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 벨리온 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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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이면세계의 돈과 함께 항상 갖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이면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외모는 지구보다 몇 단계 떨어진다.
그래서 반태수의 특별한 외모는 굉장히 눈에 띄었다.
외모를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반태수의 마법 수준은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다.
최근 하고 있는 생체조직에 대한 연구를 마무리 하고 나면 방법이 생길 것도 같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골목을 벗어나자 편도 2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도로 주변에는 허름한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제대로 된 간판도 없어서 뭘 하는 곳인지도 알 수 없었다.
군데군데 식당이나 술집, 옷가게, 전자제품 대리점 같은 점포들이 끼어 있었다.
막상 이면세계로 오긴 했는데, 무언가를 또 하자니 막막했다.
‘일단······ 무작정 돌아다녀봐야겠네.’
그러다보면 능력자를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리라.
반태수는 걸음을 옮겼다. 적당히 걷다가 배고프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이 거리는 지난번에 갔던 곳과 달리 인적이 별로 없었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그때와 비교하면 그냥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사람 보기가 드물었다.
그래도 능력자를 찾아야 하니 반태수는 일단 영역화를 펼쳤다.
영역화는 이면세계의 마력을 이용해서 펼쳤다.
안정된 마력은 아니었지만 단순한 패턴을 만드는 건 지구에서 할 때와 난이도 차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패턴을 증식해 영역으로 만드는 건 얘기가 좀 달랐다. 시작은 자신이 가진 마력으로 하지만, 결국 주변 마력을 변형시켜 패턴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이거 은근히 마력을 조절하기 어려워서 나름 수련이 되네.’
반태수를 중심으로 정보를 감지하기 위한 마력패턴이 쫙 펼쳐졌다.
‘아무래도 이것 역시 패시브로 만들어 봐야겠어.’
영역화는 정말 유용한 마법이었다. 그리고 수시로 펼쳐야 하는 마법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것 역시 패시브로 쓸 수 있다면 좋으리라.
물론 상당히 어렵겠지만.
생각해보니 지금 한창 연구하고 있는 생체조직에 관한 마법들은 전부 패시브로 장착할 수만 있다면 거의 인간병기가 될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재생력 강화나 근력 강화를 비롯해 반사 신경 강화 같은 것들을 패시브로 장착한다면 얼마나 대단한 전투력을 갖게 되겠는가.
거기에 내구력 강화는 이미 패시브로 장착했다.
‘그거 하나만 해도 어느 정도 안전은 확보한 셈이지.’
영역화가 완성되었다. 반경 300미터 정도의 범위를 정보를 수집하는 마력패턴으로 채웠다.
정보 영역을 확보한 순간,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 걸려들었다.
반태수는 그자가 자신에게 첫 의뢰를 맡긴 엄대협이라는 걸 바로 파악했다.
‘같은 도시였어?’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반태수가 듣기로 각 포탈은 서로 다른 도시와 이어져 있다고 했다.
한데 다른 포탈로 들어왔는데 대영의 포탈과 같은 도시로 이어져 있다니.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그게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드문 일이 지금 벌어진 것이다.
아무튼 반태수는 엄대협이 반가웠다.
안 그래도 뭘 할지 막막한 참이었는데, 그걸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엄대협이라면 이 도시와 능력자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반태수는 일단 계속 걸었다. 엄대협이 자신을 발견하고 따라오는 중이었으니까.
엄대협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반태수에게 전달되었다.
발소리를 죽이기 위해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그리고 품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냈다.
반태수는 어이가 없었다.
능력자를 앞에 두고 살금살금 걷는다고 해서 들키지 않을 거라고 여긴 건가?
그러려면 최소한 마력을 써서 발이 바닥에 닿을 때의 충격과 소음을 흡수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더불어 공기 흐름이 변하지 않게 주변 마력도 통제해 줘야 하고 말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반태수가 못 알아차릴 리 없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전기충격기라······.’
엄대협이 망설임 없이 전기충격기를 꺼낸 걸 보면, 능력자들에게도 전기충격기가 제법 효과적이라는 뜻이었다.
마법사에게도 불시에 전기로 지지면 얼마든지 쓰러뜨릴 수 있다.
그래서 내구력 강화 패시브가 필요한 것이다.
