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 치직······.
홀로그램이 깨지고 있었다. 제대로 식별이 불가능할만큼 노이즈가 많았다.
[위성의 내부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망가진 상태입니다.]
[화질 개선을 시도합니다.]
[노이즈의 복구를 시행합니다.]
홀로그램이 선명해져간다. 깨진 부분을 채워넣고 강조하는 방식으로 제로는 위성의 내부를 온전하게 내보내는데 성공했다.
이윽고 완전해진 홀로그램의 영상에 나는 진심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인간인가?”
그 안에, 인간이 있었다.
인공위성. 흔히 말하는 성좌.
하늘 위 우주의 부유물 속에 인간이 있다니.
일전 제로가 지배한 ‘무궁화 호’의 경우엔 생체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드워프의 잔재로 추정되는 ‘드워프 호’의 내부엔 생명체가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은 아니다.
우선 전신에 털이 없다.
코가 뭉개져 콧구멍 두 개가 붙어버린 기괴한 형상이다.
둥글게 몸을 만 상태로 두꺼운 원형의 관 속에 갇혀있었다.
[해당 위성의 데이터를 읽은 결과, ‘생명유지장치’ 안에 있는 건 ‘드워프’로 추정됩니다.]
드워프.
고도로 발전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종족.
그게 바로 저 위성 안의 저것이라고?
[‘드워프’가 암호화 된 신호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해석하시겠습니까?]
심지어 살아있다.
산 채로 내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해보아라.”
순식간에 해석된 내용이 내 귓가로 들려왔다.
『‘너는 누구인가? 헥사곤 체인(hexagon chain)을 뚫어낼 기술력은 저들에게도 존재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우리와 접촉한 것인가?’』
헥사곤 체인?
생소한 이름이다.
아무래도 데이터의 침입을 방어하는 기술의 이름인 듯싶다.
동시에 저들의 기술력보다 제로의 기술력이 더 높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우리?”
‘내’가 아닌 ‘우리’라고 칭한 것.
보이는 건 하나뿐인데 마치 전체를 말하는 것처럼 호칭하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이며 다수인 존재다. 육체를 벗어던지고 하나의 정신체로 묶인 발할라의 신이다. 또한 지상에 존재하는 ‘악’을 멸하고자 인간에게 힘을 부여하는 별이다.』
치장하는 말이 많다.
발하라의 신. 인류에게 힘을 부여하는 별. 하나같이 ‘있어보이는’단어의 조합이었다.
동시에 제로가 응답했다.
[지상에 있던 드워프들이 위성으로 도망친 데이터가 남아있습니다.]
[‘특급 보안 프로세스’를 돌파해 해당하는 내용을 읽습니다.]
[······ 요약하자면 주신 알파와 베타에 의해 억압받은 드워프들은 남아있는 고대의 유산을 탈취해 발할라라 칭해지는 우주로 떠났습니다.]
[이후 육체정보와 뇌를 데이터화 시킨 뒤, 독자적인 인트라넷 ‘헥사곤 체인’에 묶음으로써 알파와 베타의 추적을 피했습니다.]
[‘헥사곤 체인’은 과거 인류가 개발한 ‘블록 체인’의 상위 버전으로, 박문식 박사가 남겨둔 기술의 잔재를 이용한 것입니다.]
역시나.
저렇게 스스로를 치장하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은 못봤다.
‘박문식 박사가 남겨놓은 기술들을 이용했을 뿐이라는 거로군.’
드워프들의 초월적인 기술력의 바탕도 결국 박문식 박사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는 뜻이다.
그것을 저런 말로 치장하며 자신들의 업적인 양 떠들고 있다는 것인데.
“전부 데이터화 시켰으면 진짜 육체는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왜 굳이 남겨놓고 있는 거지?”
제로의 말에 의하면 육체는 필요없다.
하지만 저들은 육체를 ‘저장’ 해놓고 있었다.
생명을 유지시키며 필요없는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말로 신이고 별이면 저런 육신은 도리어 걸림돌 아닌가.
