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이란 무엇인가.
몸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더욱 정확히 정의하자면 ‘몸속에 자연’을 담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천마 이자백은 세간에 알려진 ‘마나’가 제대로 된 자연의 기운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의 기운을 ‘마나’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말로 저 벌레 같은 것들이 자연현상에 의해 생겨난 기운이란 말인가?》
《천지자연에 존재하는 기운은 생명체에게도 존재하기에 자연적인 것이다. 모든 생명체에, 심지어 모든 생명체가 아닌 것들에도 존재하기에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으며, 사용할 수 없어야 옳다.》
《하지만 그러한 ‘기운’이 가장 격동하는 때는 당연히 생명이 탄생할 때다. 그러나 이때 모든 생명체는 ‘마나’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마나’는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기생’하는 것이다. 기생한다는 건 숙주가 필요하다는 뜻이니 그것을 결코 ‘자연의 기운’이라 정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로 마나는 자연에 의한, 우주에 의한 ‘기운’이 아니다. 모든 것의 탄생과 생명, 자연에 하등 관계없는 간편한 도구이자 기생충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주만물에 존재하는 ‘기운’은 무엇인가?》
그는 천재였다.
단순히 강해서 대죄종에 오른 게 아니다.
만물에 존재하는 ‘자연 기운’이 흔히 말하는 ‘마나’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구심을 탐구하며 진짜를 찾기 시작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닿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무공’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그 의문에서 시작하며 끝나는 게 바로 무공이다.》
《모든 생명체는 소우주를 갖고 태어난다. 작디 작은 벌레에게도 소우주가 있으며 몸집이 크다고 그 우주의 크기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소우주’를 채워 넣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기에 본좌와 다른 종족이 무공을 익힌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알 수 없다.》
《허나 마족은 이름을 계승함으로써 이 ‘룬’의 기운을 채워 넣을 수 있다. 그 특수한 성질 탓에 룬이 본좌에게로 계승되어온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룬이 없어도 무공을 익히며 소우주를 채울 수는 있으나, 룬이 있음으로 인해 더욱 빠르게 우주의 진리에 닿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인즉.》
《자신의 소우주를 개척한 자라면 더욱 큰 진리의 앞에 절로 번뇌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무공이란 자신에게 존재하는 소우주를 채워 넣는 작업이다.
소우주를 개척한 자라면 더욱 큰 진리 앞에서 자연히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말이었다.
지금 혈마종의 상태가 그러했다.
단순히 검무를 본 것만으로도 깨달음의 상태에 들어섰다.
나노머신을 많이, 잘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존재 자체의 격.
본신의 격과 영혼의 격이 함께 상승한다는 의미였다.
동시에.
‘모든 나노머신의 제약에서 자유가 된다.’
천마신공은 나노머신의 제약을 푸는 기폭제다.
나노머신은 인간을 이롭게 하며 방사성 물질로부터 자유를 가져다 줬지만 이로운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폭주. 에픽 현상. 나노머신에 의해 죽거나, A.I에 의해 몸을 빼앗기는 현상들.’
같은 명령을 두 번 하는 것만으로도 폭주가 일어난다.
이 얼마나 조약하고 조악한 제약인가.
고작 그 두 마디를 반복한 것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다.
게다가 인간이 에픽처럼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폭주한 나노머신에 A.I가 탄생하며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만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가 나노머신에 의한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증거였다. 천마 이자백의 말마따나 ‘기생충’이라 해도 무방할 수준이다.
그것도 숙주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악독한 기생충이었다.
무공은, 천마신공은, 그러한 제약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도록 수양시키는 일종의 ‘백신’과도 같았다.
‘천마가 무공을 퍼트린 이유가 있었군.’
2대 대죄종, 천마.
그는 마족들이 나노머신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그와 관련된 내용도 존재했으니.
《마족이 악귀나 혈종이 되는 현상 역시 ‘마나’와 관계되어있다.》
《마나와 저주가 불균형을 이루어 몸집이 비대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나가 뇌에 영향을 주어 모든 기능을 상실케 만든다.》
《‘이름’을 잃고 스스로를 잊는 게 기폭제가 되는 것도 모두 ‘마나’에 의한 영향이다. 마계에 퍼진 마나는 중간계의 것과 달라서, ‘이름’을 잃는 것만으로도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명령권을 잃는 것과 같다.》
《마나······ 이 기생충은, 제대로 된 명령권자 없이는 무한하게 증식하고 비대해지는 특성을 보인다. 명령권자가 이름을 잊으면 폭주하는 게 이러한 증명이다.》
《이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무공’을 익혀야 한다. 본좌가 중간계로 넘어가 주신들을 멸한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결국 마족은 멸종할 것이다.》
《무공은 자신의 소우주를 채우는 것. 마나는 이 소우주를 비워버린다. 소우주가 비워지면 자신을 잊게 되고 마나의 노예가 된다.》
《마나를 버려야 한다. 버릴 수 없다면 더 크게 채워넣어라. ‘천마신공’은 오직 그것만을 위한 공부이니.》
그는 대죄종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하지만 마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평생토록 무공을 만들었고, 마족들이 그것을 익히도록 장려했다.
천마는 더 먼 미래를 바라본 것이다.
이대로면 마족들은 멸족의 길을 걸을 것이기에. 설령 중간계로 나가 주신들을 죽이더라도 멸망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천재로군.’
천재. 그 외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천마군림보가 전반부인 것도 이해가 간다.’
천마군림보는 자신을 포함한 주변 모든 나노머신의 에너지를 방전시킨다.
모든 에너지를 방전시켜야, 나노머신이 아예 작동하지 않게 만들어야 제대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는 ‘제로’가 있었다.
