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16화 (16/351)

16. < 백진희 2 >

=================

백진희는 자신의 차에 탔다. 여기서 자신의 집까지는 차로 20분쯤 가야 한다.

막히는 시간이 아니니 딱 그 정도 걸릴 것이다.

백진희는 운전석에 앉아 옆자리에 탄 반태수의 얼굴을 계속 훔쳐봤다.

‘역시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멋있어졌어.’

예전에는 그저 잘생기기만 했다면, 지금은 거기에 야성이 살짝 가미된 느낌이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야성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었다. 얼굴이든 옷차림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하지만 분명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 표정, 분명히 설레고 기대하고 그런 거 같은데?’

백진희는 운전하는 내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남자들에게 단 한 번도 스킨십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반태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작 반태수는 백진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온 정신을 뒤에서 따라오는 차에 집중했다.

이 와중에도 쉬지 않고 마법을 연구하고 있었기에 백진희에게 할당할 뇌가 없었다.

미행하는 놈은 차를 탄 순간부터 굉장히 노골적으로 쫓아오고 있었다.

거의 뒤에 바짝 붙다시피 해서 따라왔다.

반태수는 백진희를 집으로 들여보낸 다음 미행하는 놈을 따로 만날 계획이었다.

그래야 좀 더 편하게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반태수는 이럴 때도 가슴이 뛰는 걸 느끼며, 자신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은 계획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다.

어떤 일을 하든 철저한 계획을 세운 뒤, 거기에 따라 행동해 왔다.

대부분은 계획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벗어난다 하더라도 금세 계획을 수정해 결국은 계획에 딱 맞는 결과를 냈다.

한데 최근 자신의 내면에 굉장히 충동적인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면세계에 가지 않았다면 아마 이후로도 계속 모르고 있었으리라.

더불어 자신에게 폭력적인 성향도 잠재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폭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툭툭 드러나는 생소한 성향들이 과연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그러니까 기억을 잃기 전, 17세 이전에 갖고 있던 성향인지, 아니면 마법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성향인지 알 수 없었다.

반태수가 그렇게 쫓아오는 차를 신경 쓰고 있을 때, 백진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대학생이라고 했죠?”

“네.”

“혹시 의대생?”

반태수가 백진희를 쳐다봤다.

“아닙니다. 물리학과죠.”

“아아, 물리학. 전에 의학 서적을 보고 계시는 거 같아서 의대생인 줄 알았어요. 그 책들 의대생들 사이에서도 제법 어려운 책이거든요.”

백진희의 말에 반태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쑥스럽네. 맞아요. 저 의대 출신이에요. 졸업은 못했지만. 아, 그렇다고 성적이 모자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저 의대에서도 나름 잘 나갔어요.”

백진희가 그렇게 말하며 쑥스럽게 웃었다.

반태수가 여전히 말이 없자, 백진희가 물었다.

“왜요? 의외인가요? 저 별로 안 똑똑하게 생겼어요?”

“아, 그런 거 아닙니다. 의외인 건 맞지만.”

“이해해요. 제 출신 들으면 다들 그러거든요.”

사실 반태수는 순간적으로 백진희의 의학적 지식을 빌려서 연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지웠다.

백진희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연구에 쓸 정도는 아닐 거라 판단했다.

실제로 반태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지식을 섭렵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아마 지금은 비슷할지 몰라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세 관계가 역전될 것이다.

“혹시 공부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요. 아는 한도 내에서 설명해줄 테니까. 아니면 의대 쪽으로 연결해 줄 수도 있고요.”

뒷말은 살짝 더 나간 감이 있지만 백진희는 후회하지 않았다. 이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무리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나름 재미있어서.”

그 말에 오히려 백진희가 놀랐다.

“진짜요? 혹시 천재?”

반태수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비슷합니다.”

“와아.”

백진희는 좀 다른 의미로 놀랐다.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자신이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을 정말 오랜만에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정말로 그럴 것 같았다.

사실 반태수는 자신이 일반적인 면에서는 분명히 천재라고 믿었다.

물리학이든 수학이든 그 짧은 시간 동안 저명한 교수급 이상의 경지에 올랐으니까.

