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황제-136화 (136/146)

“엄청나군.”

교만이 쏘아낸 흑뢰를 보며 나태가 중얼거렸다.

검은 번개가 미친 듯이 연쇄하며 하늘의 반쪽을 먹어버린 것이다.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모든 일에 염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나태이지만, 교만이 쏘아낸 저 흑뢰는 도무지 평상시의 태도로 일관할 수가 없었다.

“나태. 너는 처음 보는건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탐욕이 입을 열었다.

둘은 궁의 꼭대기에 올라 흑뢰가 계속해서 번져나가는 걸 보고 있었다.

한 번 터진 흑뢰는 점점 영역을 늘려가며 하늘을 먹어치웠다. 그 가운데엔 당연히 마계를 침범해온 타천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런 광경을 나태는 처음 보았다.

최근 마왕이 된 폭식을 제외하면 나태가 마지막이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모든 일에 염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나태이지만, 교만이 쏘아낸 저 흑뢰는 도무지 평상시의 태도로 일관할 수가 없었다.

한 번 터진 흑뢰는 점점 영역을 늘려가며 하늘을 먹어치웠다. 그 가운데엔 당연히 마계를 침범해온 타천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태. 너는 처음 보는건가?”

둘은 궁의 꼭대기에 올라 흑뢰가 계속해서 번져나가는 걸 보고 있었다.

저런 광경을 나태는 처음 보았다.

벌써 80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 시간 동안 교만은 흑뢰를 사용한 적이 없는 탓이다.

“저게 교만의 권능인가?”

“그렇다. 타천사들이 마계를 침범할 때마다 한 번씩 사용하곤 하지.”

나태의 물음에 탐욕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천사들이 침범해 올 때마다 교만은 흑뢰를 사용했다.

그러곤 단번에 침범을 무산시켜버렸다.

가장 빠르고 깔끔하게.

아예 타천사들이 침범해오는 균열 자체를 막아버린다.

“저런 걸 정통으로 맞았다간 신이라고 해도 무사하진 못하겠군.”

나태의 말마따나 사실이었다.

어느 마왕이라 할지라도 교만의 저 흑뢰를 정통으로 맞고 살진 못한다.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그럴 것이다.

가장 강력하며 오래된 마왕. 그게 교만이다. 다른 마왕들이 괜히 교만을 경계하는 게 아니다.

교만이 말했다.

“그만큼 자주 쓸 수 없는 권능이지.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타천사들이 마계의 권역 안에 이미 있지 않고서야 균열이 열리자마자 침범해올 리가 없을진대.”

누군가에 의해 균열이 열렸다.

그리고 균열이 열린 즉시 타천사들이 침범해왔다.

그것도 천산의 중심부에서 말이다.

나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타천사가 침범해오는 건 꽤 있는 일이라고 들었는데?”

“그것도 최근 들어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가짜 신들이 빠르게 증식하고 있다는 뜻이지.”

“증식이라······ 그러니까 벌써 열세 번째 신이 탄생했다?”

“글쎄. 보통 가짜 신이 탄생할 때마다 균열은 바깥에서 열려오곤 했다. 하지만 이번 균열은 내부에서 열렸다.”

“폭식의 궁에서······.”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러한 시기에 천산을 찾은 폭식.

그 폭식이 내부에서 균열을 열자마자 타천사들이 쳐들어왔다.

“그럼 폭식이 가짜 신들과 통하고 있다는 건가?”

“흑뢰가 모두 정리하면 그 뒤에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야겠지.”

폭식은 스스로를 증명했다.

적어도 자신이 마왕임을 공표할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의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만은 어물쩍 넘어갔지만, 탐욕은 아직 폭식에 대한 의심을 접지 않았다.

특히 이번 일은 여러모로 수상한 점이 많았다.

이어 탐욕과 나태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흑뢰가 걷히면 균열은 잠잠해질 것이다.

타천사들도 사라져있을 터였다.

여태껏 그랬으니까.

한 번도 흑뢰로 대천사들을 정리하지 못한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 그 뒤, 이번 일에 대한 것을 폭식에게 직접 묻겠다.

