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난데없는 의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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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대협은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주웠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이걸 지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어차피 죽을 놈들인데 돈을 쥐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중에 시체를 찾아 돈을 터는 것도 일이었다. 그런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고 싶었다.
“여기 든 돈이라고 해봐야 얼마 안 돼. 그러니······.”
엄대협은 이번에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봉투 밑이 쫙 벌어지면서 안에 있던 것들이 후두둑 떨어졌기 때문이다.
봉투 안에 들어있던 것은 지폐가 아니라 금으로 된 얇은 카드였다. 그냥 단순한 금이 아니라 무언가 특수한 처리가 된 황금카드였다.
한두 장도 아닌 수십 장이 바닥에 쏟아지자, 금빛 광채가 눈을 어지럽혔다.
그걸 본 브렛이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황금수표!”
브렛이 얼른 손을 뻗어 한 장을 집었다. 엄대협이 막으려 했지만 브렛의 속도를 그가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황금수표를 확인한 브렛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천만 겔?”
한 장에 천만 겔짜리 수표였다. 그게 수십 장이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대가를 전부 지불하고도 남을 것이다.
네 사람의 시선이 마치 칼로 찌르는 듯이 엄대협을 압박했다.
엄대협은 인상을 쓰며 바닥에서 주운 황금수표를 정리해 한 사람당 한 장씩 건넸다.
그렇게 네 사람에게 전부 주고도 수표는 충분히 많이 남았다.
그걸 본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수수료가 50%쯤 되나보지? 이거 너무 후려치는 거 아냐?”
누가 봐도 저 봉투는 벨리온 길드에서 받은 의뢰금이 분명했다. 수수료를 제하고 돈을 넘기는 것일 테니 남은 돈이 전부 수수료라는 뜻이었다.
엄대협이 버럭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건 내가 그동안 받은 모든 수수료를 다 모아둔 거라고! 너희 한 명 소개해 주고받는 수수료는 고작 5%에 불과해!”
브렛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음에 안 드는군. 수수료를 후려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우리한테 돈을 줄 생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브렛이 담담하지만 서늘한 눈으로 엄대협을 보며 말했다.
“각자 250만 겔씩 더 지급해. 내가 직접 벨리온 길드로 가서 알아보기 전에.”
250만을 더 받으면 수수료로 40%쯤 떼이는 셈이었지만, 다들 처음 이런 일을 맡는 것이니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엄대협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못마땅하면서도 짜증나는 표정으로 반태수를 노려봤다.
‘저놈 때문에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어차피 다 죽을 놈들이다. 미끼의 생존율은 3% 정도니까.
100명을 투입하면 세 명 살아남는데, 이번에 50명을 투입하니 한 명, 잘하면 두 명 정도 살 것이다.
그 두 명 중에 여기 있는 사람이 속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겠는가.
‘일 끝나고 뭐 빠지게 뛰어다녀야겠네.’
어차피 회수할 돈이라 생각하면 수표 한 장 더 못 줄 것도 없었다. 다만 좀 피곤해질 뿐이다.
“알았어, 알았어. 줄 테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마. 하, 이거 진짜 엄대협 꼴이 말이 아니네.”
엄대협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황금수표를 한 장 꺼내 브렛에게 건넸다.
“나중에 알아서 나눠가져.”
반태수는 그 뒤로 엄대협과 일행에게 신경을 딱 끊고 수표를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표에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었다.
마력을 특수한 패턴으로 새겨 고유번호를 부여했다. 위조를 방지하기 위함인 듯했다.
아마 저 고유번호를 감지해 데이터베이스에서 번호를 검색하는 장치가 있을 것이다.
마법적 처리만 된 것이 아니라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위조방지 및 보안에 관한 처리가 되어 있었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분석할 수 없었지만.
‘그나저나 액수가 너무 커서 그냥 이용하기가 만만치 않겠는데?’
액수를 좀 더 쪼개서 주면 좋았겠지만 아마 그랬다면 부피가 커져서 보관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빨리 벽을 넘어야 해.’
