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의 공통점은 공격받은 직후 공격을 해왔다는 것이다.”
타천사들은 장막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서식하고 있다.
그들이 공격해오는 이유 역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나는 당황하고 분노해하는 교만을 향해, 다른 마왕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타천사’라고 부르는 저것들은 그저 공격을 받았기에 반응을 해왔을 뿐이다. 천계의 침략 같은 게 아니라.”
“그럼 처음부터 장막 안에 있었다는 말이냐?”
교만이 묻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없군.”
“하지만 여태껏 균열이 열린다고 무조건 타천사들이 마계를 공격해오는 일은 없었다.”
“말마따나 장막은 주기적으로 균열을 내뱉는다. 하지만 장막 내부의 ‘타천사’들에게 이는 공격의 행위가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래서 공격해오지 않았겠지. 즉, 일정 주기를 두고 공격을 해오는 건 공격에 대한 연쇄반응이다.”
균열이 생겨서 타천사들이 공격해오는 게 아니다.
둥지가 공격받아서 대처한 것뿐이다.
“공격? 누가 장막을 공격해서 마계를 침략하도록 유도하기라도 한다는 거냐?”
“가짜신이 탄생할 때마다 공격해왔다면, 아마도 가짜 신이 탄생할 때 장막에도 큰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지 않겠나?”
십이주신.
열 두 명의 신들은 처음부터 존재해왔던 것이 아니다.
마지막 위업이 실행되고 인류의 말살이 진행될 때마다 한 명씩 추가됐다.
그리고 주신이 만들어질 때 장막에도 유의미한 변화, 혹은 파장 같은 게 생긴다고밖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내 말을 해석한 교만은 오만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그건······ 장막이 마계를 지키는 게 아니라 마계를 가둬두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뜻이지 않느냐?”
장막은 마계의 태동과 함께했다.
하지만 장막을 정확히 누가 만들어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태초부터 존재해왔으며, 마계와 중간계를 나누는 벽 같은 것으로 생각해왔다.
당연히 마족들의 입장에서 장막은 가짜신들의 침략을 막는 결계와 같다. 장막이 있기에 천계의 침략을, 용들의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 반대라면?
처음부터 마계를 가둬둘 작정으로 만들어진 게 장막이라면?
마왕들의 표정에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대죄종들은 알고 있었을 거다.”
“······ 뭐?”
내 안에 깃든 대죄종은 둘이다.
원죄, 그리고 천마.
그래서 알 수 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원죄는 처음부터 마계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천마는 마족들의 생존 자체에 무게를 걸었다.
저 장막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을 리가 없다.
장막 안에 깃든 타천사들. 그것들은 마계의 존재가 바깥에 강제로 나가려고 할 때 막는 방파제의 역할이다.
허나 그것을 마족이나 마왕들에게 말할 순 없었다.
장막이 자신들을 가두는 족쇄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일어날 파급은 상상을 초월할 테니.
당장 장막을 부술 방법도 없거니와, 부순다고 하더라도 그 뒤의 일을 마계가 감당할 수 있는 지조차 미지수였으니까.
이도 저도 못한다면 결국 마족들은 짙은 패배감과 무력감에 휩싸일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자멸해갈 것이었다.
물론 그들과 나는 다르다.
적어도 나는 그들과 다른 시점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장막은 저주가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것 역시 막고 있지.”
저주.
방사성 물질.
그것들이 이곳 마계에 농축되어 있다.
이만한 방사성 물질이 중간계로 유입되면 어지간한 생명체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나노머신과 함께 진화한 인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사성 물질을 이곳 마계로 몰아서 가둬두었다고 보는 게 맞을 터.’
나노머신만으로는 세상에 퍼진 방사성 물질을 모두 정화할 수 없다.
그래서 한곳으로 몰아넣었다. 이곳 마계에.
그리고 장막을 만들어 아무것도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마계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장막을 부수는 것이다.”
“장막을 부숴? 어찌 말이냐?”
방법이 없다.
내가 균열을 일으켜도 장막은 금세 수복된다.
고로 장막을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
그때 불현 듯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대목이 있었다.
“천목.”
“······?”
“천목의 아래에 장막을 부술 방법이 있다.”
제로가 만들어진 실험실.
그게 왜 천목의 아래에 묻혀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묻어둔 것임에는 분명했다.
그 ‘누군가’가 주신이라면? 제로와 박문식 박사를 견제하고자 주신 알파가, 혹은 알파를 만든 박사가 저 실험실을 천목 아래에 감춰둔 건 아닐까?
주기적으로 천목이 방사성 물질과 나노머신을 미친 듯이 내뿜는 것도 분명히 실험실과 연관이 있다.
“천목은 마계의 수호수다. 그것을 파내기라도 하자는 건가?”
교만이 말했다.
다른 마왕들도 탐탁치않아하는 표정이었다.
‘마족들이 숭상하는 천목의 아래에 숨겨두면 영원히 찾지 못할 테니.’
저들의 심리를 잘 이용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느 대죄종들도 진행하지 못했던 것 역시 이러한 맥락이리라.
지금의 마왕들조차도 나를 미친놈처럼 쳐다보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런 시선을 받는 건 너무나도 익숙했다.
하여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파내야지.”
“······.”
*
마계의 수호수로 영원토록 존재해온 천목을 갑작스럽게 제거할 순 없다.
그런 걸 다른 마족이나 마왕들이 두고 볼 리도 없었다.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진정한 대죄종이 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대죄종이 되기 위해선 77일간의 의식을 치러야만 했다.
서로 싸우고 죽이며 증오해야만 했다.
일반적이라면 그렇게 했겠지만 천계가 가파르게 움직이고 있는 걸 확인했으니 힘을 분산시킬 수는 없는 노릇.