“그런데 괜찮은 건가?”

“무엇이 말이냐?”

“저 타천사들이 흑뢰를 벗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뭣······?”

나태의 말에 탐욕은 이내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흑뢰는 계속해서 영역을 좀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타천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흑뢰로도 없애지 못했다고······?!”

교만의 흑뢰가 타천사들을 없애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교만이 약해진걸까?

‘타천사들의 날개가 이전과 다르다.’

아니다. 무언가 이상하다.

흑뢰를 벗어난 타천사들의 날개. 이전 타천사들이 침범해올 때엔 보지 못했던 것이다.

침범해올 때마다 타천사들은 진화해왔지만 그뿐이었다.

흑뢰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연쇄하며 묶어버리는 거미줄 같은 흑뢰에서 말이다.

헌데 벗어난 것이다.

빠르게 흑뢰의 그물망을 찢어버리고, 더욱 빠르게 지상으로 낙하하여 천산을 뒤집어놓았다.

시선을 돌리자 교만의 표정이 잔뜩 굳어있었다.

나태는 이 상황을 보며 짧게 정리했다.

“적들이 흑뢰를 대비해온 모양이로군.”

“······.”

*

어떨 땐 만 년, 어쩔 땐 수천 년 단위로 균열을 제치고 쳐들어오는 타천사들.

그럴 때마다 교만은 흑뢰를 던져 균열을 막고 타천사들을 죽여왔다.

간혹 타천사들이 발전하고 진화하며 버텨낼 때도 있었으나 그래봤자 시간의 차이일뿐.

단 한 번도 흑뢰의 막을 타천사들이 뚫어낸 적은 없다.

그럴진대.

‘뚫렸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교만은 자신의 권능에 대한 막강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 흑뢰는 가히 무적이었다.

그랬기에 천산의 마왕 중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타천사들이 흑뢰를 뚫고 튀어나온 것을 모두가 보았다.

그들 모두가 교만이, 자신이 약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허나 그건 이후의 일이었다. 당장 교만이 겪고있는 충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저 날개가.’

타천사들의 날개.

처음 보는 금속이 섞여있음을 눈치챘다.

더 가볍고, 더 빠르며, 일정부분의 마나를 무시해버리는 힘을 지녔다.

‘나의 흑뢰를 뚫어냈다.’

그래서 흑뢰를 뚫을 수 있었다.

흑뢰 역시 마나를 먹어치우는 기능을 지녔으나 결국 그 역시 마나로 이루어져 있다. 마나의 그물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는 드래곤로드의 번개의 망과도 유사하나, 둘 사이의 차이점은 번개의 망은 태우고 흑뢰는 먹는다는 것이었다.

마나를 먹고, 더욱 크게 덩치를 키우는 게 흑뢰다.

하여 마나를 지닌 모든 존재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아예 마나의 성질을 무시해버리는 날개를 가져왔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할까.

‘저 날개는 마나의 힘을 순식간에 0으로 만든다.’

0. 그것은 허무의 단계다.

모든 마나를 원점으로 돌려버리는 기술이 저 날개에, 저 금속에 포함돼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나를 오염시킨다.’

말인즉슨.

“큿······!”

빛처럼 빠르게 날아온 타천사가 교만의 방어막을 뚫고 어깨에 상처를 입혔다.

당황하고 있던 터라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에 대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상처였다.

‘······ 회복되지 않는다고?’

날개에 난 상처가, 회복되질 않는다.

본래라면 이런 작은 생채기쯤은 눈 깜빡할 사이에 치유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생체기는 순식간에 괴사했다. 피부가 썩었다. 썩은 영역이 계속해서 증대되어가자, 교만은 억지로 괴사한 피부를 손으로 완전히 도려낼 수밖에 없었다.

‘저 날개는 마왕의 재생능력마저도 소용없게 만든다. 더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을수록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마족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마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상처가 생기면 이 역시 마나의 작용으로 치유된다. 더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을수록 빠르게 재생되는 이유다.

그가 영겁의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것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마나를 지녔기 때문이다.

수만 년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마나가 노화를 극도로 늦춘 덕분이었다.

