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138화 (138/146)

“균열을 연 건 폭식이 확실하다. 중간계에서 찾아온 시기를 봤을 때 가짜신들과 내통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탐욕이 강하게 발언했다.

균열을 연 것은 폭식이다. 폭식의 궁에서 시작된 파동이 장막을 건드렸고, 균열을 연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를 사실로써 가정한다면 폭식이 마계로 들어온 시기도 공교롭다. 처음부터 이런 짓을 벌이려고 마계로 들어온 것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가짜신들과의 내통.

쳐내야 마땅하다.

뼈와 살을 바르고 심장을 끄집어내어 죽음으로 사죄하게끔 만들어야 했다.

이에 탐욕은 강한 분노를 보였다.

그러나 교만은 고개를 저었다.

“타천사들을 정리한 것 역시 폭식이다. 내통했다면 왜 서로 공격하지?”

가장 적극적으로 타천사들을 정리한 것 역시 폭식이었다.

탐욕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 의심을 피하려고 그런 것이겠지.”

“의심을 피하려고 했다면 처음부터 그리했겠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번 사항은 결코 가벼이 넘어갈 수 없다. 교만이여. 그대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천산이 공격받았다.

천산의 위에 균열이 열린 건 처음 있는 일.

마계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 공격받았으니 이 일을 어찌 가벼이 넘길 수 있겠는가.

이 일은 마계 전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과는 같다.

이 결과는 폭식의 죽음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의 소란을 무마할 수 있다.

하지만 교만은 여전히 반대의 입장을 고수했다.

“타천사에게 흑뢰가 먹히지 않았다. 저 ‘마테리얼’은 마왕들에게도 치명적이다. 폭식이 없었다면 우리들 중 하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건 그대가 약해졌기 때문 아닌가, 교만?”

“······.”

탐욕의 말에 교만이 눈썹을 찌푸렸다.

역시나.

흑뢰가 통하지 않은 것을 보고 탐욕은 자신이 약해졌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마왕회의를 강제로 열어서 폭식을 처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회의는 단순히 ‘폭식의 처분’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탐욕. 내 자리를 원하는군.’

교만이 약해졌음을 확신하고 자신이 그 자리를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어찌됐든 교만은 가장 오래된 천산의 마왕이며 최강자였으니까.

마족들의 인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처리하지 못한 타천사를 폭식이 처리했다. 이제 막 마왕이 된 폭식이 해결한 일을 내가 해결하지 못했으니······.’

탐욕은 그 틈을 노리고 있었다.

교만이 약해졌다고. 이제 그의 시대는 끝났다고.

이제 막 마왕이 된 폭식보다도 약한 교만이 언제까지나 우두머리 행세를 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게다.

교만의 결속력이, 카리스마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폭식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벌어졌을 일이다. 마신전이 다가오며 그 시기가 당겨졌을 뿐.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하게 정치적으로 풀어낼 것이 아니었다.

“천계는 진화하고 있다.”

그때였다.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폭식이 나타난 건.

기척을 느끼자마자 탐욕은 인상을 찌푸렸다.

“······ 깨어났나 보군.”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싶었을까?

작게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 없이 나에 대한 회의를 진행한다고 들어서 말이다. 그런데 역시나, 볼 것도 없이 개판이로군.”

“개판······?”

“천계의 진화한 무기를 보고서도 제대로 된 대책은커녕 책임만 전가하고 있으니 이게 개판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 이곳 회장은 억겁의 결계로 둘러싸여 있다. 바깥에서 몰래 들을 수도 없었을텐데 무슨 내용으로 회의를 진행하는지 네놈이 어떻게 안다는 거냐?”

탐욕의 말마따나 안에서 말하는 목소리는 완전하게 차단되고 있다.

하지만 안 봐도 뻔했다.

안 들어도 들렸다.

저들이 어떤 내용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을지.

그도 그럴 게 무려 ‘마왕회의’라는 이름을 달고 진행하는 것임에도 가장 중요한 물건을 빠트려놓았으니.

“이걸 창고에 박아두고만 있더군.”