이번에 벽을 넘으면 공간에 관한 마법 지식이 생길 것 같았다.
이는 그동안 차근차근 생성된 마법 기억을 토대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추측한 결과였다.
그리고 공간에 관한 마법을 익히다보면 분명히 안전하게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아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반태수는 황금수표를 분석한 후, 그것을 안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 마법을 걸어 쉽게 찢어지지 않게 강화하고 아무나 손을 넣을 수 없게 보안 마법까지 부여했다.
승합차 안의 분위기는 굉장히 무거웠다.
방금 그런 일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특히 반태수에게 당한 엄대협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와 짜증을 억지로 참아내면서 어떻게 하면 반태수에게 엿을 먹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승합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가 서자, 브렛이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머지 사람들도 얼른 브렛을 따라 나갔다.
엄대협은 반태수까지 나가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렸다.
반태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주위를 둘러봤다.
포장도 안 된 널찍한 공터였다.
승합차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고, 차를 중심으로 마력을 가진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다.
다들 수준은 고만고만했다. 대부분 반태수와 함께 온 동료들과 비슷했다. 브렛 정도 되는 사람도 찾기가 어려웠다.
반태수는 그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는 정말로 코어를 가진 사람을 보기 힘드네. 게다가 마법사인데 왜 이렇게 못생긴 사람이 많아? 마력 성질이 달라서 그런가?’
마력을 보유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몸으로 겪었기에 지금 보이는 광경은 좀 생소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확실히 이곳의 마력은 거칠고 난폭하다. 그러니 마력을 가진 마법사들의 생김새도 대부분 거칠고 난폭해지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고 있을 때, 압도적으로 많은 마력을 가진 사람이 공터에 들어섰다.
어느 정도냐 하면 반태수가 회전시키고 있는 마력과 비슷한 양의 마력을 가진 자였다.
가진 마력의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역시나 온몸에 퍼져 있었는데, 마력의 순도가 높았다.
그냥 단순히 마력을 모으지 않고 나름의 방법을 써서 정제를 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외모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다지 난폭하고 거칠지 않았다. 그보다는 평범에 더 가까웠다.
반태수는 그가 벨리온 길드에서 나온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내가 공터 한가운데 도착하자, 브로커들이 미끼들을 재촉해 얼른 사내 앞으로 데려갔다.
반태수도 그 사내 앞으로 갔다.
그 순간, 이질적인 마력이 공터를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그걸 느낀 사람은 반태수가 유일했다.
벨리온 길드에서 나온 자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준이 괜찮군.”
미끼로 이 정도면 차고 넘친다. 어쩌면 미끼 역할뿐 아니라 어느 정도 성과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좌중을 슥 둘러보며 기세를 살짝 내비쳤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감히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벽이 느껴졌다. 어설프게 깝치다가 한 방에 골로 갈 수도 있었다.
“난 벨리온 길드에서 온 오디스다. 너희가 할 일은 아주 간단하다. 셰딤 놈들의 근거지로 쳐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박살 내면 된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고 말했다.
“거기 마수가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만으로 마수랑 싸우는 건 좀 무리 같은데.”
오디스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거기엔 마수가 없다. 셰딤 놈들이 아무리 바보라도 자기들 근거지에 마수를 보관할 리가 없지 않은가. 시정부의 감찰관들이 불시에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조직 자체가 끝장 날 텐데.”
그 말에 수긍했는지 질문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셰딤 놈들은 현재 둘로 나뉘어 있다. 근거지에 있는 놈들, 그리고 마수를 관리하는 놈들.”
거기까지 말한 오디스가 눈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마수 쪽은 우리 벨리온 길드가 맡는다. 너희는 근거지를 맡으면 된다. 아마 분명히 위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위험을 감수할 정도의 대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돈값을 해라. 이상.”
오디스는 딱 거기까지 말하고 브로커들 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브로커들이 알아서 움직였다.
“자자, 이제 가자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지.”
