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17화 (17/351)

17. < 백진희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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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따라갈 수는 없어요.”

백진희의 말에 사내의 눈이 번득였다. 어조가 긍정적이었고, 말투도 달라졌다.

“그 말은······ 조건만 맞으면 우릴 따라오겠단 말입니까?”

“일단 저 사람은 그냥 보내줘요. 제 차를 타고 가면 되니까 따로 신경 쓸 일도 없을 거예요.”

“이런 자리를 봤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죠. 감시자 한 명만 붙이겠습니다.”

백진희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아직 당신들을 믿을 수 없어요.”

“이거······ 참. 사람 곤란하게 만드시네. 우리 시간 별로 없어요. 이렇게 도로 점거하고 오랫동안 있으면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는 거 아실 텐데?”

“그럼 어쩔 수 없죠. 나도 죽을 각오로 힘을 쓸 수밖에.”

백진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슬쩍 반태수에게 다가가 얼른 귓속말을 했다.

“내가 달려들면 바로 차에 타고 출발해요. 아마 쫓아가지 못할 거예요. 당분간은 조심하시고요.”

반태수는 그 말을 들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고작 하루 만났는데 이렇게까지 해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던지겠다는 것 아닌가.

반태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준비한 마법을 즉시 펼쳤다.

차에서 내릴 때부터 마법을 준비했고, 승합차가 도착했을 때 새로운 마법 하나를 더 준비했다.

그리고 백진희가 충분히 시간을 끌어주었고.

반태수는 두 번째 준비한 마법부터 펼쳤다.

꽈릉!

벼락 한 줄기가 승합차에서 내린 사내들의 중심에 떨어졌다.

빠지지지직!

모두 여덟 명이었는데, 중심에 떨어진 벼락이 바닥에 닿는 순간 사방으로 퍼지면서 그 여덟 명을 모두 감전시켰다.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털썩 쓰러졌다.

그 황당한 광경에 백진희와 사내는 멍하니 벼락이 떨어진 자리를 바라봤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속담은 들어봤지만, 설마 그것이 눈앞에서 떨어질 줄은 몰랐다.

“이제 한 명 남은 거네요?”

반태수의 나직한 말에 백진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즉시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유능한 능력자답게 백진희의 공격은 빠르고 강했다. 물론 인간 기준에서.

파파파파팡!

사내도 정신을 차리고 백진희의 공격을 막으며 반격을 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반태수가 첫 번째로 준비한 마법을 펼쳤다.

“어?”

갑자기 사내의 눈동자가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몸은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백진희가 그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빠악!

사내의 코에 백진희의 주먹이 작렬했다. 백진희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부웅!

제법 큰 동작으로 주먹을 휘둘러 사내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뻐억!

사내의 눈동자가 위로 휙 올라갔다. 그리고 통나무처럼 옆으로 쓰러졌다.

털썩.

백진희는 사내가 정신을 잃었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긴장이 풀렸는지 온몸에서 힘을 쭉 뺐다.

“하아. 하아.”

그녀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어딘가에 문자를 보내고는 반태수를 바라봤다.

“놀라셨죠?”

“비슷합니다.”

백진희가 그 말을 듣고는 풋 웃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한참 갔었는데, 더 좋아졌다.

“여긴 정리할 사람들이 올 거예요. 이제 어쩌죠? 다시 집으로 데려다 드릴까요?”

반태수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던 거, 마저 하죠. 나름 기대하던 바도 있고.”

백진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리고 곱게 휘었다.

“좋아요. 저, 라면 하나는 진짜 잘 끓이거든요? 그러니까 기대하세요.”

두 사람은 다시 차에 타고 출발했다.

잠시 후 승합차 두 대가 그곳에 도착하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그곳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쓰러진 모든 사람을 수거하고 차까지 끌고 갔다. 남은 흔적을 싹 지우는 건 당연했고.

그곳은 이제 다시 평범한 도로가 되었다.

* * *

“들어오세요.”

백진희의 말을 들으며 반태수가 현관에 발을 들였다. 현관에서는 복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복도도 널찍했다. 벽에는 그림이 몇 개 걸려 있었고.

그곳을 지나 거실에 들어서자 넓은 집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집 좋네요.”

“제가 돈은 좀 벌거든요.”

