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 백진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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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이서영이 반태수를 발견하자마자 깜짝 놀라 외쳤다.
“연락도 없이 안 나와서 미안. 별 일 없었지?”
이서영이 고개를 휙휙 저었다.
“없었어요.”
“앞으로도 종종 이런 일이 생길지 몰라. 되도록 미리 얘기는 할 텐데, 그게 어려울 때도 있으니까 이해 좀 해줘.”
이서영이 부드럽게 웃었다.
“네. 염려 마세요.”
이서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는 듯 반태수를 바라봤다.
“아 참, 사장님. 전에 명함 줬던 여자 손님, 어제 오셔서 사장님 찾으셨어요.”
그 말을 하는 이서영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표정은 금세 사라졌다.
“날 찾았다고?”
“네. 연락을 안 하셔서 찾아오셨다고······.”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았어. 난 책 좀 읽을 테니까, 부탁해.”
“네!”
이서영은 밝게 대답하고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반태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자신이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오늘은 의학 서적을 몇 권 가져왔다.
마력과 생체조직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기에 앞서 기초 지식을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의학서적을 가져온 것은 그저 생체조직에 관한 연구뿐 아니라 사람 몸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를 하고자함이었다.
이면세계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분야였다.
마력은 육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마법사의 방대한 마력은 그것을 극대화 한다.
병에 걸릴 일이 거의 없고, 바이러스에도 강하다.
그러니 굳이 거기에 심력을 쏟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반태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의학서적을 탐독했다. 원래 알던 지식이 더욱 강화되었고,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습득했다.
그와 동시에 이 지식을 어떻게 마법에 적용할지를 동시에 고민하고 연구했다.
생각을 셋으로 나눌 수 있다는 건 마법사에게 있어서 굉장한 이점이었다.
반태수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는 미소가 맺혔다.
이렇게 새로운 지식과 마법을 익히는 과정이 몸서리칠 정도로 즐거웠다.
그리고 새로 익힌 마법을 그곳에서 써먹을 생각을 하니 훨씬 더 즐거워졌다.
그렇게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보통 반태수가 이렇게 집중할 때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미리 반태수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얘기를 해뒀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중한 끝에 반태수는 새로운 마법 하나를 개발해냈다.
내구력 강화.
마력의 파동을 이용해 몸 내부에서 외부의 충격을 중화시키고 흘려내고 흡수했다가 방출하는 마법이었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 이걸 쓰려면 셋으로 나눈 두뇌 하나를 통째로 할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마법을 신경 쓰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발현할 수 있도록 개량하는 것이 목표였다.
마치 게임의 패시브 스킬처럼 말이다.
이 역시 그동안은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은 부분이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마법이 지속적으로 발동하게 하려면 부여 마법을 통해 해결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면세계에 다녀온 후, 이 역시 상황이 달라졌다.
부여 마법의 강점은 범용성에 있다. 마법이 부여된 마도구를 누가 이용하더라도 같은 효과를 낸다.
필연적으로 마법의 수준과 성능이 깎일 수밖에 없었다.
그걸 고려하지 않고 오직 반태수에게만 맞춰진 마도구를 만들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러려면 다른 마법을 개발할 정도의 연구가 필요했다.
그러느니 부여 마법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마법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 훨씬 낫다.
물론 부여 마법도 계속 연구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줄 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곳에 어떤 강자들이 있을지 아직 모른다. 어쩌면 반태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괴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을 적으로 만나면 어찌 될까?
지금 반태수가 하는 것은 그럴 때를 대비하기 위한 연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연구를 하면 할수록 흥분되고 기대되고 즐거웠다.
반태수는 읽던 의학서적에 책갈피를 끼우고는 탁 덮었다.
그리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기지개를 켜던 반태수는 그제야 자신에게 모인 시선을 느꼈다.
매장 안에 있던 손님들이 뭔가에 홀린 듯 반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반태수가 정신을 차리고 매장을 둘러보자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뭐지?’
반태수가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이서영이 다가왔다.
“사장님, 점심 아직 안 드셨죠? 제가 샌드위치 만들었는데, 드시겠어요?”
“샌드위치?”
이서영이 빙긋 웃으며 샌드위치가 담긴 접시를 반태수 앞 테이블에 놓았다.
“점심 먹으러 가기가 좀 애매하더라고요. 그래서 있는 재료로 만들어 봤어요.”
반태수가 살짝 미안한 표정으로 이서영을 쳐다봤다.
“내가 너무 집중했나보네. 점심 때 내가 좀 도와줬어야 하는데. 이건 정말 잘 먹을게.”
반태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서영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의 눈에 눈웃음이 가득했다.
반태수는 또 시선이 느껴져서 매장 안을 둘러봤다. 아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오늘따라 왜 이러지?’
평소에도 반태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오늘따라 다들 과도한 관심을 주고 있었다.
아무튼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든 말든 신경 쓸 일은 아니었는지라 한 입에 먹기 좋게 잘 잘라둔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서 입에 넣었다.
‘오, 맛있네?’
상당히 신경을 써서 만들었는지 샌드위치의 맛이 제법이었다.
반태수는 감탄을 담아 고개를 들어 이서영을 쳐다봤다.
기대감 넘치는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보고 있던 이서영이 눈을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얼른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반태수의 반응을 확인했기에 그녀는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카페 안의 분위기가 왠지 활기차졌다.
반태수는 그 묘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샌드위치를 하나씩 입에 넣었다.
마지막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을 때, 매장 창밖으로 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백진희였다.
