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14화 (14/351)

14. < USB의 정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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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그는 길드장의 집무실에 있었다. 길드장인 앤더레인은 자신의 자리에 앉은 채 깊게 가라앉은 차가운 눈으로 오디스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못 찾았다고?”

“예.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미끼들이 그 안에서 재물을 빼돌렸다고 들었는데?”

“일일이 찾아서 확인했습니다. 그 중에는 없습니다.”

“확신하나?”

“예. 확신합니다.”

앤더레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책상에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마력 파동이 일어나 오디스를 압박했다.

오디스는 마력 파동이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죽을 맛이었다.

길드장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마다 저랬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일부러 저런다는 데에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었다.

오디스는 속으로 있는 욕, 없는 욕 다 쏟아 부었다. 물론 진짜로 입 밖에 낼 용기는 없었다.

이내 앤더레인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번 싸움으로 뭘 얻었지?”

“시 정부의 보상금이랑, 마수 사육과 관련된 데이터 몇 가지입니다.”

“적자로군.”

오디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적자는 아니었다. 시 정부에서 받은 보상금만 해도 이번에 들어간 돈의 몇 배는 되니까.

하지만 앤더레인이 적자라면 적자다. 그가 원하는 건 그보다 훨씬 많았을 테니까.

“그 마수들에 대한 정보는?”

“역시 없습니다.”

“마수 사체는?”

“해체해서 연구 중입니다. 일반적인 다른 마수들에 비해 훨씬 효용성이 높습니다.”

셰딤에서 사육하던 마수들은 기존의 마수와는 많이 달랐다. 전혀 새로운 존재는 아니었다. 비슷한 마수들이 여럿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그 어떤 마수와도 달랐다.

마치 셰딤에서 새로 마수를 만들어 내기라도 한 것처럼.

“분명히 뭔가 있어. 그걸 얻어냈어야 하는데.”

앤더레인이 인상을 팍 쓰며 중얼거리자 오디스가 움찔 떨었다.

“그나저나 미끼들이 이번에 검은 마스크를 썼다고 하던데, 수상하지 않아?”

“알아보니 거기에 더럽게 잘생긴 놈이 있었답니다. 너무 눈에 띄어서 그냥 다들 마스크를 썼답니다.”

앤더레인이 오디스를 노려봤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솔직히 말이 안 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디스는 차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잘생겼다는 새끼, 이름이 뭐야?”

“반입니다.”

“반?”

앤더레인이 다시 책상을 톡톡 두드리다가 오디스에게 말했다.

“그놈, 찾아서 내 앞에 데려와. 냄새가 난다.”

“예.”

오디스는 살았다는 표정으로 얼른 나갔다. 미끼 하나 찾는 것쯤이야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놈이 이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리고 미끼에 쓰는 놈들은 대부분 신분이 없거나 신분을 함부로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도시를 떠나려면 확실한 신분이 필요하다. 더불어 많은 돈도. 어느 쪽이든 미끼에게 있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오디스는 이틀이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반태수는 꼬박 하루를 잤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이틀이나 카페에 가지 못했다.

자신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알아서 문을 열고 영업을 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카페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마법이 작용한다고 해도 워낙 가볍게 걸었기에 한계가 있었으니까.

잠에서 깬 반태수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히죽 웃고는 다시 침대에 털썩 누웠다.

꿈만 같은 경험이었다.

마법으로 전투를 하다니. 평생 그럴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소중한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문득 셰딤의 근거지에서 얻은 USB가 떠올랐다.

반태수는 벌떡 일어나서 품을 뒤졌다. USB는 그대로 안주머니에 있었다.

그걸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옷을 벗고 일단 씻었다. 그리고 깔끔한 옷을 차려 입었다.

몸이 개운해야 정신도 개운해지는 법이다. 이제부터 아주 중요한 걸 확인할 테니 샤워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반태수는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

혹시 이면 세계 쪽은 마력 때문에 이쪽 세상과 전자기기의 방식이 다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USB안에는 폴더별로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일단 그걸 전부 노트북에 복사했다.

