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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6화 (6/351)

6. < 난데없는 의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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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자신에게 접근한 사내를 가만히 파악했다.

마력의 양은 백진희보다 30배쯤 많았다.

이 정도면 견습 마법사 정도는 될 것이다.

사내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실력이 제법 괜찮아 보이는데 일 하나 맡을 생각 있어?”

“일?”

반태수는 최대한 신중하게 말을 뱉었다. 다행히 간단한 단어라서 성공적으로 발음했다.

사내가 반태수의 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게 힘을 풀풀 날린 거, 일부러 그런 거잖아. 보아하니 나보다 훨씬 강한데 이렇게 선명하게 힘을 느낄 수 있는 걸 보면 말이야.”

아무래도 여전히 회전 중인 마력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하긴, 별다른 조치 없이 그냥 돌리기만 했으니까.’

마력이 주위로 흘러나가지는 않았겠지만, 유동이 심하니 감각이 예민한 마법사라면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자도 코어가 없군.’

이 사내 역시 마력이 온몸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아무튼 간단한 일이 하나 있는데 할 거면 따라오고.”

사내가 따라오라는 턱짓을 하고는 휘적휘적 걸어갔다. 걷는 폼이 영락없는 건달이었다.

반태수는 잠깐 고민하다가 사내를 따라갔다.

일단 가서 얘기나 들어보고 할 만하다 싶으면 할 생각이었다.

그동안은 그렇게 안정을 찾으며 정적인 생활을 했는데, 여기 오자마자 정반대 상황이 되었다.

반태수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뭔가 살아서 통통 튀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내는 입구가 상당히 화려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지하로 이어진 계단이 보였다. 크고 둥근 대리석 판을 여러 겹 겹쳐서 계단으로 만든 모양새였다.

계단부터 시작해 뭐 하나 평범한 게 없었다.

사내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길쭉한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는 마치 미로처럼 복잡했다. 그리고 복도 중간 중간에 문이 있었다.

사내는 머릿속에 미로를 다 집어넣은 것처럼 거침없이 걸었다.

반태수도 따라가며 머릿속으로 길을 외웠다. 딱히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직접 가보지 않은 복도도 머릿속으로 재구성해서 이 지하 술집의 전체적인 구조를 대략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아무튼 술집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규모에 비해서 턱없이 적었다.

반태수의 낌새를 눈치챘는지 앞서가던 사내가 뒤를 보며 히죽 웃었다.

“좀 썰렁하지? 밤 장사라 낮에는 원래 이래. 밤에는 빈 방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린다니까? 우리가 이 바닥에서 좀 유명하거든.”

그렇게 말하며 살짝 음흉하게 웃는 사내의 모습에 반태수는 그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 다 왔다.”

사내는 복도 끝에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반태수는 그 뒤를 따르며 방 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미리 파악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어쩌면 난폭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언제든 마법을 쓸 수 있도록 마력을 정돈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반태수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투쟁심에 살짝 당황했다.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하지만 금세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으로 성큼 들어갔다.

방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반태수에게 꽂혔다.

반태수가 기대하던 난폭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자자, 다들 같이 일하게 될 사이인데, 서로 인사나 하자고.”

반태수를 데려온 사내의 말에 가장 안쪽에 있던 중년 남자가 툭 말했다.

“브렛.”

생긴 건 영락없는 한국의 배나온 중년 아저씨였다. 하지만 보유 마력이 반태수를 여기 데려온 사내의 두 배나 됐다.

이 중에서 가장 마력이 많은 자였다.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의 이름을 말하는 걸로 소개를 끝냈다. 그들의 마력은 고만고만했다. 그래도 반태수를 데려온 사내보다는 많았다.

모두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미리 준비한 이름을 말했다.

“반.”

그걸로 각자의 소개가 끝났다.

그러자 반태수를 데려온 사내가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엄대협. 특이한 이름이지?”

반태수는 갑자기 등장한 한국적인 이름에 눈을 빛냈다.

발음도 진짜 똑같았다. 저런 식의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이 세계에도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지구에서 넘어온 한국 사람들이 관계되어 있거나.’

엄대협은 좌중을 한 번 슥 둘러본 다음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으니 슬슬 이동할까?”

“이동?”

브렛이 눈을 번득이며 묻자, 엄대협이 히죽 웃었다.

