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꺽!
이사벨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자르의 말에 따라 용병왕 카르발에게 직접 수련을 받은 뒤 마침내 제국의 기사작위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크로프트의 입김이 작용해 황룡기사단에 입단하긴 했지만······ 이제 견습인 그녀도 이번 침공에는 참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악!”
“죽여!”
“밀어붙여!”
죽고 죽이는 전장.
눈 깜빡할 사이에 수백의 시체가 늘어나는 이곳은 그야말로 시체의 산이요 피의 강이었다.
“간악한 무리들이 제국의 심장으로 향하는 일만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황룡기사단을 비롯한 팔만의 정예들.
고작 천에 불과한 신성교의 침략자들을 맞이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숫자다.
하지만 신성교의 침략자들은 죽지 않았다.
띠리리~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뚜렷히 들려오는 오르골.
그 오르골 소리는 신성교의 침략자들을 실시간으로 재생시키고 있었다.
팔을 베면 팔이 솟아나고, 목을 베면 목이 돋아났다.
그리고 재생된 부위들은 더욱 크게 부풀어올라 대부분의 침략자들은 인간의 형상마저 잃어버린 상태였다.
‘끔찍해······.’
그녀가 꿈꾸고 바라는 기사.
황룡기사단에서 라인하르트를 수행하며 그의 꿈을 펼쳐주고 싶었다.
이런 시체가 난무하는 전장이 아니라.
하지만 이 역시 기사가 해야할 의무였다.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것. 그를 위해서 목숨도 버려야 할 줄 아는 게 바로 기사인 탓이다.
이사벨라가 이를 악물며 다가오는 침략자에게 검을 휘둘렀다.
휘이이잉!
그 순간 미약한 마나가 이사벨라의 검에 깃들었다.
촤아악!
다가오는 침략자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걸 인간이라고, 같은 생명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신차려라!”
순식간에 부풀어오른 침략자의 전신을 토막내어버린 의문의 남자.
다른 병사들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이사벨라는 그 즉시 남자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 카르발?”
용병왕 카르발!
그녀를 직접 가르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던 그가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젠장. 이자르놈······ 의뢰비는 비싸게 받아야겠군.”
“··· 이자르 오라버니께서 저를 지키라던가요?”
이자르는 조사단의 부조사단장으로서 제국의 중앙정치계에 떠오른 스타였다. 단번에 요직을 꾀어찬 뒤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하는 천재 중의 천재.
라인하르트의 최측근이라는 소문이 무성한만큼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런 천재도 전장에 나가는 여동생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발자크가 급히 말했다.
“벗어나라. 뭔가 이상하다. 느낌이 좋지 않아.”
“이곳은 제 전장입니다. 저는 황룡기사단의 단원이고요.”
“이제 견습 주제에 무슨······.”
정규 기사단원도 아닌 견습 주제에 무슨 단원이냐는 소리다.
견습은 많다. 그 누구도 견습을 기사단원이라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나면 라인하르트의 기사가 될 자격 따위는 없었다.
그녀가 검을 들었다. 미약하던 마나는 더욱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단장께서 용을 죽이셨으니 남은 건 까마귀 성녀뿐입니다. 머지않아 끝날 테니, 카르발님이야말로 물러서시지요.”
“그게 문제라는 거다. 용을 죽인 크로프트는 어디갔지?”
크로프트.
황룡 기사단의 기사단장이며 제국 최강의 검사인 자.
그는 검은 용을 죽였다. 신성교가 끌고온 최강의 병기와 한참을 격돌하며 도륙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갑자기 사라졌다.
카르발은 용병왕이자 암살왕이다.
암살에 있어선 인류 최고라고 자부하는 그다.
그래서 까마귀 성녀를 암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다가갈 수가 없다. 저 까마귀 성녀는 인간이 아니다.
신성교가 자신있게 까마귀 성녀를 보낸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게다가.
“크로프트 단장께선······.”
“다, 단장님? 아악!”
“왜, 왜 우리를······?!”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비명들.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크로프트가 있었다.
용의 피를 뒤집어쓴 그의 두 눈은 무저갱처럼 가라앉은 상태였다.
미친 듯이 오러를 피어내며 순식간에 기사들을 도륙하고 있다.
문제는 그 기사가, 황룡기사단의 기사들이라는 점이다.
“······ 내가 본 게 맞나보군.”
카르발은 이를 갈았다.
전장의 끝에서 크로프트가 까마귀 성녀에게 무릎 꿇은 모습을 보았다.
즉.
“크로프트는 배신했다. 신성교에 붙어먹었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세요.”
“저걸 보고도 말도 안 된다는 소리가 나오냐?”