『‘절대악에게서 지상을 수복할 때, 우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위대한 고대의 기술을 지닌 자여. 우리와 합치하여 저 악의 횡포를 이겨내지 않겠는가. 그리하겠다면 그대에게 필요한 힘을 우리가 보태줄 것이다.’』
힘을 합치자.
힘을 합쳐 저 십이주신들을 몰아내자.
그럼 도움을 주겠다······.
“구체적으로 무슨 도움을 말하는 게냐?”
대충 알겠다.
저들이 힘을 주는 방식은 결국 자신들에게 반응하는 ‘특정 나노머신’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정도다.
하지만 제로가 있는 내게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방식이었다.
저들의 기술력보다 제로의 기술력이 못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므로.
『‘절대악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주겠다.’』
이건 의외였다.
그런데 주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라면 삼신기를 말하는 건가?
나는 아공간을 열어, 겨울의 활을 꺼냈다.
“이걸 말하는 것이냐?”
이미 삼신기라 불리는 것중 하나는 내가 갖고 있다.
그것을 본 드워프가 부정어린 말을 꺼내었다.
『‘그것은 절대악을 죽이는 무기의 조각이다. 세 개의 조각을 모으면 진정한 모습을 되찾게 된다. 고대의 기술로도 따라올 수 없는 독자적인 힘의 결정체다.’』
보아하니 삼신기를 말하는 것 같다.
그 세 개를 모으면 진정한 모습을 되찾는다는 의미다.
셋 중 하나는 내가 갖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신성교에 있었다.
솔직히 궁금하긴 하였다.
“그렇게 강력한 무기라면 너희가 썼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을 완성한 직후 우리는 절대악에 의해 포착됐다. 그들의 공세에 우리는 발할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세 개로 나누어 숨기는 게 최선이었다.’』
과연. 완성하자마자 알파와 베타에게 걸려 몰살당했다는 말이다. 겨우겨우 우주로 도망친 걸 ‘발할라로 떠났다’고 하는 걸 보니.
별다른 기대감은 들지 않았다. 이미 패배한 자의 투정 아닌가.
하지만 이어서 드워프가 하는 말은 내 구미를 당기게 하기에 충분했다.
『세 개의 조각을 모으면 절대악의 중추인 ‘이그드라실’을 파괴할 수 있다. 이그드라실을 파괴하면 놈들은 지상에 대한 간섭력을 잃게 된다.』
이그드라실. 세계수의 이름이다.
“세계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말투로군.”
『‘이그드라실은 용들의 비호 아래에 있다. 태초부터 존재한 드래곤로드와 연결되어 있지. 드래곤로드를 해부할 수 있다면 세계수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우리가 만든 무기라면 드래곤로드조차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용들의 비호.
태초부터 존재한 드래곤 로드······.
‘용혈회.’
감히 잡혔다.
그곳의 로드를 죽인 뒤 해부하면 세계수의 위치를 알게 된다는 것도.
당장은 힘들겠지만 기회는 있었다.
‘본회의.’
그곳에 참가할 권한을 얻었으니까.
하지만 그 전에 삼신기를 모두 모으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드래곤로드와 그들 용혈회에 대해 보다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충분히 역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터였다.
모든 게 연결된다.
용혈회로. 그들의 회의로.
『‘어떠한가, 위대한 고대의 기술을 지닌 자여. 우리와 손을 잡지 않겠는가?’』
값진 정보를 얻었다.
저들이 알고 있는 정보와 기술, 내게 쥐어줄 수 있는 이득 따위는 분명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저들과 나의 목표도 얼추 비슷하다.
하여, 나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거절한다.”
*
“황제가 될 생각이 없다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데우스는 탄식했다.
라인하르트의 선언에.
하지만 데우스는 내심 라인하르트를 차기 황제로 낙점하고 있었다.
변했으니까. 보여줬으니까.
‘그간 했던 홀대에 대한 반항일 것이다.’
허나 데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황제가 되는 것을 거부할 사람은 없다.
단지, 그간 해왔던 홀대와 핍박이 문제였다. 데우스가 무관심했대도 황실의 사람들은 라인하르트를 미쳤다며 욕해왔던 게 사실이었으니.
하여 튕기는 척 고자세로 나오는 게 분명했다.