하지만 저 날개에 당하면 누려온 모든 것을 잃는다.

실제로 괴사한 피부는 오히려 자신을 좀먹어갔다.

작은 생체기 하나 때문에 뼈가 보일만큼의 살을 도려냈다.

방치했다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가짜 신들이 뭘 만들어낸 거지?”

교만이 중얼거렸다.

“마테리얼.”

그리고 그 답을, 폭식이 하였다.

폭식의 라인하르트.

옆으로 다가온 폭식을 보며 교만은 인상을 찌푸렸다.

“마테리얼?”

“저놈들이 달고 있는 날개를 이룬 성분의 이름이다.”

“그걸 어찌 알고 있는 게냐? 혹시? 그러고 보니 저 균열을 만든 것도 네놈 아닌가?”

폭식의 궁에서 쏘아진 거대한 힘.

그 정체 모를 힘을 모든 마왕이 느꼈다.

날개의 정체를 알며 균열을 만들어냈으니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곤란하게 됐군.’

······ 그 의심을 나도 알고 있다.

모든 마왕들과 마족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의심을 해소하지 않으면 마왕이 되기는커녕 공격당해 죽을 것이라는 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힘 조절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니, 단순한 힘 조절의 실패 수준이 아니었다.

‘천마의 룬. 그 안에 깃든 힘은 장막과 상극이다.’

마계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장막.

저 장막은 단순한 마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온갖 에너지의 집합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천마의 룬 안에 담겨있던 ‘기운’은 저 장막에 상극으로 작용하는 힘이었다.

팔문 중 육문을 열고 기운을 방출하자 자연히 장막 역시 벗겨진 것이다.

허나 이걸 곧이곧대로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

“한 번 싸워본 적이 있다. 용의 날개가 저 성분으로 변했었지.”

말피엘은 베타의 축복을 받고 마테리얼의 성질을 가지게 됐다.

지금 그 성질은 다크엘프 아렐에게 전이됐으나 그때 처음 싸워봤으니 보다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허나 여전히 교만은 의심의 눈초리였다.

언제든 나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이어서 말했다.

“교만이여, 장막을 뚫은 건 내 의도가 아니었다. 새로이 얻은 힘을 시험하다가 힘조절에 실패했을 뿐.”

“······ 힘 조절에 실패해서 장막이 뚫렸단 말이냐? 그러자마자 타천사들이 나타난 모든 게 그저 우연이라 말하고 싶은 게냐?”

장막은 뚫고 싶다고해서 뚫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교만 역시 장막을 뚫어내진 못하건만.

그것을 그저 ‘힘조절’에 실패해서 그렇게 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이가 없지만 직접 보았지 않나.

나는 교만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놈들은 장막 안에 이미 숨어있었다.”

확신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위성의 관측에 걸리지 않을 리 없다.

놈들은 이미 장막 안에 숨어있었다.

언제든 쳐들어올 준비를 끝마친 상태로.

“장막 안은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는 미지의 장소다.”

“장막이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지?”

“장막은 마계를 지켜주는 결계다. 1대 대죄종인 원죄가 천목과 함께 만들어낸 역작이지.”

“그렇다면 저들은 그 장막마저 이용할 방법을 찾은 모양이군.”

“······.”

교만이 입을 닫았다.

흑뢰가 먹히지 않은 건 저들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마테리얼이라는 새로운 금속을 만들어내 대항한 탓이었다.

저들은 진화한다.

주신에 의해 계속해서 진화해왔다.

마계의 결계마저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진행되었대도 이상하지 않다.

‘내가 유일하게 관측하지 못한 장소. 그게 바로 저 장막의 안이다.’

저 장막의 내부는 투영할 수 없다. 위성으로도 관측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저 장막의 어딘가에 주신들의 고향, 용들의 고향 ‘에덴’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저지른 실수이니 직접 수습하도록 하지.”

몸을 크게 풀었다.

아직 육문이 열려있었다.

근육이 뻐근하다. 피가 미친 듯이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

쿵!

바닥을 박찼다.

그 순간, 이미 내 신형은 그 자리에 없었다.

< 타천사(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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