“음······.”

품에서 물건을 꺼내자 교만이 침음을 흘렸다.

타천사의 날개.

마테리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탐욕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다른 마왕들에게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두려웠나? 꽁꽁 숨겨놔야 할 정도로?”

“헛소리. 천계야말로 우리가 두려워 그딴 기교나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책을 세우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뜻이지.”

탐욕은 마테리얼을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마테리얼의 가치를 떨어트려 교만의 입지를 좁히려는 수작이다.

“대책이 필요 없다? 그렇게 자신 있다면 어디 한 번 만져보거라.”

촤륵!

부서진 날개파편을 회의장 중심부에 던졌다.

움찔!

그러자 탐욕과 나태, 질투가 움찔거렸다.

최소한의 움직임도 없는 건 오직 나와 교만뿐이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게냐?”

역시나.

저 물건의 위험성을 인지는 하고 있다.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 것일뿐.

나는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주었다.

“마테리얼은 마나를 오염시키는 물질이다. 저 날개에 포함된 마테리얼은 5%도 채 되지 않지. 그것만으로도 교만의 살점을 괴사시켰다.”

교만의 어깻죽지가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영구적인 손상.

마왕의 재생능력을 무시해버리는 천계의 최종병기다.

제로로 분석한 결과 그조차도 고작 5% 남짓에 불과했다.

“저런 물질이 천계에서 대량생산되고 있다. 타천사들은 장막 안에 숨어있으며 언제든 마계를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지.”

“··· 놈들이 장막 안에 숨어있다? 그건 불가능하다.”

“놈들에게 불가능한 건 없다. 마계를 지켜온 장막조차도 놈들은 이제 이용할 수 있게 된 거다. 계속해서 놈들은 진화했지만 이곳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또한.”

나는 재차 좌중을 살폈다.

탐욕은 여전히 불신한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태 역시 의심쩍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교만은 다르다. 적어도 그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금 드러난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다. 마계를 둘러싼 장막 전체에 놈들이 퍼져있을 테니.”

“폭식이여. 그 말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교만이 무겁게 말했다.

책임을 지라고. 내 말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이다.

솔직히 장막 전체에 타천사들이 숨어있을 거라는 건 추측에 불과하다. 장막의 내부는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그럼, 증명해라.”

하지만 이건 예상치 못한 답변이다.

잠시 멈칫하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 증명하라니. 다시 한 번 균열을 만들기라도 해보라는 말인가?”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했던 말을 그대로 되받았다.

스스로 증명하라는 것이다.

이전처럼 임의의 장소에 균열을 만들고 타천사들이 공격해온다면 내 말을 전적으로 믿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육문을 열어야 한다.

연달아 여는 건 몸에 부담이 가는 걸 넘어 생명을 불사하는 짓이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나면 이 천산에서 나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십이주신들의 행태를 막기 위해 마계의 힘은 반드시 필요했으므로.

내 대답은 정해져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좋다. 증명해보이도록 하지.”

*

자리를 옮겼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

공기마저 탁한 사막의 중간으로.

이곳에서 균열을 열어 장막의 안을 확인해볼 작정이었다.

균열을 열어 장막 안에 타천사가 숨어있음을 확인하는 것.

만약 사실이라면 마계 전체가 요동칠 문제였다.

장막은 여태껏 마계를 지켜주는 보호장치였다. 신계의 가짜 신들로부터, 용들로부터.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마계가 태동할 때부터 존재해온 장막의 내부에 타천사들이 숨어있을 리가 없지 않나.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면 모를까.

‘헛수고를 하는구나.’

탐욕은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장막 안에, 그것도 장막 전체에 타천사들이 있다는 건 상상에 불과한 헛소리였다.

기발하긴 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지어낸 망상의 찌꺼기에 불과했다.

게다가.

“장막 안에 타천사들이 있다는 말에는 여전히 동의할 수가 없군. 여태껏 무수히 많은 균열이 일어났지만 타천사들이 공격해온 건 손에 꼽는다. 주로 새로운 가짜신이 탄생할 때였지.”

