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4화 (4/351)

4. < 없는 줄 알았던 마법사들 2 >

===========================

백진희와 최진혁을 다시 발견하는 건 따라나선 지 2분쯤 지난 후였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공영주차장이었다.

아무래도 차로 이동할 모양이었다.

반태수도 차가 있긴 하지만, 차로 미행을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하는 미행은 결코 들켜선 안 된다.

지금까지 쫓아오면서도 CCTV나 자동차 블랙박스에 찍히지 않도록 나름 신경을 썼다.

카메라를 피하기도 했지만, 주로 빛을 왜곡시켜서 찍히지 않게 만들었다.

물론 티는 난다. 빛이 왜곡되면 몸은 가려주지만 주변 경관과 맞지 않아 심각한 위화감이 생긴다. 심지어 가끔은 빛이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정체만 가리면 되니까.

지금도 그렇게 쫓을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차에 탔다. 가격이 상당한 외제차였다.

반태수는 두 사람이 차에 탄 순간 차 지붕으로 올라가 엎드렸다.

적당히 따라가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일단 빠질 생각이었다.

어차피 저들은 다시 카페로 올 것이다. 이미 마력이 담긴 커피 맛을 봐버렸으니까.

마력이 담긴 커피는 마법사에게 더욱 특별하다.

마력이 높을수록 더 좋은 맛과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물론 한계는 있다.

그래서 반태수도 자신의 카페에서 파는 커피를 즐긴다. 마시지 않았으면 모를까, 일단 마신 이상, 다른 커피를 마시기 어려웠다.

관련 연구를 좀 진행했었는데, 마력이 제법 높은 사람은 중독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다만 마력 수준이 일정 이상을 넘어서면 더 이상 그 효능에 휘둘리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니 지금 하는 미행에 너무 깊이 집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미리 이렇게 선을 그어놓아야 무리하지 않는다.

마법사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

이내 차가 출발했다.

막히는 도로로 들어가면 미련 없이 물러날 생각이었다. 시선이 많은 모이는 곳으로 가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다행스럽게도 차는 비교적 한산한 도로로 향했다.

이러면 끝까지 가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면서 도로 표지판을 유심히 살폈는데, 보아하니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북부 쪽으로 가는 듯했다.

한적한 도로 근처에 제법 괜찮은 디자인의 빌딩 몇 채가 서 있었다.

차의 목적지는 그곳이었다.

반태수는 그쯤에서 차에서 내렸다. 마법을 이용해 아주 편안하고 안전하게 도로에 내려선 뒤, 빌딩 근처에 몸을 숨겼다.

아무리 빛을 왜곡해서 모습을 감췄다고 하지만 특유의 위화감을 생각하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백진희와 최진혁은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아래에서 위로 슥 훑어보니 15층짜리 건물이었다.

저 건물 안에 아마 마법사들이 있을 것이다. 반태수는 살짝 올라오는 긴장감에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아직도 낮은 마력에 대한 감지는 불가능했다. 그러니 저 빌딩 안에 다른 마법사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확인하려면 직접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감지 계열에 좀 더 힘을 쏟을 걸 그랬나?’

자신이 유일한 마법사라고 추측한 뒤부터 감지 계열 마법에 더 이상 힘을 쏟지 않았다.

그저 새로 떠오른 지식 중에 관련된 것이 있으면 익히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마법들과 달리, 더 연구하거나 다른 자료를 찾아 마법을 보강하지 않았다.

만일 꾸준히 했다면 지금쯤 특정 수준의 마력을 가진 자들을 파악하는 정도는 가능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잠깐 하다가 곧장 미련을 털어냈다.

잠시 두 사람이 들어간 빌딩을 보며 안으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던 반태수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5층짜리 작은 건물이었다.

자꾸 그 작은 건물이 반태수의 관심을 끌었다.

반태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 건물을 찬찬히 살펴봤다.

마법사의 관심을 끌었다는 건, 분명히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반태수가 숨은 곳은 빌딩 근처에 조성된 화단과 나무, 그리고 등나무가 드리워진 벤치 뒤쪽이었다.

반태수는 그곳에 숨은 채 보안 상황을 확인했다.

각 빌딩 입구에 CCTV가 두 개나 달려 있었다. 그리고 작은 건물 옥상에도 CCTV가 있었다. 각 방향마다 두 개씩 달렸다.

그뿐 아니라 빌딩 옆과 앞에 마련된 지상 주차장에도 사람 다리통만 한 두께의 철기둥이 곳곳에 서 있었고, 철기둥 꼭대기에 CCTV가 달려 있었다.

‘이건 좀 과한데?’

저 모든 감시망이 작은 건물 위주로 돌아갔다.

아무리 반태수라도 저 작은 건물에 흔적 없이 들락거리는 건 만만치가 않았다.

‘뭐, 들키면 할 수 없고.’

어차피 빛의 왜곡을 쓰는지라 자신이 누군지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빛의 왜곡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키게 되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저쪽에도 그걸 쓸 수 있을 만한 마법사가 있을지도 모르고.’

빛의 왜곡이라는 건 마력으로 빛의 굴절을 조절하는 마법이었다.

당연히 간단하지 않다. 몸 주변의 굴절률을 아주 정교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어딘가에는 상이 맺히기 마련이다.

사람의 눈에 맺히는 상의 위치를 바꾸는 건 전투 중에나 쓸 만하지, 지금처럼 정체를 감추는 데에는 쓸모가 없다.

이 마법을 끌어내기까지 반태수가 쏟은 노력은 상당했다.

