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없는 줄 알았던 마법사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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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아래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집중했다. 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푸른색 포탈 근처에는 아까 건물로 들어갔던 자들이 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최진혁과 백진희였다.
“다 좋은데 여기 너무 멀고 외져서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최진혁의 투덜거림에 다들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인적이 없는 곳에만 문이 생기는데.”
신기하게도 이면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인적이 없는 곳에만 생긴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아니, 도시 안에 있는 문을 찾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분명히 서울 어딘가에는 문이 있을 거야. 한강이나 짓다 만 건물 같은 데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잖아. 그게 그렇게 소원이면 이면세계에서 탐지기나 더 찾아와.”
최진혁이 인상을 팍 썼다.
“누군 찾기 싫어서 안 찾나? 그거 하나 찾으면 팔자 고칠 정도로 떼돈을 벌 텐데. 없으니까 못 찾는 거 아냐. 그리고 그거 찾아서 떼돈 벌면 내가 다시 이면세계에 갈 것 같아?”
백진희가 배시시 웃었다.
“과연 정말로 안 갈까?”
최진혁이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이면세계로 가는 순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힘을 얻게 된다.
그 고양감과 해방감은 겪어보지 않으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없다.
아예 안 겪었다면 모를까, 일단 한 번 겪은 이상 누구든 벗어날 수 없으리라.
“그래도 한 번 생긴 문이 사라지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 아냐?”
“그건 인정.”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안정적으로 이면세계를 오가는 것이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경쟁도 훨씬 치열했을 테고.
물론 이렇게 획득한 문을 지켜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지금도 호시탐탐 이 문을 노리는 자들이 득실거렸다.
아직까지 이 세상에는 문을 보유한 조직보다 그렇지 않은 조직이 훨씬 많았으니까.
“그리고 도착지가 도시 하나로 한정된 것도 얼마나 다행이야.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고. 우리처럼 서울이랑 연결 안 되면 더 고생하잖아. 대성은 부산이랑 연결된 거 알지?”
그 말에 다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부산에서 다시 여기까지 오려면 정말 귀찮으니까.
백진희가 동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돈은 챙겼지? 저번처럼 돈 안 챙겨서 아지트까지 뛰어오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돼. 이번엔 바로 벨리온 길드의 의뢰를 처리해야 하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난번에 깜빡 잊고 돈을 안 챙겼던 최진혁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백진희는 집요하게 최진혁을 바라봤다.
“확인했냐고.”
“아이씨, 했다. 했어. 자, 여기 보이지?”
최진혁이 지갑을 꺼내 안을 활짝 펼쳐 보여줬다. 그 안에는 새하얀 지폐 여러 장이 꽂혀 있었다.
이면세계의 화폐도 이곳과 비슷했다. 지폐와 동전이 있고, 심지어 신용카드까지 있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쓸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신분이 없었으니까.
이들은 이면세계에서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다.
당연하지만 신분이 없기에 건물을 구입하는 것도 못한다. 이들의 아지트는 그저 돈을 내고 임대했을 뿐이다. 그나마도 불법 임대였다.
신분이 없지만 이들이 하는 일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이면세계에는 생각보다 신분이 없는 자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밑바닥 인생이거나 범죄자지만.
“회사에서 지급하는 돈이라고 너무 낭비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소매치기 조심하고.”
이들의 아지트가 있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온갖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니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장비 점검하고 가자.”
잠시 후, 그곳에 있던 마력 보유자들이 하나둘 포탈로 들어갔다.
반태수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며 지금까지 저들의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를 정리했다.
일단 다른 세상과 연결된 문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저 문을 통해서 나가면 연결된 도시의 어딘가에 무작위로 떨어진다.
달리는 것보다 빠른 이동수단이 있고, 지폐가 존재하는 곳. 어쩌면 지구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곳일 수도 있다.