탐욕이 반박했다.

장막의 균열은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균열이 일어날 때마다 타천사들이 모습을 보였던 건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았다.

그조차도 대부분 천계에서 새로운 가짜신이 탄생할 때 그러했다.

“말했지 않느냐. 저들은 장막을 이용할 줄 알게 됐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르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솔직히, 허세다.

100% 확신을 갖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깥에서 위성으로 확인했을 때 타천사들이 거니는 모습은 전혀 본 적이 없다. 포착조차 된 적이 없었으니 장막 안에 숨어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균열을 억지로 열겠다? 위험천만한 짓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탐욕이여.”

교만이 거들었다.

그 역시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것도 이상했다.

“그럼 시작하지.”

나는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개문(開門).’

문을 열었다.

순간 머리에서부터 차크라가 흐르기 시작했다.

휴문(休門).

흐르기 시작한 차크라가 순환하며.

생문(生門).

마침내 가슴팍에서 불꽃처럼 타오른다.

타오른 불꽃은 문을 하나 거칠 때마다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렇게 육문, 경문(景門)에 도달했을 때 전신이 비명을 지르며 차크라는 활화산처럼 끓어올랐다.

“······.”

“······!!”

그것을 본 마왕들은 침묵했다.

교만도, 탐욕도, 나태도, 질투 역시도.

완전히 생소한 힘.

마나와 한데 뒤섞여있는 저 가공할 기운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화아아아아악!

끓어오르는 차크라를 주먹에 담아 그대로 장막을 향해 내질렀다.

그오오오오오오-!

거대한 파동이 장막에 닿자, 장막은 비명을 내지르며 곧이어 균열을 만들어냈다.

“음······!”

“허, 이게 무슨······!”

이후 교만과 탐욕을 비롯한 모든 마왕들이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천산에서도 거리가 제법 먼 곳이다.

미리 대기할 수 없는 장소에서 균열을 열었다.

그런데.

크으. 캬아아아!

이전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의 타천사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모두 마테리얼 날개를 한 채로.

게다가 엄청나게 화가 난 모습이다.

저 모습은 마치······.

“아예 장막 안에 둥지를 틀어놨나보군.”

둥지를 공격받은 새의 그것과도 같았다.

*

천산 위에서 공격을 하고자 대기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장막 전체에 타천사들이 둥지를 틀고 아예 눌러앉아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둥지가 공격을 받자 튀어나온 것에 불과했다.

족히 오백에 달하는 타천사들.

“두 번은 안 당한다.”

교만이 흑뢰를 꺼냈다.

하지만 타천사들에게 던지지 않았다.

대신 흑뢰를 자신의 심장에 박아넣었다.

그 순간 교만의 전신이 흑뢰처럼 새까맣게 변하며 곧 사라졌다.

이어 타천사들을 능가하는 속도와 힘으로 놈들을 ‘뭉게버리기’ 시작했다.

꿀꺽!

질투가 침을 삼켰다.

‘약해졌다며?’

약해지지 않았다. 교만은 아직도 전성기였다.

하늘에 광음이 터질 때마다 수십의 타천사들이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오백의 타천사를 정리하는데 들어간 시간은 고작 10여분가량.

이내 지상으로 내려온 교만은, 자신의 힘을 더 이상 과시하지도 괄시대지도 않았다.

원래라면 자신의 건재함을 알려야 정상일텐데도.

“······ 마신전이 문제가 아니로군.”

교만이 말했다.

오랜시간 기다려온 마신전.

특히 교만만큼이나 이 마신전을 기다린 마왕은 없었다.

그런 그조차도 마신전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폭식이여.”

더 심각한 표정과 눈빛으로 폭식을,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태껏 보인 적 없는 떨림.

그건 분노도, 짜증도 아니었다.

당황.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역력하게.

그것도 수만년 동안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당황스러움이었다.

그가 동공을 흔들며 말했다.

“도대체······ 장막 안에 저것들이 몇 마리나 있는 게냐?”

< 타천사(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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