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 충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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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일찍 일어나 카페 문을 열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과를 시작했다.
대충 청소를 하고 아르바이트생들이 도착해 일을 하자, 매일 앉던 지정석에 앉아 책을 펼쳤다.
어제는 새로 만든 마법, 내구력 강화를 실전에서 써먹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뒤에서 박은 차는 앞이 반 이상 뭉개졌는데, 백진희의 차는 멀쩡했고, 차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은 뒤에서 무언가가 박았다는 느낌만 살짝 받았다.
이제 이걸 패시브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여기에 계속 뇌를 할당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오늘은 의학 서적을 읽고 공부하면서 그 작업을 할 계획이었다.
요즘 마력 코어 부분이 뭔가 간질간질했다. 이것은 벽을 넘기 직전의 현상이었다.
벌써 몇 번이나 경험했다. 한데 이번에는 느낌이 좀 달랐다. 뭔가 거대한 것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의학과 관련된 작업들이 벽을 넘을 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았다.
이면세계에서 아주 잠깐 겪었던 실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벽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반태수는 당시의 경험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리고 마력 코어가 더욱 간질거렸다.
‘빨리 공부하자.’
반태수는 다 읽은 책을 옆으로 치우고 오늘 찾아온 논문들을 모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창 집중해서 논문을 읽던 반태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들을 느끼고 잠깐 집중을 풀었다.
평소에도 워낙 시선을 모으는 경우가 많아 웬만해선 신경을 쓰지 않는데, 오늘은 시선의 집중이 더욱 심했다.
시선의 수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각각의 시선에 담긴 집중도가 달랐다.
반태수는 고개를 들어 매장 안을 대충 슥 훑어봤다.
평소 같으면 다들 시선을 얼른 피했을 텐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전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반태수와 눈을 마주쳤다.
심지어 한창 바쁘게 일하는 이서영과 한서현까지 틈나는 대로 반태수를 훔쳐봤다.
반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생각해보니 며칠 전에도 그랬다. 이서영이 난데없이 샌드위치를 만들어 오지 않았던가. 자신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나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이다.
당시에도 매장 분위기가 좀 평소와 달랐었다.
이건 자신에게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실제로 변한 것도 맞다. 이면세계를 접한 후부터 반태수는 자신의 변화를 명확히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변화가 아마 저들의 반응을 저런 식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사장님, 오늘도 점심 안 드세요?”
어느새 이서영이 다가와 물었다. 반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은 먹어야지. 아, 오늘 나랑 점심 같이 먹을 수 있나?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이서영이 반색하며 저러다 목이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당연하죠. 잠시만요. 서현 언니한테 말 좀 하고 올게요.”
둘이 점심을 먹으러 가면 당연히 한서현이 혼자 매장을 도맡아야 한다. 두 사람과 교대로 점심을 먹어야 하고 말이다.
잠시 후, 이서영은 한서현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반태수에게 돌아왔다.
“지금 얼른 다녀오기로 했어요.”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서영과 함께 매장을 나섰다. 매장 손님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끈적하게 달라붙는 것을 느끼면서.
* * *
제법 비싸고 괜찮은 식당으로 이서영을 데리고 간 반태수는 일단 식사부터 마쳤다.
이서영은 밥을 먹는 내내 반태수와 한 마디라도 말을 섞으려 애썼다.
덕분에 반태수는 심심하지 않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음료수를 마시며 반태수가 물었다.
“요즘 나 뭔가 좀 달라진 거 있어?”
그냥 별 일 아닌 것처럼 툭 던진 말이었는데, 이서영이 그걸 덥석 물었다.
“네! 달라지셨어요.”
반태수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어떻게?”
이서영이 살짝 몽롱해진 눈으로 입을 열었다.
“예전의 사장님도 분명히 좋았거든요? 잘 생기고 몸매도 좋으시고 젠틀하시고······.”
“그래?”
반태수는 갑자기 약간 민망해졌다. 사실 그것도 자신에게 온 변화 중 하나였다. 예전이었다면 저런 말을 들어봐야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요. 우리 매장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사장님 보러 오는 거잖아요.”
이서영은 살짝 눈웃음을 친 다음 말을 이었다.
“한데 요즘은, 뭐랄까······ 거기에 뭔가 묘한 야성미가 생기셨어요.”
“야성미?”
“음······ 설명은 잘 못하겠는데, 예를 들면 나쁜 남자 같은 분위기? 아니, 정확히 그런 건 아닌데, 아무튼 그 비슷한 느낌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전혀 모르겠다.
아무튼 변화의 원인은 대충 알 것 같았다. 거칠고 난폭한 마력을 다뤘던 경험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걸 다루면서 자신의 코어에 있는 마력에 그 경험이 녹아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변화가 생기겠지만, 반태수는 별로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마력의 형질이 달라지는 건 벽을 넘을 때마다 있었던 일이니까.
시간이 좀 걸릴 뿐, 그걸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통제 하에 두는 건 몇 번이나 반복해서 해왔던 일이었다.
이번엔 변화가 너무 미미해서 뭔가를 할 필요도 없었다.
‘뭐, 꾸준히 신경을 쓰면 더 좋아지긴 하겠지만.’
이서영과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았더라도 원인은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태수는 좀 더 명확하고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서영과 이렇게 단둘이 밥을 먹고 싶기도 했다.
‘이것도 충동이었나?’