크로프트가 전장을 휘젓고 있다.
제국 최강의 검사가 적으로 돌아서자 전황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병사들의 비명소리는 전장 전체를 쉼없이 수놓는 중이었다.
허나 불가능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크로프트야말로 제국에 충성하는 최고의 기사 아니던가.
‘여기서 이사벨라를 잃을 순 없다. 녀석은 미래가 밝아. 나보다도 더.’
처음에는 탐탁치 않았다.
돈을 받긴 했지만 여자에게 검을 가르치라니.
차라리 미인계 따위를 가르쳐서 암살자로 키우는 거면 모를까 정상적인 검술을 익히게 만드는 건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이에 포기시킬 생각으로 미친 듯이 굴렸다.
그리고 이사벨라는 그 미친 훈련들을 모두 이겨냈다.
근성은 있었다.
그리고 재능도 있었다.
그 재능은 용병왕이라 불리는 자신보다도 뛰어난 원석이었다.
아니, 대륙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그 정도의 재능이다.
여기서 죽게 놔두는 건 아까운 짓이다. 이자르의 부탁 때문이 아니라도 카르발 자체가 이사벨라를 살리고 싶었다.
“나를 원망해라.”
“무슨······?”
툭!
카르발이 무방비한 이사벨라의 목을 내리쳤다.
순간 줄 끊어진 인형처럼 이사벨라의 몸이 흘러내렸다.
그녀를 받아낸 카르발이 즉시 전장을 벗어났다.
크로프트가 적으로 돌아섰고, 까마귀 성녀는 아직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저 오르골로 인해 병사들이 무한하게 재생하는 것 역시 끔찍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놈들이 섞여있다.’
아직 전장에 나타나지도 않은 존재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을 인간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강력했다.
마치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을 보는 듯했다.
‘젠장. 저런 괴물들이 신성교에 붙어있다니. 저건 신성한 존재들 따위가 아니다.’
그들을 뭐라고 해야할까.
살아있는 재앙, 재해?
놈들이 전장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전황은 더욱 끔찍해질 터.
지금 이 전쟁은 그들에겐 여흥, 혹은 장난과도 같았다.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
“크큭. 서로 죽여라.”
교황 한니발이 말했다.
그는 인간의 모습으로 즐거워 죽겠다는 듯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미들의 전쟁이라도 된다는 듯 병정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발록. 아쉽지 않나? 주인공이 될 절호의 기회를 차버리다니.”
그리고 그 옆엔 발록이 있었다.
마지막 위업이 실행된 것이다.
그 주인공으로 발록이 물망에 올랐지만, 발록은 거부했다.
이후 주인공의 역할은 교황인 한니발이 맡게 되었다.
‘제국은 주인의 땅이다. 하지만 주인은 내가 들키지 않을 걸 우선하여 명했다.’
주인 라인하르트가 마계에서 돌아올 때까지 그 역할을 하는 게 자신의 일이다.
제국을 지키는 것보다 라인하르트의 명령을 따르는 게 우선순위였다.
인간들의 죽음 따위야 솔직히 크게 감흥은 없었다.
다만, 죽는 인간들이 주인의 편인 자들이라는 게 못내 걸렸다.
“이런 게 재밌나?”
“재미있냐니. 왜? 그대가 키운 제국이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것 같아서 조금 그런가?”
“본신으로 밀어버리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 같은데.”
“아서라. 인간들이 얼마나 끈질긴 존재인지 너는 아직도 모르나보군. 우리가 전면에 나서면 인간은 똘똘 뭉친다. 모든 인간이 한데 뭉치면 여러모로 일이 복잡히지지.”
인간을 부수는 건 인간이어야 한다.
용들이 전면에 나섰다간 인간은 똘똘 뭉쳐 대항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지막 위업을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니 용이 모습을 보여봐야 부작용만 커진다는 걸 이미 학습하고 있었다.
“그런 것치곤 용을 내어주지 않았나?”
용이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면 까마귀 성녀와 함께 데려온 그 검은 용은 무어란 말인가. 고룡에 비하진 못하지만 그것도 용은 용이었다.
한니발이 미소지었다.
“아아, 그건 ‘저주’다. 인간을 몰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저주?”
“그 용은 강력한 저주를 품고 있다. 내가 키우던 녀석 중 하나이다만, 자신으 죽인 자로 하여금 몸을 바꿀 수 있지.”
“그래서 용을 죽인 인간이 갑자기 돌변했나보군.”
“제국의 최고가 최악이 되는 순간이다. 이제 저들은 믿음을 잃고 희망도 잃은 채 서서히 파멸해갈 것이다.”
최고가 최악이라.