실제로 마력을 이용해 주변에 굴절률을 부여하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몸 전체를 감싸려면 마력이 제법 많이 필요하다. 아까 저 빌딩으로 들어간 백진희나 최진혁 수준에서는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마법이었다.

그리고 빛의 굴절을 이용하는 마법이니만큼 낮보다는 밤에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반태수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 * *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반태수는 좀 더 확실히 몸을 감출 수 있는 장소로 가서 미리 챙겨온 논문을 읽었다.

멍하니 시간을 때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게 논문을 몇 편 읽으며 몇 가지 영감이 떠올라 마법 술식을 구성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어둠이 내려앉으며 가로등이 켜졌다.

가로등은 도로를 따라 넓은 간격으로 서 있었고, 몇 개는 주차장이나 빌딩 입구 근처에도 서 있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어두웠다. 주변에 별다른 것들이 없는 한적한 곳이라서 조금만 빌딩에서 멀어져도 캄캄했다.

슬슬 움직일까 하고 있는데, 빌딩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왔다.

반태수의 눈이 번득였다. 나오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마법사였다.

‘열세 명 중에 일곱 명. 수준은 다들 비슷하네.’

그 일곱 명의 마법사 중에는 백진희와 최진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반태수가 눈여겨보고 있던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반태수는 왜곡 마법을 다시 한 번 점검한 후, 조용히 움직였다.

‘마법사답지 않은 행동이야.’

진짜 마법사라면 자신처럼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실제로 지금까지 반태수는 한 번도 철저한 계획 없이 무언가를 한 적이 없었다.

한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반태수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냉정하게 파악했다.

‘신 났네.’

그동안 너무 무료했다. 마법 연구, 그리고 마법사로서의 성장이 재미있긴 하지만 굉장히 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다른 마법사를 찾아다녔던 것은 그들의 존재를 파악해 대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자연스럽게 엮이는 상황을 바랐던 것은 아닐까?

거기에 더해 저 작은 건물이 계속 마음에 밟혔다. 저 안에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하고, 그것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반태수는 빛의 왜곡을 온몸에 휘감은 채 작은 건물 뒤쪽으로 갔다.

입구가 달랑 하나뿐인지라 그곳으로 들어가기가 꺼림칙했다.

건물 뒤쪽은 어두웠다.

반태수는 마력을 움직여 새로운 마법을 펼쳤다.

왜곡을 유지하면서 다른 마법을 펼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반태수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반태수는 두뇌를 몇 조각으로 나누어서 쓸 수 있었다.

무협에서 흔히 나오는 양의신공과 비슷했다.

이 역시 마력을 이용하는 것인데, 뇌파에 대해 깊이 연구한 끝에 어설프게 이론을 만들었고, 그걸 숙련시켜 써먹는 중이었다.

지금은 생각을 셋으로 나누는 것이 한계였다.

즉, 반태수는 세 가지 마법을 동시에 쓸 수 있다.

그 이상을 원하면 벽을 넘어야 한다.

아무튼 반태수가 뽑아낸 새로운 마력의 실이 마법진을 그렸고, 거기에 의념이 담기면서 마법이 펼쳐졌다.

후욱.

반태수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제법 빠른 속도로 5층짜리 건물 옥상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아마 CCTV를 지켜보고 있는 자들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밤의 왜곡은 제법 은밀한 편이니까.

옥상에는 가장자리에 CCTV가 달린 것과 실외기 몇 개가 있는 것을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은 옥상에 올라와 담배라도 피울 텐데, 여긴 그런 사람도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건물을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거나.

반태수는 옥상 출입구로 가서 손잡이를 돌려봤다. 지문이 묻지 않게 장갑을 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이런 걸 여는 건 아주 간단했다.

반태수의 마력이 열쇠구멍으로 흘러들어가 단단히 굳었다.

철컥.

마치 열쇠로 문을 연 것처럼 자연스럽게 문이 열렸다.

반태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계단이 나타났다. 일단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보통 감지기가 작동해 불이 켜져야 하지만, 반태수가 펼쳐놓은 왜곡 때문에 감지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반태수는 일단 한 층을 내려와 5층 출입구에 섰다. 그리고 문에 귀를 대고 안쪽의 소리를 들어봤다.

마법사는 보통 사람보다 신체 능력이 월등하다. 마력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하다.

아무리 마력을 코어에 모아 놓는다고 해도 수시로 마력이 몸을 자극하는데 강해지는 건 당연했다.

그건 비단 근육의 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에 해당했다.

마력을 살짝 이용하면 감각을 더욱 증폭하는 것도 가능했다.

‘소리가 좀 울리는데?’

여러 사람이 여기저기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소리가 마구 뒤섞여 웅성거렸다.

한데 그 웅성거림이 좀 울렸다. 마치 큰 홀에 여기저기 흩어져 떠드는 것처럼.

반태수는 안쪽의 구조를 대충 짐작했다. 중앙이 뻥 뚫린 구조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문을 살짝 열고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자세를 한껏 낮췄다.

아니나 다를까, 건물 내부는 통으로 뚫려 있었다. 각 층에 해당하는 높이에는 딱 복도 정도 되는 넓이의 발판과 안으로 떨어지지 말라고 설치한 난간만 빙 둘러 있었다.

각 층마다 몇몇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반태수는 자세를 낮추다 못해 거의 엎드리다시피 한 채로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저게 뭐야?’

아래를 확인한 반태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층 바닥에 타원형의 포탈이 은은한 푸른빛을 뿜어내며 서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반태수의 직감이 맹렬히 뇌리를 뒤흔들었다. 여기가 그렇게 끌렸던 이유가 바로 저 포탈이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