“아까 말 들었지? 돈값 하러 가자!”
미리 정해둔 계획이 있는지 브로커들은 미끼들을 인솔해 어딘가로 향했다.
반태수는 그들과 섞여 이동하면서 오디스를 힐끗 쳐다봤다.
오디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제법 격렬했다.
‘저 눈빛, 마음에 좀 안 드는데?’
반태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 * *
오디스의 주위로 몇몇 사내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벨리온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그 중에는 부길드장인 크라스트도 있었다.
“다 보냈나?”
크라스트의 질문에 오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쓸 만해 보였습니다. 아마 시선을 끌어줄 정도는 될 겁니다.”
크라스트가 음흉하게 웃었다.
“큭큭. 하여튼 잔머리 하나는 알아줘야 돼. 셰딤이 그렇게 만만한 조직은 아닌데, 이렇게 손도 거의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야.”
“아직 계획이 제대로 시작된 게 아니라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릅니다. 방심하면 곤란합니다.”
“걱정 마. 준비 아주 철저히 했으니까. 마수 쪽은 우리랑 거래하는 팀들한테 맡겼으니까. 그놈들 실력 확실하잖아.”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알아, 알아. 마수 쪽에서 사람 빠진 다음에 들어가는 거.”
“바로 들어가면 안 되고······.”
“안다니까? 적당히 텀 두고 들어가라고 했어. 걔들 머리 잘 돌아가는 애들이야. 그냥 맡기면 알아서 잘 해.”
“그렇긴 합니다만······.”
“넌 너무 걱정이 많아. 자잘한 일은 알아서 하게 두고, 우린 챙길 거 챙기고 뒷정리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오디스는 일단 수긍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왠지 불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될 것이 전혀 없는 계획인데 말이다.
크라스트가 그런 오디스의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진짜 다 잘 될 거야. 문제가 생겨도 우리가 적절히 조치하면 되잖아. 안 그래?”
“맞습니다.”
오디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걱정해봐야 달라질 건 없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훨씬 낫다.
“자, 그럼 슬슬 출발할까?”
그들은 두 패로 나뉘어 각각 움직였다.
하나는 셰딤의 근거지로 다른 하나는 셰딤이 마수를 보관하는 장소로 이동했다.
* * *
브로커들이 안내한 곳은 칙칙한 어둠이 깔린 곳이었다.
낮은 건물들이 군데군데 서 있고, 그 사이에 허름한 창고나 공터가 끼어 있었다.
인적은 없었고, 비릿한 피 냄새와 지린내가 뒤섞여 굉장히 불쾌한 냄새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미끼로 온 자들은 전부 인상을 찡그렸다. 이들 중에는 변두리에 처음 와보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저기 보이는 5층 건물 보이지? 저기가 목표야.”
브로커가 가리킨 건물은 이 거리에서 유일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가로등도 없는 곳이라니.”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엄대협이 피식 웃었다.
“가로등 같은 소리하고 있네.”
변두리에서 보기 가장 힘든 것이 바로 가로등이었다.
시 정부에서는 변두리에 가로등 세울 돈이 있으면 차라리 중심 지역에 풀 한 포기를 더 심을 놈들이었다.
“자, 슬슬 시작할까? 진짜 별 거 없어. 그냥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다 부수고 죽이면 돼.”
죽인다는 말에 미끼들이 움찔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피할 길은 없었다. 돈이 필요했으니까.
브로커들이 자신이 데려온 미끼의 등을 훅 밀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앞으로 툭툭 나왔고, 이내 체념 반, 흥분 반인 기묘한 상태가 되어 앞으로 걸어갔다.
일단 몇 사람이 움직이자, 나머지 사람들도 일제히 따라갔다.
브로커들은 그걸 보며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할 일은 딱 여기까지였다. 이제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된다.
다만 엄대협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근처에 몸을 숨기고 이곳의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이야.”
투덜거리는 엄대협은 셰딤의 근거지로 향하는 미끼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꼭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불나방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