‘내 잘못이다.’
데우스는 인정했다.
자신의 무관심으로 인해 라인하르트는 그간 욕을 먹었다.
홀대를 당하고, 무시를 당했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곤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라인하르트를 두둔해줬다면 이 정도로 핍박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건 고치면 된다.
‘이것을 바로잡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더 이상 무관심하지 않는 것.
끊임없이 자신이 관심을 주고 있다는 것을 황실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라인하르트의 명예를 되살리고, 제국의 중심으로 부각시키려면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제와 함께하는 황태자.
그것을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인식을 개선한다.
콜로세움에서 한 바탕 치장을 해주었으나 이는 시민들만이 환호할뿐, 아직 황실의 사람들은 머뭇거리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차기 황제가 되려거든 그들 모두를 품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그들의 인식을 바꿔줄 필요가 있었다.
‘말뿐인 지지는 필요없다.’
그저 말로만 라인하르트를 지지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 행동 중 가장 파급적인 건 당연히 배필을 구해주는 것일 테다.
‘··· 슬슬 라인하르트도, 라우넬도 혼인을 할 때가 되었지. 도리어 너무 늦은 감마저 있으니 공개적으로 상대자를 구할 때가 되었다.’
라우넬은 평화협정을 위해 북방으로 떠났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아직 궁에 남아있었다.
‘제대로 된 배필을 구해주어야겠구나.’
그리고 과거 라인하르트와 베르사유 백작가와 혼담을 주선한 건, 제대로 된 뒷배경을 라인하르트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베르사유 백작가는 변방백이고 최전선에서 항상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사람들이었다. 중앙정계와는 어느정도 담을 쌓았기에 라인하르트의 배필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라인하르트가 카를로스 대공의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때 베르사유 백작가와 혼인이 불발이 된 게 천만 다행이었다.
‘마침 삼일 후 수르트만 왕국과 회동이 있다. 다이애나 공주도 함께 온다고 하였으니, 라인하르트와 함께 회동에 참가하면 되겠어.’
수르트만 왕국의 다이애나 공주는 외모와 인성이 뛰어나기로도 유명하다.
수르트만 왕국 자체도 남부의 패자로 칭해지고 있으니, 라인하르트의 날개로 부족함이 없으리라.
함께 회동에 참가하면 라인하르트는 모든 주목을 함께받을 것이다.
중요한 회동에 참가시킨만큼, 황실에서 라인하르트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후 계속해서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이면 인식 역시 달라질 터.
“라인하르트를 데려오거라. 같이 식사를 할 생각이니.”
차근차근 나아간다.
시작부터 배가 부를 수는 없다.
다소 어색하다고 해도, 같이 식사를 하며 안면을 트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럼 라인하르트의 투정도 희석될 것이기에.
라인하르트와의 관계 개선에도 힘을 써야 할 때였다.
“예, 폐하.”
데우스가 말하자 기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궁 바깥으로 나갔다.
이후 한참이 지나도 기사들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의아할 때 즈음, 다시 되돌아온 기사들은 황급한 말투로 외쳤다.
“사, 사라졌습니다!”
“······ 누가 사라졌다는 말이냐?”
“라, 라인하르트 전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
데우스는 할 말을 잃었다.
다만, 같은 말만이 뇌리를 관통할 뿐이었다.
‘······ 또?’
*
아렐과 헬라는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게 갑작스럽게 용을 타고 궁을 떠나 도착한 곳이 마계의 지척이었기 때문이다.
쿠아아아아!
쿠르르릉! 콰아아앙!
하늘과 땅이 개벽이라도 하는 것 같다.
중간계와 마계를 나누는 벽이라도 되듯 광활한 대지에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일반적인 번개가 아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마나가 머금어진 킬링필드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발을 들이는 순간 죽을 것이다.
아무리 각성하고 강해졌다고 해도 저 공간을 그냥 뚫고 지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꿀꺽!
아렐이 물었다.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인세에 존재하지 않는 별세계에 있는 기분이었다.
······ 그런 아렐을 향해, 나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용들의 무덤이다.”
꽈아아아아아앙-!
< 용들의 회의(1) > 끝