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예상치 못했던 일 >
======================
반태수는 가장 뒤에서 일행을 따라갔다.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건물 하나로 몰려가는데 저쪽에서 모를 리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눈에 띌 텐데, 여기는 인적도 없다. 그러니 50명이 넘는 사람이 등장한 순간 이미 눈에 띄는 상태였다.
아마 셰딤도 저 안에서 나름의 준비를 할 것이다.
반태수는 앞선 자들을 따라가면서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계획을 세웠다.
어쨌든 이것이 반태수의 첫 실전이었다.
반태수는 스스로도 신기했다. 첫 실전이고 어쩌면 목숨이 오갈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너무나 차분했다.
마치 이런 상황을 수십, 수백 번쯤 경험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내가 마법사라서 그런 걸까?’
한데 그런 것치고 앞서 가는 다른 마법사들은 차분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전부 흥분과 두려움, 긴장과 기대감이 마구 뒤섞인 상태였다.
아마 저대로 싸움에 돌입하면 제 기량을 발휘하기가 만만치 않으리라.
‘그나저나 총도 등장하려나?’
만일 지구였다면 나라에 따라 대충 상대의 무장 상황을 가늠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이라면 총이 나올 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것이고, 러시아나 멕시코 같은 곳이라면 어떤 무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반태수는 냉정하게 자신이 총기를 막아낼 수 있을지 판단해봤다.
‘가능하긴 하지.’
물리학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무기에 대한 공부도 함께 했다. 충격량을 계산하고 폭탄의 파괴력을 수치로 환산해서 어떤 마법을 어떻게 발현해야 그것을 막을 수 있는지 계산하기도 했다.
자동소총 정도는 마법으로 막아낼 수 있다. 저격총도 미리 대비하면 충분히 막는다.
다른 현대화기도 사실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 웬만한 건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이다. 그러니 몸을 사려야 한다.
그게 반태수가 가장 뒤에서 가는 이유였다.
가장 앞장서서 가는 사람은 브렛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흥분한 모양이었다.
브렛은 단단히 잠긴 문을 발로 확 밀어 찼다. 그 순간 그의 몸에 있던 마력이 발로 쫙 모였다.
꽈앙!
철로 만든 문짝이 와락 우그러지며 날아갔다.
꽈과광!
문짝이 안으로 날아가 로비에 있던 안내데스크를 박살 냈다.
1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 건물에는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계단은 양쪽 끝에 하나씩 있었다.
브렛은 왼쪽 계단으로 향했다. 적당히 절반 정도가 브렛을 따라갔고, 나머지 절반이 오른쪽 계단으로 갔다.
반태수는 브렛이 간 쪽을 따라갔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굳이 마력을 저런 식으로 쓴 걸까?’
물론 마력을 이용해 육체를 강화할 수도 있다. 타격의 파괴력을 높이면서, 그 순간 타격부위의 신체를 강화할 수도 있다.
방금 브렛이 보여준 것이 딱 그거였다.
한데 마법사가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마력을 정형해 더욱 적은 양의 마력으로 훨씬 더 정교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런 반태수의 의문은 위로 올라가 셰딤의 조직원들을 만나 싸우면서 더욱 깊어졌다.
제대로 마법을 쓰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전부 마력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하고 파괴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싸웠다.
가끔 불이나 전기, 빙결 등의 힘을 쓰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조차 그저 마력의 속성을 강제로 변환시키는 정도였다.
그렇게 하면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쓴 마력에 비해 얻는 속성력이 현저히 떨어지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하고 파괴력을 높이는 것이 나았다.
‘그런 걸 아예 모르고 쓰는 것 같긴 하네.’
그냥 본능에 모든 마력을 맡기고 싸우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모양새가 나올 수 없었다.
아무튼 반태수는 딱히 싸움에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 앞에서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마구 마력을 흩뿌리며 적과 싸우고 있었으니까.
적의 실력이 아군보다 더 뛰어나긴 했다. 하지만 수가 모자랐다.
게다가 이쪽은 한껏 흥분해서 힘을 마구 쏟아내는 중이었다.
셰딤의 조직원들은 처음부터 계속 밀렸고, 점점 피해가 누적되었다.
‘진짜 마법사는 없는 건가?’
반태수는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저들은 마력을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마법사가 아니다.