백진희는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기대하긴 했지만 설마 정말로 반태수와 함께 집에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다.

스스로 생각해도 반쯤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남자를 집에 데려오다니.

반태수는 슬슬 백진희가 자신에게 왜 이렇게 호의적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마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백진희의 체질 때문이기도 했다.

백진희는 마력에 대한 재능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몰랐다. 거기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처럼 긴 시간을 함께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백진희는 마력을 잘 받아들이는 체질이었다. 마력에 대한 감각도 예민한 편이고.

그런데도 가진 마력은 일반인의 두 배에 불과하다.

반태수는 그에 관한 것도 혼자서 분석해봤다.

마력을 이용해 백진희의 몸을 스캔하고 백진희가 품은 마력은 물론이고 마력이 이동하는 통로까지 파악했다.

결론 역시 그녀의 체질 때문이었다.

그리고 포탈 때문이었다. 아니, 포탈을 통과할 때마다 들락거리는 마력이 문제였다.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아마 백진희 말고 다른 능력자들도 마찬가지이리라. 다들 마력을 더 이상 쌓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포탈에서 나올 때마다 마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딱 지금 가진 만큼만 남는 습관 때문에 지구에서 마력을 쌓아도 포탈을 이용할 때마다 초과된 마력이 함께 빠져나가는 것이다.

아무튼 백진희는 능력자들 중에서도 특히 마력에 대한 감각이 예민했다.

그리고 그 예민함이 반태수의 막대한 마력을 감지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무튼 백진희의 자질은 상당히 뛰어났고, 이를 조금만 바로잡아주면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거기까지가 반태수가 분석한 백진희였다.

백진희는 주방으로 가서 간단한 안주 몇 가지와 맥주를 가지고 돌아왔다.

라면 끓여 준다더니.

두 사람은 거실에 있는 테이블에 맥주와 안주를 깔아놓고 마주 앉았다.

반태수는 앞에 앉은 백진희를 가만히 쳐다봤다.

몇 가지 충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언제까지 충동에 져서야 제대로 된 마법사라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급격한 감정변화가 신기했다.

이면세계에 다녀오면서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 난폭한 마력 때문인가?’

마력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저 몸에 살짝 두르고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나 영향을 받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일일까?

생각이 살짝 복잡해졌다. 하지만 금세 털어냈다. 지금은 거기 매달려 봐야 얻을 게 없으니까.

계속 마법 실력이 성장해 나가다보면 그 답도 결국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반태수는 다시 백진희에게 집중했다. 보면 볼수록 재능이 아까웠다.

“뭐하는 분이에요? 평범한 회사원은 아닌 것 같고······.”

반태수의 말에 백진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혀 다른 망상을 펼치고 있다가 갑자기 저런 질문을 들어 살짝 놀란 것이다.

하지만 이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하지는 않죠. 하지만 회사에 다니는 건 맞아요. 하는 업무가 좀 특별할 뿐이죠.”

“무슨 업무인지 물어도 되나요?”

“묻는 거야 무슨 상관인가요. 다만 대답을 들으실 수는 없을 거예요. 말하면 안 되거든요.”

“위험한 일이죠? 이렇게 평소에도 위협을 당할 정도면.”

백진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원래는 안 그렇거든요? 위험하다면 위험한 일이긴 한데, 평소에 이런 위협을 당한 건 처음이에요.”

백진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전 그보다 태수 씨가 더 신기한데요? 아까도 그렇고 전혀 동요하지를 않으시네요.”

“그런가요?”

생각해보니 백진희 입장에서는 이상했을 수도 있다.

반태수는 또 충동적으로 말했다.

“나도 평범한 사람은 아닙니다.”

백진희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그럼요?”

반태수가 씨익 웃었다.

“천재죠.”

백진희가 멍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농담인 것 같으면서도 또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저 같은 사람은 쉽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건 계산이 먼저 튀어나오거든요. 계산하느라 당황할 시간이 없습니다.”

백진희는 멍하니 그 말을 듣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와······ 재수 없고 재미없다는 얘기 자주 듣지 않아요?”

백진희는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저런 것도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거 심각하네. 중증이야.’

백진희는 마음속으로 정신 차리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음.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주변에 없습니다.”

백진희가 당황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대체 뭐라고 대꾸해야 한단 말인가.

반태수가 씨익 웃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혼자가 편하니까요.”

