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143화 (143/146)

데우스는 비고를 열었다.

제국의 태동과 함께 존재해온 보물창고.

단 한 번도 외부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은 절대적인 보고!

세상의 모든 보물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것들만을 모아둔 그곳을 전면적으로 개방시킨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보물급의 명검들. 쥐는 이로 하여금 순식간에 실력을 몇 단계나 상승시켜주는 무기들이 이곳 황금비고에는 넘쳐났다.

하지만 그중 가장 뛰어난 것을 고르라 하면 당연히 ‘삼신기’가 언급될 것이다.

그 존재는 오직 황제에게만 전해진다. 데우스 역시 알고 있었다.

삼신기 중 하나인 ‘겨울의 활’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지금이야말로 삼신기를 꺼낼 때다.’

오성검 따위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절세의 활!

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저주를 지녔으나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직 제국이 위협받을 때만 꺼내는 게 허락된 활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때였다.

“······ 없다고?”

하지만 황금비고에 들어선 데우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걸려있어야할 게 없다. 삼신기가. 겨울의 활이.

뿐만이 아니다.

“대체······ 누가 황궁비고를 털어간 것이냐?”

겨울의 활을 비롯한 상당한 양의 보물들이 사라져 있었다.

강제로 비고를 들어온 흔적은 없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문을 개방해 들어왔다는 뜻이다.

“······.”

황궁마법사로 직위를 회복한 유진은 입을 꾹 닫았다.

범인이 라인하르트라는 걸 말할 수가 없었다.

‘겨울의 활을 가져가셨을 줄이야.’

그런데 설마 이 정도로 티가 나게 털어갈 줄은 그조차도 몰랐다.

겨울의 활을 아예 가져가다니. 이는 황제가 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다.

허나 유진과 라인하르트는 한 몸이었다.

원수인 발뭉을 죽이고, 직위를 회복하도록 도와준 것 모두가 라인하르트였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보물을 가져갈 분이 아니야.’

속이 깊은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가져가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겨울의 활을 가져가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었다.

“허어······.”

다만 데우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털린 적이 없던 황궁비고가 털렸다.

제국의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 왜 하필 자신의 대에서 일어난 건지.

게다가 지금이야말로 삼신기를 꺼내 용과 까마귀 성녀를 제압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물건을 도둑맞았으니 어이가 없는 게 당연했다.

데우스는 이맛살을 구겼다.

‘까마귀 성녀가 삼신기 중 하나를 갖고 있다고 들었거늘.’

신성교가 지닌 삼신기 중 하나는 천상의 오르골이다.

여태껏 밝혀진 오르골의 능력은 재생능력과 재생시킨 부위의 강화였다.

죽지만 않으면 뭐든 부활시킨다는 절세의 성구.

까마귀 성녀는 그 오르골을 갖고 있다.

고작 천 명으로 아리아 영지의 성벽을 넘고 제국까지 전진하는 이유 중에는 오르골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허나 없어진 건 없어진 거다.

후에 범인을 색출할지언정 언제까지고 망연자실해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은 그보단 진격해오는 신성교의 병사들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크로프트여. 그대와 그대의 기사들에게 3성급 이상의 보물들로 무장을 허락하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크로프트가 고개를 숙였다.

3성급.

한 시대를 풍미한 대장장이가 만든 역작들이 겨우 받는 등급이 바로 3성급이다. 최고등급은 5성급이고 겨울의 활 하나뿐이었다.

그것을 제외한 최고의 보물들로 무장하는 걸 허락한 것이다.

데우스가 황제로 직위한 뒤 단연코 처음있는 일.

그만큼 이번 사안을 가벼이 넘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전력을 다해 신성교의 공격을 처단하고, 더 나아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교황을 끌어내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제국을 공격했다. 거기다가 감히 황태자를 악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좌시할 수 없다. 용서하는 건 불가능하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둘 중 하나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강이다.

그러니 압도적인 차이로 이번 침략을 저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주변국들이 괜한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도록.

그럴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끔 찍어눌러야만 한다.

그런 데우스의 의지를 크로프트 역시 받들었다.

제국에 대한 공격.

그리고 라인하르트에 대한 공격까지.

그 모든 걸 옆에서 지켜본 크로프트였기에, 그 순간부터 신성교는 처단의 대상이 되었다.

라인하르트가 대죄종이라니. 악의 근원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그리고 유진. 궁정마법사여.”

뒤따라오는 유진을 향해 데우스가 말하자, 유진이 바짝 언 채로 대답했다.

“예, 폐하.”

“그대는 비고에 누가 침입했는지 조사하라.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야 할 것이야. 반드시!”

“······ 그리하겠습니다, 폐하.”

*

첫 대결은 혈종 아수라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교만이 아니라 아수라를 집중공격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안일하게 대처한 탓에 손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운 좋게 이겼다만 가신들의 대결만은 어쩔 수 없을 거다.”

마테리얼이라는 변수가 생겼다.

하지만 가신들의 대결에는 변수가 없다.

혈마종도 음마령도 결국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약자일뿐.

그나마 혈마종은 어느정도 싸울 줄 아는 놈이나, 음마령은 칠마령 칠마종 중에서도 가장 약학로 정평이 나 있었다.

‘고작 서큐버스 따위가.’

서큐버스 따위가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는가.

그러니 폭식은 1패가 확정 된 상황이다.

혈마종 홀로 남은 가신들을 모두 이길 수는 없는 노릇.

혈종의 대결과는 다르게 1:1로 진행되는 토너먼트. 전력 하나가 아예 없는 셈이니 2차전에서 폭식의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 그랬을 터였다.

“뭐냐, 저건.”