자료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부분 문서와 사진이었다. 동영상도 몇 개 있었는데 용량이 별로 크지는 않았다.

복사가 끝나자, 차분하게 내용을 살펴봤다.

가장 먼저 확인한 문서는 보고서였다.

‘역시 변종 마수 제작을 연구한 거였네.’

보고서에는 연구 결과와 진행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들은 마수에게 강제로 코어를 이식해 변종 마수를 만들었다.

마수가 코어를 받아들여서 잘 정착하면 변종 마수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폭주해서 날뛰다가 죽는다.

셰딤에서는 성공률을 높이고, 변종 마수로 재탄생한 마수를 컨트롤 하는 법과, 코어 이식 때문에 확 줄어든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연구 중이었다.

보고서를 읽다 보니, 상부의 도움을 요청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렇게 큰 조직이었어?’

이번에 부순 마수 사육장과 근거지는 셰딤이라는 조직의 일개 지부에 불과했다.

마수 사육장은 말 그대로 연구만 하는 곳이었다.

마수를 공급 받고, 연구를 위한 재료나 마수를 키우기 위한 먹이를 비롯해 필요한 돈까지 받았다. 심지어 잡일을 하는 일꾼까지 지원받았다.

보고서에 어떤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공급했는지에 대한 내용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척 보기에도 한두 조직이 엮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셰딤은 반태수가 머물렀던 도시뿐 아니라 다른 여러 도시에까지 퍼져 있는 거대 조직이었다.

“이거 잘못 엮이면 골치 좀 아프겠는데?”

저렇게 큰 조직이 자신을 건드린 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었다.

물론 그건 다시 이면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때의 얘기긴 하지만.

반태수는 일단 모든 보고서를 읽은 후, 머릿속으로 그걸 정리하면서 다른 폴더에 있는 자료들을 확인했다.

대부분 반태수가 보기에 쓸모없는 자료들이었다. 마수에게 코어를 이식하는 순간부터의 관찰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코어를 만들거나 얻는 방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다.

아마 코어조차 공급받은 모양이다.

자신이 죽였던 고릴라 마수의 사진과 자료도 있었다. 그나마 가장 성공적으로 만든 마수였다. 수명도 제법 길었고, 코어도 무려 세 개나 이식했으니까.

폴더를 하나하나 확인할 때마다 실망감이 점점 커졌다.

고작 이런 걸 그렇게 공들여서 숨겼다니.

동영상도 별 거 없었다. 마력코어를 이식한 후의 변화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기록해 놓은 것뿐이었다.

마수 사육장의 자료로는 훌륭했지만 정말 건질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결국 마지막 폴더에 이르렀다.

마지막 폴더는 사진 파일만 잔뜩 있었다.

기대감 없이 기계적으로 첫 번째 사진을 열었다.

“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진이었다. 마수나 마력 코어, 혹은 관련 재료에 관한 사진이 아니었다.

유적지의 일부를 찍은 듯한 사진이었다.

거대한 벽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벽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한가득 새겨져 있었다.

벽이 어찌나 거대했는지 벽 전체를 찍은 사진만으로는 문자를 명확히 알아볼 수 없었다.

거리가 멀어서 문자가 작아진 것도 있지만, 문자 하나하나가 굉장히 복잡하고 세밀해서 사진을 확대하면 문자가 희미하게 뭉개져 버렸다.

다음 사진은 벽에 가까이 다가가서 찍은 사진이었다. 문자의 모양이 명확하게 나타나도록 최대한 신경 써서 수백 장에 걸쳐서 찍어 놓았다.

첫 번째 사진을 확인한 반태수의 표정이 확 굳었다.

처음 보는 문자였다. 아니, 이걸 문자라고 할 수나 있을까?