그보다 더 최악인 놈이 바로 한니발이었다.
아까 보았던, 용을 죽인 인간은 상당히 강했다. 실제로 용보다도 강한 것 같았다. 라인하르트와 함께 제국에서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용을 죽인 직후 그는 돌변했다.
제국의 병사와 기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저주 때문이라니.
저런 저주를 품은 용을 한니발은 몇 마리나 더 갖고 있었다.
용이 용을 키우는 아이러니한 상황.
발록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군.’
이런 상황에 대한 지침은 없었다.
라인하르트도 마지막 위업이 이토록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눈에 띄는 짓을 할 수도 없었다.
제국의 편을 들었다간 괜히 빌미만 줄 수도 있었으니.
다만······.
아예 도울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은 라인하르트의 집이다. 집이 없어지면 라인하르트가 있을 곳도 없어진다. 즉, 라인하르트의 죽음으로 직결될 수도 있었다.
주인을 따르고 지키는 게 발록의 의무.
‘적어도 저주라도 풀어줄 수 있다면.’
전장에서 병사들을 도륙중인 크로프트를 바라봤다.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 어지간한 용들은 나서지도 못할 정도로.
그를 따르는 병사들과 기사들 역시도 막강했다.
크로프트가 적이 된 순간부터 전장의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그러니 그가 제국의 품으로 돌아간다면 한니발의 의도도 막힐 터였다.
*
휘청!
충격적인 소식에 데우스의 신형이 흔들렸다.
“폐하!”
“폐하!”
기사들이 달려왔으나, 데우스는 손을 들어 만류했다.
“괜찮다. 그보다 사실인가?”
“사, 사실입니다. 전멸은 면했으나 치명적인 패배를······.”
“크로프트가 배신을 한 게 사실이냐 물었다.”
“······.”
기사들은 답하지 못했다.
급히 후퇴하긴 했으나 8만이던 병사는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4만. 게다가 크로프트가 변절했다.
누구도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병사들이 본 게 거짓일 리도 없었다.
크로프트. 그가 갑자기 병사와 기사들을 공격했다고.
“그럴 리가 없다.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운 기사가 제국을 배신을 했을 리가 없지 않느냐.”
직접 장비를 하사했다.
자신이 하사한 검으로 제국의 병사들을 갈랐다는 말이다.
이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때였다.
“폐하. 신성교의 병력이 충원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교황이 성전을 선포했습니다.”
“리겔 왕국에서 추가 지원군이······.”
미친 듯이 들려오는 소식들.
결국 교황이 성전을 선포했다.
뿐만 아니라 리겔 왕국을 포함한 몇몇 왕국들이 신성교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
어찌 이토록 빠르게 일이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
압도하여 승리하기라도 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제국의 영역에서 압도적인 숫자로 공격해놓고 후퇴했다.
고작 천 명을 상대로 사만이 죽었다니. 누가 믿겠는가.
이 소식이 퍼지면 더 많은 왕국들이 신성교의 움직임에 동참할 것이다.
천년간 쌓은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리라.
‘카를로스 대공이라면······.’
카를로스 대공이라면, 이 상황을 어찌 타개했을까.
그가 있었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의 처형을 이미 대륙 모두가 아는 상황이었다.
하여 제국을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보는 자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카를로스 대공은 어찌됐든 최강의 장군이었고 억제력이었으니까.
그가 처형된 것도 이 상황을 만드는데 한몫했으리라.
하지만 데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처형은 당연히 집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후회해서는 안 되고, 번복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얼마나 버티겠나?”
“짧으면 이주. 길면 두 달 정도 후에 수도로 진격해올 것입니다.”
강제징집을 통해 병사를 늘려도 두 달이 한계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제국이 이토록 허약했단 말인가?
아무리 어수선한 시기라고는 하나······.
성왕으로 군림하며 군사에 관련된 지출을 대폭 줄인 게 이유일 것이다. 그 돈으로 인프라를 건설하고 백성들이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으니까.
하.
데우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게 안일했던 자신의 탓이다.
황제로써 선대를 뵐 면목이 없다. 천년의 제국이 이토록 약해진 모든 건 자신의 무능함 때문이었다.
“폐하.”
그때 라우넬이 나섰다.
“라우넬. 말해보아라.”
“제가 직접 기사들을 이끌고 출정하겠습니다.”
“······.”
데우스는 입을 꾹 닫았다.
라인하르트가 자리를 비운 지금.
라우넬마저 잘못 된다면 제국은 미래가 없다.
그것을 알기에 데우스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결단하지 못하면 나아지는 것 역시 없었다.
라우넬을 믿어야 한다.
믿어야 하는데.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 마지막 위업(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