불시에 가해지는 기습에 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전기충격기를 든 엄대협이 조용히 접근해왔다. 반태수는 모른 척 계속 걸었고.
이내 엄대협이 전기충격기를 작동시킴과 동시에 반태수의 등에 그것을 꽂았다.
파지지직!
전기충격기가 허공에 전격을 그려냈다.
“어?”
엄대협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전기충격기가 전격을 쏟아내고 있는 곳은 허공이었다.
반태수는 엄대협이 공격하는 순간 몸을 비틀어 전기충격기를 피해내고 순식간에 엄대협의 뒤를 잡았다. 그리고 어깨에 손을 척 올렸다.
꽝!
강렬한 충격이 엄대협의 어깨를 짓이겼다.
“컥!”
엄대협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어깨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직감적으로 지금 소리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반태수는 엄대협이 놓쳐 바닥을 뒹굴고 있는 전기충격기를 집었다. 그리고 스위치를 눌러 그것을 몇 번 작동시켜봤다.
파지지직! 파지지직! 파지지직!
전격이 드러나며 소리를 낼 때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엄대협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자, 잠깐! 미, 미안해! 나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야! 협박을 받았을 뿐이라고!”
반태수는 무심한 눈으로 엄대협을 내려다봤다. 여전히 전기충격기의 스위치를 꾹꾹 누르면서.
파지지직! 파지지직!
“벨리온 길드! 벨리온 길드야! 거기서 널 데려오라고 했어! 진짜야!”
엄대협이 다급히 말하자,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기충격기를 품에 넣었다.
이건 압수다.
반태수는 꿇어앉은 채 간절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엄대협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엄대협은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벨리온 길드가 날 왜 찾는 거지?”
“그, 그건 나도 잘······.”
엄대협은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일어났다.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더니 다리가 너무 아팠다.
“쓸모가 없네.”
반태수가 툭 던지듯 중얼거리자, 엄대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확한 건 솔직히 모르고, 그냥 짐작하는 부분은 좀 있긴 한데······.”
반태수는 엄대협의 뒷목을 콱 쥐고 아래로 확 내렸다.
“커억!”
엄대협은 공손히 인사하는 자세로 다급히 외쳤다.
“말 할게! 말 한다고!”
반태수는 손을 풀지 않았다. 몸 주위를 휘도는 마력을 손으로 좀 모았기 때문에 악력이 상당히 강해진 상태였다.
엄대협은 자신의 목을 바이스에 끼우고 조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고통스럽고 무서웠다.
“말 한다니까! 정말 아는 거 다 말 한다고!”
그래도 반태수가 손을 놓지 않자, 얼른 자신이 하려던 말을 했다.
“오디스가 그때 미끼로 쓴 놈들을 다 만나고 다녔어! 뭔가를 찾고 있었다고! 셰딤 놈들의 아지트를 미끼들이 털었잖아!”
“그놈들이 찾는 걸 내가 갖고 있다고 여긴 건가?”
“확인하려고 하는데 너만 없어서 의심이 커졌어!”
물론 그건 그냥 엄대협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제법 높았다.
반태수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으어억! 살려줘!”
“다음은 없다는 걸 명심해.”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놓았다.
엄대협은 털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허억.”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아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엄대협은 호흡을 고르면서 반태수의 눈치를 살폈다.
“안내해.”
엄대협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정말 벨리온 길드로 가려고?”
“거기 말고 셰딤.”
“셰딤? 거긴 이제 폐허나 다름없는데······ 남은 건 하나도 없어. 벨리온 길드에서 정말 깔끔하게 쓸어갔거든.”
반태수가 엄대협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엄대협은 인상을 팍 쓰면서 말했다.
“알았어, 가면 되잖아, 가면. 시발 여기서 더럽게 먼데.”
셰딤의 아지트는 자신의 활동영역을 지나 한참이나 변두리로 빠져야 한다.
한데 여긴 그 정반대 쪽이니 정말 먼 곳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아까 같은 꼴을 당하는 건 절대 사절이었다.
엄대협은 뒤돌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반태수는 그런 엄대협 옆에 나란히 붙어서 따라갔다.
* * *
셰딤의 아지트는 엄대협의 말대로 폐허처럼 변했다.
창문은 전부 깨졌고, 벽도 군데군데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다.