그런데 혈마종이 차고온 검의 광채가 예사롭지 않다.

마계에서 나는 종류와 재질의 무기가 아니다.

휘광을 내뿜으며 느껴지는 기운조차도 어느 보물 못지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눈길이 가는 건 음마령이 찬 활이다.

한기가 느껴지는 차가운 활.

그러나 일반적인 한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건······.

‘그래봤자 활일 뿐이다. 새로운 무기를 착용한다고 형편없는 전투력이 달라지진 않아.’

탐욕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좋은 무기를 써도 착용하는 자가 형편없다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어중이떠중이 간의 대결도 아니고 무려 천산의 종주들끼리 하는 싸움 아닌가.

천산의 종주라면 어지간한 성룡 급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탐욕을 따르는 두 가신들, 우마종과 신마령은 폭식의 가신들 따위는 코웃음치며 밟아버릴 저력이었다.

“우마종. 밟아버려라.”

“지켜보십시오. 탐욕이시여. 충실한 종, 저 우마종이 압승하겠나이다.”

충실하기 짝이 없는 대답.

자신감이 가득한 모습이다.

하기야 자신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무작위로 선정되는 대결.

때마침 우마종과 음마령이 붙는 대진이 완성됐다.

마종과 마령간의 간극은 확실하다.

상위 일곱의 마종은 상위 일곱의 마령에 비해 월등히 강하다.

게다가 우마종은 마종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최강자였다.

고작 마령 따위가, 그것도 마령들 중에서도 최약체로 평가받는 음마령 따위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음마령은 눈 깜빡할 사이에 도륙되리라.

충실한 자신의 종인 우마종이 그렇게 할 것이다.

혈종의 대결에서 패배했으니 이번 2회전에서 무마해야만 했다.

“화살도 없이 활을 쏘겠다? 마탄의 원리인가?”

대결에 앞서 우마종이 비웃었다.

음마령이 쏘아낸 한기가 느껴지는 활은 화살이 없었다.

그저 당긴 뒤 마나를 압축해 쏘아내는 게 전부다.

마탄과도 같은 원리이나 마탄은 살상력에 한계가 있었다. 화살의 위에 마나를 덮어씌우면 화살 자체가 마나를 지탱해주지만 마나 자체만으로 고형의 물체를 뚫어내는 건 배로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 음마령이 들고 있는 활이 그렇다.

고작해야 마탄.

“어디 한 번 쏴봐라. 고작 마탄 따위로 쏘아내는 활이 내 절대방어를 뚫어낼 수 있을지 어디 보도록 하지.”

마음껏 비웃었다.

우마종은 마종들 중 가장 방어력이 높다.

그의 전신으로 펼쳐지는 마나의 장은 혈종의 공격도 통하지 않을 수준이다.

고작 음마령 따위가 자신의 마나로 쏘아내는 마탄이 얼마나 강하겠나.

그 순간이었다.

치지지지직-!

“음?”

우마종은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활시위에 모이는 마나는 분명히 음마령의 것이다.

형편없기 짝이없는 마나의 양. 마령들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는 게 납득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좁쌀만한 마나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것 아닌가.

이상함을 느낀 우마종이 급히 마나의 벽을 치려는 그 순간이었다.

쫘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아앙!

“······.”

어이가 없어서 탐욕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냐, 저건.”

음마령이 쏘아낸 무형의 화살은 우마종의 벽을 뚫고, 경기장의 장벽마저 뚫어버린 것이다.

정면으로 자신있게 맞은 우마종은 형체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무기가 무엇인가.

사용자를 보조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잖은가.

그런데 앞뒤가 바뀌었다.

음마령이 활을 보조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저 활이 음마령을 보조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파괴력은······ 말도 안 된다.

탐욕이 억지로 고개를 틀어 폭식을 바라봤다.

폭식, 라인하르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처음부터 결과를 예견했다는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노오오오오옴······!!’

탐욕의 인상이 있는대로 일그러졌다.

*

예상대로다.

음마령을 최약체로 생각하고 방심할 줄 알았다.

겨울의 활. 삼신기 중 하나인 그것을 음마령이 쓸 수만 있다면 무조건 1승은 따놓은 당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서큐버스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능력이 겨울의 활과 안성맞춤이다.’

겨울의 활은 사용자의 정기를 모조리 빨아들인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소모된 정기와 마나 따위를 회복하지 못해 죽는다.

하지만 서큐버스는 다르다. 특히 음마령은 타인의 정기를 빼앗는데 아주 강한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겨울의 활이 서큐버스를 상대로 만들어 진 것처럼 음마령은 그것을 순식간에 활용해낸 것이다.

게다가 혈마종이 사용하는 검도 비고의 가장 높은 등급 자산 중 하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궁비고를 털어오길 잘했다.

‘지금쯤이면 황궁비고가 털린 걸 아셨겠지.’

황제 데우스도 지금쯤이면 비고가 털린 걸 알고 당황하고 있지 않을까?

자신이 황궁비고를 턴 것을 아는 사람은 유진뿐이었다.

하지만 유진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진 못할 테니, 단순 도둑사건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었다.

유진이 양심선언을 할 수도 있고.

당시에는 차기 황제가 될 테니 미리 사용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선물로 생각하마.’

라우넬에게 자리를 양보했으니, 그에 대한 선물로 생각하기로 했다.

데우스에게는······.

음. 설마 파면이라도 시키겠는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차피 황궁비고에서 썩는 것보단 이렇게라도 사용하는 게 훨씬 유용하지 않겠는가.

데우스도 이해하리라 믿었다.

이해해줄 것이다.

아마도.

< 마지막 위업(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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