하지만 마법 쪽은 얘기가 좀 달랐다. 비교할 대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름 마법에 재능이 있다고 여기면서도 이게 평범한 수준인지, 아니면 바닥인지 그것도 아니면 진짜 천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면세계에서조차 마법사는 희귀했다.

그렇다면 마법사들은 전부 굉장한 천재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반태수가 잠깐 딴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백진희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졸업반이라고 했죠?”

“맞습니다.”

“졸업하면 뭐 하실 거예요? 아, 카페가 워낙 잘 되니 계속 그거 하시겠구나.”

“그것도 비슷하네요.”

“비슷? 아, 카페 하시면서 다른 사업도 준비하시는 건가요? 사업 아이템이 병원이랑 관계있고요?”

“다른 사업을 준비할 계획이긴 합니다. 카페가 좀 안정되면요. 아직 아이템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의학은 그냥 취미 비슷한 거고요.”

백진희의 눈이 커다래졌다.

“의학을 취미로 하신다고요?”

알면 알수록 신기한 사람이었다.

“혹시 다른 취미도 있나요?”

“공부가 취미입니다. 수학이나 화학 쪽은 제법 공부를 많이 한 편이고, 이제 의학을 하면서 생물학이나 언어학 같은 걸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공학 쪽도 관심이 많고요.”

듣기만 해도 질릴 정도였다.

백진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거 말고 좀 더 활동적인 취미는 없나요? 예를 들면 볼링이라거나?”

백진희는 반태수가 관심 있는 운동이 있다면 자신도 거기에 취미를 붙여 볼 용의가 있었다.

“취미는 아닌데, 무술 쪽에 요즘 관심이 좀 생기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 해보려고요.”

무술이라는 말에 백진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제가 그거 좀 하는데, 같이 하실래요?”

반태수는 대답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뒤에서 쫓아오는 차가 급격히 속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뒤에서 처박으려는 모양이다.

뒤에서 받히면 충격이 만만치 않다. 특히 이쪽에서 브레이크를 잡는 순간 박으면 충격이 훨씬 커진다.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이었다.

반태수는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연구하던 마법 하나를 즉시 펼쳤다.

마력 코어에서 마력의 실 몇 가닥이 쭉쭉 뽑혀 나와 서로 얽히며 단숨에 마법진을 만들었다.

샤아아.

마법이 발동하며 마력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이건 내구도 강화 마법이었다.

내구도 강화는 단순히 물체를 강하게 만드는 마법이 아니었다.

충격을 흡수하고 흘려보내고 분산시키고 중화시키는 마법이다.

그것을 차에 썼다.

단순히 처음 개발한 마법진만 써서는 제대로 된 마법이 나올 수 없다.

순간적으로 상황을 계산해서 물체의 모양과 걸맞은 마력 구조를 짜야 한다.

그래야 충격이 왔을 때, 그것이 온전히 차체만으로 해결될 테니까.

또한, 그렇게 해야 차에 탄 사람들에게 충격이 전혀 오지 않게 만드는 마법이 되는 것이다.

꽈앙!

마법이 펼쳐진 직후, 뒤차가 백진희의 차를 들이 박았다.

차체가 살짝 흔들리긴 했지만 별다른 충격이 오진 않았다. 하지만 뒤에서 차를 박았다는 느낌은 아주 확실히 왔다.

백진희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반태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사고가 난 거 같네요.”

백진희는 차를 멈추고서는 내리려고 했다.

“내가 가보겠습니다. 그냥 타고 있어요.”

“예? 하지만······.”

“생각보다 외진 곳이라 위험해요.”

백진희는 그 말에 하마터면 빙긋 웃을 뻔했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능력자다.

이면세계에서처럼 막대한 힘을 휘두를 수는 없지만, 웬만한 성인 남자 서너 명 정도는 충분히 해치울 수 있었다.

무술을 좀 한다는 건 농담이 아니었다. 상당한 훈련을 받았고, 심지어 무기도 소지 중이었다.

백진희는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말했다.

“그래도 제가 나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저 무술 잘한다니까요? 걱정할 일 없을 거예요.”

