 사냥하는 일을 주로 한다.

다른 길드들은 도시 안의 기업과 계약해서 활동하거나, 이권사업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상위 길드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벨리온 길드는 상위 길드로 도약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셰딤을 조사하고 토벌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벨리온 길드의 마스터인 앤더레인은 셰딤을 조사하면서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한데 가장 중요한 기술만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라진 기술을 브로커 나부랭이가 들고 왔다.

앤더레인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엄대협을 지그시 노려봤다.

“이걸 어디서 발견했다고?”

엄대협은 갑자기 오슬오슬 소름이 돋아나는 걸 느끼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 그러니까······ 2, 2층에서 바, 발견했습니다.”

앤더레인은 계속 설명하라는 듯 턱짓을 했다.

“어······ 제가 반을 찾은 다음, 잘 알아듣게 설명을 했죠.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벨리온 길드로 같이 가자고. 그랬더니 반이······.”

대충 정리하면 반이 설명을 듣고 똑바로 탐색한 거 맞냐고 되물은 다음 같이 셰딤의 아지트로 가서 그걸 찾아왔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설명은 좀 길고 장황해서 앤더레인이 눈살을 몇 번이나 찌푸렸지만.

엄대협은 처음 말 더듬던 사람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로 나중에는 말을 줄줄 쏟아냈다.

앤더레인은 엄대협의 설명이 끝나자 서늘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래서, 그 반이라는 놈은?”

“어······ 굳이 여기까지 데려올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앤더레인이 피식 웃었다.

“그냥 네 멋대로 돌려보냈다?”

앤더레인의 미소가 싹 사라졌다. 순식간에 싸늘해진 시선이 엄대협을 낱낱이 해부하듯 위아래로 훑었다.

엄대협은 온몸을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 아팠다.

그래도 반태수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솔직히 앤더레인보다 반태수가 더 무서웠다.

앤더레인은 USB를 들고 슥 살펴보더니 미리 꺼내둔 노트북에 꽂았다.

“저······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기다려.”

“예. 기다려야지요. 암요.”

엄대협은 죽을 맛이었지만 앤더레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제대로 된 물건이면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지. 적당히 사례할 테니 기다렸다가 받아가.”

“예? 사례요?”

엄대협의 눈이 살짝 커졌다. 솔직히 이 역시 의뢰이긴 했지만 정확한 의뢰를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벨리온 길드에서 원한 건 반태수였으니까.

하지만 반태수를 찾으려는 이유가 저 USB였으니 의뢰비를 받아도 될 것 같았다.

엄대협은 별 생각 없이 그냥 기다렸다. 의뢰비로 책정된 금액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USB를 확인한 앤더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던 물건이 맞군.”

“다행입니다.”

엄대협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솔직히 저게 벨리온 길드가 찾던 물건이 아니었으면 곱게 돌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1층으로 가서 사례금 받아가. 그리고 오디스 들어오라고 해.”

“예.”

엄대협은 엔더레인이 자신을 부하처럼 부려먹었지만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벨리온 길드와 브로커는 그런 관계였으니까.

엄대협이 나가고 바로 오디스가 들어왔다.

“맞습니까?”

오디스는 들어오자마자 물었다. 그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맞긴 맞아. 그런데 아무리 봐도 영양가가 없군. 진짜 핵심이 되는 내용은 없어.”

“아······ 그렇습니까.”

오디스가 안타까운 눈으로 앤더레인을 바라봤다.

“그런데 말이야, 이걸 보니 셰딤이라는 놈들 그게 다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USB에 있는 내용, 일종의 보고서야. 상부에 제출하기 위한. 그리고 이놈들을 도와주는 다른 조직들이 있어. 전부 셰딤이겠지.”

오디스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럼 우리가 아는 것보다 셰딤이라는 조직이 훨씬 크다는 뜻이로군요.”

앤더레인이 인상을 팍 썼다.

“골치 아파졌어. 어쩐지 이 일을 맡을 때 뭔가 싸한 기분이 들더라니.”

그래도 좋은 기회였기에 받아들였는데,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다들 정신 바짝 차리라고 해. 이 정도 규모의 조직이 당하고 그냥 손 놓고 있을 리 없으니까.”