저들의 목표는 아마 다른 세상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오는 것. 그리고 물자의 이동은 별다른 제한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저쪽에서 이쪽 세상으로 넘어올 때는 서울 어딘가에 무작위로 떨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은 여기 하나가 아니다.
반태수는 저 포탈을 넘어가 보기로 결심했다.
원래 이런 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훨씬 더 많은 조사를 하고 철저한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는 스타일이었다.
한데 지금은 직감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충동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 충동을 저 포탈이 만들어 내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마법사의 직감인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가기로 마음먹었다. 포탈에 붙어서 어떤 원리를 가지고 움직이는지 분석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
마법사들과 함께 왔던 사람들이 포탈 주변에 무언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척 봐도 포탈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이었다.
포탈을 쓰지 않을 때에는 각종 보안장치들을 통해 꽁꽁 싸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타이밍은 지금뿐이었다.
반태수는 그대로 난간을 뛰어넘었다.
5층에서 1층까지 수직으로 떨어졌지만 기척도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반태수의 몸을 감싼 왜곡이 시각적 위화감을 뿌릴 뿐이었다.
그걸 발견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반태수가 포탈을 향해 달려가자, 난간에서 아래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그걸 발견했다.
건물 내부는 제법 밝은 편이었기에 왜곡현상이 눈에 확 들어왔다.
“뭔가가 있다! 막아!”
누군가의 외침에 1층에서 장비를 나르고 있던 사람들이 움찔하고 반응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반태수는 그 순간, 이미 포탈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 * *
높은 빌딩과 빌딩 사이에 있는 골목에 갑자기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반태수였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벽에 바짝 붙어 주위를 살폈다.
인적이 전혀 없는 골목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다.
이 근방에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골목 끝을 보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지구의 사람들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반태수는 천천히 골목에서 나갔다.
도시의 광경이 눈앞에 활짝 펼쳐졌다.
다른 세상이라는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누군가 와서 여기는 서울에 있는 어딘가라고 말하면 그냥 믿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구와 전혀 다른 점이 있었다.
곳곳에서 마력이 느껴졌다.
아주 희미하지만, 움직이는 자동차에서도, 그리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서도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전부 마법사인 건 아니었다. 체내에 가진 마력량은 지구의 사람들과 거의 비슷했다. 그저 평균적으로 약간 높은 정도? 약 1%에서 2%쯤 높다고 보면 될 듯했다.
마력을 생각하니 포탈로 들어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포탈로 뛰어든 순간, 정말 깜짝 놀랐다.
갑자기 이질적인 마력이 온몸으로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마법사로서 그걸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마력을 돌려 그것을 모조리 튕겨냈다.
하지만 이질적인 마력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침습해왔다.
중요한 건 포탈로 들어가 어딘가로 이동 중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과정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이질적인 마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동이 끝나지 않을 거라 판단한 반태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척했다.
일단 피부 아래까지 받아들인 후, 몸을 중심으로 회전시켰다.
사람의 몸은 대부분 원통형이다. 팔도 다리도 몸통도.
각각의 원통에 외부의 마력을 돌리며 빨아들였다.
아마 반태수의 마력 조절 능력이 조금만 떨어졌어도 실패했을 것이다.
그렇게 마력을 한껏 받아들인 후에야 포탈을 통과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휘도는 마력을 계속 조절하고 있었다.
셋으로 나눈 두뇌 중 하나를 온전히 이질적인 마력을 다루는 데에 할당했다.
무작정 들어오긴 했는데, 애초에 계획이 없었으니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일단 정보수집부터.’
아직 어떻게 지구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정보부터 수집해야 한다.
포탈을 넘은 마법사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들을 몰래 감시하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벨리온 길드의 의뢰를 처리하러 간다고 했지?’
그렇다면 벨리온 길드로 찾아가면 될 것이다.
‘그나저나 말은 통하려나?’
지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일 테니 이쪽에서만 쓰는 언어가 따로 있을 것이다.
반태수는 일단 길을 따라 걸었다.