아무래도 그 USB를 찾기 위해 별 짓을 다 한 모양이었다.
반태수는 굳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고도 알고 싶던 것을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
영역화의 정보수집 패턴이 건물을 향해 증식했다. 반태수가 원하는 건 2층의 숨겨진 공간이었다.
‘아직 그대로인데?’
건물 곳곳을 부쉈는데도 마법으로 감춰진 장소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예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반태수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 안에는 USB가 하나 있었다.
이건 셰딤의 아지트에서 가져온 걸 노트북에 복사한 다음, 유적에서 찍은 사진만 전부 삭제한 USB였다.
나머지 자료는 솔직히 있으나마나했기에 그대로 뒀다. 어디까지나 핵심은 유적에서 찍은 사진 속 문자였다.
“따라와.”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엄대협은 답답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따라갔다.
“안에 아무것도 없다니까? 나도 몇 번이나 확인했다고!”
당연히 반태수는 엄대협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도 난장판이었다.
천장 곳곳이 뻥뻥 뚫려 있었고, 일부는 아예 무너져서 엉망진창이었다.
심지어 기둥도 하나 박살이 났고, 나머지 기둥들도 곳곳이 파여 있었다.
“안 무너진 게 신기하네.”
이 정도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것도 없다고 했잖아. 얼른 나가자. 너도 여기 있다가 건물에 깔려 죽기는 싫잖아. 안 그래?”
반태수는 대꾸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자신이 USB를 얻었던 곳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USB에 왜곡을 걸어 그쪽으로 날려 보냈다.
엄대협의 시야를 등으로 가리고 있었기에 들킬 염려는 없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하기 위해 왜곡을 건 것이다.
“저기 벽, 수상하지 않아?”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뭐? 어디?”
엄대협이 눈을 크게 뜨며 서둘러 반태수를 따라갔다.
반태수는 마법이 걸린 벽을 발끝으로 콱 찍었다.
퍽!
마법이 깨지면서 벽이 움푹 파였다. 그 안에 작은 공간이 있었다는 걸 눈썰미가 있다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엄대협은 그 정도 눈썰미를 가진 자였다.
“어라? 정말이네?”
엄대협은 반태수를 지나쳐 얼른 한쪽 무릎을 꿇고 구멍을 확인했다.
부서진 벽 잔해를 손으로 슥슥 치워보니 USB 하나가 보였다.
엄대협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USB를 집었다.
“이거다!”
그는 USB를 꽉 쥐고는 반태수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과 어조로 툭 말했다.
“벨리온에서 찾는 거, 그거 맞아?”
“맞는 거 같아.”
반태수가 밖으로 턱짓을 했다.
“그럼 가자.”
엄대협은 성큼성큼 걸어가는 반태수를 얼른 따라가며 물었다.
“그런데 거기 있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눈이 옹이구멍이냐? 그냥 척 봐도 수상해 보이던데. 흔적도 많고.”
엄대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던가?”
“그랬어.”
다시 확인하려고 해도 다 부숴놔서 이젠 확인이 불가능하겠지만.
몇 걸음 걷다가 엄대협이 갑자기 분통을 터트렸다.
“이런 시발, 그럼 벨리온 그 새끼들이 일처리 똑바로 못한 걸 다 우리한테 뒤집어씌운 거잖아. 나쁜 새끼들.”
반태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쁜 새끼인 건 엄대협도 똑같다. 어설픈 능력자들을 미끼로 써먹는 놈이, 그것도 다 죽을 자리로 보내는 놈이 좋은 놈은 아니지 않은가.
“벨리온 길드, 수준이 어느 정도지?”
반태수의 물음에 엄대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글쎄, 길드장인 앤더레인은 실력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솔직히 안 겪어봐서 모르겠고, 크롬도르는 전에 봤지? 검으로 마수 썰어버리던······.”
엄대협은 말을 하다 말고 반태수의 눈치를 살폈다.
“너 그때 와서 몰래 보던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눈치 안 봐도 돼.”
엄대혁은 그 말에 식은땀을 흘렸다. 왠지 잘못 걸린 느낌이 들었다.
‘시발, 이러다 코 제대로 꿰서 질질 끌려 다니는 거 아냐?’
굉장히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대협은 벨리온 길드로 가는 동안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열심히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