‘그냥 능력자라는 명칭이 훨씬 더 어울리겠어.’
셰딤의 조직원들은 시종일관 밀리는데도 표정이 크게 불안하거나 조급하지 않았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반태수는 슬슬 싸움에 개입하기로 했다. 몸을 휘도는 난폭한 마력을 올올이 뽑아냈다.
큰 마법도 필요 없었다. 이럴 때는 의외의 상황에서 개입하는 약한 물리력 정도면 충분했다.
똑같은 모양의 마법진 십여 개를 동시에 만들었다. 그리고 심상에서 의념을 뽑아 모든 마법진에 일제히 덧씌웠다.
바닥 쪽 공기가 강력하게 압축되었다. 그리고 반태수의 신호에 맞춰 셰딤의 조직원들 발목 부분에서 그대로 터졌다.
퍼버버벙!
불시에 발목을 때리면 순간적으로 균형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셰딤의 조직원들의 다리가 휙휙 들렸다.
빈틈이 크게 드러났다. 한창 싸우는 와중에 상대의 빈틈이 드러난 순간, 미끼들이 거기에 주먹을 냅다 꽂았다.
빠바바바바박!
셰딤의 조직원들이 큰 타격을 받고 나동그라졌다. 미끼들이 더욱 흥분해 마구 주먹을 내질렀다.
한 번 균형이 무너지니 밀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반태수는 그걸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저 단순히 마법 한 번을 썼을 뿐인데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피 튀기는 싸움인데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 건가?’
반태수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싸움을 좋아할 줄 몰랐다. 어쩌면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어서 그런 걸까?
아무튼 이쪽은 순조롭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듯했다.
반대쪽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쪽의 싸움을 마무리한 다음 합류하면 저쪽 역시 빠르게 정리될 것이다.
‘그래도 죽는 사람은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상황이 반대였다면 아마 수두룩하게 죽어 나갔겠지만, 셰딤 쪽이 당하니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쪽에는 상대를 죽일 정도로 독하게 마음먹은 사람이 아직 없었다.
이내 싸움이 끝났다. 사람들은 쓰러진 셰딤의 조직원들을 어딘가에서 찾아온 끈으로 꽁꽁 묶었다. 아마 스스로의 힘으로 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법을 쓰지 않는다면 말이다.
“자, 이제 저쪽을 도우러 가자고.”
가장 앞장서서 싸운 브렛이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과 어조로 말했다.
다들 브렛을 따라 이동하려고 한 그 순간, 갑자기 천장이 무너졌다.
꽈과광!
무너진 천장이 일행을 덮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천장이 무너지면서 함께 떨어진 존재가 문제였다.
“크르르르.”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는 그것은 거대한 늑대였다.
한데 그냥 늑대가 아니라 이마에 짧은 뿔이 나 있고, 척추를 따라 날카로운 가시가 삐죽삐죽 돋은 늑대였다.
“마, 마수?”
그것은 분명히 마수였다. 절대 없다고 했던 마수가 셰딤의 근거지에 있었던 것이다.
마수의 입가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아마 한바탕 한 모양이었다. 으르렁거리며 드러난 이빨 사이에는 살점으로 보이는 것이 끼어 있었다.
공포가 안개처럼 일행을 덮쳤다.
“으, 으아아!”
다들 옴짝달싹 못했다. 마수가 주는 공포에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반태수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마수는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몸 전체에 균일하게 마력이 흩어져 있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코어까지 있었다.
다들 공포에 질려 꼼짝도 못하는 건 마수가 코어의 마력을 이용해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코어의 마력이 마수의 폐와 목으로 이어지며 으르렁거릴 때마다 안개 같은 마력이 뭉클뭉클 뿜어져 나왔다.
그 마력에 잠긴 사람들이 항거할 수 없는 공포에 삼켜진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은 반태수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반태수는 포탈을 넘을 때 쏟아지던 마력도 튕겨낸 마법사였다.
고작 이 정도 마력에 삼켜질 이유가 없었다.
마수는 먹잇감이 도망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훨씬 더 공포심을 자극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수가 천천히 다가가자 공포심이 더욱 깊어졌다. 몇몇 심지가 약한 사람은 소변을 지리기도 했다.
