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3화 (3/351)

3. < 없는 줄 알았던 마법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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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혁은 백진희를 따라 위자드라는 특이한 이름의 카페에 들어가며 투덜거렸다.

“어디서 마시든 커피가 거기서 거기지, 뭘 이리 유난을 떨어?”

“아, 그냥 입 좀 닥치고 따라와. 내 친구들이 여기 진짜 끝내준다고 했다니까?”

최진혁이 카운터 뒤쪽에 있는 남자, 반태수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알만하네. 얼굴 더럽게 따지는 친구들 말이지?”

최진혁의 시선을 따라 카운터 뒤쪽의 반태수를 본 백진희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저런 알바생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최진혁의 입가에 느물느물한 미소가 출렁였다.

“또 시작이네. 근데 이번엔 인정이다. 잘생기긴 더럽게 잘생겼네.”

“연락처 받아야지.”

“과연 달라면 줄까? 저 정도면 콧대가 에베레스트 산 정도 될 거 같은데?”

“여자가 먼저 손 내미는데 당연히 주지. 지금까지 실패율 제로야. 알면서.”

잘 안다. 너무 잘 알아서 문제다.

백진희는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지만, 집착하지 않는다.

정말 가볍게 만났고, 별다른 스킨쉽 없이 금세 시들해져서 만남을 정리하곤 했다.

“야야, 너 남자들한테 몹쓸 짓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다 나중에 벌 받는다.”

“몹쓸 짓이라니. 내가 얼마나 잘해주는데.”

“잘하지. 희망고문.”

최진혁은 그렇게 말하며 살짝 안쓰러운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부디 백진희의 마수에 당하지 말라고 속으로 빌어주면서.

백진희는 카운터 앞에 서서 당당히 말했다.

“전 저분한테 주문을 하고 싶은데, 안 되나요?”

“예?”

카운터에 서 있던 이서영은 당황과 황당이 뒤섞인 표정과 눈빛으로 백진희를 바라봤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도 마침 백진희와 최진혁을 보고 있느라 시선을 카운터 쪽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백진희의 말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할게.”

이서영은 반태수의 말에 뒤로 물러났다.

반태수가 카운터에 서자, 백진희가 요염한 표정으로 눈웃음을 쳤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두 잔 주세요.”

백진희는 그렇게 말하고 카드를 꺼내 그 아래에 명함을 끼워 같이 건넸다.

반태수는 손에 들어온 명함을 확인했다.

명함에는 대영물산 특수 자원관리부 과장이라는 직책과 함께 백진희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건 뭡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백진희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연락 한 번 주세요. 같이 밥이라도 한 번 먹고 싶은데, 괜찮죠?”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명함을 주머니에 쑥 넣었다.

“생각해보죠.”

백진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다릴게요. 되도록 빨리 부탁해요.”

생각해본다고 했지만, 백진희는 반태수가 오늘 중으로 반드시 연락할 거라고 확신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명함을 건넸던 모든 남자는 항상 그랬으니까.

백진희는 휙 돌아서서 최진혁에게 턱짓을 했다. 그리고 반태수가 잘 보이지만 좀 떨어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최진혁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백진희 앞에 앉았다.

백진희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괸 채 반태수를 가만히 바라봤다.

반태수는 이서영에게 다시 카운터 자리를 내주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논문을 집었다.

그런 그의 귓가에 이서영이 나직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웃겨. 하아. 결국 저런 여자가 나오고야 마는구나.”

지금까지 한 번도 없던 일인지라 이서영은 굉장히 복잡한 심경과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런 일이 없었던 이유는 매장 곳곳에 설치된 마법 때문이고, 백진희가 이렇게 한 것은 마법의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걸 모르니 당황하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오전 알바 중 한 명인 한서현도 이서영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주문받은 음료를 정신없이 만들고 있었지만, 백진희가 하는 말을 전부 들었다.

묘한 분위기가 매장 안에 흘렀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반태수는 그 분위기를 느끼고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방금 백진희의 행동 때문에 매장에 단단하게 걸려 있던 마법 일부가 흔들렸다.

정신에 작용하는 마법의 단점 중 하나였다.