“그럼 설마 일거리가 이 근처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중심지에서 일을 하는 건 높은 분들이야. 우리처럼 뒤가 구린 놈들은 변두리로 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변두리로 간다고?”

브렛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엄대협이 여전히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 도시 밖도 아니고 고작 변두리일 뿐인데.”

“고작 변두리?”

브렛의 날선 반응에 엄대협이 픽 웃었다.

“왜 이렇게 예민해? 진짜 별 일 아니야. 게다가 우리 뒤에는 벨리온 길드가 있다고. 이거 벨리온 길드에서 낸 의뢰야.”

벨리온 길드라는 말에 다들 눈을 크게 떴다.

특히 반태수는 여기서 그 이름을 들을 줄 몰랐기에 더 놀랐다.

‘이게 이렇게 엮이네.’

참으로 재미있는 우연이었다. 하지만 반태수는 우연이라는 것은 필연 위에 쌓인 결과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아마 좀 더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이런 우연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될 만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엄대협을 슬쩍 쳐다본 반태수는 서둘러 마력을 정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봐도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미리미리 대비를 해둬야 했다.

엄대협은 살짝 과장된 행동으로 재촉했다.

“자자, 일단 나가자고. 더 있으면 여기 일하는 아가씨들 와서 복잡해지거든. 눈에 띄어서 좋을 것도 없고.”

마지막 말을 하는 엄대협의 시선이 반태수에게 향했다.

반태수는 지나치게 잘생겼다. 여기 일하는 여자들의 눈이 휙 돌아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니 서둘러 나가야 한다.

반태수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얼굴을 좀 가렸으면 좋겠는데, 마스크 같은 거 없나?”

“있지. 기다려 봐. 우리는 다들 마스크를 쓰는 걸로 하지.”

엄대협이 어딘가에서 검은 마스크를 가져왔다.

다들 그걸 받아서 썼는데, 반태수는 그렇게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도 잘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마스크를 안 썼을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자, 다 썼으면 가자고. 무슨 일인지는 가는 동안 설명해줄 테니까.”

엄대협은 오늘 모은 놈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히죽 웃었다.

도시 변두리에는 항상 사람이 모자라다. 특히 오늘 모은 놈들처럼 미끼로 쓸 놈들을 찾기가 정말 힘들다.

변두리에서 사는 마력 사용자, 그러니까 능력자들은 닳고 닳아서 어설프게 엮으려다가는 오히려 이쪽이 물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중심지 근처 유흥가에서 사람을 찾는 거였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자신 있는 엄대협이기에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중심지 근처에는 생각보다 세상물정 모르는 능력자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런 능력자들 중에서 사정이 갑자기 악화된 자들이 흔히 찾는 곳이 이런 유흥가였다.

여기에 오면 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박혀 있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엄대협을 비롯한 브로커들이 은근히 퍼트린 소문이 제법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써먹기 위해서 미리미리 바닥을 다져놓은 것이다.

그런 능력자들이 유흥가에 오면 백이면 백 마력을 풀풀 날리면서 거리를 왕복한다.

엄대협은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런 놈들에게 접근해서 일거리를 주겠다고 말만 하면 끝이었다.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특히 운이 좋았다.

능력자를 무려 넷이나 구했으니까.

게다가 그 중에서 브렛이라는 놈과 마지막에 구한 반이라는 놈은 가진 마력이 무시무시했다. 아마 큰 역할을 해줄 것이다.

타이밍도 좋게 오늘은 벨리온 길드의 의뢰를 받았다. 그쪽에서 엄대협에게 원하는 건 성능 좋은 미끼이니 아주 딱이었다.

엄대협은 자신의 승합차 앞에서 멈추고 일행을 돌아봤다.

“자, 여기에 타면 돼.”

미리 타고 있던 운전수가 시동을 걸었다.

엄대협은 네 사람이 모두 타는 것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차에 올라탔다.

* * *

“변두리에서 활동하는 조직 중에서 마수를 끌어들인 놈들이 있어.”

“마수?”

엄대협의 말에 브렛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리고 반태수의 눈에 흥미가 깃들었다.

‘마수도 있는 건가? 정확히 뭔지 궁금하네.’