“예.”

오디스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셰딤의 수작질까지 경계해야 할 판이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고 상황도 복잡한데 말이다.

“아, 그리고 반이라는 놈 말이야.”

밖으로 나가려던 오디스가 앤더레인의 말에 뒤를 돌아봤다.

“감시 하나 붙여봐.”

오디스는 의아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적당한 놈으로 붙이겠습니다.”

“아니, 적당한 놈 말고 실력 좋은 놈으로 붙여.”

“예?”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오디스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앤더레인은 밖으로 나가는 오디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반이라는 그놈, 팀 대영이랑 묘하게 느낌이 비슷해.’

* * *

엄대협은 벨리온 길드에서 나와 일단 무작정 걸었다. 그러자 어느새 반태수가 그의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처음엔 반태수가 옆에 붙었는지도 모르다가 이내 발견하고는 흠칫 놀란 엄대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너 브로커잖아.”

엄대협의 눈이 커졌다.

“그게 왜? 설마 의뢰라도 맡기려고?”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받아오라고.”

엄대협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난 미끼나 주워 먹는 하수구의 쥐 같은 브로커야. 너 같은 사람은 감당 못 한다고.”

“나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미끼로 써먹기 아까운 사람. 넌 그냥 적당한 길드에 들어가는 게 나아. 내가 그건 찾아줄 수 있지.”

“그건 내가 좀 곤란하고.”

어딘가에 예속되어선 안 된다. 반태수는 여기 사람이 아니라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여기선 필요한 일만 하고 살아가는 건 지구에서 해야 한다.

반태수는 엄대협을 보며 물었다.

“벨리온 길드 말고 더 높은 수준의 거래처는 없어? 아무리 미끼만 다루는 브로커라도 그런 쪽에 끈 하나 없을 것 같진 않은데. 안 그래?”

엄대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히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끈일 뿐이다. 거기에서 의뢰를 받아내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네 실력은 잘 알겠는데, 그쪽에 소개하기엔 어림도 없어. 거긴 진짜들만 활동하는 영역이라고.”

반태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니, 넌 아직 아무것도 몰라.”

엄대협은 표정관리를 했다. 하마터면 쌍욕을 할 뻔했다.

자신이 모르긴 뭘 모른단 말인가. 그래서 좀 더 설명을 했다.

“진짜들은 일단 마력량부터 달라. 너보다 최소 세 배는 되어야 간신히 발을 들일까 말까야.”

“그러니까 모른다고 하지. 마력만 많다고 강한 건 아니야.”

“하지만 높은 확률로 마력이 많은 사람이 강하지. 마력이 많다는 건 그만큼 오랫동안 수련을 하고 실전을 겪어왔다는 뜻이니까.”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태수는 자신 있었다.

“전에 그놈, 크롬도르라고 했던가? 그 정도면 어느 수준이지?”

“중간 수준 길드에서는 손꼽히는 실력이지. 하지만 위로 올라가기에는 좀 부족해. 아, 벨리온 길드 마스터인 앤더레인 정도라면 소개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엄대협은 그렇게 말하며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넌 안 된다는 의미로.

“내가 생각했던 기준보다 좀 낮은데?”

“뭐?”

“그 앤더레인인가 뭔가, 벨리온 길드에서 너랑 얘기하던 사람이지?”

“맞아.”

엄대협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반태수는 이미 정보 패턴을 펼쳐서 벨리온 길드를 샅샅이 조사했다.

앤더레인의 실력도 그때 대충 파악했다.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반태수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 물론 진짜 정확한 판단은 싸워보기 전에는 내릴 수 없다.

하지만 마력과 근육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대충 어느 정도 수준이고 어떤 식으로 마력을 이용하고 어떤 속성을 다룰 수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앤더레인보다 몇 배 더 강한 자가 오더라도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마법사다. 범용성이 여타 능력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반태수는 확신이 담긴 눈으로 엄대협을 쳐다봤다.

“그럼 날 소개해줘도 되겠네. 내가 더 강하거든.”

“야이, 미친. 장난하지 말고!”

반태수가 엄대협을 빤히 쳐다봤다. 그저 담담한 눈인데도 어딘가 서늘한 것이, 보고 있으니 소름이 쫙 끼쳤다.