“마신전의 규율 수정을 요구한다.”
정해진대로 규율을 따랐다간 피해만 커진다.
여기서 필요한 건 속도전이었다.
규율에 얽매여 있을 수는 없었다.
“규율을 수정하겠다? 적당히 해라. 마왕에겐 그럴 권한이 없다.”
탐욕이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규율의 수정은 오직 대죄종에게만 있었다. 마왕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다. 주제넘을 짓을 계속하는 폭식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수정은 아니다. 다만, 규율에 따라 ‘특별조항’을 따르자는 말이다.”
“특별조항이라니?”
“마신전을 치를 수 없는 위급상황의 경우 임의로 대죄종을 선별할 수 있다는 조항 말이다.”
순간 탐욕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그런 특별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마계가 태동한 이래 한 번도 발동한 적이 없다.
이래적인 경우를 발동시킬만큼의 위급상황도 아니고 말이다.
“··· 마계의 존속이 어려울 수준의 공격을 받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의식을 진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지금 상황에 적용할 조항이 아니야.”
“마계의 존속이 걸린 위급상황이 아니라고? 장막 안에 타천사들을 보고서도 그런 여유로운 소리나 하는 건가?”
“그래서 우리가 지금 공격을 받고 있나? 균열이 계속 열려있더냐?”
균열은 닫혔다.
장막이 스스로 재생하여 균열을 닫았다.
공격 역시 멈췄다.
마신전을 진행하지 못할만큼 위급하진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뭘 모르는 소리다.
“마지막 위업이 곧 실행된다. 아니면 이미 실행되고 있을지도 모르지. 타천사들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진행하면 마계는 쑥대밭이 될 거다. 마테리얼 때문에 제대로 된 반격도 못 할 테니. 그땐 이미 늦어.”
“마지막 위업이 실행되고 있다는 걸 어찌 아느냐?”
“용혈회에서 직접 보았으니까.”
용혈회에서.
그들의 회의에 참석했다.
마지막 위업의 주인공을 정하는 역할 역시 내가 일임받았었다.
인류를 파멸로 모는 역할로써 말이다.
시간이 급박했다.
언제까지고 마계에 묶여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인류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용혈회의 용들과 주신들을 몰아내지 못한다. 알파에게 접근해 놈을 제거하려면 마계의 힘이 필수적이었다.
순간 탐욕이 눈살을 찌푸렸다.
“용혈회에서? 인간인 네가 어찌 용혈회에 들어갈 수 있느냐?”
“아니라면 드래곤로드가 설치한 번개의 장막을 내가 어떻게 건너왔겠느냐?”
“그건 네가······.”
“계속 첩자여서 그렇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나 지껄일 셈이라면 시원하게 한판 붙지. 그게 나을 것 같군.”
말이 안 통하는 상대를 설득시키는 것만큼이나 멍청한 짓이 없다.
그럴 바엔 힘의 논리로 이야기하는 게 훨씬 영양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가 탐욕처럼 꽉 막혀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만. 그가 입을 열었다.
“··· 그만. 우선 들어보도록 하마. 마신전을 급히 진행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교만이 중재했다. 그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회복했다는 방증이기도 하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시간이 없다. 마지막 위업이 실행되고 있는 77일간 우리끼리 싸우기나 한다면 아무런 대처도 할 수가 없다. 마테리얼에 대한 대비를 해도 부족한 시간이니. 그리고 공격당하는 것보단 먼저 공격을 하는 게 낫지 않나?”
교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당하는 것보단 차라리 공격을 하는 게 낫다는 말에 대한 동의였다.
“마테리얼의 대비에 대해선 생각해둔 바가 있나?”
“무공.”
“무공?”
“그래. 무공을 익혀라. 그릇을 비우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한 번 비우면 다시 채우는 것 역시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마왕들은 무공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마나를 오염시키는 마테리얼을 본 순간 무공은 필수불가결이었다.
마테리얼을 대량으로 생산해 타천사들에게 이식했을 정도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마계의 종말.’
확실하게 마족들을 절멸시키겠다는 의도다.
마나, 나노머신에 대한 의존도는 마족이 인간보다 훨씬 컸다.
게다가 주신이 만들어지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었다.
어쩌면 13번째야말로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위업의 끝은 12다. 열두 번째 위업이 항상 마지막 위업이라고 불려왔지.’
그것을 확신하는 건 위업의 숫자 때문이었다.
처음 위업이 만들어질 때부터 위업의 숫자는 12였다.
그리고 이번은 13번째였다.
십이주신. 십삼은 저들에게 없는 숫자다.
말인즉슨 13이야말로 종말의 숫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흡수한 모든 데이터를 취합한 결과 알파의 의도가 ‘세계종말’에 가깝다는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마스터. 마지막 위업이 실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90%를 초과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마스터.]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해준 건 역시나 제로였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북방의 용과 가프, 그리고 말피엘, 기타 모든 데이터를 흡수하고 분석하며 제로가 내놓은 결과였다.
최초의 주신, 알파는 종말을 바라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태초로 되돌릴 생각이다.
나 역시 제로의 생각과 일치했기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마신전을 단축해야만 한다.
속전속결. 모든 걸 빠르게 정리하고 나가야만 했다.
최악의 경우 마계를 벗어났을 때 세상이 쑥대밭이 되어있을 수도 있었으므로.
‘가만히 당해주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다.’
넉놓고 당해주기만 하는 건 내 취미가 아니다.
마지막 위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끔 놔둘 수는 없었다.
그러니 저들이 공격해오기 전에 먼저 공격하자.
아주 쑥대밭을 만들어버리자.
마지막위업이 우리 인류가 아닌 저들에게 해당되도록.
< 마지막 위업(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