물론 강력하게 걸면 이런 단점이 부각되지 않겠지만, 그럼 마법에 걸린 사람들에게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지금 이곳 매장에 걸린 마법은 그 가능성이 없는 최소한의 기준만 충족시킨 상태였다.

그렇기에 마법사인 백진희와 최진혁에게는 통하지 않은 것이고.

반태수의 가슴에 위치한 마력 코어에서 마력의 실 수십 가닥이 뽑혀 나왔다.

수십 개의 마력 가닥이 매장에 있는 마법진에 각각 하나씩 꽂혔다.

반태수는 그 작업을 하면서 백진희와 최진혁을 살폈다. 두 사람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수준 차이가 극심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건 사태 수습이기도 했지만, 반태수가 저들에게 하는 일종의 테스트이기도 했다.

마법진에 마력을 공급해 순간적으로 마법을 강화했다.

매장에 흐르던 이상한 분위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내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해졌다.

사태를 수습한 반태수는 다시 논문을 뒤적였다. 백진희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쪽으로는 아예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손으로는 논문을 뒤적이지만 반태수의 머릿속은 백진희와 최진혁에게 온통 쏠려 있었다.

마법에 입문한 지 6년이 지났다.

그 동안 그렇게 찾아다녔지만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던 마법사가 두 명이나 찾아왔다.

반태수는 자신이 왜 마법사를 찾지 못했는지 저 두 사람을 보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 두 사람은 가진 마력의 양이 너무 적었다.

만일 다른 마법사들도 저 두 사람과 비슷하다면, 자신이 그동안 찾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만일 길거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저 두 사람을 지나쳤다면 결코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도 마력을 갖고 있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데 마력이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생명체에서 활동하는 마력은 인간의 몸 전체를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육체와 영혼을 이어주는 역할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한 양의 마력을 갖고 있었다.

한데 저 두 사람은 일반인의 두 배가 좀 넘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저 정도 양은 자연적으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양이었다.

일반인 중에 아무리 많은 마력을 가진 자라고 해도 추가되는 양이 평균의 10%를 넘기지 않는다. 그 10%가 추가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머리가 좋을 수도 있고, 육체가 뛰어날 수도 있었다.

한데 두 배라니. 마법사가 아니면 결코 보유할 수 없는 양의 마력이었다.

물론 반태수 입장에서는 격이 낮아도 지나치게 낮은 마법사들이다. 저런 마법사라면 몇 트럭에 가득 실어서 데려와도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저렇게 마법사가 나타났다는 점이 중요했다.

약한 놈들이 있으면 강한 놈들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진짜 강한 마법사들이 있긴 할까?’

어쩌면 저들이 마법사의 평균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반태수가 마법사를 찾기 위해 쓴 감지 마법은 최소 기준을 자신이 지금 가진 마력의 절반 정도로 잡았다.

그 정도로 기준을 잡지 않으면 한 번 마법을 펼칠 때 들어가는 마력의 양이 너무 많아서 계획을 원활히 진행하기가 불가능했다.

어쩌면 아무리 강한 마법사라고 해도 지금의 반태수가 가진 마력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인지도 모른다.

반태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논문을 뒤적이는 사이 커피가 나왔다.

백진희는 턱짓으로 최진혁을 부려 커피를 가져오게 시켰고, 최진혁은 투덜거리면서도 일어나 커피를 가져왔다. 굳이 이런 사소한 일로 백진희와 툭탁대고 싶지 않아서였다.

한 번 꼭지가 돌면 정말 성가시고 귀찮은 사람이 바로 백진희였다.

“향이 정말 괜찮네.”

백진희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커피를 한 모금 후륵 마셨다. 그녀의 눈이 순식간에 커다래졌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최진혁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헐. 진짜 끝내주네.”

솔직히 최진혁은 커피 맛 따위 전혀 몰랐다. 그에게 있어서 커피란 그저 씁쓸한 물이었다.

한데 이 커피는 달랐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확연히 달랐다.

입에서 복잡한 맛과 향이 폭발해 그것이 비강을 타고 흘러나오며 뇌를 뒤흔들었다.

최진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다른 손님들을 확인했다.