“장난 같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엄대협은 속으로 물려도 된통 물렸다고 투덜거렸다.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고 덜컥 소개할 수도 없었다. 했다가 실력이 모자라면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 테니까.

엄대협이 고민하든 말은 반태수는 이미 결정이라도 난 것처럼 말했다.

“네가 연결해준다는 곳 말이야. 뭐, 유적지도 조사하고 그러나?”

“유적지?”

엄대협이 미친 놈 보듯 반태수를 바라봤다.

“유적지가 무슨 개새끼 이름인 줄 알아? 거긴 최상위 계층에서 다 장악하고 있어. 유적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런가?”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제 여기 두 번째 오는 건데 제대로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 유적지에 갈 일은 앞으로도 없겠네.”

“뭐, 내가 연결해주는 곳이 상위 계층이긴 하지만, 그쪽도 유적지를 탐사하기에는 좀 모자라지. 거기서 눈에 띄는 활약을 여러 번 하면 혹시 유적 탐사할 때 의뢰를 넣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반태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그 수밖에 없겠네. 지금으로서는.”

“응?”

“연락해. 일단 시작해보자고.”

“아니, 진짜 곤란하다니까?”

반태수가 진지한 눈으로 엄대협을 쳐다봤다.

“언제까지 미끼나 등쳐먹으면서 살 거야?”

“뭐?”

“계속 그 자리에서 쳇바퀴나 돌리고 있을 거냐고.”

엄대협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이건 너한테도 기회야. 위에 끈이 있다고? 얼마나 튼튼한데? 거미줄 같은 거 아냐? 바람 한 번 제대로 훅 불면 툭 끊어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정확했으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엄대협이 반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정말 아끼는 기회야. 한데 이걸 왜 너한테 써야 하지?”

“나 말고는 그 기회를 쓸 사람이 없을 테니까.”

이번에도 할 말이 없었다.

엄대협이 누구를 이용해서 그 끈을 써먹겠는가. 최소 앤더레인 정도는 되어야 써먹을 수 있다. 한데 앤더레인 같은 중급 길드 마스터가 뭐 아쉬워 자신과 손을 잡겠는가.

엄대협이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아우, 씨.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결국 결심을 마친 엄대협이 반태수를 보며 말했다.

“말로만 실력 좋다고 하지 말고 한 번 보여줘. 그래야 나도 믿고 연락을 하지.”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우리 쫓아오는 놈 하나 있는 거 알지?”

“뭐?”

엄대협이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알긴 뭘 안단 말인가. 전혀 몰랐다.

“널 쫓아서 온 거 같은데? 목표는 나 같지만.”

엄대협이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봤다. 당연히 아무도 안 보였다.

“죽이면 안 되겠지?”

반태수의 말에 엄대협이 기겁했다.

“당연하지! 벨리온 길드랑 척지고 여기서 어떻게 살아!”

“그럼 딱 기절까지만. 눈 크게 뜨고 잘 봐.”

아직 완성되려면 멀었지만, 어설픈 흉내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반태수는 몸에 두른 거친 마력 대신 코어의 마력을 뽑아내 다리 근육과 관절을 강화했다.

완성된다면 근섬유 하나하나에 마력의 실을 꼬아 겹쳐서 훨씬 대단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마력을 밀어 넣어서 강화하는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면세계의 능력자들이 쓰는 것보다는 훨씬 뛰어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꽈득!

반태수의 발끝이 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앞으로 짓쳐들었다.

꽈득!

또 한 번 바닥이 움푹 들어가며 날아가다시피 하던 반태수가 멈췄다.

툭!

엄대협은 반태수가 골목 앞에 서 있는 것까지만 딱 보고 뭘 했는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골목에서 누군가 앞으로 쓰러지는 건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반태수가 여유롭게 다가오자, 엄대협이 물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봤잖아. 빠르게 달려가서 턱을 툭 쳤어. 뇌진탕으로 기절. 끝.”

엄대협이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당장 연락할게.”

핸드폰을 본 반태수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나 핸드폰 없는데. 네가 하나 개통해서 줘.”

“뭐?”

엄대협이 어이없는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어이는 없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두 사람은 핸드폰 대리점으로 향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