일단 간판부터 확인해봤다. 전혀 생소한 언어가 보였다. 역시나 말부터 배워야 할 모양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막막하겠지만 반태수는 전혀 고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최대한 많이 듣고 분석하면 된다. 그걸 토대로 언어를 습득하는 건,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마법사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이 길에서는 좀 어려울 듯하다. 다들 어찌나 바삐 움직이는지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반태수는 간판에 쓰인 글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담았다.
가끔 간판을 보며 중얼거리는 사람을 만날 때면 발음과 간판의 문자를 비교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 절반은 동양인이었다. 아니, 한국인이었다. 겉모습은 그랬다.
나머지 절반은 다양한 인종이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었다.
반태수는 사람들을 살피며 그들이 가진 마력도 확인했다.
일반인의 마력은 생각보다 활발하게 움직인다. 일반인이 가진 마력은 일종의 생명력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한데 이곳 사람들의 마력은 지구보다 움직임이 훨씬 활발했다.
반태수는 그것이 이곳 세상에 퍼진 마력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포탈을 넘어올 때 침습했던 이질적인 마력이 바로 이곳 세상의 마력이었다.
이곳의 마력은 좋은 말로 활발하고, 나쁜 말로 하면 난폭했다.
이런 마력은 마법에 써먹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곳의 마력을 써서 마법을 능숙하게 펼치는 연습을 해둬야겠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최소한의 대응 능력은 갖춰야 한다.
반태수가 포탈에서 받은 마력의 양은 상당했다. 그러니 그걸 통제하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마력을 굳이 버리지 않는 이유는 혹시 돌아갈 때 이 마력을 대가로 지불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백진희와 최진혁을 비롯한 한국의 마법사들이 가진 마력이 지나치게 적다는 점, 그리고 포탈을 넘는 그들의 표정에 전혀 걱정이 없다는 점 등을 토대로 한 가지 사실을 유추했다.
그들은 이곳으로 넘어오면서 마력을 받는다. 그리고 돌아갈 때 마력을 두고 간다.
마력이 없으면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일단 마력을 보관해 놓기로 한 것이다.
다시 모으려면 모을 수 있지만, 시간과 공이 굉장히 들어갈 것이다. 어쩌면 이 정도로 많은 양을 모으는 건 어려울 수도 있고.
어디까지나 포탈에서 강제로 마력을 주입했고,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에 이 정도로 많은 마력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의 말을 듣고 간판을 읽으며 돌아다니던 반태수의 주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빌딩으로 이루어진 숲의 가장자리에 도착한 것이다.
그곳에는 휘황찬란한 유흥가가 펼쳐져 있었다. 다만 아직 제대로 영업을 하는 곳은 몇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직 낮이네.’
지구는 밤인데 이곳은 낮이었다. 아마 시간대가 다른 모양이었다.
아무리 유흥가라고 해도 무작정 술집 같은 것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다양한 매장들이 더 많았다. 식당이라든가 옷가게라든가 오락실, 심지어 찜질방도 있었다.
그러니 돌아다니는 사람도 제법 많았고, 그들은 도로변을 오가는 사람들보다 훨씬 말이 많았다.
반태수는 잘됐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좀 늦췄다. 천천히 걸으면서 되도록 많은 말을 듣고자 함이었다.
유흥가는 긴 듯하면서 짧았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끝났다.
반태수는 근처를 서성이다가 다시 돌아서서 유흥가를 거닐었다.
생각보다 성과가 좋아서 여길 몇 번 더 오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반태수가 반대쪽 끝으로 갔다가 돌아서서 중간쯤 왔을 때, 누군가가 반태수에게 접근했다.
“어이, 형씨. 뭐 찾는 거라도 있어?”
근육인지 지방인지 모를 살덩어리를 온몸에 덕지덕지 붙인 덩치 큰 사내였다.
반태수는 그의 말을 알아들었지만, 아직 말을 하는 연습은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 대꾸하지 않고 그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사내의 몸에서 거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양도 제법 많았다.
이놈, 마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