브렛을 비롯한 나머지 두 사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우리보고 마수랑 싸우라는 건 아니겠지?”

엄대협이 히죽 웃으며 손을 휙 내저었다.

“에이, 나도 양심이 있지. 마수는 벨리온 길드에서 알아서 정리할 거야. 문제는 마수를 끌어들인 조직이지.”

“위험한 놈들이겠군.”

“셰딤이라는 조직인데, 그렇게까지 대단한 놈들은 아니야. 그놈들이 끌어들인 마수가 문제지.”

브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마수를 끌어들이는 게 가능하긴 한가? 그냥 괴물이잖아. 마수가 도시에 들어왔으면 한바탕 난리가 났을 텐데?”

“그걸 알아보려고 벨리온 길드가 움직인 거야. 아무래도 마수를 통제할 방법이 있는 모양이야.”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수를 통제한다고?”

“뭐, 아직까지는 추측일 뿐이야. 하지만 마수를 보유한 건 확실해.”

벨리온 길드가 그것도 알아보지 않고 움직였을 리 없다.

“그래서 우리가 셰딤이라는 놈들과 싸우는 동안 벨리온 길드가 마수를 정리한다는 건가?”

“정확해.”

아마 벨리온 길드는 마수만 정리하지 않고 마수를 통제하는 일의 핵심이 되는 정보까지 얻고자 할 것이다.

브렛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수까지 끌어들인 조직을 고작 우리 넷이 상대하라고? 지금 장난하나?”

엄대협이 픽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벨리온 길드랑 거래하는 브로커가 어디 나 하나뿐이겠어? 최소 50명은 모아서 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50명이라······.”

“참고로 셰딤의 조직원은 30명 정도야. 어때, 이제 할 만한 것 같지?”

그제야 브렛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반태수는 엄대협에 대한 신뢰가 더욱 하락했다.

‘거짓말이 많이 섞인 것 같은데?’

반태수처럼 감지나 탐지 계열의 마법에 능통하면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거나 거짓을 파악하는 감각이 발달한다.

엄대협이 한 말 중 확실한 진실은 벨리온 길드의 의뢰라는 것과 다른 브로커가 있어서 50명 정도를 동원한다는 것, 그리고 셰딤이라는 조직이 정말로 마수를 끌어들였다는 것뿐이었다.

반태수는 태연하게 엄대협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의뢰비는?”

엄대협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제일 중요한 게 바로 그거지. 한 사람당 천만 겔. 어때? 제법 쏠쏠하지?”

반태수는 전혀 감흥이 없었다. 천만 겔이 얼마나 큰돈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으니까.

‘대충 천만 원쯤 되는 건가?’

천만 겔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머지 세 사람의 눈이 번득인 걸로 봐서 적은 돈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돈 먼저 주는 건가?”

엄대협이 히죽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선수끼리 왜 이래? 이 바닥, 일 다 끝나야 돈을 주는 게 당연하잖아.”

반태수가 엄대협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내가 뭘 믿고?”

“뭘 믿긴. 나 엄대협이야. 이 바닥 생활 14년 차라고. 내가 고작 천만 겔을 떼먹을 것 같아?”

“그거야 모르지. 난 이 바닥이 어떤 곳인지 모르거든.”

반태수가 강하게 나오자 브렛도 아차 싶었는지 나섰다.

“나도 돈을 먼저 받았으면 좋겠군. 혹시 모르니까. 어차피 우린 이 차에 탄 이상 도망갈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자 엄대협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풀어졌다.

“그런 큰돈을 내가 가지고 다닐 리가 없잖아. 끝나면 확실히 준다니까?”

반태수가 그 말을 듣자마자 피식 웃었다.

그리고 피부 밑에서 열심히 회전하고 있는 마력을 슬슬 건드렸다.

마력의 성질이 워낙 거칠고 난폭해서 다루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유흥가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마력을 건드리고 있었기에 마력의 실 몇 가닥 뽑아내는 정도는 간단히 할 수 있었다.

어려운 마법도 아니었다. 그저 마력에 날카로운 절삭력을 부여하는 마법이었다.

스각!

엄대협의 가슴 부위의 옷자락이 깔끔하게 잘렸다.

그러자 그 틈에서 두툼한 봉투가 툭 떨어졌다.

“돈 거기 있네.”

엄대협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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