그런데 왠지 낯익었다. 그저 낯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굉장히 익숙했다. 당장 저 글자를 써보라고 하면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문제는 뜻이었는데, 그것도 희한하게 알 것 같았다.

이건 전혀 논리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모든 문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을까. 문자의 양이 워낙 많아서 한 번 읽는 데에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걸 계속 반복해서 읽었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겠는가.

어느새 밖이 어두워졌다.

반태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내다봤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저 기이한 문자가 자신의 시간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순간, 머릿속으로 새로운 지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새 마법이 떠오른 건 아니었다. 이건 방금 읽은 문자에 대한 지식이었다.

반태수는 모든 지식을 받은 다음,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것도 되는 거였어?”

설마 문자에 대한 지식까지 떠오를 줄이야. 하지만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지금 이 문자는 말 그대로 마법에 특화된 마법의 문자였으니까.

문자 하나에 다양한 의미가 담기고, 마력의 흐름까지 담을 수 있었다.

당연히 문자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108개의 기초문자가 있고, 그걸 확장한 3888개의 확장문자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4개의 특수문자가 추가된다.

총 4000개의 문자로 이루어진 말도 안 되는 문자가 바로 이 마법문자였다.

한데 고작 이 문자를 몇 번 읽은 것만으로 그 모든 지식이 떠올랐다.

물론 문자만 떠올랐고, 그걸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마법문자가 정말 어려운 이유는 각 문자의 조합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문자라고 같은 뜻을 가진 게 아니었다. 조합에 따라 전혀 새로운 뜻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이제 이 USB에 있는 문자들은 읽을 수 있었다.

반태수는 새로 얻은 지식을 토대로 다시 한 번 문자를 읽었다.

몇 번이나 읽었기에 벌써 머릿속에 모든 내용이 있었지만, 지식을 얻기 전이었기에 조합까지는 고려하지 못했었다.

다시 조합까지 고려하면서 읽으니 비로소 뜻이 명확해졌다.

처음 에는 마수와 코어에 관한 내용일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제대로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만일 이 유적지가 부서졌다면, 셰딤 놈들 광분 좀 하겠는데?’

이것은 마력과 생체조직에 관한 지식이었다.

마수에 코어를 이식하는 것은 지식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 중 하나에 불과했다.

셰딤에서는 그 예시를 가지고 지지고 볶아 마수 사육장을 만든 것이다. 그나마도 불완전했고.

이것은 마수뿐 아니라 평범한 짐승, 심지어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이었다.

반태수도 이걸 그대로 흡수할 수가 없었다. 따로 공부를 해야 하고 깊이 있는 연구를 병행하지 않으면 모든 지식을 익히고 이해하고 응용하는 건 어림도 없었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반태수는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카페는 다시 꾸준히 출근할 생각이었다. 마법 연구에 미쳐서 세상과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반태수가 원했던 건 안정이지 고립이 아니었으니까.

‘일단 생체조직 연구부터.’

눈앞에 있는 이것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현재 반태수의 관심을 모조리 빨아들여 버렸다.

이 연구가 궤도에 오르고 나면, 자신의 육체를 강화해 실질적인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식을 읽다가 어렴풋이 감이 왔다.

다음 단계로 올라가려면 이걸 선택해야 한다고.

그렇게 이걸 끝내고 나면 그 다음에는 포탈을 찾아야 한다.

‘그게 좀 암담하긴 하네.’

그래도 아예 깜깜한 건 아니었다. 자신은 이미 이면세계의 마력에 대한 감각이 있다. 그걸 이용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반태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더 이상 머리를 쓰기 어려울 듯했다. 일단 잠을 통해 컨디션을 회복하는 게 먼저였다.

침대에 누운 반태수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평소에 일어나던 시각에 정확히 일어났다.

신체 시계가 다시 맞춰진 기분이었다.

반태수는 빠르게 나갈 준비를 하고 카페로 향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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