반태수는 문득 든 생각에 피식 웃었다. 이런 식으로 매번 충동에 대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이러다 오히려 집착에 먹힐 수도 있었으니까.
‘역시 마법사는 어려워.’
지금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반태수는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남은 음료를 마셨다.
앞에서 이서영이 반짝이는 눈으로 반태수의 미소를 바라봤다.
* * *
습격 사건이 일어난 지 나흘이 지났다.
반태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카페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열심히 공부 중이었다.
나흘 동안 반태수가 이뤄낸 성과는 상당했다.
결국 내구력 강화를 패시브로 만들어냈다. 또한 뼈와 근육, 그리고 신경에 마력을 담는 새로운 방법도 찾아냈다.
극히 미량의 마력으로 원래 마력으로 낼 수 있었던 능력보다 더 뛰어난 힘을 갖게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반태수는 예전보다 더 뛰어난 감각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마력을 이용해 다양한 감각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든 상태였다.
감각이 예민해지고, 그걸 공부에 집중하면 굉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렇게 한바탕 공부를 한 다음 집중을 풀자, 사방에서 묘한 감각이 마구 쏟아졌다.
감각을 강화한 뒤로 자주 겪는 일이었기에 반태수는 별로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차분히 그것들을 받아들이며 정리했다.
‘음?’
쏟아지는 감각을 정리하던 반태수의 눈이 살짝 커졌다.
고개를 들어 매장을 둘러보니 손님들 중에서 마력을 가진 자들이 여럿 보였다.
그들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무래도 능력자들 사이에서 이곳에 대한 소문이 돈 모양이다.
저 중에 백진희는 없었다.
그날의 일 이후, 백진희는 더 이상 카페 위자드에 오지 않았다.
대신 전화나 문자는 가끔 왔다.
반태수는 능력자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다들 가진 마력량이 비슷했다.
반태수가 아는 팀 대영 소속 능력자는 한 명도 없었다.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유추가 가능했다.
아마 또 습격이 일어날 때를 대비했을 것이다. 혼자 다니면 그만큼 습격에 당할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반태수는 매장에 널려 있는 능력자들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팀 대영이 이용하는 포탈은 이제 다시 써먹기가 곤란하다. 한 번 당했으니 방비가 아주 철저할 테니까.
하지만 다른 능력자들이 쓰는 포탈은 아직 괜찮지 않을까?
언젠가는 자신만의 포탈을 찾겠지만, 그 전까지는 저들의 포탈을 이용하면 될 듯했다.
매장 안에 있는 능력자들은 다섯 정도의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각각 다른 팀인 것이 분명했다. 한데 저들은 서로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감탄하는 사람이 능력자밖에 없으면 뭔가 의심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어쩌면 그런 의심을 할 여유까지 커피 맛이 빼앗아갔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저 팀이다.’
반태수는 그 중 하나를 골라 이따가 쫓아가 보기로 했다.
슬슬 이면세계에 한 번 들어가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기회가 닿으면 화끈하게 싸움도 한 번 하고 싶었고.
반태수는 건성으로 논문을 보면서 찍은 능력자 팀을 살펴봤다.
이내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 백진희와 마찬가지로 커피를 또 사들고 매장에서 나갔다.
반태수는 그들에게 마력을 투여해 마킹을 했다.
이번에 추적을 위해 새로 만든 마법 중 하나였다.
그동안은 이런 식의 마법을 연구하거나 개발할 필요가 없었다. 누굴 추적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이제부터는 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만든 것이 내구력 강화였고, 또 지금 쓴 마킹이었다.
왜곡은 개선 중이었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듯했다.
그들이 나가고 10분쯤 지났을 때, 반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오늘은 일찍 퇴근한다. 그리고 며칠 못 나올지도 몰라.”
반태수의 말에 이서영과 한서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저한테 맡겨 주세요!”
이서영의 힘찬 대답에 반태수가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한서현이 평소와 다른 모습에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가 입술을 살짝 깨무는 걸 보며 반태수는 조만간 한서현하고도 밥을 한 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마킹 마법의 단점은 셋으로 나눈 두뇌 중 하나를 온전히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탁월했다.
굳이 지난번처럼 무리하지 않아도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또 어디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마킹이 새겨진 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했다.
주변을 확인하거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불가능했다. 차차 개선해 나갈 계획이었다.
‘그나저나 또 충동적으로 움직였네. 뭐라도 좀 준비했어야 하는데.’
물론 그때 얻었던 이면세계의 돈은 전부 가지고 있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항상 들고 다녔으니까.
‘부여 마법으로 마도구라도 좀 만들어 둬야 하나?’
지금까지 부여 마법으로 한 일이라고는 카페 간판을 비롯해 여기저기에 청결이나 매혹 같은 마법을 부여한 것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마도구를 만들고자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마수와 싸울 때 썼던 빙결 마법 같은 것을 팔찌나 반지에 부여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걸 만들어 쓸 생각은 없었다. 빙결 마법이야 그냥 직접 써도 되니까.
좀 더 준비 시간이 긴 마법을 부여해야 한다. 위급한 순간 바로 쓸 수 있도록 말이다.
아니면 상황을 설정해 자동으로 발현되게 만들거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다보니 마킹이 점점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반태수는 급할 게 없었다. 느긋하게 근처 정류장에서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방향이 달라지면 내려서 걷다가 택시를 타기도 하면서 따라갔다.
그들 역시 서울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