어제도 왔다더니 오늘도 또 온 것이다. 잠시 지켜보고 있으니 빠르게 걸어 카페에 도착했다.
백진희는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반태수를 발견하고는 반색했다.
“오늘은 있네요?”
백진희가 빠르게 반태수에게 다가갔다.
반태수 앞에 선 백진희가 도발적인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왜 연락 안 해요?”
솔직히 이면세계에 다녀오고 나면 반태수의 연락이 와 있을 줄 알았다. 전화를 못 받으니 적어도 다섯 번은 연락을 시도할 거라 믿었다.
한데 지금까지 전화는커녕, 문자 한 통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반태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연락이요?”
백진희가 황당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 연락이요. 제가 명함 드렸잖아요.”
“명함을 받으면 꼭 연락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 그런 아니지만, 제가 연락 달라고 부탁했잖아요.”
반태수가 백진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게 연락을 해야 할 이유가 되느냐는 듯이.
백진희는 그런 반태수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잘 생기긴 진짜 잘생겼네.’
잠시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보던 백진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저랑 한 번 만나보실래요?”
반태수는 대답 대신 백진희를 빤히 쳐다봤다.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 마법이나 파고들었지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반태수에게는 친한 친구도 없었다. 학교에서도 거의 아웃사이더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지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마법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여겼으니까.
아무튼 그런 상황이니 백진희가 지금 뭘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니 백진희가 답답한지 말을 이었다.
“당장 사귀자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 그렇게 뺄 거 없어요. 그냥 친구처럼 몇 번 만나보자고요.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러다보면 결론이 나지 않겠어요?”
의외로 잘 맞을 수도 있고, 한 번 만났는데 학을 뗄 수도 있다.
“친구라면 뭐, 나쁘지 않겠네요.”
반태수의 대답에 카운터 쪽에서 헉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그쪽을 쳐다보니, 이서영이 동그래진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뭔가 굉장히 복잡해 보였다.
이서영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에 있던 한서현의 표정도 뭔가 복잡미묘했다.
반태수는 애써 그 둘의 눈길을 무시하고 백진희를 쳐다봤다.
백진희를 만나보기로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팀 대영의 리더다. 그러니 함께 하면서 그녀를 통해 이면세계와 포탈에 대한 정보를 얻을 계획이었다.
백진희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그런 얘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태수에게는 충분히 정보를 뽑아낼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마법사니까.’
* * *
백진희와는 사흘 후에 만났다.
사실 백진희는 당장 반태수와 나가고 싶어 했지만 반태수가 딱 잘라 거절했다.
새로 만든 마법을 확인하고 개량할 일이 남았는데, 그걸 뒤로 미룰 수는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 마법을 제법 쓸 만하게 정리했을 때는 이미 이틀이 꼬박 지난 뒤였다.
그 사이 내팽개쳐놨던 핸드폰에는 백진희로부터 온 부재중 연락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아무튼 그런 과정을 거쳐 백진희와 약속을 잡고 오늘 만났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는 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백진희는 반태수와 나란히 걸으면서 그의 옆모습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정말 신기했다.
지금까지 여러 남자들을 만나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단순히 잘생겨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남자보다 잘생기긴 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아니었다.
반태수와 함께 있으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편안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신을 던지고 싶은 묘한 충동까지 들었다.
‘역시 그동안은 제대로 된 남자가 나타나지 않은 거였어.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고.’
그동안 최진혁이 놀려대는 말이 제법 신경 쓰였었다. 매번 대충 농담처럼 넘어갔지만, 말이 거듭될수록 알게 모르게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한데 오늘 그동안 쌓였던 모든 것이 싹 날아가 버렸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말이 없지?’
그동안 만났던 다른 남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수시로 관심을 끌고자 말을 걸고, 재미있게 해주려고 애썼다.
한데 반태수는 자신이 묻는 말에만 간단히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니 대화가 제대로 이어질 리 없었다.
그렇게 말없이 계속 걷기만 했는데도 백진희는 그조차 신선하고 좋았다.
“우리 또 만나는 거죠? 제가 이번 주말에는 시간이 안 나서 그 전에 한 번 봤으면 좋겠는데.”
백진희의 말에 반태수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저 말은 주말에 이면세계로 간다는 의미 아닐까?
“그러죠.”
반태수의 대답에 백진희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다음 만남이 벌써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반태수는 그보다는 다른 쪽에 신경이 쓰였다.
누군가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반태수가 백진희를 만난 순간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미행이 따라붙었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부터 그쪽에 마력의 안개를 펼쳐뒀다.
그 역시 마력 보유자, 그러니까 능력자였다.
마력 코어는 없었고, 마력 양은 백진희와 비슷하지만 눈곱만큼 많았다.
하지만 마력이 적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리라. 여기에는 마력 말고도 쓸 수 있는 무기가 많으니까.
반태수는 백진희가 다치거나 죽는 걸 원하지 않았다. 아직 백진희를 통해서 알아봐야 할 것들이 많았으니까.
“집이 어딥니까?”
“예?”
백진희가 놀란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데려다드리죠.”
“정말요?”
백진희는 정말로 놀란 모양이었다. 반태수가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을 테니까.
“느낌이 안 좋아서 그럽니다. 내 감이 생각보다 예리하거든요.”
“예?”
백진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슬슬 가죠.”
백진희는 그 말을 하는 반태수의 입가가 살짝 올라가는 걸 분명히 봤다.
‘이거 분위기 괜찮은 거 맞지? 라면이라도 먹고 가라고 해야 하나?’
백진희는 마음속으로 열심히 진도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