이 정도로 공포에 질리면 기절할 법도 한데, 아무도 기절하지 않았다. 그것 역시 마수가 의도한 결과였다.
마수가 흘리는 마력은 공포심을 자극하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뇌를 자극했다.
반태수는 굳이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마력을 뽑아냈다.
마력의 실을 뽑지 않고 눈앞의 마수처럼 마력을 안개처럼 뿜어냈다.
마력을 실처럼 뽑아내는 것보다 안개처럼 흩뿌리는 것이 좀 더 수월하다.
하지만 거기에 마력에 대한 지배력을 얹는 것은 좀 얘기가 다르다.
‘이건 잘 안 되네.’
거칠고 난폭한 마력의 특성 때문인지 안개처럼 넓게 흩어진 상태가 되니 지배력이 균일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반태수는 이걸 자신의 코어에 있는 마력으로 해결했다.
코어에서 뽑아낸 마력을 약간 섞는 것만으로 마력에 대한 지배력이 확 달라졌다.
안개의 마력이 마수를 덮었다. 그리고 반태수의 의념에 따라 마력이 닿는 곳에 대한 정보를 읽어냈다.
반태수는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마수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확인했다.
지금은 전투 상황, 느긋하게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마수의 정보를 확인하면서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마력이 닿는 부분은 털과 가죽, 그리고 호흡을 통해 체내로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였다. 폐와 연결된 모든 곳들 말이다.
반태수는 마력의 실을 이용해 동시에 두 개의 마법진을 그리고 의념을 불어 넣었다.
마수가 지금은 느긋해 보이지만 언제 달려들지 알 수 없으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
첫 번째 마법이 발동했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미끼들 앞에 강력한 역장에 물리력을 부여한 실드를 만들어냈다.
실드의 생성과 동시에 두 번째 마법이 발동해 실드 위에 속성력을 덧씌우고 실드를 고정시켰다.
실드에 부여한 속성은 빙결이었다.
저 마수의 가죽과 털을 분석한 결과 불에 강하고 냉기에 약했다.
반태수는 마법이 완성됨과 동시에 새로운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그 순간, 마수가 와락 달려들었다.
꽈앙!
실드에 얼굴을 그대로 갖다 박은 마수가 뒤로 튕겨났다.
“크아아앙!”
마수가 울부짖었다.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포효였다.
실드에 덧씌웠던 빙결이 마수에 달라붙어 입에서부터 차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반태수는 그 사이 새로운 마법진 두 개를 만들어냈다.
마법사는 마법을 발동했다고 그걸 지켜보고만 있어선 안 된다. 끊임없이 다음 수를 내놔야 한다.
마수 아래로 얇게 물이 쫙 깔렸다. 그와 동시에 물이 얼어붙으면서 날카로운 빙결의 창이 솟아났다.
꽈득!
빙결의 창은 마수의 배를 뚫고 들어갔다. 가죽이 워낙 질기고 단단해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뚫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빙결의 창을 타고 전격이 내달렸다. 반태수가 펼친 두 번째 마법이 발동한 것이다.
빠지지지지직!
강렬한 전류가 마수의 내부를 마구 휘저었다.
“크워어어어어!”
마수가 고통과 공포가 뒤섞인 포효를 내질렀다. 온몸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쿠웅!
그리고 이내 뻣뻣하게 굳어 옆으로 쓰러졌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쓰러진 마수를 바라봤다.
한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가장 앞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브렛이었다.
“설마······ 마법사?”
마법사가 아니라면 방금 본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다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대체 마법사가 여기엔 왜?”
“아니, 그보다 마법사라는 게 진짜 있긴 있었구나.”
“그나저나 어디 있는 거지? 그런 전력이 있었으면 미리 말해주면 좋았잖아.”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말에 반태수는 살짝 당황했다.
‘진짜 마법사는 따로 있었구나. 어쩐지 좀 이상하다 했어.’
잠깐 소란이 일었지만 브렛이 얼른 나서서 정리했다.
“아직 다 끝난 거 아니니까 서두르자고! 반대쪽도 정리해야지!”
마수로 인해 바닥을 찍었던 사기가 다시 급격히 올라갔다.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마법사가 뒤를 봐주고 있는데 뭐가 두려울까.
미끼들이 다시 우르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태수는 뺨을 긁적이며 그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