한데 다들 단골이라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신보다 더 맛을 모르는 건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미친 맛인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최진혁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백진희에게 머물렀다.

백진희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맛과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야, 여기 소개해준 친구한테 밥이라도 사라. 진짜 끝내주네.”

최진혁의 말에 백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럴 거야. 이런 데를 내가 지금까지 몰랐었다니. 인생 손해 본 기분이야.”

두 사람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감탄을 토해냈다. 어찌나 호들갑을 떨어댔는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봤다.

여기 커피가 맛있는 건 인정하지만 저렇게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어떤 브랜드의 커피를 가져와도 여기보다 맛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도 여기 커피를 바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 이 비싼 가격에도 별 불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다. 아마 가격이 여기서 좀 더 비싸진다면 제법 고민을 할 것이다.

이곳 카페 위자드의 커피는 딱 그 정도였다.

한데 백진희와 최진혁의 반응은 그걸 넘어서도 너무 넘어섰다.

“뭘 저리 호들갑이람.”

누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도 못 들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백진희와 최진혁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방금 말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서 얼른 시선을 돌리는 걸 보고는 백진희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그런 쓸데없는 데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듯 다시 커피를 음미했다.

오늘 인생 커피를 찾았다.

그녀는 커피를 반쯤 마신 다음, 폰을 들어 여기를 소개해준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들어갔다.

진짜 맛있다고 나중에 밥 사겠다는 말을 남긴 순간, 친구들의 답이 우수수 올라왔다.

-거기 사장님 봤어?

-커피보다 더 끝내주는데.

-말 한 번 걸어보고 싶은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니까.

-진희라면 가능할듯.

-한 번 해봐. 사장님이랑 같이 술 한 번 먹자. 혹시 알아?

순식간에 쏟아진 대화를 쭉쭉 읽어 내려간 백진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장님? 못 봤는데?”

그리고 저 많은 대화들 중에 커피에 대한 말은 하나도 없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진희는 자신의 생각을 올렸다.

-사장님 없다. 더럽게 잘생긴 알바는 한 명 있고. 그나저나 여기 커피 정말 끝내준다. 너희끼리만 이런 걸 먹고 있었던 거야? 나 서운해.

제법 긴 톡을 보내자, 답이 또 와르르 쏟아졌다.

그 더럽게 잘생긴 알바가 아마 사장님일 거라는 말에 백진희는 흠칫 놀라 반태수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이런 큰 카페의 사장이라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보였다.

‘금수저인가?’

그리고 이번에도 커피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남자 못 만나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거야? 얘들 왜 이래?’

평소에도 남자 얘기를 하긴 하지만 이 정도로 열광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반응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반태수의 외모는 그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과했다.

그래서 자신이 반태수에게 명함을 건넸고, 나중에 연락 주면 밥이나 한 끼 먹을 거라는 톡을 남겼다.

반응이 아주 끝내줬다.

그때부터 단톡이 아닌 개인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사는 다 똑같았다. 밥 먹을 때 자신도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이것들 대체 뭐야?”

백진희는 평소와 다른 친구들의 반응에 미간을 좁혔다.

살짝 기분이 이상해지려는 순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하아. 중독될 거 같아.”

“나도 마찬가지야. 앞으로 여기 하루에 세 번 이상 올 것 같다.”

최진혁의 말에 백진희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은 반태수를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다.

친구들과의 톡이 아니었다면 아마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커피를 다 마신 백진희는 카운터로 가서 가지고 갈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그렇게 나온 커피를 받아 밖으로 나가기 전, 반태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연락, 기다릴게요. 전화 귀찮으면 문자라도 보내요. 알았죠?”

백진희는 반태수의 답도 듣지 않고 매장에서 나갔다.

반태수는 매장에서 나간 백진희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아서 일찍 퇴근할게.”

몸이 안 좋다는 말에 이서영과 한서현이 호들갑을 떨며 얼른 들어가 보라고 재촉했다.

꼭 약 먹은 다음 푹 쉬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반태수는 그녀들에게 빙긋 웃어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백진희와 최진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직 어설픈 마법사, 자신도 모르게 흔적을 남기게 되어 있으니까.

반태수는 거리에 남은 마력의 잔향을 따라 느긋하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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