반태수는 굳이 그녀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사실 차 안에 있으면 방금 걸어놓은 마법 때문에 훨씬 안전하겠지만 밖에 있다고 해서 보호하지 못할 건 없었다.

보아하니 백진희도 나름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것 같고.

게다가 뒤에서 박은 차에는 한 명만 타고 있었다.

“그럼 같이 내리죠.”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들키지 않고 이 상황을 해결할지에 대해서.

‘아마 마법을 써도 잘 모르겠지. 이면세계에서도 그랬으니까.’

반태수는 일단 부딪혀 보자는 생각으로 차에서 내리다가 피식 웃었다.

‘일단 부딪혀 보자니. 진짜 충동적이네.’

반태수와 백진희가 차에서 내리자, 뒤에서 박은 차에서 키가 상당히 크고 탄탄한 몸을 가진 사내가 내렸다.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차부터 확인했다. 앞이 절반 이상 찌그러졌다. 당연했다. 그 정도로 세게 박았으니까. 그것도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타이밍에 맞춰서.

“어이구, 이거 차가 많이 상했네.”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앞차를 봤다. 한데 백진희의 차는 자잘하게 긁힌 상처밖에 없었다.

차의 메이커를 반사적으로 확인했는데, 좋은 외제차이긴 했지만 튼튼한 차는 절대 아니었다.

이상했지만 당장 그걸 생각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일단 시간을 끌어야 하니까.

백진희는 자신의 차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사내를 바라봤다.

“이 정도면 별로 손 댈 것도 없겠네요. 그냥 가세요.”

그러자 사내가 오히려 말렸다.

“어이구, 그러면 안 되죠. 이렇게 사고가 나면 전체적으로 점검을 꼭 해봐야 합니다. 차라는 게 조금만 미묘하게 틀어져도 나중에 큰 고생을 하거든요.”

백진희는 그 말에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은 어서 빨리 반태수를 데리고 집으로 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것도 내가 알아서 할게요. 그럼 전 이만. 태수씨! 우리, 가요.”

백진희가 다시 차로 돌아가려 하자, 사내가 얼른 달려가 그 앞을 막았다. 그녀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죠?”

“그냥 가시면 안 된다니까요? 나중에 뺑소니로 신고라도 하시면 제가 곤란해지지 않겠어요?”

“그런 짓 안 해요. 그러니까 비키시죠?”

“못 비킵니다.”

사내가 그렇게 말하며 히죽 웃었다. 그 미소가 어찌나 비열해 보이는지 백진희는 순간 머리에 피가 확 쏠리는 걸 느끼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순간,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오! 드디어 왔구나!”

사내의 시선은 백진희의 뒤쪽을 보고 있었다. 백진희는 반사적으로 뒤로 쭉 물러나며 슬쩍 돌아봤다.

승합차 한 대가 빠르게 달려와 사내의 차 뒤에 멈췄다.

그리고 문이 확 열리더니 안에서 덩치 큰 사내들이 우르르 내렸다.

반태수는 그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부터 한 놈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놈한테만 너무 신경을 써서 시야가 좁아졌군.’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상황을 좀 더 넓게 보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자, 반성 끝.’

이제 반성을 했으니 닥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승합차에서 내린 자들 전부 능력자였다. 한데 수준이 좀 떨어져 보인다.

백진희나 저 사내는 일반인의 두 배 정도 마력을 보유했는데, 저놈들은 기껏해야 1.5배 정도다.

반태수가 머릿속으로 견적을 내고 있을 때, 사내가 백진희를 보며 말했다.

“자, 백진희 씨. 우리 서로 피곤할 일 만들지 맙시다. 조용히 저 승합차에 타시면 됩니다. 몸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겠다고 약속하죠.”

백진희의 표정이 확 굳었다.

“날 노린 거였어?”

사내가 씨익 웃었다.

“스카웃 제의라고 해둡시다.”

그렇게 말한 사내가 반태수를 바라봤다.

“아, 저 친구의 운명은 백진희 씨한테 달렸다는 거, 알죠? 아마추어 아니니까.”

백진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