더 대답하기 어려워졌다.

백진희는 이제 대체 무슨 말로 분위기를 바꿔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반태수가 간단히 풀어줬다.

“아까 잡은 그 사람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경찰에 넘길 건 아니죠?”

반태수의 물음에 백진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굉장히 민감한 질문이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만 하시네요.”

반태수는 그저 빙긋 웃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답을 듣기 위해 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진희 씨가 익혔다는 그 무술, 관심이 좀 생겼습니다.”

백진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정말요?”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따로 연락드리죠.”

백진희가 당황했다.

“가, 가시려고요?”

“슬슬 가서 자야 내일 일을 하죠.”

“아니······.”

백진희가 황당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두드렸다.

이 밤중에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간다고? 그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 이렇게 계속 신호를 주고 있는데?

하지만 반태수는 결국 나가버렸다. 황당과 당황이 뒤섞인 백진희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간 반태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동을 이겨냈어.”

충동에 휘둘리지 않았다. 이제야 좀 마법사다운 마법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한 번 해냈으니 앞으로도 충동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반태수는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 * *

다음날, 백진희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원래 정해진 출근 시간 따위 없지만 이번에는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굉장히 이른 시간에 출근한 것이다.

백진희의 소속은 대영물산이었다. 그러니 원래라면 대영물산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실제로 대영물산에 특수 자원관리부가 있고, 거기에 매일 출근하는 직원들도 있다.

특수 자원관리부의 일반 직원들은 능력자들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백진희는 오늘 포탈이 있는 곳으로 출근했다.

외부에 알리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일을 진행할 때는 그곳을 이용했으니까.

어젯밤에 잡은 자들도 아마 전부 그곳에 있을 것이다.

미리 연락은 받았다. 아무도 죽지 않았고, 전부 정신을 차렸다고.

백진희는 출근하는 동안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만일 그 순간 시기적절하게 벼락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분명히 당했을 것이다.

자신은 잡혀갔을 것이고 반태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만 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한데 그 벼락이 과연 운 좋게 떨어진 걸까?

백진희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반드시 누군가 개입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누군가가 반태수일 수도 있다. 백진희가 생각하기에 가능성은 낮았지만.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빠르게 차를 몰아 회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장 그놈들이 갇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이른 아침인데도 최진혁이 보였다.

최진혁은 백진희를 보자마자 투덜거렸다.

“아오, 저 자식들 아주 독종이야. 당최 입을 열 생각을 안 하네.”

“그래서, 아무것도 못 알아냈다고?”

최진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단 대장으로 보이는 놈은 죽었어.”

백진희가 깜짝 놀랐다.

“뭐? 그놈 내가 죽을 정도로 패진 않았는데?”

“자살했어. 독 같은 것도 아니고 능력을 이용한 것 같아.”

“그런 게 가능해?”

“가능하더라고. 어떻게 한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나머지 놈들은?”

“잔챙이야. 아는 게 없어.”

최진혁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 팀 분위기 엉망진창이야. 이런 일은 처음이잖아. 자기들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다들 차라리 이면세계로 가는 게 어떠냐고 난리야.”

“거긴 만만하고 안전해? 어떻게 보면 거기가 더 위험해. 거긴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야.”

“나도 알지. 다들 불안하니까 하는 소리야. 진짜 그럴 생각은 없어.”

백진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건이 종결될 줄은 몰랐다.

그럼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 아닌가. 언제 다시 습격을 받을지 알 수 없다.

최진혁이 거기에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가 이면세계로 가는 날, 누군가가 우리 뒤를 따라서 포탈에 뛰어들었다는 거 알지?”

백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놈, 아무래도 은신 속성의 능력자인 것 같아.”

“은신 속성이라고? 아니, 그보다 능력을 지구에서 썼다는 거야?”

최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지구에서 능력을 쓰는 자들이 나타난 거 같아.”

“넌?”

최진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아직 감도 못 잡았어. 젠장, 지금까지는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백진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개인행동을 하면 안 되겠네. 다들 모이라고 해. 모여서 얘기하다보면 대책이 나오겠지.”

백진희의 말에 최진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

혼자 남아 고민하던 백진희의 머릿속에 문득 반태수가 떠올랐다.

자칭 천재라고 했으니 이럴 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손에 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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