제로는 나노머신의 본질과도 같은 것.
천마는 마나를, 나노머신을 버리라고 말한다.
‘··· 제로를 버리라는 말인가?’
천마의 말은 간단하다.
제로를 버려야 비로소 진리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제로는 나의 재능이다.’
이미 제로를 내 한 부분이자 재능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손과 팔을 잘라서 수행하라는 건 그냥 미친소리다.
내 재능을 버려가면서까지 진리에 닿으려고 발버둥을 치고싶은 마음은 없었다.
‘제로가 있기에 천마가 닿지 못했던 곳까지 닿을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천마 이자백도 대성은 못했다.
진정한 자연경에 닿지는 못하였다.
굳이 그의 뒤를 바짝 쫓아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내 방식대로, 유연하게 하면 그만이다.
물론 천마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노머신에 도움을 아예 받지 않고 하는 수련도 의미가 있겠지.’
제로를 버리진 않는다.
다만, 제로의 도움 없이 수련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터였다.
물론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나노머신의 에너지를 의도적으로 방전시키며 하는 수련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뻐근해지는 기분이었으니.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혈마종이 눈을 떴다.
곧 나와 눈을 마주친 혈마종은.
털썩!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폭식이시여.”
“무언가를 깨달은 모양이군.”
“예. 제 몸속이 채워지는······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천마신공의 진리와는 궤가 다를 테지만 이를테면 제가 저 하늘 위를 노니는 기분이라고 해야할지······.”
모든 무공은 천마신공에서 파생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천마신공을 원류로 천마 이자백은 무공을 만들고, 마계에 퍼트린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더 큰 진리. 마나의 속박에서 자유를 찾기 위해.’
마족들이 폭주하는 것을 두고볼 수 없어서였다.
모든 마족이 악귀나 혈종 같은 괴물이 되어 파멸하는 결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무공을 익힌 자가 천마신공의 검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당연히 깨달음을 얻은 자는 악귀나 혈종이 되지 않는다.
악귀나 혈종이 되는 건 마족들의 ‘마나 폭주’현상이었고 무공과 그에 대한 깨달음이 이 폭주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은 아닐텐데.’
나는 가만히 혈마종을 살폈다.
외적으로는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크게 변해있었다.
“심장을 돌던 마나의 기류에 변화가 생기지 않았나?”
“······ 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혹시 이런 모양으로 마나가 돌고 있지 않나?”
허공에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렸다.
∞와 같은 모양. 하지만 막혀있지 않고 무한하게 회전하는 띠의 모양이었다.
그것을 본 혈마종의 두 눈이 크게 확장됐다.
존경심을 가득 담은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며 말했다.
“마, 맞습니다. 심장을 돌던 서클의 형태가 그렇게 변했습니다.”
기존에 나노머신들은 서클에 따라 구의 숫자를 늘리며 심장을 돌았다.
5서클이면 5개의 동그란 띠가 심장을 도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고 소우주를 그리면 동그라미 두 개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무한의 띠’ 모양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형태가 마나의 폭주를 막는 근본적인 모습인가보군.’
나는 턱을 쓸었다.
‘천마가 말한 소우주가 바로 이것인가?’
우주란 무한한 것.
그 무한한 형태가 이러한 모습으로 심장에 새겨진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혈마종도 그렇게 변했다면, 이 모양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봐야할 터였다.
‘나는 저 띠가 두 개다. 천마의 룬, 그리고 나노머신. 따로 놀고 있는 거다.’
하지만 혈마종과 내가 다른 게 있다면 그것은 천마의 룬의 유무다.
룬의 기운은 처음부터 ‘무한의 띠’모양을 하고 있었고, 나노머신은 그 뒤를 이어 형태를 변화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변화했을뿐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천마 이자백은 나노머신이 변화한 저 띠를 버리라고 말하고 있었고.
‘자연의 기운이 모든 것에 존재하는 근본과도 같은 힘이라면, 나노머신이 품은 에너지 역시 그 기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노머신을, 제로를 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선 물과 기름 같이 따로 노는 이 두 띠를 합칠 필요가 있었다.
‘둘을 합칠 수만 있다면 천마신공을 대성하는 것 역시 가능할 터.’
결국 숙제였다.
그것도 무조건 해야하는.
할 수만 있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천마 이자백의 경지마저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나는 골몰히 생각을 이어나갔다.
‘정말 천마님의 환생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허······.’
혈마종.
지금 이 순간, 그는 폭식에 대한 단순한 지지관계를 벗어던졌다.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겠습니다.’
폭식과 자신을 마치 한 몸처럼 여기며 절대적인 충성을 받칠 것임을 맹세했다.
그에 대한 공격은 자신에 대한 공격과도 같은 취급을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무공은 약자나 배우는 것이라며 우습게 보던 마족들.
그들에게 반격할 시간이 도래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혈마종의 두 눈에 강렬한 열망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
천산 경배의 날까지 고작 30일.
안무는 해결 됐다지만, 의복을 직접 짜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것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디자인을 선별합니다.]
[선별 된 디자인을 목록화하여 정렬합니다.]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월계수 양복점의 주인 엔드류’의 재봉기술을 재현합니다.]
내게는 제로가 있으니까.
100% 따라할 순 없겠지만 그 손기술을 어느정도 모방하는 건 가능하다.
디자인이야 이미 황제와 황태자 노릇을 하며 수없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바쁘게 움직이는 손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천산의 마왕들, 특히 교만의 델바란은 나를 비웃으려고 잔뜩 벼르고 있겠지만.
‘오냐. 제대로 눈에 띄어주마.’
< 마왕(1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